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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91화 (291/309)

제291화

-쯔가가가각!

마흐라브가 휘두른 갈고리가 허공을 가르자, 그대로 공간이, 차원이 부우욱 찢어졌다.

찢어진 차원 속에서 시간이 산산이 쪼개지며,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가 풀리는 것을 반복했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시커먼 보랏빛 공허로 물든 허무의 공간이 탐욕스러운 입을 쩌억 벌렸다.

-피슛! 피슈슈슈슈!

황금빛으로 물들어, 태양 그 자체를 품은 어둠달이 허무의 공간을 반으로 갈라 찢었다.

정지되어 얼어붙었던 시간이 황금빛 신력과 만나, 순리대로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 시간 속에서 찢어진 차원이 다시 서서히 봉합되었다.

신력과 신력이 끊임없이 맞부딪히며.

계속된 공방 속에서 시간과 차원과 공간이 계속해서 부서졌다가 복구되는 것을 반복했다.

보랏빛과 황금빛의 격돌 속에서 주변의 풍경이 계속해서, 쉴 새 없이 휙휙 바뀌었다.

《…호오. 어느새 여기까지 도달하게 될 줄이야. 주변을 한번 둘러보게. 자네에겐 제법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이 아니던가.》

그렇게 시간과 차원, 공간을 넘나들며 공방을 나누고 있던 찰나.

매섭게 내 목숨을 노려오던 마흐라브의 갈고리가 갑자기 움직임을 뚝 멎었다.

잠시 공격을 거둔 뒤, 묘하게 입꼬리를 뒤튼 마흐라브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는 듯 내게 묘한 눈짓을 보내왔다.

[…이곳은?!]

마흐라브의 눈짓에 따라, 주변의 풍경을 둘러본 위철용의 입이 점점 크게 벌어졌다.

불신의 빛을 품고 놈을 째려보던 그의 눈이 경악을 품고 점점 왕방울만 하게 변해갔다.

배후령 특유의 자그마한 비췻빛 육신이 바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어, 어찌 이곳이 벌써! 마, 말도 안 돼. 지금 시점에서 이곳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아, 아니 놈의 존재가 기획조차 되지 않았을 시기이거늘!]

위철용은 계속해서 불신과 경악을 품을 눈으로 주변을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충격과 공포에 빠져,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꽤 경박해 보였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을 지적할 때가 아니었다.

나 역시 이렇게 ‘각별한’ 기억이 서린 장소가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이 염병할 돌덩어리 새끼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새하얀 대리석으로 뒤덮인 순백의 공간.

경배하듯 하늘을 향해 손을 벌린 광신자들의 동상이 끝없이 늘어선 신전.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대의 진언이 빼곡하게 적힌 제단엔 심장 형태의 진홍빛 바위가 느릿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만든 장소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어버린 장소일세. 어떤가? 자신이 한번 죽음을 맞이했던 곳으로 돌아온 소감이.》

놀랍게도 이곳은 회귀 전, 내가 공략에 실패했던 최후의 게이트, 울부짖는 설원의 내부였다.

죽음을 맞이하던 최후의 순간, 내 기억 속에 화인처럼 틀어 박혀버린 풍경이 지금의 내 눈앞에 너무도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네놈 의도대로 놀아나고 싶진 않지만. 이번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군. 인정할게. 조금 많이 열받은 것 같거든.”

-빠드드득.

느릿하게 맥동하는 진홍빛 심장이 눈에 들어온 순간.

잠시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해묵은 감정들이 용암처럼 들끓어 올랐다.

못난 외모로 인해, 모두에게 비웃음 당했던 설움!

잘못된 판단으로 소중한 이들을 잃어야만 했던 슬픔!

간발의 차이로 멸망을 막아내지 못한 아쉬움!

결정적으로 무력하게 멸망을 바라봐야만 했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까지!

용암처럼 들끓어오른 해묵은 감정은 격렬한 격노가 되어 내 영혼을 불살랐다.

내 영혼과 이성을 통째로 잠식한 격노는 유형화된 살기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쭈와아아악!

유형화된 살기가 성난 해일처럼 사방을 뒤덮자.

살기에 노출된 광신도들의 동상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퍽퍽 터져나갔다.

신전 바닥에 깔린 새하얀 대리석에 금이 가더니, 모래처럼 파스스 흩어지기 시작했다.

[애, 애송이! 마음을 다스려라! 놈을 앞에 두고 그렇게 흥분해선 아니된다!]

주변의 증오스러운 풍경을 파괴하기 위해, 신력을 마구잡이로 흩뿌렸기 때문인지.

순간적으로 내 몸을 둘러싼 외골격이 힘을 잃고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외골격이 순간적으로 흐릿하게 변한 것을 목격한 위철용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내 몸을 뒤덮은 외골격이 희미해진 바로 그 순간!

《이런. 이런. 아직도 하잘 것 없는 감정 따위에 얽매이는 모습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자네도 필멸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던 것 같군!》

사방을 뒤덮은 파괴의 흔적을 느긋하게 바라본 마흐라브는 비릿하게 웃으며, 흐릿해진 외골격을 향해 갈고리를 번개처럼 휘둘러왔다.

나의 격렬한 격노를 뚫고 기습적으로 날아든 공격과 함께, 능글맞게 비웃던 놈의 뇌까림은 마지막에 폭풍이 되었다. 포효가 되었다.

-푸욱!

공간과 시간을 가르고 날아든 마흐라브의 갈고리는 내 외골격을 너무도 쉽게 꿰뚫었다.

꿰뚫린 틈 사이로 음험하게 끈적거리는 보랏빛 신력이 독사의 독액처럼 뚝뚝 흘러내렸다.

자신의 기습이 성공했음을 확신한 놈의 쭉 째진 눈이 교활하게 빛났다.

《필멸의 굴레를 벗어난 이들에게 하찮은 감정 따윈 그저 장애물에 불과한 법이라네. 보게. 자네도 감정 따위에 휘둘려, 내 일격을 허용하지 않았는가.》

-치지지직.

이죽거리는 비웃음과 함께, 시커먼 갈고리가 점점 내 몸을 향해 파고들어왔다.

갈고리에서 뚝뚝 흘러내린 보랏빛 신력이 내 살갗을 태우며,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고리모양으로 휘어진 마흐라브의 눈이 승기를 품고 더욱 음흉하게 빛났다.

그렇게 놈이 승리를 최후의 일격을 끝마치려는 찰나….

-꾸드드득!

《…?!》

흐릿하게 변했던 외골격이 찬란한 황금빛 광채를 되찾았다.

광채를 되찾은 외골격이 빠른 속도로 재생하며, 시커먼 갈고리 째로 마흐라브의 몸을 꽈악 붙들었다.

“…분노가 뭐 어쨌다고?”

마흐라브를 노려보는 두 눈이 격렬한 분노의 감정을 품고 활활 타오르는 귀화를 품었다.

금방이라도 핏물이 찰랑거릴 듯 핏발 선 황금빛 눈동자에선 시뻘건 진노가 이글거렸다.

놈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리는 내 입에선 우레와도 같은 격노가 들끓었다.

“제대로 열받아서, 눈깔이 완전히 돌아간 놈을 네놈이 못봐서 그런가 본데…. 진짜 열받으면 인간이란 존재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줄게.”

-꽈드드드득!

내 분노에 감응해, 황금빛 신력이 과다하게 주입된 손이 마흐라브의 손목을 갈고리 째로 우둑 꺾었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순간적으로 기습을 허용한 마흐라브는 즉시 자신의 손을 절단하여, 나로부터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이번엔 내가 더 빨랐다.

-꽈광!

재빨리 마흐라브의 어깨를 부여잡은 나는 머리를 힘껏 뒤로 젖힌 채, 그대로 놈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가네샤의 권능으로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 목근육이 순간적으로 무서운 괴력을 발휘했다.

운석처럼 날아든 머리가 마흐라브의 머리와 충돌하자, 끔찍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크으으윽! 이, 이런 교양없는!》

“으아아아아아!”

마흐라브는 머리가 반쯤 함몰된 채, 이가 숭숭 빠져나간 입으로 얼굴을 찌푸렸지만.

분노로 인해 눈이 반쯤 돌아간 나는, 놈과 건설적인 토론 따위를 해줄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천둥과도 같은, 우레와도 가튼 괴성을 토해내며 달려든 나는 신력을 잔뜩 주입한 손으로 놈의 얼굴을 그대로 후려쳤다.

-꽈직!

가네샤의 권능을 빌어, 솥뚜껑보다 더 크게 변한 주먹이 마흐라브의 얼굴을 강타하자.

교활한 비웃음을 품던 입가에서 새하얀 이가 탈곡되는 옥수수 낱알처럼 우수수 흩날렸다.

삽시간에 합죽이가 된 놈이 자신의 망가진 외모에 슬퍼할 새도 없이. 나는 다음 공격 계속했다.

-파앙! 파앙! 파아아앙!

마흐라브의 이를 모조리 앗아간 주먹이 신력을 품고 또다시 번개처럼 면상에 틀어박혔다.

음속마저, 아니 광속마저 초월한 주먹이 연달아 바람을 가를 때마다, 뒤늦게 폭음에 울려퍼졌다.

주먹에 얻어맞아, 힘없이 날아가는 마흐라브의 얼굴에서부터 부서진 뼛조각과 핏물이 꽃잎처럼 정신없이 흩날렸다.

《그, 그만! 이렇게 야만적인 방법으로 싸울 수는…! 크학!》

재빨리 자신의 얼굴을 재생시킨 마흐라브는 몸이 바닥에 닿기 직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곧 죽어도 자신의 프라이드를 내세울 생각인지, 놈은 그 상황에서도 옷매무새를 다듬으려 들었지만.

먹잇감을 노리는 범처럼 날래게 놈에게 접근한 나는, 마흐라브가 몸을 일으키자마자.

놈의 흩으러진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이 염병할! 빌어먹을! 돌덩이 새끼!”

마흐라브의 머리채를 꽈악 움켜쥔 채, 도약한 나는 펄떡이는 진홍빛 심장 앞으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내 분노의 원흉을 향해, 움켜쥔 마흐라브의 머리를 그대로 내려 찍었다.

-꽈앙! 꽈앙! 꽈앙!

폭음과 함께, 마흐라브의 단단한 머리가 진홍빛 심장을 들이 받을 때마다.

회귀 전, 나를 그토록 애먹였던 진홍빛 암석 심장이 너무도 힘없이 부서져 나갔다.

한 번의 충돌로 진홍빛 심장 전체에 거미줄과도 같은 시커먼 금이 좌르륵 퍼져나갔다.

두 번의 충돌로 단단하기 짝이 없던 외피가 우르르 무너져 나갔다.

세 번의 충돌로 내부에서 멸망을 꿈꾸며 쿨쿨 잠을 자던 파괴의 고룡이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네 번의 충돌로 그것이 세워져 있던 제단이 힘없이 와르르 박살 나 버렸다.

《그, 그만! 그으만…!》

회귀 전,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만큼 단단한 돌덩어리답게

진홍빛 심장은 마흐라브의 육신에도 괴멸적인 타격을 입힌 모양이었다.

반쯤 붕괴된 머리의 재생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허우적거리는 손이 조금씩 둔해졌다.

“계속 뭘 그만하라는지 모르겠네. 진짜 즐거운건 이제 시작인데 말이야.”

안면이 완전히 붕괴된 모습으로 몸을 일으키는 마흐라브와 바닥에 널브러진 채, 힘없이 몸을 퍼덕이는 고룡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입꼬리를 뒤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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