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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2화 (2/184)

2화

골드 드래곤은 왕자의 방을 휙 둘러보았다.

왕자의 방은 이전에 봤을 때와 같이 화려했다.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처럼 보이는 탁자들과 눕기만 해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침대가 보였다. 그리고 왕자의 방 한편에 손님 대접용으로 마련되어 있는 탁자로 걸어갔다. 탁자와 의자는 한 번도 사용된 적 없었다는 듯이 먼지 한 톨도 없어 보였다.

드래곤은 레어에 있었던 터라 편한 일상복 차림이었다. 그러나 일상복 차림새로 그가 화려한 의자에 앉자 마치 장인이 계획한 듯 드래곤을 위한 가구처럼 보였다.

왕자의 방 벽의 검 장식대가 눈에 들어왔다. 보석으로 장식한 화려한 장식용 검들과 함께 매일 사용해 손때가 묻은 훈련용 검도 함께였다.

드래곤은 왕자의 방 탁자 위에 구비되어 있는 차를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그는 고귀한 존재인 것과 별개로 사소한 일 정도는 직접 하는 편을 즐겼다.

왕자는 그 모습을 보고 창밖으로 던지려던 드래곤의 비늘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그는 그것을 소중하게 들고 침대로 걸어가 보물을 담은 보관함의 뚜껑을 닫았다. 그는 아드리안 헤더의 모습을 한 드래곤이 자신의 방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왕자는 지금껏 동화로만 들었던 드래곤이 체통 없이 직접 찻물을 우리려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방 한편에 놓여 있는 초인종을 향해 검지를 까닥였다. 하인 호출 초인종이었다.

띠링, 하고 맑은 종소리가 방 안을 채우자 이내 누군가 왕자의 방문을 두드렸다. 왕자는 그를 향해 차를 요구했고, 대신 방에 들어오지 말고 방문 앞에 트레이를 두고 가라고 상세하게 명령했다. 그 요구를 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의자에 앉아 있는 드래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소환한 것은 분명 비늘의 주인인 드래곤이었으나, 지금 그의 방 안에 있는 것은 죽은 친구 아드리안과 지나치게 똑같았다.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아드리안 또한 자잘한 일들을 스스로 하는 것을 즐겼고, 능숙했다. 물론 아카데미에서 만났던 아드리안은 평민이었기에 그런 습관이 있을 만했다.

드래곤은 왕자가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슬쩍 웃었다. 그와의 첫 만남이 생각나서였다. 골드 드래곤은 멀뚱히 서 있는 왕자를 향해 검지를 까닥였다. 조금 전 왕자가 초인종을 울렸던 것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초인종을 울리는 사소한 생활 마법이 아니었다.

그 검지의 움직임에 왕자의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바닥에 저절로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윽!”

왕자는 삽시간에 자신의 의지가 아닌 상태로 아드리안의 앞에 섰다. 그의 다리 뒤로 푹신한 가구가 느껴졌다.

“앉아. 차는 한참 멀었다.”

드래곤은 가볍게 손짓만으로 왕자를 마법으로 반대편 소파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얌전히 왕자의 하인이 가져다주는 차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왕자는 반대편 의자에 앉아 뚱한 표정으로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드래곤은 왕자의 속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여전히 까탈스럽긴.

왕자는 아마 허락도 없이 자신의 몸에 마법을 사용한 것에 불만을 느꼈을 것이다. 몇 달 만에 본 왕자는 여전했다.

왕자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자 드래곤이 먼저 입을 뗐다.

“그래서?”

왕자는 드래곤의 입술에서 나오는 아드리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뭐 ……무슨 말입니까?”

미하일과 몇 년간 함께했던 아드리안은 처음 들어보는 격식 차린 대답이었다.

왕자는 눈앞의 잘게 빛나며 움직이는 금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자신이 소환한 눈앞의 존재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그제야 실감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 전설의 생명체와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네 소원. 뭐냐고. 전설 몰라?”

골드 드래곤은 억지로 소환당해서 스스로 그 비늘에 얽힌 전설까지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크고 고운 흰 손이 당당하게 자신의 가슴을 짚었다.

“이 몸을 소환했으니 소원을 말해야지.”

골드 드래곤은 눈앞에 있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바로 저 망할 비늘을 제자리에 맞춰 끼워 놓을 것이다. 한동안 드래곤의 모습으로 현신하지 않았더니 저 비늘 한 조각이 없는 줄도 몰랐다.

왕자는 그저 오늘 산 물건이 진짜인지 알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는 드래곤의 아름답게 반짝이는 눈빛을 슬쩍 피했다. 아무리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 해도 드래곤은 신이 아니었다. 그에게 죽은 사람을 살려 내라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았다.

그때 왕자의 방문에서 트레이를 미는 소리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드래곤은 왕자의 귀한 발걸음을 마냥 기다리고 싶지는 않아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왕자가 소스라치듯 몸을 일으켰다.

“왜? 왜…… 어디에 가시는지?”

미하일은 당황하여 그답지 않게 말을 흐렸다. 그 다급한 표정에 몇 달 전 절벽 위에서 필사적으로 아드리안의 손을 잡았던 왕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기다려. 나는 우선 차 한 잔을 마셔야겠으니.”

드래곤은 왕자의 방을 마치 자신의 방처럼 활보하여 당당히 방문을 열었다. 방문 앞에는 왕자가 요청한 것처럼 하인 없이 뜨거운 차와 디저트가 정갈하게 놓인 트레이만 덩그러니 있었다. 트레이를 들고 탁자로 다시 걸어오자 왕자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드래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다 큰 성인이 길 잃은 강아지처럼 의자에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대로 조금 불쌍해 보였다.

왕가의 손님 대접답게 하인이 가져온 차와 디저트는 드래곤의 입맛에 딱 맞았다. 오랜만에 이런 차를 대접받았으니 왕자의 대답을 충분히 기다려 줄 수 있었다.

왕자는 죽은 사람을 살려 내라는 생떼를 써서 드래곤이 화를 내기 전에 잠시라도 더 아드리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차를 음미하면서 마시는 드래곤의 얼굴은 아드리안과 완벽히 똑같았다. 그리고 진짜 아드리안 또한 아카데미의 기숙사에서 매일같이 저런 차를 마셔 댔었다.

맛있는 디저트와 차가 바닥날 때까지 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래곤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려 왕자를 재촉했으나 그는 여전히 고민하는 척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간을 더 줘야겠군.

드래곤은 차를 마시던 잔을 트레이에 올려놓았다.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왕자의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피차 시간 낭비할 순 없지 않느냐? 다음번에 만날 때에는 소원을 생각해 두었길 바라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금을 갈아 넣은 듯한 금발과 금안을 가진 남자가 웃으며 몸 안의 마나를 운용했다. 삽시간에 마나가 반응을 일으키며 드래곤의 몸을 감쌌다. 레어가 목적지인 장소 이동 마법이었다. 그는 왕자가 적당한 소원을 떠올릴 때까지 다시 레어로 돌아가 하던 일을 할 생각이었다.

골드 드래곤의 금발이 바람 들 일 없는 왕자의 방 안에서 흩날렸고, 그의 금안은 마치 한밤의 달처럼 밝게 빛났다. 그의 주변으로 따스한 마나의 기운이 넘실거려 왕자의 은빛 머리칼도 흔들거렸다.

왕자가 알고 있는 아드리안과 다른 점이었다. 그가 아는 아드리안은 마법에는 재능이 없는 평민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저렇게 뚜렷하게 빛이 난 적 또한 없었다.

골드 드래곤이 금빛 가루로 변해 사라지려는 순간이었다. 왕자는 아름다운 광경에 흔들렸던 정신을 바로 잡았다.

그의 굳은 입매가 틈을 열어 “안 돼.”라고 중얼거렸다.

자연의 질서를 완전히 무시하는 고귀한 생명체, 드래곤에게 소원을 말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왕자는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드리안의 모습이 눈앞에서 다시 사라지려 한다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조금 전까지 골드 드래곤이 서 있었던 공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금빛 마나 알갱이가 부서져 내리듯이 빛나고 있었다. 금빛으로 가득 찼던 왕자의 방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드래곤은 레어에 공간 이동 마법을 시전했고, 그 어려운 고급 마법은 드래곤을 언제나처럼 안전히 레어로 옮겨 놓았다. 화려한 왕자의 방과는 다르게 투박하게 이곳저곳 드래곤의 손이 닿은 자신의 방이었다. 고급스러운 가구보다는 이렇게 취향껏 가져다 모은 가구들로 채운 레어의 방에 도착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드래곤의 살짝 떠 있는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이었다.

***

왕자는 소중히 침대에 올려 두었던 보관함을 빠르게 낚아챘다. 다행히 보관함 안에 드래곤의 비늘이 얌전히 담겨 있었다.

왕자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그의 손을 들어 아드리안의 머리카락처럼 금빛으로 반짝이는 비늘을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갑자기 그의 것이 아닌 마나가 주변을 일렁이며 시전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것이 아닌 마나였지만, 처음 느껴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이 마나가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알고 있었다.

드래곤은 속으로 욕을 했다. 하루에 두 번이나 강제로 소환당하다니 불쾌했기 때문이다.

눈을 뜨자, 다시 왕자의 방 안이었다.

왕자는 드래곤의 비늘이 담긴 보관함을 손에 들고 있었다. 왕자의 생각대로 드래곤이 그의 소원을 이뤄 주기 전까지는 언제까지고 다시 소환할 수 있었다. 드래곤은 입꼬리를 올려 삐죽 웃었다.

아, 이놈 이런 성격이었지?

드래곤은 이전부터 왕자의 집념을 얕보았었다. 무척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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