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같이가용-15화 (15/184)

15화

네 사람은 대련장에서 나와 강의실이 있는 건물로 걸어갔다.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학생이 대련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었다. 데클레어 교장의 대련은 그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드리안 헤더는 자신의 사물함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캐서린 에스테반에게 내밀었다. 캐서린은 종이를 확인한 후,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캐서린과 한스는 미하일과 아드리안의 강의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한스가 옆의 캐서린에게 물었다.

“우린 다음 수업이 뭐였지?”

“……우리라니? 통합 수업 끝난 지가 언젠데. 참고로 난 오늘 수업 끝났다~”

캐서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한스에게 대답했다.

“제기랄. 부러워…….”

한스는 터벅터벅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학년부터 시작되는 학부 수업은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듣는 방식이었다. 한스는 그의 다음 수업인 <전쟁과 음악사>를 듣기 위해 혼자 강의실 복도를 걸었다. 전쟁이랑 음악이 무슨 상관인가. 피아노만 잘 치면 되는데. 한스는 괜스레 복도에 떨어진 나뭇잎을 발로 찼다.

***

아드리안과 미하일의 오후 수업은 <연금술의 첫걸음>이었다. 드래곤의 관심사인 약초학은 기본적으로 식물 자체를 연구하지만 학문 분류상 연금술과 정령술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었다. 아드리안은 조금 고민을 하다 강의실 앞쪽 자리를 선택했다. 그는 첫 수업을 들어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함께 강의실에 들어왔던 미하일은 이번에도 당당히 가장 뒤쪽 줄에 자리를 차지했다.

그때였다.

어떤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남자가 강단으로 걸어 들어왔다. 오전의 마법 수업과는 다르게 연금술 교수는 구두는커녕, 방금까지 흙을 파다 왔는지 바짓단이 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강의실에 앉은 가넷 신입생들의 얼굴색이 파리해졌다. 그들은 귀족 혹은 돈깨나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었다. 신입생들 입장에선 상종도 하지 않았을 인간 군상이었다.

그러니까 굉장히…… 뭐랄까.

아드리안은 교단에 서 있는 남자가 교수임을 참작해서, 조금 더 후한 점수를 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드리안의 노력을 몰라주는 교단의 남자는 엣취- 하고 재채기를 하더니, 품속을 뒤적거렸다. 그의 손안에 들려 나온 것은…… 맙소사! 손수건이 아닌 티슈 한 장이었다. 그것도 아카데미의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나오는 그 티슈였다. 그것도 옷 안에서 여기저기 구겨진 행세였다. 남자는 그 티슈에 잘도 얼굴을 닦았다. 그 행위에 품위를 우선시하는 신입생 몇이 우웩, 혐오감을 드러냈다. 특히 가장 표정이 썩은 것은, 가장 고귀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미하일이었다. 그는 가장 뒤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와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상체를 책상에서 조금 더 뒤로 뺐다.

아드리안은 남자에 대한 첫인상을 우선 ‘길거리 거렁뱅이’라고 정의했다.

“아이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교단에 선 남자는 느린 몸짓으로 강단에 한 손을 짚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누더기 같은 외투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 뒤적거리고 있었다.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그의 손으로 향했다. 꺼내려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가 궁금했을 것이다.

이윽고 교수의 주머니에서 손이 빠져나왔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쇠로 만들어진 컵이었다. 신입생들은 ‘뭐 저런 걸 주머니에서 꺼내?’라고 눈으로 말했다.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은 아니었던지 교수는 주머니에서 컵을 꺼내자마자, 그 안에 든 것을 시원하게 한번 들이켰다.

“……제가 수줍음을 좀 많이 타서…….”

거렁뱅이 교수는 시원하게 원샷을 한 후, 얼굴을 붉히며 교단에서 말을 이어 갔다. 낯을 가려서 얼굴이 붉어진 것이 아니라, 알코올이 들어가서 낯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은 신입생이었을 뿐이지 살 만큼 산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교수가 술을 마셨어.’ ‘너도 봤어?’ 신입생들은 옆에 앉은 아이와 중얼거렸다.

이런 행동들이 연금술사에 대한 고정 관념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제가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가르칠 것은…… 연금술의 기초…… 그러니까 연금술이란 어떤 것인가-입니다. 일 년간 이 수업을 잘 따라오신다면, 여러분에게 연금술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수가 킁, 하고 코를 한번 찡그렸다. 신입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연금술사에 대한 고정 관념을 더욱 견고하게 굳혔다. 연금술사는 역시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진 괴짜들이었다.

“연금술이란, 세상의 정해진 규칙을 인간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치환하는 영역입니다. 가끔 마법과 헷갈리는 학생들이 종종 있는데, 마법이랑은 완전히 다른 학문입니다.

마법은 마나의 힘을 빌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죠. 하지만 연금술은…….”

교수는 강의실을 가득 채운 신입생들을 스윽-둘러보았다.

“연금술은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영역입니다.”

더러운 코트를 입은 교수가 자신이 말하고는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괴짜들의 특징이었다. 그들은 때로는 자신이 말하고는 스스로 벅차올라 사방에 떠벌렸다. 학생들은 감동을 하였다가 교수의 말에 곧바로 식었다.

“어때요? 연금술이 더 멋지죠?”

망할 마법사 놈들, 자기들이 최고라고만 생각하지- 교수는 취기가 조금 올랐는지 교단에서 중얼거렸다.

“올해 가넷에선 연금술 학부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있나요? 한번 손 들어 보죠.”

교수는 교단을 두 팔로 짚고 강의실의 학생들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잔뜩 기대하는 눈초리였다. 아드리안은 앞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교수의 말을 듣고 뒤에 앉은 학생들을 곁눈질로 돌아보았다. 교수의 말에 손 드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연금술에 관심이 있었더라도 지금 이 분위기에서 손을 드는 것은 대단한 자신감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드리안도 눈치는 있었다. 그는 자리에 자신의 손을 가지런하게 두고 있었다. 첫 수업이었다. 굳이 눈에 튈 필요는 없었다.

연금술 교수는 매우 실망한 눈치로 다시 한번 말했다.

“쯧쯧. 인물이 없다니까 인물이. 내 지식을 물려줄 제자는 어디에 있을꼬?”

죄송하지만, 교수님. 옷만 좀 차려입고, 수업에 술만 마시지 않으신다면 제자 몇 명은 거뜬히 챙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드리안은 잠자코 자신의 자리에서 교단을 바라보았다.

교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이 학생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그는 말과 동시에 손뼉을 아주 큰 소리로 몇 번 쳤다. 강의실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그 손뼉 소리에 정식을 퍼뜩, 차렸다.

“자! 일어나세요! 연금술은 이런 따분한 강의실에서 수업하지 않습니다.”

교수는 친히 교단에서 내려와 강의실의 계단을 걸었다. 그러면서 책상에 얌전히 앉아 있는 학생들을 억지로 일으켰다.

“나가요. 나가. 어서- 어서-”

뒤에서 연금술 교수가 죽을상을 하고 걸어가는 학생들을 입으로 재촉했다. 한 무리의 교수와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나왔다. 교수는 자랑스럽게 아이들의 가장 앞에서 걸어갔다. 강의실이 있는 곳은 건물의 삼 층이었다. 학생들은 의아해하면서 교수를 따라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그들은 삼 층에서 이 층, 이 층에서 일 층으로 내려갔다. 야외 수업인가? 라고 생각한 학생들 얼굴은 점점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변했다. 교수는 일 층에서 한 번 더 내려갔다. 강의실 건물에 지하가 있었다.

지하는 아카데미의 밝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어두컴컴하고 어딘가 모르게 축축했다. 으스스한 분위기에 학생 한 명이 두 손으로 양팔에 돋아난 소름을 진정시켰다.

교수는 그런 학생들의 마음을 모른 채, 앞서 걸어가다 순간 몸을 돌렸다.

“아! 제가 제 소개를 안 드렸군요? 바사미엘 아카데미에서 연금술을 가르치고 있는 에드윈 놀런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서 있는 지하가 쿠구구궁-하고 잘게 떨렸다. 지진이었다. 으아아아- 학생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자 교수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학생들을 대충 말렸다.

“어허. 여긴 가끔 이렇게 땅이 흔들리니 놀라지 마세요. 앞으로 <연금술의 첫걸음> 수업 시간에는 강의실로 가지 말고 바로 여기로 오면 됩니다.”

아드리안 옆에 있는 학생이 울먹거리며 속삭였다. “이 수업 안 듣고 싶어.” 그는 불쌍하게 잘게 떠는 아이의 팔을 잡아 주었다. “……학생들을 죽이지는 않겠지.” 아드리안 나름대로 위로였으나 불쌍하게 떨던 아이의 얼굴이 더 희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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