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뭐? 아직도 그대로야?”
골드 드래곤은 깜짝 놀랐다.
지금보다 몇백 년도 전에 생긴 던전에 대한 소식을 다시 들었을 때, 놀라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드래곤이 레어에서 잠들어 있을 때 인간들은 바깥에서 도대체 뭘 한 건가. 아직도 던전에 못 들어갔어? 그 난리를 쳐 놓고도 아직 아무도 던전 깊이 들어가지 못한 것이었다.
드래곤은 아주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커다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오랜만에 바냐의 얼굴이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바냐가 바로 옆에 있었다면, “단장. 우린 안 들어가 볼 거랍니까? 거, 대륙의 운명이라잖아요. 우리라고 못 할 거 있소?”라고 말했을 것이다.
용병단은 진짜 재밌었지. 드래곤은 슬쩍 웃으며 바냐와 단원들을 떠올렸다.
“흐음.”
드래곤은 도대체 뭐가 그리 어렵기에 인간들이 몇백 년간 들어가지 못했는지 궁금해졌다. 그 집념으로 아직도 해결을 못 봤다니. 그렇다면 드래곤이 나설 때였다.
그러나 드래곤이 예상 못 했던 문제가 있었다.
에멘탈 기사단, 타 대륙의 수상한 군인, 그리고 무참히 떼죽음을 당한 용병단까지.
던전을 둘러싸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중요한 것은 드래곤에게 마치 어제와 같았던 일이…… 이제는 너무 오래전에 일어났던 사건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뭐? 던전? 아직도 자알 있지!”
“던전 안에 보물이 있다던데?”
“푸학, 형씨. 아직도 그런 미신을 믿어? 이거 어디 가서 사기 당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오길 잘했어.”
술집을 하면서, 가끔 오가는 용병에게 정보를 사고판다는 사내가 드래곤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아주 오래된 동화를 아직도 믿고 있는 어린아이를 본다는 얼굴이었다.
“미신……?”
“그 던전에 보물이 있다는 미신 때문에 귀족 가문 간 전쟁이 났다는 것도 모르나? 결국 귀족 몇 가문만 망했지.”
술집 주인은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드래곤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살짝 숙였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 준다는 투였다.
“……그 소문을 이용해서 국왕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귀족 가문을 처리한 거라는 소문이 있어.”
“오. 그런가?”
드래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술집 주인의 이야기에 적당히 반응해 주었다. 그는 품 안의 은화 몇 닢을 가볍게 탁자 위로 던졌다. 술집 주인은 손님의 후한 인심에 덤으로 야심 차게 주조한 맥주 한 잔을 가득 따랐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며 드래곤은 잠깐 고민했다.
“뭐, 그럼 던전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있으면 알려 줘.”
드래곤은 은화 하나를 더 꺼내려다, 고개를 잠깐 기울여 고민했다. 그의 품 안에서 나온 것은 그의 금발과 같은 색이었다. 술집 주인을 향해 동전을 튕겨 날리자, 그는 경박하게 두 손바닥으로 “어이쿠.” 하고 과장하며 그것을 낚아챘다.
“나한테 맡기라고.”
술집 주인은 드래곤을 향해 한쪽 눈을 감아 윙크를 날렸다.
그것이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다. 드래곤은 가게의 옆에 있는 여관에 방을 잡았다. 며칠 동안 동네를 산책하고, 숲을 거닐었다. 드래곤은 시간에 연연하는 종족은 아니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고 싶은 일을 정해서 평화롭게 자유 시간을 가지다가, 저녁이면 술집을 잠깐 들리는 것이 드래곤의 일과였다. 던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규모 있는 도시였다. 정보가 들어온다면 이 술집이 가장 유력했다.
드래곤이 보람찼던 하루를 마무리하며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어떤 무리가 술집에 발을 들였다. 어린 청년과 적당히 단련된 기사 몇 명이었다. 특이한 조합이었다.
반짝이는 은발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의 머리칼은 얇고 부드러워서 아주 값비싼 은사처럼 하늘거렸다. 이런 술집에 드나들 만한 나이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청년과 무리는 가게 안의 어느 테이블에도 멈추지 않고 곧바로 드래곤이 앉아 있는 바까지 걸어왔다.
드래곤은 한 손에 들고 있는 투박한 나무 컵을 바 테이블에 큰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청년 일행이 그에게 볼일이 있다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던전에 관해 묻고 다닌다는 놈이 있다던데.”
드래곤은 술집 주인을 스윽, 바라보았다. 정보를 사고, 판다더니, 이쪽의 정보까지 팔아넘긴 모양이었다. 술집 주인은 드래곤을 향해 어깨를 으쓱이곤,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주인에게 청년은 금화 한 닢보다 더 비싼 손님이었다.
그들은 이미 어떤 놈이 던전에 관해 묻고 다니는지 알고 있었다. 청년은 드래곤이 앉은 자리로 빠르게 걸어왔다. 그리고 거리를 조금 두고 기사들이 멈춰 뒷짐을 지고 자리를 지켰다.
드래곤은 심드렁하게 그 기사들을 바라본 후 다시 시선을 내려 자신의 술잔을 바라봤다. 넘치듯 가득 차 있던 술을 한 번에 들이마신 후, 그의 옆으로 다가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청년에게 말했다. 드래곤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는 효율적으로 단번에 원정을 끝내고 싶었다.
“그럼 그쪽이 던전에 대해 알려 줄 건가?”
드래곤은 심드렁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술잔을 기울여 안을 들여다보았다. 술잔의 바닥을 보면서 그는 한 잔 더 마실지 고민했다.
“뭐. 정보를 알려 준다기보단. 동행하자는 제안에 가깝지.”
“일행 모집은 끝났어.”
“이런, 그럼 내가 늦은 거군?”
청년은 드래곤의 옆에 비어 있는 의자를 가볍게 잡아끌고는 그 자리를 차지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일행이 더 있기는 하고?”
탁,
드래곤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조용히 한쪽 발을 들어 올려, 카를로가 더 가까이 의자를 가져오지 못하도록 힘으로 막았다. 청년은 자리 때문에 괜한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지, 드래곤과 약간 떨어진 곳으로 만족했다. 청년이 앉자, 뒤따라 들어온 기사들이 그의 뒤에 서서 긴장된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무리 봐도 동행을 설득하러 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협박이라면 몰라도.
“내가 아주 까다롭게 굴 예정이라 말이야. 그쪽은 거절이다.”
드래곤은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거절했다. 그러나 카를로는 그 정도 거절 정도는 이미 예상했던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왜 이래. 이래 봬도 대륙에서 이 정도면 알아주는 기사단이라고.”
카를로는 한쪽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와 동시에 반대편의 손을 살짝 움직여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사들을 조금 더 물렸다. 아무리 봐도 동등한 관계는 아닌 듯해 보였다.
드래곤은 청년의 얼굴부터 시작해서, 뒤쪽의 기사들을 죽 둘러보았다.
“그래? 우선 자신감 하나는 맘에 들어.”
드래곤의 건방진 말투에 기사 한 명이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카를로는 굳이 기사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카를로의 일행 모집 기준도 아주 까다로울 예정이었다. 이런 사소한 기 싸움에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동료는 사양이었다.
“기사는…….”
카를로는 테이블 위에 무심하게 올려놓은 드래곤의 두 손을 관찰했다. 그의 손은 흉터 하나 없이 깨끗했고, 거칠지도 않았다. 검을 잡는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아닌 것 같고. 그럼 마법사인가?”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군. 기사가 아니면 마법사야?”
드래곤은 두 손바닥을 천천히 들어 올려 카를로에게 보여 주며 반응했다. 드래곤의 손바닥은 굳은살 하나 없이 희고 부드러웠다. 이방인이 계속해서 카를로에게 건방지게 굴자, 검에 손을 가져다 댔던 기사가 끝내 검을 뽑아 들었다.
“……빨리 신원을 밝혀라.”
우두머리 기사가 나서자, 이윽고 카를로 뒤의 기사들의 검은 모두 드래곤의 흰 목에 위협적으로 닿아 왔다. 카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손바닥을 휘둘러 검을 물렸다.
“카를로 데 이네하트다. 그쪽은?”
“루스 페니건.”
카를로는 웃음을 지으며 한 손을 드래곤의 몸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이번 유희에는 루스 페니건이라고 불릴 드래곤은 카를로의 손을 맞잡았다. 적당한 온도의 손바닥이 느껴졌다. 그러나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러운 드래곤의 손과는 다르게 굳은살이 빼곡히 들이박혀 사내의 손바닥은 무척이나 거칠었다.
골드 드래곤은 자기소개를 앞두고 잠깐 고민했다. 앞으로의 동행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결정이었다.
“……맞췄어. 마법사다.”
“잘됐군. 마침 딱 마법사가 필요했어.”
드래곤은 무엇이든지 흉내를 낼 수 있었지만, 이번 유희에서는 즉흥적으로 마법사를 선택했다. 일행을 보아하니 기사는 충분해 보였다. 던전에서 마법사는 좀 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드래곤은 단번에 던전을 돌파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