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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94화 (294/309)

제294화

전신의 피가 모조리 역류하는 듯한 거센 분노!

뱃속에서 무언가 뜨끈한 것이 솟구치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머릿속이 화르륵 불타오르면서, 이성을 지탱하고 있던 이성의 끈이 뚝 끊어졌다.

격렬하게 솟구친 분노로 인해, 너울거리는 황금빛 신력이 격렬한 감정에 오염되어, 조금씩 조금씩 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당장이라도 비릿하게 웃고 있는 인과율의 모가지를 수수깡처럼 뚝 분지를 수 있을 것 같은, 폭력적인 자신감이 활화산처럼 솟구쳤다.

그렇게 고조된 감정과 신력이 막 폭발하려던 순간…!

【후후후.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반응이로군. 아아. 이렇게나 격렬하기 짝이 없는 거센 분노라니! 이 얼마나 달콤한 맛인가!】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누군가의 손에 허무하게 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전신을 지배하던 격렬한 감정이 멀끔하게 소멸해버렸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활화산처럼 솟구쳤던 신력이 갈 곳을 잃고 허무하게 사그라들었다.

곧이어 능글맞게 웃는 인과율의 목소리와 함께, 압도적인 탈력감이 내게 덮쳐 왔다.

“이, 이건….”

【아, 예전에 말해주지 않았나? 격양될 대로 격양된 필멸자의 감정이야말로, 이 몸에겐 둘도 없는 진미이거든. 그중에서 분노는 이 몸이 각별히 선호하는 감정이기도 하고 말이야.】

갑자기 찾아든 허무한 탈력감에 한쪽 무릎이 저절로 휘청 꺾였다.

어둠달을 지팡이처럼 짚고 부들거리는 몸을 억지로 지탱한 채, 인과율 쪽을 노려보자.

내 몸에서 빠져나온 붉은빛 기운이 놈의 육신을 뒤덮은 회색빛 구름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가물거리는 시야에 들어왔다.

내, 내게서 감정을 흡수하는 건가? 무슨 그런 해괴망측한 재주를!

“크, 크으으윽.”

【오오…. 달콤해. 아주 달콤해. 이렇게나 격렬한 감정을 빚어낼 수 있다니! 역시, 오랜만에 이 몸의 흥미를 끈 후계자답군.】

어둠달을 꽈악 틀어쥔 채, 호흡을 바로 하며 들끓는 감정을 추스르려 했지만.

고약하게 비틀어진 인과율의 입가를 바라볼 때마다, 심장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격렬한 분노의 감정이 내 몸에서 솟구칠 때마다, 엄청난 탈력감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이렇게나 감정을 이끌어 내줬으니, 이 버러지들의 영혼들이 제 몫을 제대로 해준 것 같군.】

비릿하게 웃은 인과율은 인형처럼 말없이 서 있던 황윤형과 강태백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놈의 손짓에 따라, 꿈틀거리는 회색빛 구름이 두 사람의 육신을 탐욕스레 집어삼켰다.

애처로운 귀곡성과 함께, 그들의 신형이 순식간에 회색빛 허무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기, 길드장님. 윤형 씨! 빌어먹을!”

【안심하게, 이들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준 것뿐이니까.】

인과율은 능글거리는 손짓으로 사방을 휘감은 회색빛 구름을 가리켰다.

불길하게 꿈틀거리는 회색빛 구름 속엔 황윤형과 강태백을 포함한 수많은 망자들이 소리 없는 절규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딴 장소가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그럼 무엇을 기대한 거지? 설마하니. 얼간이들이 만들어낸 내세관 따위를 이 몸에게 지껄일 셈인가?】

-꽈드득.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지. 인과율을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못생긴 얼굴로 흉측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꿈틀거리는 회색빛 구름을 억지로 비틀어 뜯어낸 그는, 영혼들이 절규하는 단면을 내게 보여주며 으스스하게 뇌까렸다.

【성불? 구원? 그딴 것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멋대로 지껄이는 것뿐이야. 안타깝게도. 버러지들의 영혼들은 죽어서도 이 몸의 장난감이 될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든. 어떤가? 참으로 반가운 얼굴들이 아닌가?】

수많은 영혼들이 아우성치는 회색빛 구름의 단면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섞여 있었다.

절규하는 김우경을 포함한 그들은 바로, 그동안 내 손에 안식을 찾았던 이들이었다.

그동안 『원혼 제령술』의 효과로, 그들에게 구원과 안식을 선사해줬다고 믿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안식과 구원을 찾지 못한 채, 인과율의 장난감 신세로 전락해 있었다.

【으하하하! 으하하핫! 참으로 좋은 표정이야! 억울한가? 분한가? 그것도 아니면 알량한 ‘스킬’ 설명 따위를 맹신했던 자기 자신을 환멸 하고 싶나?】

…애석하게도 『원혼 제령술』은 그저 허울 좋은 기만일 뿐이었다.

설명과는 달리, 내가 그동안 안식을 선사해줬다고 믿었던 이들은 끝내 구원받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나는 그동안 그 몇줄의 설명만을 맹신하고, 내 손으로 직접 그들을 영겁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나락으로 처박아 왔던 것이었다.

“이, 이 빌어먹을 새끼…!”

【크흐흐. 좋아! 이 몸을 더욱 증오하고 더욱 분노하게! 네 격렬한 분노는 내게 일용할 간식이 될테니….】

기만당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내 정신을 활활 불태웠다.

간신히 붙잡았던 이성의 끈이 다시 화르륵 불타올라 스러졌다.

용암처럼 끓어오른 분노가 몸을 휘감자, 또다시 압도적인 탈력감이 찾아왔다.

[저, 정신 차려라. 애송이! 고작 그따위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 잡아먹혀서는 안 되느니라. 놈의 수작에 넘어가지 마!]

‘크으윽. 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정신을 활활 불태우는 분노 속에서 위철용의 성난 일갈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두드렸지만.

기이하게도, 아무리 애를 써봤자. 제멋대로 피어오르는 분노를 제어할 수 없었다.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격렬한 분노의 불길은 내 영혼을 통째로 살라 먹기라도 할 듯 내 제어에서 벗어나, 멋대로 내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감정을 다스릴 수 없어, 적잖이 당황스러운 눈치로군. 간단하네. 자네가 아무리 ‘그릇’으로 각성했다고 할지언정. 네 육신은 아직 내가 빚어낸 피조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불과하니 말일세.】

낄낄거리며 웃은 인과율은 보란 듯이 내 쪽을 향해,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회색빛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새하얀 손가락 사이엔 붉은 실이 늘어져 있었다.

【슬픔.】

“크흐흑.”

새하얀 손가락이 붉은 실을 살짝 건드리자.

머릿속을 활활 불태우던 분노의 감정이 한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곧이어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우울한 감정이 머릿속을 침범해왔다.

일그러진 눈가를 타고,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환희.】

“크읏?! 으하하하! 으하하핫!”

우울한 푸른 빛으로 물들었던 머릿속이 별안간 금빛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압도적인 쾌락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입가에선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이건 설마?! 마, 말도 안 돼.

아무런 간섭없이 일방적으로 내 감정을 제어하고 있다고?

【아니지. ‘아무런 간섭없이’라는 말에 어폐가 좀 있군. 아무리 나라고 한들. ‘그릇’으로 각성한 자네의 감정을 그토록 쉽게 제어하겠는가?】

이미 다 잡은 사냥감이라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억겁의 세월 동안 혼자서 음침하게 은둔해왔던 외톨이의 추악한 버릇일까?

흰 이를 드러낸 인과율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영화 속의 말 많은 악당처럼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자신의 비밀을 술술 나불대기 시작했다.

【자네와 연이 있었던 버러지들의 영혼을 사용해, 격렬한 감정을 끌어낸 틈을 타. 자네의 육신에 ‘이것’을 박아 넣었지. 설마.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인가?】

…조금 전에. 황윤형과 강태백이 휘두른 무기에 뭔가 수작을 부린 건가?

어느새 인과율의 나풀거리는 손엔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회색빛 지네가 들려있었다.

꿈지럭거리는 특유의 움직임으로 미뤄보건대, 조금 전 강태백과 황윤형에게 기습 당했을 때.

그들의 무기에 저 지네의 알들이 묻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역시, 말 많은 악당답게, 쓸데없이 상세한 설명이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는 예측하지 못했나 보군. 애송이! 무인이 몸속에 들어온 이물질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똑똑히 보여줘라!]

인과율의 설명을 들은 위철용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신력을 내력처럼 이용해, 내부에 침투한 지네를 태울 것을 지시했지만….

‘…이미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요.’

[뭐, 뭐라고?]

‘나름 절대자라고 자부하는 졸렬한 존재가 제 몸에 심은 것이 평범한 물건일 리가 없잖아요?’

대단히 애석하게도 인과율은 쓸데없이 설명만 자세히 늘어놓는 얼치기가 아니었다.

놈이 내게 ‘굳이’ 비밀을 알려준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꾸드드드득!

용솟음치는 신력을 어떻게든 움직이려 들었지만.

몸속에서 불온하게 꿈틀거리는 회색빛 지네가 신력을 제어하는 내 의사를 툭툭 가로막았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용솟음친 신력이 놈의 방해로 허무하게 흩어졌다.

신력을 움직이려고 하면 할수록, 끔찍한 탈력감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알려줬으니. 부디 재밌는 여흥 거리를 보여줄 거라 믿겠네.】

내부에서 꿈틀거리며, 신력의 흐름을 방해하는 지네도 문제지만.

놈을 이용해, 내 감정을 멋대로 주무르는 인과율 또한 신력을 움직이는데 큰 방해가 되었다.

오만하게 팔짱을 낀 인과율이 오른손을 까닥거릴 때마다, 계속해서 감정이 휙휙 바뀌었다.

눈에서 눈물이 쉴새 없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에선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계속 터졌다.

미친 듯이 엄습해오는 서늘한 공포가 온몸을 꽝꽝 얼렸다.

【흐음…. 다른 감정은 그저 그렇군. 역시 분노만큼 자극적이면서 달콤한 감정은 없단 말이야.】

내게서 뿜어나오는 다양한 감정을 맛본 인과율을 비릿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슬쩍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분노를 머금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격렬한 분노가 머릿속을 활활 불태웠다.

영혼 전체가 타버릴 듯한 고통과 함께, 압도적인 탈력감이 연달아 밀려 들어왔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엿 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거지?

세상의 섭리를 조율한다는 존재치곤, 너무도 비열하기 짝이 없는 수작질이었지만.

그렇게 비열한만큼, 인과율의 수작은 너무도 효과적이었다.

제어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의 파도가 제멋대로 머릿속을 휩쓰는 데다.

척추 부위에 틀어박힌 지네가 신력의 흐름을 차단해대는 탓에, 나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감정부터 다스려야 하느니라! 외부의 개입이 있다곤 하나 감정에 집어 삼켜져서는….]

【달콤해. 아주 달콤해. 이렇게나 강렬한 분노를 토해내는 존재라니. 앞으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어.】

위철용은 반투명한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든 내게 감정을 제어하라 조언해줬지만.

외부의 개입이 아니고서도, 비열하게 웃는 인과율의 입가를 볼 때마다 분노가 계속해서 솟구쳤기에,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끄으응. 저 꼴을 보고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해야 한다! 애송이!]

‘그, 그게 말이 쉽죠. 내장이 다 활활 타오를 것처럼. 격렬한 분노가…. 잠깐만.’

타오르는 격노 속에서 순간적으로 어떤 아이디어가 내 머릿속을 반짝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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