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같이가용-8화 (8/184)

8화

아카데미의 이번 대(代) 교장은 왕국의 기사였다. 그것은 의외로 많은 것을 의미했다.

바사미엘 아카데미는 총 여섯 개의 학부가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학부는 역시 기사 학부와 마법 학부로, 그 인기에 힘입어 다양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그 두 개를 제외하면 예술 학부가 다음이었다. 예술 학부는 돈깨나 있고, 지위도 어느 정도 있는 집안 자제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땀 흘리는 기사나 피 터지게 공부해야 하는 마법사와 달리 예술 학부는 적당히 우아하면서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이름값도 가질 수 있으니 그들로서는 금상첨화였다.

그다음은 행정 학부였다. 바사미엘에 운 좋게 입학한 돈 많은 집안의 평민 자제들이 주로 선택하는 곳이었다. 졸업 후 왕국의 행정부에서 일하거나 집안의 사업에 바로 투입될 수 있어 아주 실용적이었다.

연금술 학부와 정령 학부는 인기 순위에서 언제나 꼴찌를 다퉜다. 깊은 학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두 학부에는 주로 지식을 뽐내거나 허세 부리고 싶어 하는 명문가의 자제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간혹 진지하게 오직 연금술과 정령술만을 위해 역사가 깊은 바사미엘 아카데미를 선택한 이들이 적게나마 있긴 했다.

역대 아카데미의 교장은 각 분야의 인재들에서 선출되었다. 이 전대의 교장은 특이하게도 정령학에 정통한 정령술사였다. 그는 교장에 선출되자, 바사미엘 아카데미 주변의 숲을 이용한 다양한 커리큘럼을 적극적으로 고안했다. 그는 학생들을 자연에서 키워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는 수많은 귀족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았다고 들었다.

이번 대의 교장은 기사를 꿈꾸는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그 대단한 ‘데클레어 파스터’였다. 기사가 된 후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어떤 전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검에 희미하게나마 마나를 피워 낼 줄 아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인간으로, 인간이 낼 수 있는 검술의 정점에 서 있었다. 하지만 결국 소드 마스터는 되지 못했다. 소드 마스터와 뛰어난 일반인 검사에는 그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데클레어는 평생 그 차이를 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증거로 그녀가 지금 입고 있는 드레스 밑에는 수많은 흉터로 가득할 것이다.

“바사미엘 아카데미만의 특별한 입학식을 시작하죠.”

회색의 머리칼을 넘기며 데클레어가 연회장 뒤편의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다. 그 손짓에 대기하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가 걸어오자 악단의 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연주를 멈추었다. 그는 연회장 중앙의 교장과 신입생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가 손바닥을 휘두르자, 바닥의 대리석 벽돌들이 하나둘씩 스스로 움직이며 원 모양의 조형물이 만들어졌다. 우물처럼 보이는 원형의 형체가 생기자 그 중심에 대리석 기둥으로 제단이 세워졌고, 그 제단에는 반짝이는 천칭이 자리했다.

금을 녹여 갓 만들어진 듯한 천칭이 제단에 자리를 잡자, 그 천칭의 바닥에서 맑은 물이 흘러 제단 밑의 원형 우물로 흘러내려 갔다.

그것은 중앙에 제단 조각이 있는 대리석 분수대였다. 윗부분에서 천천히 맑은 물이 흘러내려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어 냈다.

아드리안을 포함해 모든 신입생은 도대체 저게 무엇일지 궁금해했다.

“이것은 바사미엘의 분수입니다.”

데클레어는 궁금해 죽겠다는 학생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살풋 웃었다. 이 절차를 겪었던 선배들도 마찬가지로 신입생들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연회장의 양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고용인들이 걸어 나와 무언가를 신입생들에게 나눠 주었다. 신입생들은 얼떨결에 그것을 하나씩 나눠 가졌다. 아드리안은 그것을 받자마자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볼품없는 돌멩이였다. 울퉁불퉁한 표면에 광채조차 없는 길거리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돌이었다. 마나를 움직여 돌멩이에 주입해 보았으나, 아무 변화가 없었다. 마법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러분들은 그냥 돌멩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데클레어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 장식에서 깃털 하나를 뽑아냈다. 나풀거리는 깃털 하나가 그녀의 검지와 엄지 사이에 들려 있었다.

“이걸 보세요.”

그녀는 깃털 하나를 천칭의 한쪽에 조심히 내려놨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한 무게의 깃털이 천칭에 놓이자 천칭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당연했다. 데클레어는 가장 앞에 서 있는 신입생에게 양해를 구했다. 학생은 떨떠름해하며 나눠 받은 자신의 돌멩이를 데클레어에게 넘겨주었다.

데클레어는 돌멩이를 든 자신의 손을 입술 앞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후우- 하고 나지막하게 바람을 불었다. 바람이 돌에 닿자 그것이 희미하게 진동하며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다 서서히 빛이 잦아들었다.

데클레어는 빛이 사그라든 돌멩이를 신입생들에게 보여 주었다. 돌멩이의 빛이 지나간 자리에 멋들어진 필체로 ‘데클레어 파스터’라는 글자가 새겨져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돌을 방금 깃털을 올린 천칭의 반대편에 올려 두었다. 깃털보다 돌멩이가 무거울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돌멩이가 놓인 쪽이 서서히 올라갔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묘한 움직임이었다. 신입생들은 모두 경악했다. 이전에 정확히 같은 경험을 했던 선배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숨죽여 웃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의 선행과 악행을 바사미엘에서 심판받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판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선행과 악행으로는 천칭에 아무런 변화를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루스타바란 왕국에서 살아갈 이들입니다. 우리 아카데미의 높은 입학 기준에 따르자면 여러분들은 장차 왕국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겠죠. 바사미엘 아카데미는 지식의 전달도 물론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인재들의 선한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데클레어는 천칭에 놓여 있는 자신의 돌멩이를 들어 올렸다.

“이건 몇백 년 전 루스타바란 왕국의 어느 광산에서 학자들이 발견한 ‘꿰뚫어 보는 눈’이라는 이름을 가진 광석이죠. 어떤 원리로 이것의 무게가 변하는지 마법 학부, 정령 학부, 연금술 학부의 교수진 모두가 밝히려 했지만 알아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것이 보여 주는 진실은 정확합니다. 깃털보다 무거운 돌을 가졌던 이들은 모두 루스타바란 왕국에 엄청난 피해를 끼쳤던 이들이었습니다. 바사미엘 아카데미는 그런 자들에게 오랫동안 소중히 쌓아 올린 지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미안하지만, 다음 학년으로 진급시키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죠. 신분의 여하와 관계없이 돌려보냅니다.”

교장의 말에 신입생들이 저마다 웅성거렸다. 데클레어는 이에 손바닥을 들어 올려 신입생들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여러분. 몇백 년간 바사미엘 아카데미에 입학한 신입생 중 깃털보다 무거운 돌을 가졌던 사람은 고작 몇 명입니다. 그것도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이었죠.”

신입생들은 그들이 받은 ‘꿰뚫어 보는 눈’이라는 돌멩이를 질린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아드리안도 마찬가지였다.

미쳤는데? 입학 첫날부터 쫓겨나는 사람이 되면 참 웃기겠군. 그는 자신이 이때까지 저질렀던 ‘악행’에 대해 고민하며 과거를 돌아보았다.

놀라 웅성거리는 신입생들을 보며 웃고 있는 데클레어 파스터에게 조금 전 마법으로 분수대를 만들어 낸 남자가 말했다.

“저기 교장 선생님……. 그것도 말씀해 주셔야지요.”

데클레어 파스터는 흥이 다 깨졌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그렇죠. 지금 당장 여러분들을 판단하지 않아요. 바사미엘 아카데미는 혹시 모를 억울한 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일 년간의 유예 기간을 둡니다. 일 년 동안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쌓아 왔던 악행이라도 줄이라는 겁니다만.”

그녀는 말 중간에 입꼬리를 틀어 올려 살짝 비웃었다.

“일 년 안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바뀌겠어요. 그렇지 않나요?”

데클레어의 웃음에 따라 주름진 눈가가 접혔다. 그녀는 웃으며 돌멩이를 빌려주었던 신입생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이윽고 신입생 모두 돌멩이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아드리안은 돌멩이에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을 숨을 멈추고 지켜보았다. 그의 이름은 가명이었다. 이 꿰뚫어 보는 눈인지 뭔지가 어디까지 ‘꿰뚫어’ 보는진 몰라도 제발 그의 본명을 보여 주지 않았으면 했다.

아드리안은 감았던 눈꺼풀을 하나씩 슬쩍 들어 올렸다.

‘아드리안 헤더’

돌멩이에서 그의 가명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윽.’

웬만해서는 무거움을 느끼지 않는 아드리안 헤더가 인상을 찡그렸다. ‘꿰뚫어 보는 눈’을 들고 있는 손에 엄청난 무게가 느껴졌다. 인간의 능력을 훨씬 상쇄하는 드래곤의 신체였다. 그 팔이 무겁다고 느낄 정도라면 아마 무시무시한 무게일 것이다. 깃털은 고사하고 저 분수대 자체를 천칭에 올려도 이 돌멩이 하나가 더 무거울 것 같았다.

“한 명씩 걸어와 분수대에 ‘꿰뚫어 보는 눈’을 내려놓으세요. 앞으로 일 년간 여러분들은 언제나 이 돌을 명심하며 바사미엘 아카데미에서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로부터 정확히 일 년 후, 여러분 인생의 무게를 재었을 때 부디 깃털보다 무겁지 않기를.”

데클레어 파스터는 어느새 누군가에게 전달받은 물잔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아드리안 헤더는 식은땀을 흘렸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신입생들은 줄지어 바사미엘의 분수대 앞으로 걸어가 자신의 ‘꿰뚫어 보는 눈’을 분수대의 맑은 물 안으로 떨어트렸다. 볼품없던 돌멩이들은 물에 닿자마자 반짝이는 보석처럼 변하여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줄 가장 뒤에 서 있었던 미하일과 아드리안의 차례가 돌아왔다.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손에 들린 것을 슬쩍 바라봤다. 그의 돌은 전혀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미하일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돌을 분수대에 가볍게 던져 넣었다. 그의 ‘꿰뚫어 보는 눈’은 다른 신입생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물에 닿자마자 빛나며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아드리안의 차례였다.

아드리안은 자신의 돌의 무게를 속으로 삼키며 두 손을 분수대 위로 뻗었다. 그는 최대한 수면과 비슷한 위치에서 돌을 물속으로 떨어트렸다. 돌이 수면에 닿는 소리가 크게 들렸으나, 그것은 아드리안만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그의 돌은 다른 신입생들의 것과 다르게 빠르게 수직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아드리안은 그것을 눈으로 열심히 좇았다. 그러나 바닥에 닿자 모양이 비슷한 다른 돌들과 섞여 정확히 그의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드리안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다음 차례의 신입생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모든 신입생이 자신의 돌을 분수대에 떨어트리자, 처음 그것을 마법으로 만들어 냈던 마법사가 데클레어에게 눈짓을 한 후 손을 공중에 휘저었다. 그의 움직임에 맞추어 분수대가 만들어졌던 순서와 정확히 반대로 신입생들의 앞에 있었던 것이 서서히 허물어졌다. 분수대가 연회장에서 자취를 감추자 아드리안은 마나의 움직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기억하려 눈을 감고 방향을 느꼈다.

데클레어는 그 작업이 끝나자 눈앞의 마법에 신경이 쏠려 있는 신입생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바사미엘 아카데미는 총 여섯 개의 학부가 있습니다. 물론 원하는 학부가 이미 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일 학년들은 일 년간 자신과 맞는 학부가 어떤 것인지 충분히 탐색해 보도록 하세요. 여러분들은 이미 모두 훌륭한 기사.”

데클레어 파스터가 ‘기사’라는 말을 입으로 꺼내자, 양옆의 선배 중 기사 학부로 보이는 학생들이 크게 발을 굴렀다. 쿵, 하는 발 구름 소리가 연회장을 크게 울렸다. 그들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훌륭한 마법사.”

교장이 ‘마법사’라는 말을 하자 이번에는 마법 학부의 선배들이 검지를 공중으로 높게 뻗어 작은 불빛을 쏘아 올렸다. 신입생들은 양옆 선배들의 사이에서 좌우로 고개를 돌려 진귀한 광경을 구경했다.

“혹은 훌륭한 예술가.”

악단으로 앉아 있던 학생들과 양옆의 학생들이 특정한 음정으로 아름다운 멜로디를 냈다. 환상적인 화음에 신입생들은 눈을 감고 그것을 감상했다.

“훌륭한 외교관.”

데클레어가 ‘외교관’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와아!!”라는 함성이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몇 명은 발을 굴러 그들의 열성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훌륭한 연금술사, 정령술사가 될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교장은 적은 인원수를 고려한 듯 나머지 두 학부는 동시에 설명했다. 그녀의 설명에 연금술 학부와 정령 학부의 선배들은 동시에 손가락을 입가에 대어 휘파람을 불었다. 그 휘파람에 맞추어 시원한 바람이 휘익- 과열된 연회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럼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보람찰 일 년을 보내 보세요.”

교장이 입학식의 마지막을 알렸다.

연회장의 모든 학생이 우레와 같은 함성과 손뼉을 쳐서 신입생 모두를 응원했다. 연회장의 중심에 있었던 신입생들은 선배들의 열렬한 환호에 감동했다. 그들의 응원 속에서 전설처럼 존재했다던 ‘무거운 돌’을 가진 신입생인 아드리안의 생각은 깊어졌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의 일생을 되돌아보거나 후회하느라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돌겠네, 이 좁은 학교에서 착한 일은 뭘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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