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5화
“크아아악! 이 빌어먹을 방구석 외톨이 자식이!”
그동안 억누르려 애를 쓰던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그러자 심장 완전히 불타 사라지는 듯한 기분과 함께, 세상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격노에 가득 찬 포효를 처절하게 토해내는 눈가에선 뜨끈한 피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 그래! 더 분노하게! 내 굶주린 허기를 채워줄 만큼 격렬하게 분노해보란 말일세!】
피눈물을 줄줄 흘리며 분노를 토해내는 내 모습에, 인과율은 탐욕스럽게 웃으며 나의 격렬한 감정을 흡수하여 탐닉했다.
붉은 기운이 놈의 입으로 게걸스럽게 빨려 들어갈 때마다, 양다리가 휘청 꺾일 만큼 끔찍한 탈력감이 찾아왔다.
“크아아악!”
하지만 한번 놓아주기 시작한 분노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영혼마저 불태워버릴 듯한 분노는 광기를 품고 오히려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쉴새 없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눈물 속에서 시야가 완전히 핏빛으로 물들었다.
-꽈지직! 꽈지지직!
광기마저 느껴지는 분노 속에서 신력이 갈 곳을 잃고 엉망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폭주하기 시작한 신력은 회색빛 지네의 힘을 업고, 제어에서 완전히 벗어나, 내 육신을 제멋대로 뒤틀고 박살 내기 시작했다.
엉망으로 부풀어 오른 근육에서 흉측한 힘줄이 신력을 품고 투두둑 튀어나왔다.
날뛰는 신력을 통제하지 못한 혈관이 뚝뚝 끊어지며, 근육과 피부를 시커멓게 물들였다.
골수까지 침범한 신력으로 인해, 기이하게 변이된 뼈가 제멋대로 부러졌다.
당장이라도 몸이 폭발할 듯한 고통과 머릿속을 불태우는 광기 어린 분노로 인해.
삽시간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오오오! 화에 못 이겨 자신의 몸뚱이마저 파괴할 만큼의 광기 어린 분노라니! 어리석지만 이 또한 천하에 다시 없는 진미일지니!】
이성이 마비될 것 같은 분노와 고통 속에서 인과율의 조롱 섞인 이죽거림이 들려오자.
방향을 가늠한 나는 놈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온 힘을 다해 땅을 박찼다.
-콰아아앙!
폭음 속에서 불길하게 일렁거리는 회색빛 구름이 푹 꺼짐과 동시에, 인과율의 능글거리는 목소리와 재수 없게 웃는 얼굴이 확 가까워졌다.
그렇게 단숨에 거리를 좁힌 내가 놈을 향해 막 주먹을 휘두르려던 그 순간…!
【소용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 몸이 자네의 몸에 무엇을 박아두었는지 벌써 잊어버린 것을 아닐 텐데?】
-꽈드드드득!
인과율이 손가락을 거만하게 까닥이자, 신호를 받은 내 몸속의 회색빛 지네가 몸을 뒤틀었다.
동시에 마치 실에 묶인 인형처럼, 지네의 움직임을 모방하듯 내 몸 전체가 기이하게 뒤틀렸다.
멋대로 뒤틀린 육신에서 뼈가 부러져 나가는 소리와 살점이 끊어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어리석기는…. 애석하게도. 분노에 몸을 맡겨 발악하는 정도로는 자네에게 걸린 속박을 풀어낼 수 없는 법일세. 안타까운 선택을 하였군. 그래.】
그렇게 온몸이 끔찍하게 뒤틀리자, 인과율의 득의양양한 비웃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폭주하는 신력으로 인해, 내 몸은 내부에서부터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고.
외부는 회색빛 지네의 움직임을 그대로 모사해, 꽈배기처럼 끔찍하게 뒤틀린 상태였다.
비참하게 숨을 거둬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에, 인과율의 입가에 걸린 비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음미하듯 입을 오물거리며, 감정을 흡수하는 놈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내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맛보려는 듯, 놈은 계속해서 붉은 실이 매달린 손가락을 까닥였다.
-꽈드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내 몸은 더욱 기이한 방향으로 비틀렸다.
한계까지 비틀린 척추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부러져 나갔다.
압력을 이기지 못한 뼈가 근육을 찢고 등 쪽으로 흉물스럽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인과율의 입에 걸린 잔혹한 미소에서 가학적인 단어가 튀어나오려던 찰나!
[차, 찾았다! 찾았어! 애송아! 네 척추에 기생한 그놈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위철용의 다급한 외침이 머릿속을 웅웅 울려왔다.
오랫동안 고통과 분노를 감내하며 기다려 왔던 순간이 도래하자.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제멋대로 날뛰는 신력을 외골격으로 인도하였다.
《끼이익! 끼이이익!》
제멋대로 날뛰는 신력이 내 제어에 따르기 시작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모양인지, 회색빛 지네가 괴성을 토해내며 꿈틀거리는 신력을 흩어내려고 들었지만….
내게는, 아니 우리에겐! 그 찰나의 순간이면 충분했다!
“크, 크하악! 부, 부탁합니다! 어르신!”
[맡겨다오! 네 고통 어린 기다림을 허투루 하지 않겠다!]
-피슛! 피슈슈슛!
신력이 주입된 외골격에서 갑옷으로 뒤덮인 손이 생성되었다.
위철용의 영혼이 빙의된 손은 내 등에 매달린 어둠달을 낚아채더니.
파천 복룡창의 복잡한 무리를 그대로 재현해내며, 튀어나온 뼈에 기생한 지네를 꿰뚫어 버렸다.
[되었다! 애송아! 네 말대로 지네를 제거했느니라!]
《끼이이이….》
위철용의 활약으로 척추에 붙은 지네가 소멸하자.
제어에서 벗어나, 멋대로 날뛰던 신력이 내 의지에 따르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휘황하게 빛나는 황금빛 신력 속에서, 뒤틀리고 비틀렸던 육신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꼭두각시처럼 인과율의 제어를 따르던 활화산 같은 분노가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으며, 냉정을 되찾았다.
“후우우. 고생하셨습니다. 어르신. 오랜만에 신세를 졌네요.”
[신세는 무슨! 몸이나 제대로 추스르거라! 아직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뭐…. 덕분에 굴욕을 겪었으니. 이제 갚아줄 시간이긴 하죠.”
그렇게 신체를 수복한 뒤, 나는 히죽 웃으며 위철용에게 어둠달을 받아들었다.
끝없이 몸속을 순환하는 황금빛 신력이 은은한 빛을 발하며, 무서운 힘을 머금었다.
내 영혼에 박힌 낙오자들의 별자리가 환하게 빛내며, 그들의 힘과 권능을 품었다.
【어르신이라고? 그 제멋대로인 버러지가 아직도 용케 자네에게 붙어 있어나 보군. 그것까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이 몸의 실책일세. 이거 한 방 먹었어.】
계략이 무로 돌아갔음에도 불구. 인과율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놈은 지금 이 상황이 꽤 흥미롭다는 듯, 가볍게 박수까지 쳐대며 나를 칭찬하였다.
【그럼 다시 놀아 볼 텐가?】
“얼마든지. 애석하게도 나는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거든!”
휘황하게 너울거리는 황금빛 신력이 파괴와 번개의 권능을 머금었다.
신력의 힘으로 황금빛으로 물든 어둠달이 천둥과 우레를 흩뿌렸다.
세차게 펄떡거리는 검은 심장에서 시퍼런 전하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꽈르르르릉!
인과율을 향해 쇄도한 나는 그대로 놈의 머리를 향해 어둠달을 휘둘렀다.
한때, 파천 복룡창의 독룡아라고 불렸던 초식이 천둥과 번개를 품고 원본의 그것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형태로 펼쳐졌다.
수천, 수만, 수억 개의 번개가 인과율의 사각을 노리고 놈을 향해 짓쳐 들었다.
으르렁거리며 시퍼런 전하를 내뿜는 번개가 인과율의 머리를 바스러뜨릴 듯 달려들었다.
【재밌군! 번개의 힘이라! 가장 파괴적이면서 빠른 공격이 아닐 수 없지! 그렇다면 이쪽은 대지일세!】
-크아아아앙!
수많은 사자들이 사납게 포효하는 소리와 함께, 인과율의 몸에 거대한 암석이 돋아났다.
회색빛 구름을 두른 놈의 몸이 암석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동시에 회색빛 허무의 공간에 삽시간에 거대한 암석 절벽 지대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대지 그 자체의 힘을 두른 인과율은 자신을 노리는 파괴와 번개의 힘을 그대로 받아내었다.
-쿠콰아아앙!
눈이 멀어버릴 듯한 광채의 폭풍 속에서 파괴된 암석 조각들이 정신없이 흩날렸다.
전하를 머금고 맹렬하게 휘날리는 암석 조각 속에서 인과율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꽈릉! 꽈릉! 꽈르릉!
거칠게 휘몰아치는 번개와 단단한 암석으로 빚어진 거인들이 갑자기 나타나, 거대한 주먹을 휘둘러왔다.
상하좌우 모든 방향을 잠식하고 쇄도해오는 공격에 어둠달을 비스듬하게 세운 나는 암룡출동을 발동시켰다.
-번-쩍!
회색빛 허무의 공간 속에서 열기를 머금은 거대한 태양이 순간적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빛과 불꽃의 힘을 머금어 태양 그 자체가 되어버린 외골격이 광채 속에서 산산히 부서지며, 사방에서 덮쳐오던 번개와 암석의 거인들을 순식간에 증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