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6. 미하일과 샐러맨더
월요일에 드디어 정령학 수업이 있었다.
지금까지 바사미엘의 모든 학부 수업 중, 행정 학부와 정령 학부 수업만 아직 들은 적이 없었다. 저번 주 월요일에 입학식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번 주가 첫 수업들이었다.
행정 학부야, 뭐 어찌 되든 상관없었으나 정령 학부는 아드리안 헤더의 관심사와 비슷했으므로 드래곤은 즐거운 아침을 시작했다. 왕자는 오늘도 아침 훈련을 나갔는지, 그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아드리안은 발랄한 걸음으로 기숙사를 나와 강의 건물을 향해 아카데미 중앙 정원을 걸었다.
일 학년 수업만 대부분 아침에 있었으므로 중앙 정원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아직 정령학 수업 시작까지 조금 시간이 남았다. 드래곤은 혼자만의 시간을 주말에 이어서 한껏 만끽했다. 싱그러운 정원의 풀들에 아침 이슬들이 살짝 젖어 있어 상쾌한 공기를 홀로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아침을 일찍 시작한 것은 드래곤 외에 한 명 더 있었다.
아드리안은 조용한 아침을 홀로 즐기다가, 앞서 걸어가고 있는 왕자를 발견했다.
훈련을 마치고 샤워실에 들렸다가, 바로 강의실로 가는 모양이었다. 미하일의 밝은 은발이 살짝 젖어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그가 아끼는 검이 매여 있었다.
그들이 중앙 정원을 조용히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드드드드드——
연금술 수업에 겪었던 지진이 땅을 울렸다.
“또 지진이잖아?”
아드리안이 뒤에서 말하자, 왕자가 투덜거렸다.
“아카데미를 도대체 어디에 지었길래.”
곧이어 지진이 멎자, 두 학생은 지진 때문에 낮췄던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두 사람이 서 있는 정원 아래에서 무언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휙, 하고 고개를 돌렸다. 강의실 건물 바깥에서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좁은 돌계단이 있었다. 그쪽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수업 시작까지 얼마나 남았지?”
왕자가 계단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한…… 삼십 분 정도?”
아드리안의 대답을 듣고, 왕자는 그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저 계단이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퍽 수상해 보였다. 아드리안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으므로 왕자의 뒤를 따랐다. 흥미로운 걸 발견한다면 좋은 일이었고, 아니라면 그냥 계단으로 강의실에 올라가면 되는 거였다.
터벅터벅.
좁은 지하 돌계단에 학생 두 명분의 아카데미용 구두 소리가 울렸다.
돌계단을 걸어 아래로 내려가자, 이전에 연금술 교수를 따라갔던 강의 건물의 지하가 나왔다. 그냥 정원에서 곧바로 강의 건물 지하로 들어올 수 있는 계단이었던 듯했다. 생각보다 시시한 탐험이었으나…….
드드드드———
또다시 뭔가가 크게 울부짖는 소리가 났고, 그들이 있는 복도가 다시 한번 지진으로 크게 떨렸다. 미하일은 몸을 낮추며 그 소리가 나는 방향을 손짓했다. 그곳에는 어떤 철문이 있었다.
“저기야.”
“……가 보려고?”
굳이 지금? 위치만 살피고, 나중에 혼자 다시 올 생각이었던 아드리안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지금은 보는 눈이 있어 마법도 못 쓰는 상태였으니 당연했다. 거치적거리는 동행인은 이쪽에서 사양이었다.
“오. 겁이 나신다?”
왕자는 입꼬리를 올려 아드리안 헤더를 도발했다. 미하일은 아드리안을 복도에 세워 두고 철문으로 걸어갔다. 그가 한 손으로 철문 손잡이를 열자 끼익- 하고 그 문은 쉽게 열렸다.
문이 열리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
아드리안은 왕자 옆에 있는 연금술사의 방을 슬쩍 봤다. 이전에 수업을 들었던 곳이 바로 곳이었다. 여긴 아카데미의 건물이었다. 학생들에게 위험한 곳이라면, 뭔가 문에 안내 문구라도 붙어 있거나, 잠겨 있었을 것이다. 혼자 내려가도 죽지는 않겠지…….
그러나 드래곤은 잠시 고민했다. 나중에 왕자가 다쳐 오거나 죽기라도 하면 유일한 룸메이트를 추궁할 게 뻔했다.
아드리안은 계단을 향해 고갯짓했다.
“네가 앞장선다면.”
“그건 당연하지.”
미하일은 계단을 밟았다. 왠지 모를 뜨거운 공기가 계단 아래에서 훅 불어 올라왔다.
내려갈수록 더 뜨거운 열기가 그들을 후끈하게 감쌌다. 계단의 끝에 다다르자, 앞장선 미하일이 멈춰 서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왜?”
뒤따라 내려오던 아드리안이 물었다.
“……아카데미 지하에 이런 곳이 있어도 되나?”
왕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아드리안에게 지하의 어떤 부분을 가리켰다. 계단을 통해 더 내려온 곳은 아주 커다란 동굴 안이었다. 인위적으로 파낸 곳인 듯 동굴의 벽은 손질되어 있었다.
이윽고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떨떠름한 표정을 그제야 이해했다.
동굴 바닥을 반 정도 채우고 있는 붉은 바다였다.
조금 더 유심히 보자 그것은 붉은 바다라기보다는 죽음의 바다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가장자리는 까맣게 식어 굳어 있었으나, 그것도 언제든지 다시 불타오를 수 있다는 것처럼 균열 틈으로 빨간 줄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커다란 용암 호수였다.
아까부터 뜨거운 바람이 불어온다 했더니, 용암 호수가 지하에서 펄펄 끓고 있을 줄이야.
아드리안은 미하일 옆에 섰다.
지진은 그렇다 치고, 그 울부짖는 소리는 뭐였지?
드래곤은 동굴 안을 두리번거리다 흥미로운 생명체를 찾았다. 아드리안은 용암 호수의 틈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과 눈을 맞췄다.
“오”
그것은 아드리안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뜨거운 용암을 헤엄쳐 왕자와 아드리안 앞까지 미끄러져 다가왔다. 그것은 악어와 비슷한 크기로 유유히 용암을 가르고 있었다.
그것은 용암 호수의 중앙에서 출발해, 아드리안과 미하일 앞까지 헤엄쳤다가 땅을 밟아 걸어왔다. 그것이 걸을 때마다 헤엄쳐 왔던 용암 호수의 붉은 용암 덩어리가 뚝, 뚝 가끔 떨어졌다.
취익-
불을 뿜는 도마뱀이었다.
아드리안이 흥미롭다는 듯이 불을 뿜는 도마뱀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인간을 처음 보는지 취익-취익- 하며 입에서 작은 불꽃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멸종된 줄만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네?”
불을 뿜는 도마뱀은 더 가까이 있는 왕자보다, 그 뒤에 서 있는 드래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터줏대감에 가까운 생명체들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유희 중인 드래곤을 쉽게 알아차리고 고귀한 생명체에 예를 갖추곤 했다.
“이게…….”
미하일이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스릉, 뽑아냈다. 그러고는 검을 뻗어 바닥에서 아드리안과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도마뱀을 툭 건드려 보았다. 그러자 도마뱀은 드래곤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몸을 조금 부풀리며 왕자의 검에 집중했다.
“이게 드래곤인가?”
듣고 있던 드래곤이 왕자의 상식을 고쳐 주었다.
“아니.”
아드리안은 도마뱀의 눈인사를 무심하게 받아 주었다.
“샐러맨더야.”
“샐러맨더나 드래곤이나 비슷한 종류잖아.”
미하일은 작게 중얼거렸다.
완전히 다른 종족인데…… 아드리안은 샐러맨더를 바라보며 ‘그렇지?’라고 눈으로 말했다. 샐러맨더는 자신에게 위협적으로 검을 들고 서 있는 왕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어쩐지 샐러맨더가 왕자의 검을 너무 뚫어지게 바라본다 했다.
샐러맨더가 몸을 부풀리더니 커다란 입으로 왕자의 검을 덥석, 입에 집어넣은 것이다.
“윽……!”
왕자의 손이 빠르게 검으로 뻗었으나, 아드리안이 빠르게 제지했다. 샐러맨더는 방금 뜨거운 용암을 헤엄쳐 왔다. 인간들은 조금만 스쳐도 심각한 화상을 입을 수 있었다. 미하일은 그런 아드리안의 배려도 모르고, 곧바로 다른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샐러맨더는 미하일이 낚아챌 틈도 없이, 검을 왕자의 손에서 완전히 빼앗아 물었다. 커다란 검이 샐러맨더의 입 밖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샐러맨더는 고개를 위로 쳐들고 입을 벌려 검을 통째로 꿀꺽 삼켰다.
꿀꺽, 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그러고는……그것은 다시 용암 속을 헤엄쳐 갔다.
샐리맨더는 용암 호수의 중간쯤에서 고개를 한번 들어 올리더니, 수면 아래로 힘껏 고개를 처박았다. 고개 다음에는 몸통, 그리고 마지막 샐러맨더의 꼬리까지 용암 호수 안으로 조용히 잠수했다.
왕자와 아드리안은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상황 파악을 하느라 잠시간 침묵에 빠졌다. 야. 이렇게 가면 어떡하냐…… 드래곤은 마음속으로 샐러맨더를 불렀으나, 그것이 다시 용암의 수면 위로 고개를 들어 올리는 일은 없었다.
“아.”
아드리안은 조용히 왕자에게 설명을 덧붙였다.
“……샐러맨더는 철이 주식이야.”
이게 바로 샐러맨더와 드래곤의 다른 점이었다.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종족이라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