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301화 (301/309)

제301화

《으아아아앗!》

거세게 포효하는 김혜옥은 희끄무레한 영혼 상태로도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가 ‘상정 외’의 존재가 되었다곤 하나, 그동안 어떤 공격에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인과율의 얼굴이 고통과 당황으로 물드는 모습은 굉장히 진귀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크학! 크하아악! 우, 우리 싸부님께 덤비는 놈은 어떤 놈이든 용서치 않을 테다-앗!》

‘상정 외’의 존재되어버린 여파로 김혜옥은 인과율과 고통을 공유하는 상태였다.

시원하게 놈의 머리를 박살 낸 것까진 좋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의 머리도 기이한 모양으로 꺾였다.

하지만, 굳은 얼굴에 빛나는 결의만이 가득한 그녀는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다.

《박! 살!》

-콰지지직!

반투명한 영혼 상태로도 김혜옥의 이글거리는 눈에선 선명한 회색빛 귀화가 타올랐다.

양손에 부서진 행성과 별들의 파편을 움켜쥔 채, 인과율을 노려보는 그녀의 영혼엔 가네샤의 별자리 외에도 새롭게 아로새겨진 ‘김혜옥’이란 이름의 별자리가 찬란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크으으…. 변종 버러지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신성한 ‘계승식’에 끼어들어?】

어두운 회색빛 광채와 함께, 관객석에서 귀곡성과도 같은 비명이 울려 퍼지자.

김혜옥의 활약으로 완전히 반으로 갈라졌던 인과율의 육신이 빠르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신성하다니! 이 지구본 대가리가 뭐래는 거야! 악취미를 충족시키기 위한 변태 짓이 신성하다고? 그딴게 뭐가 신성해! 》

기껏 자신이 파괴한 육신이 재생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모양인지.

포효를 내지른 김혜옥은 인과율을 향해, 또다시 힘차게 도약하려 들었다.

하지만 독오른 독사처럼 흉포하게 꿈틀거리는 회색빛 구름이 사방에서 솟구쳐, 그녀의 영혼을 꽈드득 조이기 시작했다.

-뿌득! 뿌드드득!

《잊었어?! 역겹지만 나와 당신은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렇게 공격해봤자. 당신도 타격을 입는다고!》

【크아아아악! 이 버러지가아아아!】

순식간에 아나콘다에게 잡힌 먹잇감과도 같은 비참한 꼴이 되어버린 데다.

넘실거리는 회색빛 신력에 영혼 자체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섬뜩하게 울려 퍼졌지만.

김혜옥은 조금도 고통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공격한 인과율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자, 김혜옥은 꼴 좋다는 듯 인과율을 향해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고작 이 정도로 엄살을 피우시다니, 억겁의 세월을 살아오셨다면서 정신력은 우리동네 어린애들 보다 못한 수준인데? 받아라! 셀프 디스트럭션 펀치!》

-빠각!

고통을 이기지 못한 인과율이 김혜옥 몸을 살짝 풀어주자.

비웃음을 날린 김혜옥은 히죽 웃으며, 솥뚜껑보다 더 거대한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인과율의 입에서 고통 섞인 비명이 또다시 튀어 나왔다.

《그래! 왜 저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지? 여러분! 자신 없으면 저렇게라도 공격합시다! 아무런 힘이 없는 우리라도 자해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내가 사실 고통 참기의 고수지!》

-뿌드드득!

-콰직! 콰지지직!

김혜옥의 행동에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영혼들은 자신들의 몸을 참으로 다양하고 참신한 방법으로 학대하기 시작했다.

고통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영혼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지만.

자신들의 운명을 가지고 논 인과율에게 한방 먹일 수 있다는 사실이 기꺼운 모양인지.

그들은 계속해서 개의치 않고 자신의 임시적인 몸을 스스로 괴롭혔다.

물론, 그들의 고통은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고스란히 누적되어 인과율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다.

【크아아악! 비, 빌어먹을 놈들이! 감히…. 감히! 웃기지도 않은 시건방진 짓을 저지르다니!】

그동안 인과율이 자신의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해왔던 업보가 배가 되어 돌아왔다.

다양한 방법으로 그에게 고통을 전해주는 영혼들의 활약에, 인과율의 몸이 조금씩 부서져 나갔다.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놈의 정신 역시, 빠른 속도로 마모되어갔다.

【깡그리 소멸시켜주마! 이 더러운 버러지들!】

《헹!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어차피 죽어버린 몸! 미련도 없다! 이 X끼야!》

잔뜩 성이 난 인과율은 대놓고 빈정거리는 신지현을 주먹으로 후려쳤지만.

알다시피 그녀에게 향한 공격은 곧, 인과율 자신에 대한 공격이나 다름이 없었다.

신지현의 목이 기묘한 방향을 꺾인 것과 동시에, 인과율의 목 부분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홋-호! 싸부님을 저렇게 만든 지구본 대가리를 괴롭게 할 수만 있다면! 이까짓 고통쯤은 웃으면서 참아주겠어! 간다-앗》

비틀거리는 인과율에게 냅다 달려든 김혜옥은 그대로 행성과 별로 된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곤 회색빛 귀화가 형형하게 타오르는 눈으로 놈을 똑바로 노려보더니,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광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목 근육을 크게 강조하며, 머리를 뒤로 젖힌 그녀는 그대로 인과율의 머리를 들이 받았다.

-뻐어어어억!

김혜옥의 머리와 인과율의 머리가 굉장한 소리를 내며 맞부딪혔다.

어찌나 세게 들이받았으면 영혼 상태인 김혜옥의 머리가 순간적으로 내부로 함몰되었다.

행성과 별로 된 인과율의 머리 부분이 완전히 소멸 되었다가, 천천히 재생되었다.

이번만큼은 김혜옥 본인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는지, 회색빌 안광이 타오르던 눈이 일시적으로 빛을 잃었다.

거대한 근육질 몸이 순간적으로 옆으로 휘청 균형을 잃었다.

“혜, 혜옥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크윽!”

《가만히 있어요! 혜옥 양이 저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애처럼 무모하게 굴지 말고 몸이나 제대로 추스르라고요!》

당장이라도 꺼져버릴 듯 위태롭게 너울거리는 김혜옥의 모습에 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빙긋 웃음을 지은 이세영의 억센 손길이 나를 뒤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그러게요. 아이고 목이야…. 도대체 어떻게 이런 걸 저렇게나 견뎌 내시는 건지…. 그보다 좀 얌전히 있어봐요. 줄 게 있으니까.》

그렇게 내가 이세영의 손길에 이끌려, 다시 눕혀지자.

기묘하게 꺾인 목을 주무르며 나타난 신지현은 다른 이들과 함께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내게 무언가 따스한 기운을 불어 넣어주기 시작했다.

-파스스스스.

“지현 씨…? 이건 도대체.”

《잘은 모르겠는데. 저 지구본 대가리 놈의 힘이래요. 별 이상한 놈이랑 연결된 것이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써먹을 수 있는 건 이렇게 써먹어 줘야죠.》

히죽 웃은 신지현과 다른 영혼들의 흐릿한 손에서 샘물처럼 졸졸 흘러나오는 신력의 정체는 다름 아닌, 그들과 연결된 인과율의 신력이었다.

생전의 그들은 헌터로 각성조차 하지 못한 일반인이었지만, 강태백의 활약으로 인과율과 연결된 덕에 놈의 지식을 어느 정도 흡수한 모양인지.

영혼 상태로 너울거리는 신지현과 다른 영혼들은 너무도 능숙하게 인과율의 회색빛 신력을 내게 주입해주고 있었다.

“…매니저님.”

《에이. 이미 길드도 세상째로 대충 망했겠다. 나도 꽃다운 나이에 허무하게 뒈져버렸겠다. 매니저님은 뭐가 매니저님이에요? 이제 그냥 편하게 누나라고 부르든가 해요. 아니지…. 이제 나도 너한테 존댓말 할 필요가 없나?》

자신에게 향한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멋쩍게 애꿎은 턱을 벅벅 긁은 신지현은 괜히 실없는 소리를 쉴새 없이 쫑알거렸다.

《아무튼! 괜히 뭐 도와줘서 고맙다느니. 희생을 잊지 않겠다느니 하는 낯간지러운 소리 따윈 할 생각도 마시고. 힘이 회복되는 대로 놈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여주라고요. 또다시 방구석 찐따 같은 놈의 장난감 신세로 전락하는 딱 질색이니까.》

“…그럴게요. 매니저님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도움을 결코 헛되이 하지….”

《신 팀장이 말했잖는가. 괜히 쓸데없이 낯간지러운 소리 하지 말라고.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면. 서둘러 전투를 준비하게. 내가 놈의 간섭을 제어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야.》

애석하게도 신지현과 다른 이들의 희생과 도움에 감사를 표할 틈도 없었다.

인과율의 의지를 강제로 틀어막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 모양인지, 강태백의 일그러진 얼굴에선 암회색 힘줄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강태백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키려던 그 순간….

-콰드드득!

《꺄아아악!》

【크아아악! 이 발칙한 기생충 놈들! …좋다! 그까짓 힘 따윈 기꺼이 포기해주지!】

굉음과 함께, 넝마가 되어버린 김혜옥이 바닥에 거칠게 내팽개쳐졌다.

그녀를 지그시 밟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인과율의 몸에서 흉흉하면서도 끈적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새어 나왔다.

《빌어먹을! 놈이 우리와 연결된 힘의 통로를 끊어버렸어! 내, 내가 다시 제어를…. 크학!》

【고목에 들러붙은 벌레 떼처럼 이 몸의 신력을 빨아먹다니…. 영혼으로나마 이 몸에게 저항한 것은 제법 참신한 시도였어. 안타깝게도 그 ‘참신한’ 저항도 여기까지지만 말이야! 죽어라! 벌레야!】

욕설을 내뱉은 강태백은 까득 이를 깨물며, 다시 제어권을 찾아오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의지보다 인과율의 손길이 훨씬 더 빨랐다.

-끼기기긱!

어두운 암회색 기류가 흩날리는 안과율의 손가락이 강태백을 가리키자.

괴롭게 얼굴을 찡그린 강태백의 모습이 차원째로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강태백이 말한 대로 영혼들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 버린 모양인지.

강태백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순간에도 인과율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길드장님!”

《나, 나는 신경 쓰지 말게! 나, 나보단 어서 힘을 회복하는데. 집중해….》

【버러지치고는 제법 괜찮은 저항이었어. 네놈의 영혼을 심연에 처박아, 두고두고 고문해주지.】

강태백의 영혼을 손에 쥔 인과율은 성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더니.

별과 행성으로 이뤄진 입을 쩌억 벌려, 강태백의 영혼을 집어삼켰다.

【자그마치 5억 년이란 세월 동안 쌓아온 힘이 너희 하찮은 것들의 천박한 장난질 속에서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군….】

평온을 잃어버린 채, 격노하는 인과율의 말로 미뤄보건대.

아무래도 놈은 영혼들과 연결되어 있는 힘을 포기하면서까지, 연결을 끊어버린 모양이었다.

강제로 연결을 끊어버렸기에 상당한 양의 신력이 소실된 모양인지.

섬뜩하게 으르렁거리는 인과율의 몸에선 이전만큼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네놈들에게 직접 죄를 묻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야 겠군. 이 몸이 좀 바빠서 말이야.】

김혜옥과 다른 영혼들을 번갈아 바라보던 인과율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깃들었다.

시선을 돌려, 관객석 쪽을 바라본 그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성좌들이여! 이 건방진 필멸의 쓰레기들이 내게 무슨 불경을 저질렀는지, 다들 똑똑히 봤겠지? 놈들에게 분수를 깨닫게 해줘라. ‘격’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이야!】

-따악!

인과율이 의미심장하게 손가락을 튕기자. 관객석에 박제되어있던 성좌들이 자유를 되찾았다.

동시에 그들을 상징하는 별자리들이 기묘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