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에드윈 놀런이라고 소개한 연금술 교수는 아이들을 지하의 어떤 방으로 안내했다.
연구실은 어떤 괴상한 기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기계들이 올라가 있는 탁자에는 수상한 수식들이 적힌 종이들이 굴러다녔고, 벽에는 실험 중인 것들의 진척 상황을 그려 놓은 그림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연금술사의 연구실이었다.
아드리안 헤더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감탄하며 방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 뒤로 신입생들이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어 마지못해 뒤를 따랐다. 미하일 루스 이네하트는 가장 마지막으로 연구실로 들어왔다. 연금술사의 방은 일반인이 보기에 매우 위험하고 불결해 보였다.
그때였다.
-!
날카로운 소리에 연구실에 있던 신입생들이 그들의 귀를 막았다.
아까부터 끓어 넘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기어코 무언가 들어 있는 유리병이 깨졌다.
“어이쿠. 잠깐만 비켜 보세요.”
교수는 모여 있는 신입생들 사이를 헤치고 연구실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깨진 유리병에서 수상해 보이는 초록색 액체가 쏟아졌다. 에드윈 교수는 주변의 학생들을 조금 더 뒤로 물렸다. 학생들은 교수의 손짓에 우르르 실험실의 구석으로 내몰렸다.
“……마침 좋은 수업 교재가 생겼네요.”
에드윈은 애써 난장판인 상황을 예상한 척 당당하게 굴었다. 그의 앞에 있는 테이블 위는 전혀 그런 모양새가 아니었다. 액체가 흘러 테이블을 미끄러지고 있었고, 액체가 지나가는 곳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푸쉬쉬,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을 뒤로 물린 에드윈 교수는 테이블 위에 필기도구가 꽂혀 있는 철로 만들어진 통을 거꾸로 쏟아 들었다. 급한 손놀림에 안에 든 필기구들이 제멋대로 땅에 떨어졌다. 교수는 철통을 기울여 쏟아진 초록빛 액체 근처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불빛이 통 안에 들지 않게 손바닥으로 입구를 가렸다.
“이건 이렇게 해결하면 된답니다.”
그러자 초록빛 액체가 끈적거리며 꿈틀거렸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그것들은 표면에 진동을 만들어 내며 어두운 통 안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테이블 주위의 신입생들이 눈을 크게 뜨고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에드윈 교수는 다른 손으로 쏟아진 펜 중 하나를 잡고는 초록색 점액질 안에 찔러 넣었다. 펜이 푹 들어간 부분에 자국이 남았다가 곧이어 사라졌다.
“메이슨 하워라는 학자가 발견한 해조류를 소개합니다. 이름도 외우기 쉽게 ‘메이슨 해조류’이고요.”
여기서 교수는 학생들을 향해 가볍게 윙크를 했다.
“이 해조류는 아주 끈질긴 생명체입니다. 심지어 활동 중인 뜨거운 해저 화산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방금 보셨다시피 밝은 곳을 아주 싫어하죠.”
어두운 통 안으로 녹색 액체가 꾸물거리며 다 들어가자, 교수는 필통이었던 것 입구를 손바닥으로 막고 가볍게 흔들었다.
“……짠! 아주 흥미로운 연구 주제예요.”
신입생 중 한 명이 조심스레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안경을 쓴 착해 보이는 신입생이었다. 에드윈 교수는 학생들을 둘러보다, 아이를 향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말해 보라는 뜻이었다.
“교수님, 그런 해조류는 왜 연구하는 건가요?”
“음…… 왜? 왜 연구하냐니요? 학생. 이름이?”
에드윈 교수는 그런 질문은 처음 들어 보는지 고개를 기울이며 손에 들고 있던 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제 이름이요? ……아서 헤일런인데요.”
신입생은 갑자기 이름을 묻는 교수에 기가 죽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서. 상상해 보세요.”
에드윈 교수는 아서 헤일런과 마주 본 채 두 팔을 테이블로 짚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약에 아서가 해저 동굴 탐험 중, 길을 잃었어요. 아주 깊은 동굴이었습니다. 아서의 주위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없습니다.”
……무척이나 극단적인 예시였다. 아드리안은 연구실의 벽에 기대어 팔짱을 꼈다. 교수가 시키는 대로 상상해 보는 중이었다.
“어두운 해저 동굴 안에서 도대체 길을 어떻게 찾죠? 아서 헤일런, 동굴에 갇혔단 말이에요! 산소는 점점 부족해질 거고, 출구를 찾아야겠는데 방법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어두운 동굴 안을 죽을 때까지 헤엄치다가…….”
교수가 손가락 두 개를 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이렇게 메이슨 해조류를 몰랐던 아서 헤일런은 출구를 영원히 찾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아, 죽은 것은 상상 속의 아서요.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하지만 메이슨 해조류를 수업 시간에 배웠던 아서 헤일런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서 헤일런은 동굴의 바위 틈에서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던 이 축복 받은 생명체를 발견하죠. 바위에서 긁어낸 해조류를 손바닥에 올려 두고, 아서 헤일런은 어떤 방향으로 헤엄쳐 나갑니다. 해조류가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햇빛이 비치는 해수면을 발견했어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죠. 축하합니다. 아서 헤일런. 이 모든 게 바로 메이슨 해조류를 발견한 덕분입니다.”
아서는 교수의 이야기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학생은 작은 목소리로 “……네. 이해했습니다. 교수님.”이라고 대답했다. 연금술은 묘하게 실용적인 학문이었다. 아드리안은 연금술의 그런 점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에드윈 교수는 계속해서 메이슨 해조류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 해조류의 특징을 응용하면 만들 수 있는 것은 매우 많아요. 햇볕이 들면 스스로 움직이는 커튼이나…… 스스로 청소되는 어항이나…….”
에드윈 교수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가 말하는 예시들이 점점 구차해지고 있었다. 에드윈 교수도 그것을 느꼈던지 말을 이으려다 정신을 차렸다.
“뭐, 그런 것들은 연금술사들이 고민할 주제가 아니에요. 먼저 세상에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 자본 시장이 알아서 그 쓸모를 만들어 줍니다. 연금술사의 손을 떠난 거죠.”
교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테이블에서 두 팔을 뗐다.
“자. 이제 다음 연금술 수업 시간에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하겠습니다.”
에드윈이 연구실의 앞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에 연구실의 구석에 몰려 있던 신입생들이 발을 떼어 테이블에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
아카데미 입학 후 첫 수업날이 드디어 끝났다.
룸메이트가 없는 틈을 타서 기숙사 방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두 손을 짚고, 아래를 살펴보았다. 침대 밑에 ‘꿰뚫어 보는 눈’이 얌전히 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다행히 돌은 보잘것없는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드래곤은 볼품없는 돌멩이를 향해 눈을 고정한 채,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아드리안의 손이 볼품없는 그것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응?
…조금 가벼워졌나?
드래곤은 순순히 끌려오는 돌멩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아드리안은 돌멩이를 갈색 동공 바로 앞으로 가져왔다. 미하일 건가? 드래곤은 침대 밑에서 먼저 꺼낸 돌에 숨을 작게 불어넣었다. 그러자 돌의 표면에 서서히 ‘아드리안 헤더’ 라는 글씨가 반짝이며 올라왔다.
내 돌이 맞잖아?
아드리안은 침대 밑에 남아 있는 나머지 하나를 빠르게 꺼내들었다. 두 개의 돌을 양손에 들어 올리자 무게 차이가 더 잘 느껴졌다. 물론 여전히 미하일의 돌에 비하면 엄청나게 무겁긴 했지만 분명히 처음 입학식 때보다 무게가 조금 줄었다.
아드리안은 눈을 살짝 감고, 본체의 마나를 조금 가져왔다. 좀 더 구체적인 확인이 필요했다. 그가 눈을 다시 떴을 때, 그의 금발과 정확히 같은 색을 가진 별빛과 같이 반짝이는 금안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나를 실은 눈으로 살펴보았지만,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것은 고귀한 드래곤의 능력조차 넘어서는 물건이었다.
오늘 내가 뭘 했더라?
아드리안은 미칠 듯이 좋은 그의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오늘 그가 딱히 한 일이 없음을 떠올리곤 혀를 찼다. 곤란했다.
선한 일을 해도 무게가 줄지 않는 것도 물론 큰일이었으나…….
그것보다 큰일이 있었다. 착한 일이라곤 하나도 한 적 없는데 돌의 무게가 줄어든 것이었다. 연구자로선 최악의 실험 결과였다.
그때, 아드리안은 순간 기척을 느끼고 침대 밑으로 ‘꿰뚫어 보는 눈’을 밀어 넣었다. 곧이어 방문이 벌컥 열렸다.
불청객은 당연히 미하일이었다.
미하일은 방문을 열자마자 침대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아드리안을 발견했다.
아드리안이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순간 그의 눈이 금빛으로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자세히 바라보자 아드리안의 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한 갈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 할 말이라도?”
아드리안 헤더가 뭘 쳐다보냐는 듯이 미하일에게 말을 걸었다. 미하일은 그런 아드리안을 지나쳐 자신의 책상에 짐을 놔두면서 대답했다.
“바닥 청소하는 거면 이쪽도 같이 해.”
“뭐? 청소하는 거 아니야.”
아드리안은 바닥에 붙였던 무릎을 떼고 미하일에게 이야기했다.
“청소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바닥에 누워 있다고? ……왜?”
“……우선 내 쪽부터 하고 시간이 남으면 해 주지.”
아드리안은 기숙사의 청소 도구를 챙겼다. 그는 겸사겸사 청소를 하기로 했다. 드래곤은 화풀이하듯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청소를 했다.
꿰뚫어 보는 눈? 장난하네. 진짜 내 이름도 모르는 주제에 뭘 꿰뚫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