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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29화 (29/184)

29화

“네, 말해 보세요.”

정령학 교수가 교단에 일어서 학생의 질문을 기다렸다. 그녀의 눈에는 신입생이든 졸업생이든 모두 어린아이였으므로 흐뭇한 표정으로 팔을 들고 있는 학생을 바라보았다.

“지하의 용암 호수 말입니다만.”

미하일 루스 이네하트가 입을 열었다.

“그곳의 샐러맨더는 교수님께서 키우시는 겁니까?”

“……질문인가요?”

교수가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는 미하일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진지한 표정의 학생이 얌전하게 들어 올렸던 팔을 내리는 것을 보아하니 장난은 아닌 듯싶었다. “우선은…….” 교수가 입을 뗐다.

“정령은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에 머물지 않아요.”

교단에 선 교수가 질문을 한 학생이 가지고 있는 정령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정정해 주었다. 정령을 일반적인 동물과 같은 선상에 둬서는 안 되었다. 정령은 오히려 인간보다 훨씬 더 마나의 원천, 그러니까 세계의 기운에 가까운 생명체였다. 그런 생명을 고작 인간이 키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저 학생의 질문은 애초에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건물 지하에는 연구실밖에 없는데?”

“예……? 그럴 리가…….”

미하일이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정령학 교수는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녀는 학생이 우연히 지하의 연금술 학부의 실험을 보고는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지하실은 연금술 학부와 정령 학부가 나누어 쓰고 있지요. 용암 호수라니. 그런 위험한 곳이 아카데미 지하에 있을 리가 없잖아요.”

교수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미하일이 분명 다른 곳과 헷갈린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강의실 의자에 편하게 기대어 질문하는 왕자를 바라보던 아드리안이 천천히 등을 의자에서 뗐다. 이상했다.

분명 우리는 용암 호수를 봤는데? 아드리안은 이상한 대답을 들은 왕자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미하일 또한 아드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소년의 눈이 강의실 공중에서 부딪쳤다.

정령학 강의가 끝나고, 아드리안 헤더는 툭툭 두꺼운 책을 책상에 대고 정리한 후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야, 갈 거지?”

길거리 시정잡배나 쓸 법한 호칭에 아드리안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강의실 뒤쪽 벽에 청년이 등을 대고 기대어 있었다. 당연히 저놈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아드리안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수업이 끝난 후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곳을 향해 걸었다. 아카데미의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을 경쾌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의동의 계단을 나란히 걸어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어?”

계단 반대편에서 올라오던 학생이 두 청년을 바라보고 소리를 냈다. 한스 타비엔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둘이 어딜 가?”

아드리안은 그래도 아는 사람을 마주쳤으므로,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딱히 그에게 용건은 없었으므로 대충 대답하며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 했다.

“지하에 볼일이 있어서요.”

그들이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후, 한스가 아드리안의 앞을 막아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신입생들이 지하에는 왜? 거기는 연구실밖에 없어.”

한스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말해 준다는 듯이 당당하게 둘의 앞을 막았다. 그러나 아드리안과 미하일이 워낙 덩치와 키가 큰 편이라 그다지 막아서는 폼이 나지는 않았다.

미하일은 앞을 막고 있는 팔을 슬쩍 비켜서 계단 아래로 다시 걸어 내려갔다. 그에 비해 아주 약간 예의를 차리는 아드리안이 한스에게 말했다.

“아, 그런가요?”

아드리안이 하나도 고맙지 않은 어투로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이라고 뒤이어 붙였다. 그러나 한스는 아주 평범한 청년이었으므로 아드리안의 그런 후배 시늉에 뿌듯한 듯 말을 더했다.

“진짜야. 지하에는 정령 학부와 연금술 학부 연구실 두 개가 끝이거든, 헷갈린 거 아니야?”

“……그냥 다른 일 때문에 확인할 것이 있어서요.”

아드리안은 미하일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걸어 내려가며 말했다.

“그래? 뭔데?”

한스가 계단을 올라오던 발을 움직여 휙, 방향을 틀었다. 그러고는 아드리안의 바로 옆에서 걸으며 물었다. 이런, 귀찮은 인간이 붙었군. 아드리안은 슬쩍 인상을 썼지만, 일단 옆의 인간은 명목상 선배이기 때문에 온순하게 대답해 주었다.

“……오늘 아침에 이상한 일이…….”

아드리안은 말을 일부러 늘였다. 말하자면 긴데 정말로 다 들어 볼 거냐? 라는 의미였다. 한스는 아드리안이 순순히 이야기하는 줄 알고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거렸다. 미하일은 빨리 안 내려오냐는 뜻으로 한참 전에 지하로 가는 계단에서 발을 딛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일?”

한스가 말했다. 어?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신기하네. 너희도 지하에서 이상한 문에 들어갔어?”

아드리안이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너희도’라는 단어가 귀에 쏙 들어왔다. 이런 뜻밖의 수확이 있나.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접히며 묘한 미소를 만들어 냈다. 계단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하일이 고개를 휙, 들어 올렸다.

“궁금하네요. 저희 말고 또 어떤 학생들이 그런 일을 겪었는지.”

한스가 큼, 하고 소리를 내어 헛기침했다.

“그래? 물어봐. 지금 바로 앞에 있잖아.”

“……선배님도?”

아드리안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빨리 와.” 계단 밑의 미하일이 퉁명스럽게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학생은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응. 그리고 매해 같은 일을 겪은 학생들이 나와. 바사미엘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육 대 신의 장난이지.”

육 대라는 숫자가 상당히 구체적이었으나, 아드리안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는 드래곤이었고, 마나는 드래곤이 태어나자마자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봤던 그 문에서는 아무런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용암 호수와 샐러맨더. 그리고 샐러맨더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눈속임이었다.

“내가 봤던 곳을 알려 줄게.”

“네. 좋습니다.”

아드리안과 한스가 함께 지하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왕자가 눈썹을 들어 올렸으나, 굳이 도와준다는 사람을 거절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미하일도 다시 움직였다.

학생 세 명이 지하의 연금술 학부 연구실 문 앞에 섰다. 굳이 연구실 문 앞이라고 언급한 이유는, 그 문 이외에 지하의 오른쪽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아드리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연구실 옆의 벽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손바닥에서는 마나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다. 본체의 마나를 끌어오지 않은 한 더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다. 중요한 점은 인간들의 마법은 확실히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에 보고는 내가 미친 줄 알았다니까.”

한스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왕자는 그것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선배님은…….”

미하일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선배님이라는 단어에 두 청년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미하일은 팔짱을 낀 채로 벽에 기대 있었다. 이렇게 무심하게 서 있었지만, 그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선배님은 어땠죠?”

“나는…….”

한스는 그때를 떠올렸다. 예전에 피아노 실습을 마치고 생각 없이 계단을 걸어 내려오다가 일 층이 아니라 지하까지 걸어 내려왔던 때였다. 예술 학부생이 아카데미 지하까지 오는 일은 통합 과정인 일 학년 때가 아닌 이상 매우 드문 일이었다.

‘아… 잘못 내려왔잖아.’

한스는 자신의 실수를 곧바로 눈치채고는 다시 올라가려 했다. 그때였다. 지하의 복도 어디선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응? 한스는 계단을 향해 돌렸던 고개를 휙, 복도로 다시 돌렸다.

이 어두운 지하에 새가 잘못 들어온 건가? 한스는 이왕 지하까지 내려온 김에 불쌍한 새를 잡아서 일 층에 올려 줘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지하의 어두운 복도를 혼자 걸어야 했다.

으윽, 한스는 자신의 양팔에 솟은 소름을 지우려 손바닥으로 매만졌다. 으스스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복도 끝까지 걸어가도 새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다시 그의 귀에 들렸다. 도대체 어디지?

한스는 지하의 어떤 철문 앞에서 우뚝, 걷던 발걸음을 멈췄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그 철문 안에서 들려왔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철문 바로 옆의 연금술 학부 연구실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가 일 학년일 때 수업을 들었던 연구실이었다.

그때……

그때는 이 철문 같은 건 없었는데?

‘아닌가?’

한스는 스스로의 기억에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는 중에도 새는 평화롭게 문 너머에서 지저귀고 있었다. 한스는 이왕 왔으니 문은 열어 보자고 생각했다.

무거워 보였던 철문이 쉽게 열렸다. 끼익, 한스는 문을 조금만 열고 문틈에 눈을 가져다 댔다. 문틈에서 시원한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간질였다. 한스는 그 바람에 눈을 살짝 감았다가 안을 살폈다. 곧이어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맙소사…….’

문 너머에는…… 울창한 숲이 있었다.

“숲이요?”

조용히 한스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있던 아드리안 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용암 호수였는데, 저쪽은 숲이었다.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누가 장난을 치는 거지?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결국 그 새는 포기했어. 워낙 울창한 숲이라…….”

아드리안은 전혀 관심 없는 정보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중요한 것은 새가 아니었다.

“들어가 보셨습니까?”

한스는 그 질문에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보였다.

“들어갔다가는…… 다시는 못 돌아올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

한스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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