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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22화 (22/184)

22화

휘익-!

벽화의 천사가 날린 화살이 드래곤의 앞에서 걸어가던 인간들에게 모두 명중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아주 정제되고 무거운 마나의 움직임이었다. 드래곤은 속으로 신음했다. 그것은 드래곤조차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아주 순도 높은 마나였기 때문이었다.

함께 던전을 뚫고 간신히 지하 신전까지 들어왔던 일행이 그 공격에 속절없이 당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뒤에서 그 광경을 확인한 드래곤이 쓰러져 있는 인간들을 향해 뛰어갔다. 카를로 데 이네하트를 포함한 기사들 모두 바닥에 누워, 부상을 입은 곳을 붙잡고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들이 맞은 화살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페니건! ……커헉!”

카를로는 루스만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이름을 불렀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그가 당한 치명상에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 올라왔고, 울컥 피를 입으로 뱉었다.

“…큭…… 하아…… 하.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러게.”

루스는 카를로의 치명상을 눈으로 훑었다. 그의 목숨이 서서히 꺼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무기가 아닌, 순수한 마나로 만들어진 무형의 공격이었다. 마법으로 간단하게 살릴 수 있는 종류의 상처가 아니었다.

카를로는 고통에 신음하며, 분에 겨워 몸을 바닥에 눕힌 채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한줄기 눈물이 카를로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겨우! 크윽…… 정말로 가까이 왔는데……! 조금만 더…….”

루스는 부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카를로를 보았다. 드래곤은 무릎을 가볍게 굽혀 남자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러고는 천장의 벽화를 다시 한번 확인한 후에 아름다운 얼굴을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모두 흥미로웠다.

“내기해 볼까?”

로스의 눈동자가 순간, 번뜩였다. 금을 갈아 넣은 듯한 동공이 누워 있는 카를로를 잡아먹을 듯이 불타올랐다. 카를로는 루스의 섬뜩한 분위기에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다.

“……뭐?”

카를로는 누운 채로 숨을 내쉬는 방법을 잊은 듯해 보였다. 그는 멍하게 마법사의 비현실적으로 빛나는 금빛 눈을 바라보았다.

“진짜로 네가 이 대륙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 내기를 해 보자는 거야.”

흐음, 골드 드래곤은 카를로의 부상 정도를 눈으로 훑었다. 치명상이었다.

“저기서 반짝이기만 하는 보석이 그냥 미끼인지, 진짜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물건인지 궁금해졌어.”

루스는 카를로의 부상 위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회복.”

짧은 단어가 사내의 아름다운 입술에서 만들어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금안과 함께 물결치듯이 짙은 마나가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마법은 카를로의 상처를 맴돌다 흩어졌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간단한 마법으로 살리기는 힘들어 보였다.

“생각보다 더 많은 마나가 필요하네.”

드래곤은 말을 끝내자마자, 손바닥으로 주위의 마나를 끌어당겼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순도 높은 마나가 필요했다.

상처를 치료하기에 지하의 신전의 마나로는 부족했다.

엄청난 양의 마나가 삽시간에 이동되면서,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드래곤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세계가 가지고 있었던 힘이 빨려 들어갔다.

그들을 중심으로 생명을 가진 것들이 얌전히 드래곤의 요청에 그들의 생명력을 잃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헐떡이는 기사들이 희게 질린 얼굴로 숨을 멈췄다. 그리고는 던전의 골렘이 푸스스,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다시 바위로, 돌조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생명력은 더 필요했다. 드래곤은 범위를 조금 더 넓혔다. 그러자 던전을 간신히 밝히고 있던 마나 램프가 순서대로 꺼졌다. 마나가 움직이며 바람이 부는 영역은 점점 더 넓어졌다. 그 힘이 던전 밖의 숲에 닿자, 삽시간에 땅의 들풀과 덤불이 푸른빛을 잃고 먼지로 바스러졌다. 그 속에서 나무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힘이 번져 나가는 방향대로 나무의 나뭇잎이 모두 축 처지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던전 주변의 숲의 기운이 모두 드래곤의 손바닥에 모이는 듯했다.

카를로가 감았던 눈을 떴을 때는, 그 신비로운 바람이 그칠 즈음이었다.

“……말도 안 돼.”

카를로는 눈을 깜빡이며 루스를 향해 물었다.

“넌 도대체 정체가 뭐지?”

드래곤은 그에 대답하지 않고 바닥에 댔던 무릎을 떼 몸을 일으켰다. 그에 카를로도 주춤거리며 신전 바닥에서 일어났다. 카를로는 주위에 이미 목숨을 잃은 기사들을 바라보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카를로는 전설을 너무 얕보았다.

루스는 카를로를 향해 말했다.

“목숨을 살려 줬으니, 한동안 내 취미에 어울려 줘야겠어.”

드래곤은 신전의 복도 끝 신단에 평화롭게 놓여 있는 보석을 향해 고갯짓했다. 카를로는 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보석을 향해 걸어갔다. 카를로가 던전에 들어온 것은 저 보석을 손에 넣기 위함이었다.

카를로는 신단 앞에서 천천히 손을 뻗어 보석을 손바닥 위로 올렸다.

투명한 빛을 스스로 내며 얌전히 부드러운 자줏빛 공단 위에 놓여 있는 보석이었다. 루스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대륙의 운명을 바꾼다는 보석이라, 그것을 들어 올리거나 누군가 가지면 어떤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는데. 카를로는 뒤에 가만히 서 있는 루스에게 보석을 들어 올려 보여 주었다. 루스의 발걸음 소리가 조용한 신전을 울렸다.

루스는 카를로가 건네준 보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건…… 그냥 다이아몬드였다.

드래곤의 레어에 발에 채듯이 굴러다니는 광석이었다. 심지어 그것에는 불순물도 섞여 최상급 다이아몬드도 아니었다.

카를로는 황망히 중얼거렸다.

“이게…… 이게 다야?”

그는 루스에게 질문했다. 고작 이 다이아몬드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 가며 전쟁을 하고, 던전을 지나왔다고? 살 만큼 살아왔다 자신한 드래곤도 당황했다. 이건 드래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드래곤이 별 볼 일 없는 투명한 광석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카를로가 그를 불렀다.

“어이.”

그는 고개를 크게 들어 올려,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를 봐. 벽화가 움직이고 있어.”

“……뭐?”

카를로의 말에 드래곤도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머리 위에는 아주 고풍스러운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여전히 끝장나게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이었다.

그러나 천사가 사라져 있었다.

마치 벽화가 살아 있는 것처럼 붓의 움직임마다 아우성치며 꾸물거렸다.

그것은 더는 그들이 신전에 첫발을 들였을 때 봤던, 아름다웠던 하늘을 그린 벽화가 아니었다. 벽화의 구름이 이상한 방향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루스와 카를로가 신전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어떤 화가가 지금 그들의 머리 위에서 벽화를 실시간으로 수정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하늘과 구름이 있던 벽화에 어두운 초록빛의 물감이 이리저리 덧대어졌다. 휘날리는 듯한 움직임으로 초록빛이 더해지고, 기다란 선이 몇 개가 그어졌다. 그러자 하늘 벽화의 아래쪽에 깊고 울창한 숲이 만들어졌다. 물감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그 숲이 완성되자마자, 숲 중심에는 밝은 노란색의 커다란 형체가 그려졌다. 다른 색이 몇 번 휙, 휙 더해지자 그것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골드 드래곤이었다.

그 뒤, 몇 개의 작은 터치가 더해지더니 벽화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림이 완성되자, 드래곤은 천천히 그것을 확인했다. 천장의 벽화에는 광활한 하늘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는 깊고 울창한 숲이 있었다. 숲에는 커다란 드래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다음이었다. 벽화 속 드래곤 옆에는 아주 작은 인간 한 명이 그려져 있었다. 그 인간은 왕관을 쓰고 있었고, 자줏빛 망토를 길게 늘어뜨린 채 드래곤이 건네는 커다란 검을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정중하게 받고 있었다.

그렇군. 이 보석은 방금 제 역할을 다했다. 보석은 전설 그대로 대륙의 운명을 바꾸었다.

바로 고귀한 드래곤의 힘을 써서 말이다.

“예언인가?”

그러나 도대체 누가? 드래곤은 천장의 벽화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벽화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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