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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1화 (11/184)

11화

수업 시작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마치 정하기라도 한 듯이 강의실 가장 끝에 있는 줄에 나란히 착석했다. 미하일은 예상외로 제일 뒤인 자신의 옆에 앉는 아드리안을 바라봤다. 마법의 기초. 일반적인 평민이라면 무척 흥분하며 관심을 가질 학문이었다. 아카데미가 아니고서야 이런 전문적인 수업을 들을 기회도 없을 텐데 아드리안은 관심 없다는 듯이 제일 뒤에 앉은 것이다.

수업 시작 시각이 되어 가자 학생들이 조금씩 들어와 강의실의 빈 곳을 메꿨다. 하지만 첫 수업이라 그런지 교단과 맞닿아 있는 자리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그때 구두가 대리석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깐깐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 한 명이 강의실 교단으로 걸어 들어왔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교수는 엘리트 코스만 밟아 온 부잣집 도련님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강의실에 앉아 있던 학생들을 한번 살펴보더니 말했다.

“앞자리부터 채워서 앉으세요. 거기 제일 뒤 학생들.”

교수는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듯이 그의 손을 휘적이며 제일 뒤에 앉은 학생들을 앞으로 불렀다. 아드리안은 그의 손짓에 좌우를 고개를 돌려 보았다. 바로 옆에서 미하일이 애써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거기랑 그 옆. 앞으로 오세요.”

아드리안과 미하일을 부르는 것이었다. 왕자와 아드리안은 낭패 가득한 얼굴로 억지로 짐을 챙겨서 걸어갔다. 그러고는 앞으로 걸어가 교단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둘 다 얼굴이 죽상이었으나, 아이들의 표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좋습니다.”라고 말한 교수는 강의실을 다시 둘러보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첫 수업에 학생들이 챙겨 와야 할 준비물 같은 것은 없었다. 신입생들은 책 대신 두 손을 가지런히 책상에 놓은 채로 교수를 바라보았다. 모두들 입학하고 처음으로 시작된 수업에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일 년. 그리고 만약 여러분들이 마법 학부에 들어가게 된다면 거기서 일 년 더 가르칠 시그리드 오웬입니다.”

남자는 교단 위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신입생들을 바라보았다.

“일 학년 과정은 마나에 전혀 혹은 아무런 재능 없는 신입생까지 고려해 진행하는 통합 과정입니다. 혹시 마나를 조금이라도 느낄 줄 아는 학생에게는 지루한 수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의 말 중 ‘전혀’와 ‘아무런 재능 없는’이라는 단어가 강조되어 귀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다른 신입생들도 똑같이 느꼈던지 강의실에 앉아 있는 몇 명의 얼굴빛이 새파래졌다.

아드리안은 아카데미의 교수씩이나 되어서 학생들을 위협하는 그를 바라보며 책상에 편하게 기대어 있었다.

아드리안의 동공은 현재 연한 갈색 있었다. 그러니까 본체에서 마나를 직접 가져오지 않고서는 마나가 완벽히 차단된 몸이었다. 드래곤씩이나 되어서 마나의 기초 수업을 받는 것이 웃겼지만…….

알다시피 그것이 유희의 재미였다.

“그러면 마법을 한 번도 공부해 보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교수는 손짓으로 강의실의 모든 램프의 빛을 층고가 높은 강의실의 중앙으로 모았다.

“제일 첫 수업에서는 마나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크고 빛나는 구체 한 덩어리가 공중에 떠 있었다. 램프의 빛을 모두 모은 터라 그 구체를 제외한 강의실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빛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푸른빛을 내뿜으며 마치 생명체처럼 박동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나의 양은 언제나 일정합니다. 마나가 어디서 생겨났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아직 밝혀낸 바가 없습니다. 다만 마법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자연 상태에서 인위적 상태로 변화시킬 뿐이죠. 마나는 변환시키는 사물이나 행위에 따라 다른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교수는 손바닥을 휘익 저어 빛나는 구체 전체를 아카데미 강의실 천장에 걸린 하나의 램프로 보냈다. 그러자 빛나는 커다란 구체는 램프 하나로 날아가 불빛에 자리를 잡았다. 학생들은 얼굴을 천장으로 들어 올려 그것을 바라보았다.

“마나를 이동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 마법의 기초를 익히면 가능합니다.”

거대했던 구체가 램프에 맞게 압축되자, 빛이 너무 밝아져 눈이 아프게 부셨다. 교수는 다시 한번 손짓해 다시 램프에서 구체를 빼냈다.

그리고 그는 마나로 만들었던 구체를 반의반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방금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구체를 다시 강의실 천장의 그 램프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램프는 마치 원래 그 정도 빛을 내뿜고 있었다는 듯이 환하게, 하지만 눈이 부시지 않게 빛을 냈다.

“중요한 것은 마나를 이동시키는 목적을 시전자가 잘 깨닫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마나를 사용해야 할지, 어디에서 마나를 가져와야 할지 시전자가 알고 있어야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드리안은 이미 아는 내용이었다. 드래곤이라는 생명체는 모두 태어나자마자 온몸의 피부로 마나를 내뱉고, 마시며 마나의 존재를 깨우친다.

“마나를 가져오는 것은 호수의 물로 이해하는 게 가장 빠를 겁니다. 호수 표면의 물을 컵에 담는 것은 쉽죠. 하지만 호수 바닥의 물을 컵에 담는 것은 아주 고도의 컨트롤이 필요합니다. 호수 바닥의 물처럼 가라앉아 좀처럼 움직이기 힘든 고대의 마나는 아주 순도 높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마나는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힘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드리안은 속으로 우쭐해졌다. 순도 높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지적 생물체는 드래곤을 제외하면 몇 없었다.

그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다 문득, 수업에 아무 반응이 없는 옆을 바라보았다.

미하일은 수업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팔짱을 낀 채 책상에 편하게 기대어 있었다. 그러니까…… 대놓고 수업 시간에 졸겠다는 자세였다.

이게 미쳤나? 제일 앞자리에서 이러면 옆에 있는 내가 주목받을 게 뻔하잖아.

그와 동시에 교수가 교단에서 가장 앞자리에서 눈을 감고 있는 왕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드리안은 책상 밑의 다리로 미하일의 다리를 걷어찼다.

미하일은 그 타격에 감고 있었던 눈을 살짝 떠 아드리안을 노려보았다. 아드리안은 눈을 슬쩍 뜬 미하일에게 고갯짓으로 교단을 가리켰다. 그러나 미하일은 눈치가 없는 건지, 그냥 자신의 다리를 걷어찬 게 더 기분이 나쁜 건지 그의 긴 다리를 뻗어 똑같이 아드리안의 다리를 걷어찼다. 아드리안이 ‘아!’ 하고 입으로 말하며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는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다. 아드리안은 미하일을 바라봤던 고개를 천천히 교단으로 돌렸다.

마법학 교수가 두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아니 미하일보다는 아드리안을 향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아드리안은 교수를 향해 입꼬리를 슬쩍 올렸으나, 교수는 차가운 표정을 풀지 않았다. 시그리드 교수는 층고가 높은 아카데미 강의실 공중에 띄웠던 구체를 한순간에 흩트렸다.

“설명만 하면 지루하니, 실습으로 여러분들의 실력을 알아볼까요?”

교수가 딸깍, 하고 손바닥과 비슷한 크기의 명함첩을 열었다. 명함첩의 뚜껑을 연 후, 교수는 그 위에 주먹을 쥔 손을 올렸다가 스윽,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

그러자 물 흐르듯이 명함첩에 있었던 흰 종이들이 학생들이 앉아 있는 강의실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흰 종이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앞에 각각 하나씩 살풋 내려앉았다.

“마나에 반응하는 종이입니다. 마나를 느껴 보는 기초 훈련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죠. 손바닥 사이에 종이를 두고, 손바닥의 간격을 점점 벌리면서 종이를 공중에 뜨게 해 보세요. 팁을 주자면 마나 에너지를 동일하게 내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아드리안은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를 두 손바닥 사이에 올려 두고 서서히 두 손바닥을 뗐다. 당연하게도 손바닥 사이에 있었던 종이는 아래로 스르륵 떨어졌다.

지금 아드리안의 신체에는 마나가 단 일 그램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신입생들이 낑낑거리며 종이를 세우는 것을 강의실을 걸어가며 살펴보던 교수는 책상에 힘없이 놓여 있는 아드리안의 종이를 힐긋 보더니,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는 ‘그럴 줄 알았다.’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옆의 미하일의 것을 보았다.

왕자는 수업에 관심 없는 척하더니. 시키는 것은 곧잘 했다.

왕자의 종이는 그의 손바닥 사이에서 구십 도를 만들며 떠 있었다. 다른 미숙한 신입생들의 종이가 잘게 떨리며 계속해서 떨어지려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교수는 왕자의 종이를 잠깐 보고 안경 아래의 눈빛을 달리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루스타바란 왕국의 막내 왕자가 검에 미쳐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알 정도였다. 왕자가 마법 학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데에 자신의 교수직까지 걸 수 있었다.

그리고 미하일 또한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던지, 교수의 무반응에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는 그 대신 옆의 아드리안을 향해 입꼬리 반쯤을 밀어 올렸다. ‘넌 이런 거 못 하지?’라는 유치한 표정이었다.

교수가 가장 앞자리 열을 지나쳐 강의실 뒤쪽으로 향하는 순간,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손바닥 밑에 서 있는 종이를 한 손으로 꾸욱, 눌렀다. 왕자의 약 올리는 표정이 보기 싫어서였다. 마나의 힘으로 서 있던 종이가 아드리안의 손바닥 힘에 억눌려 힘을 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책상 위에 종이 두 장이 덩그러니 놓였다.

미하일은 한번 자랑한 걸로 만족했는지, 다시 팔짱을 꼈다. 교수가 뒤편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 동안은 합법적으로 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드리안은 그 모습을 보며 다음 시간부터는 꼭 이놈과 떨어져서 앉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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