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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9화 (19/184)

19화

카를로 데 이네하트는 새롭게 파티에 들어온 마법사에게 장소 이동을 제안했다. 이곳은 시끄럽고 인간들이 많아 조용히 이야기하기에는 부적절한 장소였다. 마법사 루스 페니건은 카를로의 제안에 가볍게 동의했다.

골드 드래곤은 앉았던 자리에서 가볍게 몸을 일으키다가, 가게의 앞쪽에 마련된 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잠깐 기다려.”

응? 카를로는 출입문으로 나서다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발을 돌린 루스를 바라보았다. 시끄러운 술집 내부를 루스가 당당하게 가로질러 걸어갔다.

퍽-!

상처 하나 없는 흰 주먹이 눈 깜짝할 새에 크게 날아갔다. 그것이 만들어 낼 고통이 상상되어 카를로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눈가를 찌푸렸다. 마법사치고 주먹이 매워 보였다. 윽, 아주 정통으로 들어갔군. 한동안 턱이 안 움직이겠어.

드래곤의 움직임을 따라 테이블에 있던 집기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인간들의 비명이 섞였다. 그중 가장 큰 소리는 가게 주인의 앓는 신음이었다.

“…윽…….”

가게 주인은 드래곤에게 얻어맞은 턱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거래를 이딴 식으로 하면 안 되지. 안 그래?”

드래곤은 관대하게 그 주먹 한 대로 가게 주인의 잘못을 용서해 주었다. 인간에게 돈이라는 것은 때로는 선택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드래곤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과 용서는 달랐다.

성격 한번 화끈하네. 카를로는 가게의 벽에 기대어 골드 드래곤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

“그래서.”

카를로가 입을 열었다.

“마법협회 데 룰스의 인장도 없는 마법사…… 요즘에 보기 드문 마법사로군? 아카데미나 스승 없이 깨우친 독학 마법사 말이야.”

“맞아. 하지만 실력은 내가 보장하지.”

루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상대방의 의심을 되받아쳤다. 두 남자는 시끄럽고 복잡한 술집에서 나와 조용하고 비밀이 보장되는 어느 가게에 들어왔다. 테이블마다 담당 서버가 있고 특별 제작된 종을 울렸을 때만 트레이를 끌고 가까이 다가왔다.

동료를 모집하는 입장에서 던전에 함께 들어가 서로의 목숨을 맡기고 목적을 완수할 동료가 어떤 사람일지 확인할 절차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루스 페니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를 이 고급스러운 카페로 이끌었다.

“실력은 스스로 보장한다……라.”

하, 웃기는 놈일세. 카를로는 찻잔으로 입을 가린 채 슬쩍 비웃었다. 무릇 마법사라는 종족은 협회의 인장에 사족을 못 쓰는 것들이었는데, 인장도 없이 마법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검 한 자루도 없는 인간이 자신을 소드 마스터라고 소개하는 것과 동일했다.

어쩌면 이 남자가 겉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던전에는 무슨 볼일이지.”

“볼일? 난 마법사야. 던전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일 뿐.”

루스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마법사는 언제나 저들 마음대로 굴고, 호기심이 생기는 일에는 손바닥 뒤집듯이 결정했다. 그래서 이런 대답하기 귀찮은 대답에는 ‘마법사’라는 직업을 내세우는 것이 여러모로 유용했다.

“아, 그렇군.”

지금처럼 말이다. 카를로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비밀에 싸여 있는 던전에다가 그 안에 있다는 보물은 마법사의 흥미를 끌 만했다.

딱 알맞은 온도의 홍차가 입술에 닿았다. 루스는 그것을 조금 마셔 보았다. 괜찮은 홍차였다. 카를로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어 남자의 표정을 구경했다. 항상 뚱한 표정이던 금발 남자의 입가가 살짝 길어지자, 갈색의 눈동자가 마치 그의 반짝이는 금발과 같은 색처럼 순간 보였다.

“마음에 드나 봐?”

루스는 찻잔에서 시선을 뗐다. 그는 바로 맞은편에 앉은 카를로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너는.”

“뭐?”

“그쪽도 던전에 무슨 볼일이 있는지 말해 주셔야지.”

그쪽? 카를로의 눈썹이 살풋 구겨졌다. 트레이를 손으로 받치고 옆에 서 있는 서버도 드래곤의 예의 없는 말투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금발의 청년은 몰라도 그 반대편에 앉은 남자는 높은 귀족 집안의 자제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서버는 이런 상식 외의 말투를 내뱉은 청년에게 귀족 집안의 사내가 크게 화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하, 건방진 언사를 들은 카를로가 크게 웃었다. 루스는 갑자기 웃는 남자를 힐끔 바라보았다가 관심 없다는 듯이 다시 자신의 찻잔에 집중했다. 카를로가 입을 연 것은 한참 동안 웃고 난 이후였다.

“이쪽의 볼일은-”

카를로는 내려놓았던 자신의 찻잔을 우아하게 손가락으로 들어 올려 입가에 대었다. 그는 잠시간 반대편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흠, 우선 던전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지?”

“그 안에 있는 보물이 대륙의 운명을 바꿀 거라는 것.”

“좋아. 내가 더 설명할 부분은 없겠군.”

“그쪽도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 건가?”

“이야기?”

루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고작 보물 하나가 이 대륙 전체의 운명을 바꿀 거라는 그 이야기.”

골드 드래곤이 인간인 척 행세하며 유희를 했던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질문이었다. 용병대를 운영하는 처지에서는 던전을 돌파해 볼 생각조차도 할 시간이 없었다. 용병단을 차리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할 일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아, 용병단에 신경 쓰느라 정작 내 유희에는 별로 집중을 못 했었단 말이지- 루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때였다.

“나는 믿어.”

카를로의 명료한 목소리가 과거를 떠올리던 루스를 깨운 것은 조금 뒤였다. 사내의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또렷하게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대륙의 운명을 바꾸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여야 하거든.”

드래곤은 그런 카를로를 뚱하니 바라보았다.

대륙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무척이나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목표였다. 그것을 이룬다는 것에는 기준이 없었고, 이루지 못하는 데에도 기준이 없었다.

시시한 목표였다. 루스는 마시던 찻잔을 입가에서 천천히 떼면서 입술을 열었다. 어쨌든 저놈의 볼일이 재미없는 것이라는 것은 확인했다.

“……던전에 있다는 그 보물을 살펴볼 시간만 잠깐만 준다면 따로 원하는 조건은 없어.”

“좋아. 그러면 마법사의 의견을 바로 들어 볼 수 있겠군.”

카를로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 정도 요구 사항이야 이쪽도 환영이었다.

달칵, 루스는 고풍스러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아름다운 손가락이 찻잔의 손잡이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카를로가 빤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거칠고 흉포한 기사들 틈에서 지냈더니 저런 상처 하나 없는 흰 손가락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던전은 언제 들어가지?”

“……뭐가 그렇게 급하실까. 내 기사단이 밖에서 채비하고 있으니 여기서 느긋하게 차나 마시고 있으면 돼.”

카를로가 휘하의 기사단에 던전으로 들어갈 준비를 지시했었다. 조금만 시간을 준다면 완벽하게 준비를 마칠 것이었다.

루스는 간만에 취향에 맞는 차를 내오는 이 가게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런 곳을 아는 걸 보니 남자는 인간치고 조금 괜찮은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카를로는 서버를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서버가 테이블에 놓인 찻주전자를 트레이로 가져갔다. 치이익- 마나 주문 위에 올라간 찻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조금 식었던 온도가 완벽하게 알맞은 수준으로 되돌아왔던지, 서버는 조용히 그것을 다시 드래곤과 카를로가 앉은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다시 뜨거워진 차를 마시는 남자를 카를로가 빤히 바라보았다.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이 남자의 능력치였다. 데 룰스의 인장에는 그 마법사의 성향과 능력치가 표시된다. 그 탓에 마법사들은 그것을 소중히 가지고 다니며 어떤 자리든 소개에는 반드시 그 인장을 내밀곤 한다.

카를로는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그는 던전을 돌파하는 데에 거슬릴 만한 조금의 의심도 가지고 싶지 않았다. 이 의심은 남자의 정확한 능력을 보기 전까지는 절대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휘하의 기사 중 하나와 대련을 시키는 것도 좋을 것이고, 아니라면 조금 무례하지만 정확한 능력 파악을 위한 질문과 답변을 들어 보아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애초에 마법사가 필요한 이쪽이 손해였다. 갑자기 그런 절차를 꺼낸다면, 저 까다로워 보이는 마법사가 동행을 거절할지도 몰랐다. 턱을 얻어맞는 술집 주인의 모습이 카를로의 눈앞을 스쳤다.

이를 어쩐다.

입가에 댄 찻잔의 따뜻한 온도가 느껴졌다. 카를로는 그것을 조용히 음미하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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