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같이가용-17화 (17/184)

17화

4. 카를로와 드래곤의 동행

실력이 좋기로 유명했던 용병단은 주제도 모르고 고위 귀족들의 정치 싸움에 발을 들였다. 용병단은 지금 그 의뢰를 받아들였던 벌을 받고 있었다.

금을 갈아 넣은 듯,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금발을 가진 남자가 전쟁터의 한가운데에서 힘겹게 자신의 검에 기대어 숨을 내쉬고 있었다. 사내는 무지막지한 검술로 대륙에서 악명이 자자했다. 남자가 신이 빚은 듯이 완벽한 얼굴로 대륙에서 가장 큰 검술 대회의 우승자로 등장했을 때부터, 정식 기사들의 결투 신청이 빗발쳤다. 사내의 악명이 더 위력을 떨친 것은 그가 시원하게 국왕의 제안을 거절하고 용병단을 차렸을 때였다. 역사에 남을 만한 특이한 행보였다.

그리고 용병단을 창단하고 가장 먼저 받은 의뢰부터 지금까지, 사내가 성공하지 못한 의뢰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저 언덕 너머에서 수많은 인영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겨우 적을 막아 낸 것으로 생각했던 용병 단원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신음했다. 용병 단원 대부분은 이미 숨이 끊어져 발치에 스러져 있었고, 단장을 비롯한 나머지 용병 단원들도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지, 단원 한 명이 비틀거리다 끝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드래곤은 기대 있던 검을 다른 방향으로 던지고, 그를 두 팔로 받았다. 그도 전투에 상처를 입어 핏줄기가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핏방울이 흙바닥으로 투둑, 떨어졌다. 그는 눈을 감으려는 단원의 몸을 흔들었다.

“정신 차려……! 괜찮나?”

“……단장님, 저는…… 여기… 여, 여기까지입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단원은 말을 이어 가다 부상이 고통스러워 “으윽,”이라고 신음을 뱉으며, 크게 인상을 찡그렸다. 단원의 복부의 치명상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아래를 받치고 있는 단장의 손바닥이 금세 피로 젖었다.

“……다음 생에서 만납시다.”

단장이라 부른 드래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후, 단원은 그제야 후련하게 눈을 감았다. 그들의 주위에는 이미 동료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산이 쌓였다. 위험한 의뢰를 수락한 용병단의 마지막이었다. 단원의 몸을 받치고 있던 단장의 손이 스르륵, 아래로 풀렸다.

드래곤은 품 안에서 숨을 거둔 부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의 절망적인 상황을 일부러 해결하지는 않았다. 유희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스스로 정한 규칙이었다. 그 규칙이 있기 때문에 유희가 재미있는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이번 유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단원 한 명이 오랜 전투로 지친 몸을 겨우 일으켰다.

“와, 미쳤구먼, 그냥 뒈지라는 거네.”

그는 욕을 짓씹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떠서 지평선 너머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걸쭉한 아저씨 말투였다. 드래곤은 고개를 숙여 살짝 피식하고 웃었다. 바냐의 저런 웃긴 말투도 이제 다시는 들을 일 없을 것이다.

두두두두두-

지면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저 멀리서 떼로 달려오는 말의 발굽들이 땅에 부딪혀 그런 것이었다. 멀리서 다가오던 수많은 인영이 점점 지치고 절망에 빠진 용병단에 다가왔다. 왕국의 깃발을 들고 있는 기수가 군대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깃발의 색을 보아하니 상대편 진영이었다.

“또, 또! 그놈의 에멘탈! 에멘탈 저 새끼들은 지들끼리 새끼 쳐서 어디서 늘어나나 보지?”

푸흑, 단장은 바냐의 투덜거림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드래곤의 소름 끼치게 잘생긴 얼굴 위로 아까 전투로 입은 부상에서 흐른 피가 턱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옵니까? 제기랄, 당신이랑 용병질 해서 재미는 많이 봤다만, 이렇게 개죽음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바냐는 단장 옆의 바닥에 편하게 주저앉았다. 정말로 개죽음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전투에도 살아남았던 용병단의 부상자들도 그들에게 다가오는 군에 대항할 의지를 잃은 채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서 뭐였대? 도대체 우리가 지금 지키고 있는 저 동굴에 뭐가 있다고? 대륙 놈들이 다 이 지랄이야?”

바냐는 단장을 팔꿈치로 슬쩍 찌르며 말을 걸었다. 그의 팔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닌 척하지만 죽음이 두려울 것이다. 단장은 바냐의 떨림을 굳이 집어 내지 않았다. 드래곤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바냐에게 말했다.

“……끝났다고 예의도 안 차리는 거냐.”

단장은 의뢰서를 받아 든 순간, 이 장면을 예상했었다. 오랫동안 살아온 드래곤은 그 의뢰가 한 나라의 반역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주변의 돌아가는 정황이나, 의심스러운 의뢰의 출처, 그리고 의뢰 내용이 단서였다. 그러나 드래곤은 담담한 표정으로 의뢰를 수락하겠다는 편지를 간단하게 썼다.

용병단의 단장실에서 그는 운명을 받아들였다.

유희는 여기까지였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동굴은 던전이다. 던전 안에 어떤 보물이 있다고 하더군. 대륙의 운명을 바꿀 만한 보물이라고 들었다.”

바냐는 단장이 자신의 질문에 답해 줄지 몰랐던 터라,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동안 단장은 아무리 의뢰의 진실에 관해 물어봐도 대답해 준 적 없었다.

“뭐? 보물?”

겨우 그딴 보물을 가지겠다고 전쟁을 해? 바냐와 주변의 용변 단원들은 평민들이 충분히 할 만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에멘탈 공작이고, 백작 나리랑 왕국에서도 저 지랄인 거요?”

“뭐, 그렇지.”

바냐는 곧 기사단에게 죽을 처지에도 여전히 담담한 단장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소름 끼치게 잘생겼다고 생각했으나, 이번에는 이상했다. 이 상황에서조차 무표정인 단장의 얼굴은 무섭도록 아무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단장.”

용병단의 단장은 바냐의 부름에 그와 천천히 눈을 맞추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인제야 말해 주는 이유가 뭡니까?”

바냐는 합당한 의심을 하고 있었다. 오랜 용병 생활로 감이 무척 좋은 사내였다. 드래곤은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바냐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왔었다.

“바냐, 그리고 모두들.”

드래곤은 몇 년간 동고동락했던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입을 뗐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는 눈을 빛내며 환하게 웃었다. 말발굽 소리와 기사들의 구령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그리고 용병단이 주저앉은 곳에 빠르게 달려온 에멘탈의 기사 중 한 명이 단장에게 칼을 날렸다.

“단장!!!!”

바냐는 필사의 힘을 다해 위험을 알렸으나, 오랜 전투에 지쳤던 용병단의 단장은 기사의 검을 피할 수 없었다. 에멘탈 기사단의 칼이 드래곤의 가슴팍을 푸욱, 깊게 뚫고 반대편으로 나왔다. 사내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뿜어 나왔다.

이윽고 남은 용병 단원에게도 시퍼런 칼이 단 하나의 자비조차 남기지 않고 날아왔다.

“윽!! 으악!”

“으아아!”

오랫동안 악명을 떨쳤던 용병단의 결말이었다. 언덕에 쌓여 있는 시체 더미들 위로 그나마 버티고 서 있던 모든 나머지 용병들이 쓰러질 때까지 기사단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학살이 끝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언덕 위 죽어 가는 인간들의 신음 소리와 앓는 소리마저 사라졌을 때였다.

에멘탈 기사단이 용병단을 전멸시킨 후 확인 사살까지 착실히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용병단이 힘겹게 서 있었던 곳은 시체들만이 끔찍한 몰골로 남겨졌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그 지옥 같은 풍경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골드 드래곤의 한쪽 손이었다.

그는 마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손을 흔들어 보는 것처럼 잠깐 손을 이곳저곳 스트레칭했다. 그러고는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드래곤은 몸을 일으키고는 팔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관절들이 무사한지 확인했다.

그의 가슴 한가운데에 났던 치명상에서는 아직도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드래곤은 눈을 한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금을 갈아 넣은 듯한 골드 드래곤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사내는 천천히 손을 깊은 상처 위로 가져갔다.

“회복(Recovery).”

짧은 단어가 사내의 아름다운 입술에서 만들어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금안과 함께 물결치듯이 짙은 마나가 움직였다. 인간이었다면 찔렸을 때 바로 죽었을 치명상이었다.

골드 드래곤은 잠시 후에 손바닥을 상처에서 떼어 냈다.

그곳에는 언제 상처를 입었냐는 듯이 깨끗한 가슴팍이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의복에 묻은 혈흔과 커다란 구멍은 그대로였다.

드래곤은 회복을 마친 후, 뒤를 돌아보았다. 용병단이 지키던 던전이 있는 곳이었다. 에멘탈 기사단이 지나간 방향이기도 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