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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24화 (24/184)

24화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모든 학생들이 들떴다.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신입생들은 아카데미 입학 후 그들에게 주어질 첫 주말 휴식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 강의실로 이동하고 있는 오후 수업 <취향과 예술>만 끝나면, 자유 시간이었다. 일 학년들은 바사미엘 아카데미 근처의 도시로 외출을 가기 위해 마차를 예약하고 유명한 상점들의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두는 등 오랜만에 생긴 자유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수업이 상상되지 않는가! 취향과 예술.

교수님께는 미리 죄송할 말이었지만, 무척이나 가벼울 것 같은 수업이었다.

“아드리안. 이번 주말에는 뭐 할 거야?”

“음. 뭐, 기숙사 근처를 둘러볼 계획이야.”

“그렇구나. 나는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아! 아. 우리랑 같이 도시에 나갔다가 올래?”

“고마워. 조금 고민해 볼게.”

말은 그랬으나 고민은 무슨. 아드리안은 절대 유시에게 도시에 같이 가겠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이번 주말에 아주 할 일이 많았다. 혼자 숲을 산책하고, 조금 걷다가 다시 기숙사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애초에 인간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건 적성에 안 맞았다. 다행히 유시는 밝게 웃으며 고민해 본 후에 말해 달라고 대답했다. 아드리안은 겉으로만 웃으면서 유시의 주말 일정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신입생들은 주말 계획을 떠들어 대면서 강의실에 들어갔다. 강의실에는 학생 대부분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교수님도 이미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취향과 예술> 수업의 교수님이었다. 그의 뒤에 놓인 피아노와 악기들 때문인지 악단에게 합주를 부탁하는 지휘자같이 보였다.

교단에는 아주 커다란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일반인들은 이름도 알기 힘든 귀하고 비싼 악기들이 줄지어 장식되어 있었다. 바사미엘이 학비가 비싼 아카데미인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교수님은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을 한번 크게 둘러본 후, 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아주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나요?”

신입생들은 강의실에 앉아, 교단에서 말을 이어 가는 교수의 말을 경청했다.

“취향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양을 쌓기 전에 가장 먼저 자신의 취향을 알아야 해요. 다행히 여러분들은 취향을 알아가기에 완벽하게 좋은 나이랍니다.”

아드리안은 강의실에 몸을 기대어 은근슬쩍 교수의 말에 동의하듯이 고개를 약하게 끄덕거렸다. 좋은 말이었다.

“예술의 세계는 아아주 간단해요. 이 수업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예술의 이론에 관해 이야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예술이 왜 간단하냐고요? 왜냐하면 완벽한 예술이 무엇인지 모두가 동의할 만한 정의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없어요.”

일 학년이 듣는 수업은 모든 학부생을 위한 통합 수업이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돈깨나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었으므로, 기본적인 소양은 충분했다. 교수는 아이들이 예술에 대한 지식을 공부하기보다는 예술을 함께 느껴 보길 원했다. 그러니까 결국 일 학년은 실습 위주라 이거였다.

아드리안은 우쭐해진 표정으로 교단을 바라보았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아름다움을 봐 왔고, 들어 왔고, 만들어 내 왔다. 드래곤은 실기 수업이라면 자신 있었다.

“우리는 그중에서 가장 취향을 느끼기 좋은 음악부터 시작해 볼 겁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다양한 음악을 함께 듣고, 그 음악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을 가질 거예요. 알겠나요?”

교수의 질문에 강의실의 학생들이 저마다 “네.”라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이 학생 중, 가장 예술에 대한 경험이 많을 것 같은 왕자를 바라보았다. 왕족 대부분은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다른 아이에게 물었다가 그 아이가 대답하지 못해서 상처받을까 봐, 왕족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것이 진짜 자신의 취향이든 교육받은 취향이든 말이다.

“음. 이네하트? 좋아하는 작곡가나 곡 몇 가지를 알려 주세요.”

강의실 뒤쪽에 앉아, 한쪽 팔을 책상에 걸친 채 수업을 듣고 있던 미하일은 교수가 질문하자마자 잠시 고민하더니 바로 대답했다.

“안톨 마르테…… 그리고 조지나 로웰르의 곡을 좋아합니다.”

오- 교수는 미하일의 대답을 듣고 그의 가슴 앞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손뼉을 살짝 쳤다.

“아주 좋아요. 이네하트가 방금 여러분께 소개한 취향은 아주 수준 높은 음악이죠.”

교수는 흐음, 이라고 말하며 잠깐 고민하다가 자신의 뒤에 있는 피아노를 슬쩍 한번 확인했다. 그것은 아카데미의 위상에 걸맞은 피아노 장인의 역작이었다.

“이네하트. 혹시 그중에서 연주할 수 있는 것도 있나요?”

“네.”

미하일은 교수의 부름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자신의 아카데미 교복 매무새를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무척 교양 있는 걸음걸이였다.

그는 피아노로 걸어가 피아노 의자를 뒤로 슥, 당겨 왔다. 그러고는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은 왕자가 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왕자의 발이 가볍게 피아노의 페달에 올라갔다.

가넷의 신입생들은 미하일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운 얼굴의 청년이 피아노 교본의 정석처럼 앉아 있었다. 그는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깔고 피아노 연주를 준비했다.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은 왕자의 피아노 연주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는 모든 교양의 중심인 수도의, 왕성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왕자였다.

강의실의 모든 인원이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살짝 감았다. 그들의 귀는 감미로운 멜로디를 받아들일 준비를 끝냈다. 미하일의 길고 흰 손가락이 힘을 실어 피아노 건반 위로 툭, 올라갔다.

그리고 왕자는 그가 좋아하는 곡을 힘차게 연주했다.

꽈광.

아니?

아드리안은 가장 빠르게 감았던 눈을 떴다.

왕자의 피아노에 살짝 기대어 눈을 감고 기다리던 수업의 교수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아드리안 헤더를 포함해 모든 신입생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왕자는 사람들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강단 바로 앞에서 피아노를 열심히 연주하고 있었다. 만약 이 광경에서 모두가 귀마개만 착용하고 있었다면 아름다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의실의 모든 사람의 귀는 아주 멀쩡했다.

처음에는 왕자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왕자는 진지했다.

그는 진지하게 매우 엉망이었다.

그가 연주하는 멜로디가 틀려서 엉망인 것은 아니었다. 미하일의 연주는 듣는 사람이 거슬려 불쾌할 정도로 박자가 이상했다. 미하일의 연주 실력에서 왕실의 엄청난 노력이 보였다. 저 정도의 박치가 이렇게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어마어마한 교육이 필요했으리라.

미하일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아주 비싼 피아노 의자에 앉아 연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 피아노를 만든 장인이 만약 그의 연주를 들었다면 망치를 들고 달려들어 자신의 역작을 내려칠 듯한 소음이었다.

“그만…… 그만해도 좋아요.”

교수는 피아노의 윗부분을 살짝 짚으며 왕자에게 말했다. 그는 무럭무럭 자라날 새싹에 애써 미소를 지어 주면서 자리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여러분들을 위해 연주를 해 준 이네하트에게 손뼉을 쳐 주세요.”

우리들을 위해서요?

아드리안을 포함한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이 영혼이 나간 채로 손뼉을 쳤다. 그에 미하일은 아주 뿌듯한 연주를 마쳤던지 당당한 발걸음으로 다시 강의실 뒤쪽으로 걸어갔다. 아주 뻔뻔한 놈이었다.

교수는 악몽 같은 연주 이후 힘없이 음악 몇 곡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더니, 수업을 조금 이르게 끝냈다. 방금의 연주로 예술의 정의가 바뀐 것은 확실했다. 아드리안은 마음만으로 교수를 응원했다. 교수는 강의실을 나서는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다음 수업까지 꼭,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세 가지 적어 오세요! 숙제예요!”

학생들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휴일에 매우 즐거워했다. 왕자 덕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미하일은 자신의 연주가 이런 결과를 냈다는 것을 모르는지,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강의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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