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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23화 (23/184)

23화

5.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첫 주말

아드리안 헤더는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기숙사 침대에서 눈을 떴다.

오래간만에 그때의 일을 꿈꿨다.

옆의 침대에서 자는 망할 어린놈이 카를로를 떠올리게 만든 것 같았다. 골드 드래곤은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꿨던 꿈 때문인지 정신이 멍했다.

아드리안은 영혼이 나간 얼굴로 침대 머리맡의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따사로운 햇살이 그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오늘 날씨 좋군. 골드 드래곤은 창밖의 맑은 하늘과 울창한 숲을 바라보았다. 새 몇 마리가 평화롭게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있었다.

응?

……왜 이렇게 상쾌하지?

아드리안은 편하게 누워 있던 침대에서 급하게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기숙사 방 안에 왕자는 없었다. 설마. 골드 드래곤은 마지막까지 왕자의 양심을 믿었다. 그러나 미하일은 무참히 그 기대를 무너뜨렸다. 왕자는 진짜로 이 방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전에 수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드리안은 허탈한 표정으로 천천히 수업에 나갈 준비를 했다. 어차피 늦은 거 여유롭게 들어갈 계획이었다.

마침 왕자가 방에 없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아드리안은 빠르게 바닥에 상체를 기울여 침대 프레임 아래에 얌전히 놓여 있는 볼품없는 돌 두 개를 확인했다.

먼저 꺼낸 ‘꿰뚫어 보는 눈’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잊을 정도로 가벼웠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미하일의 것이었다. 드래곤은 이어서 나머지 돌도 침대 밑에서 꺼냈다. 드르륵, 벌써부터 무거운 것을 봐서는 아드리안의 것은 여전히 퇴학감이었다.

“흐으으음.”

왜 그때의 꿈을 꿨는지 알겠군. 드래곤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바닥 위의 꿰뚫어 보는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던전 안에서 그 ‘천사’ 를 마주했을 때의 느낌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드래곤조차 거스를 수 없는 더 순도 높은 차원의 힘이었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힘 치고는 겨우 아카데미 일 학년의 졸업 기준을 판가름하는 데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다.

그 엄청난 세계의 균형의 눈으로 봤을 때에 인간의 운명은 무척 짧고 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는 골치 아픈 표정으로 양 손에 있는 돌을 바라보다가 후- 하고 무거운 돌에 숨을 얕게 불어 넣었다. 당연하게도 볼품없는 돌 표면에는 ‘아드리안 헤더’ 라는 이름이 천천히 떠올랐다.

젠장, 골드 드래곤은 짜증스레 꿰뚫어 보는 눈 두 개 모두 침대 아래에 다시 던져 넣었다. 고작 아카데미 일 학년을 진급하는 데에 간절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드리안은 자신의 금발 머리칼을 거칠게 헝클었다.

“……진짜 이렇게 가다가는 일 년만 다니다가 끝나겠는걸?”

곤란했다. 바사미엘의 커리큘럼상 일 학년은 모든 학부 과정을 통합으로 듣다보니 일 년간은 기본적인 지식과 상식선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공부만 할 수 있었다. 드래곤이 원했던 식물학, 그것도 더 구체적으로는 약초에 대한 심화 수업은 적어도 이 학년, 삼 학년은 되어야 들을 수 있었다.

아니, 미하일 놈은 그딴 성격으로 어떻게 이렇게 가벼운 돌을 가지고 있는 거지? 누가 꿰뚫어 본다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간에게 무척이나 관대한 존재임에는 틀림없었다.

드래곤은 눈을 감고 본체에서 마나를 조금 끌어왔다. 일렁거리는 금빛 마나가 일으키는 움직임에 아드리안의 밝은 금발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가 눈을 뜨자, 금빛 눈동자 안의 마나 알갱이가 잘게 빛났다.

가벼워져라.

펑-! 실패한 마법약처럼 마나 알갱이가 공중에서 검게 변하며 타올랐다. 쯧- 아드리안은 혀를 짧게 차고는 빈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꾹 쥐며 중얼거렸다. 복제 마법이었다. 이윽고 천천히 펴진 손바닥 위에는 꿰뚫어 보는 눈과 똑같이 생긴 돌멩이 하나가 놓였다. 드래곤은 조금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복제한 돌멩이에 후- 하고 숨을 불어 넣었다. 이름이 나오면 성공이었다.

“…….”

그러나 드래곤의 마나로 새로 만들어진 꿰뚫어 보는 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드리안은 쾅 하고 바닥을 내리쳐서 가짜 돌멩이를 없앴다. 혹시나 하고 써 본 마법이었다. 역시나 드래곤의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아드리안은 바닥에 놓인 돌 두 개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급을 못 하면, 다음번에는 이 학년 생으로 들어와야 하나?”

물론, 무사히 진급에 성공하면 좋겠지만 말이다.

***

“늦었군요?”

교장의 대련 상대였던 남자였다. 그가 일 학년 검술 수업을 담당한 교수인 듯했다. 아드리안은 “늦잠을 잤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교수에게 말하면서 수업 중인 훈련장 안으로 발을 디뎠다.

수업이 시작된 지는 조금 시간이 지났던지, 훈련장의 공기는 아이들의 움직임과 소리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마침 잘 왔어요. 그럼 학생이 미하일과 한 조가 되어야겠군요.”

“네?”

아드리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신입생들은 이미 이인 일조로 나누어진 채였다. 교수는 아드리안에게 목검 중 하나를 건넨 후, 미하일이 있는 쪽으로 등을 떠밀었다. 그는 아직도 아드리안과 미하일이 친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이들은 모두 목검을 두 손으로 쥐고, 서로의 짝과 함께 기본적인 검술을 연습하고 있었다. 첫 수업으로 할 만한 검술이었다. 아주 기초적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려 긋는 동작이었다. 그것을 최대한 오래 반복하는 것이 오늘의 수업이라 설명했다. 아주 날로 먹는 수업이었다. 물론 검술은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는 과목이라 이해는 갔다.

미하일은 훈련장의 중간에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혼자서 검술을 연습하고 있었다. 신입생들이 왕족인 그가 부담스러워 같은 조를 해 주지 않았거나, 아니면 이 검술 수업까지 아드리안에게 맡겨 버렸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드리안은 미하일에게 걸어가면서 ‘굳이 왜 이걸 두 명이 함께 연습해야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연습을 하러 다닌 게 헛것은 아니었던지 미하일은 제법 제대로 된 자세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그 모습에 왕자에 대한 생각을 조금 수정했다. 이런 기초 검술 정도는 다 끝낸 것이 분명할 텐데 잠자코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조금. 어른스러워 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지금은 왕자에게 할 말이 있었다.

아드리안은 목검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 불량한 건달처럼 미하일에게 다가갔다.

“야.”

그러나 미하일은 아드리안을 바라보지 않았다. 연습에 집중한 듯 보였다.

“나를 깨우지도 않고 혼자 수업에 왔겠다?”

아드리안은 이를 악물고 왕자를 비난했다. 미하일은 그런 아드리안을 힐끔 바라본 후, 다시 목검을 들어 올리는 찰나였다.

탁-!

아드리안의 목검이 미하일의 내려 그으려는 힘을 중간에 턱, 하고 막았다. 나무 목검 두 자루가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훈련장을 두드렸다. 아드리안에게 막힌 목검을 확인하고, 미하일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 정도는 스스로 해야 하지 않겠어?”

아드리안은 제가 해야 할 말을 지껄이는 왕자에게 들고 있던 목검을 가볍게 날렸다. 검술 대련이니, 이 정도는 허용 가능한 범위일 것이었다. 미하일도 그 움직임을 눈치채고 자신의 목검을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아드리안. 미하일. 훈련해야 할 검식은 그게 아닐 텐데요?”

검술 교수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아드리안과 미하일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드리안은 빠르게 미하일에게 날린 자신의 목검을 자신의 몸 쪽으로 가져왔다.

“둘은 저 구석에서 이 검식을 천 번씩 연습하고 오세요.”

미하일은 아드리안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건 아드리안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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