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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83화 (283/309)

제283화

「진격하라! 놈들의 뒤틀린 영과 오염된 육신을 쳐 부숴, 낙오자 놈들에게 제 분수를 깨닫게 해줘라!」

그렇게 한때 나를 후원해주었던 성좌들과의 반가운 해후를 나누고 있자.

갑자기 새벽의 고요를 찢어발기는 듯한 굉음이 저 먼 하늘에서부터 우렁우렁하게 들려왔다.

곧이어 찬란한 빛을 흩뿌리는 은빛 광선이 어둑하게 물든 새벽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기 시작했다.

「승천의 의회가 명한다! 영광스러운 빛의 길이 끝나는 곳에 벌레처럼 숨은 낙오자들의 은신처가 나오나니. 지체하지 말고 놈들에게 질서의 철퇴를 내리도록!」

…누가 초월적인 조재들 아니랄까봐. 벌써 놈들이 숨은 곳의 위치까지 전부 파악했나 보군.

새벽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지상으로 내리 꽂힌 은빛 광선들은 빛 기둥의 형태가 되어, 특정 장소들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빛 기둥이 은빛 광채를 흩뿌리는 장소 대부분이 먼젓번에 신지현이 알아냈던 마족들의 은신처인 것과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내용으로 미뤄보건대.

초월적인 존재들답게, 성좌들은 잠깐 하계를 훑어 본 것만으로 마족들이 숨어있는 위치를 전부 파악해버린 모양이었다.

「찬탈의 전쟁이 마침내 시작되었도다! 하계에 강림한 심연의 형제자매들이여!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우리의 적을 처단할 지어다. 의무를 나태이 수행하는 자들에겐 합당한 벌이 내려질지니!」

곧이어 묘하게 나와 대화를 나누던 성좌들을 저격하는 듯한 소리가 하늘에서부터 울려퍼지자, 깔깔거리며, 왁자지껄하게 수다를 떨어대던 성좌들의 분신체들이 일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들의 별과 빛으로 이뤄진 육신에서 시커먼 공포의 감정이 조금씩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끄응…. 위원회의 지시라니. ‘그’ 엉덩이가 무겁기로 소문난 양반들까지 나섰을 줄이야. 어쩔 수 없군. 대단히 아쉽지만 해후는 여기까지하고, 다들 어서 움직이세.」

아무래도, 성좌들 사이의 위계질서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한 모양이었다.

단지 하늘에서 엄중한 경고가 들려온 것 만으로도 숨이 막힐 듯한 공포가 성좌들의 정신을 휘감아, 집채만한 몸뚱이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가시나무를 짊어진 노인마저 압박을 느낀 모양인지. 그는 별과 암석으로 이뤄진 수염을 어루만지며 신음을 흘리더니, 떨떠름한 목소리로 공포로 얼어붙어버린 다른 성좌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그, 그래요. ‘위원회’에서 직접 나섰으니. 지금은 해야만 할 일에 마땅히 집중해야죠.」

「그렇지 않아도 내 도끼는 그 간악한 놈들의 피와 살점을 원했다. 전쟁의 광기에 취할 시간이 마침내 도래했나니….」

가시나무를 짊어진 노인에게서 흘러나온 따스한 기운이 별과 빛으로 이뤄진 몸뚱이를 휘감자.

비로소 공포로 인해 얼어붙었던 성좌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렸다.

어쩐지 약간 허둥대면서, 서둘러 자신들의 무기를 챙겨든 그들은 대단히 아쉬운 표정으로 내게 하나둘씩 작별의 인사와 함께, 각양각생의 다양한 축복을 건네주었다.

「아쉽지만. 우리의 이번 만남은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다시 재회할 날을 시간의 초원에서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그대의 앞날에 양털의 축복이 있기를.」

「으, 으하하하! 이렇게 작별하게되어 대단히 아쉽습니다만. ‘높으신 분’들의 지시에 복종하는 것이 중간 관리직의 비애 아니겠습니까. 타오르는 불꽃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어머나…. 아까워라.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여기까지라니. 안타깝지만 위원회의 말은 저로서도 무시할 수가 없지요. 다시 만날 날을 기원하며. 모쪼록 그대의 앞날에 싱그러운 백합의 향기가 함께하길 바라겠습니다.」

따뜻한 애정이 깃든 성좌들의 인사에 뭐라 답해줄 틈도 없었다.

내게 작별 인사를 건네며 축복을 내려줌과 동시에, 그들은 황급히 몸을 돌려 빛기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샤아아아.

훈훈한 온기와 함께, 형형색색의 다양한 빛을 발하는 빛무리가 내 몸을 휘감았다.

수많은 성좌들이 내게 걸어준 축복이 뒤늦게 발동된 것이었다.

-파-앗!

하지만 애석하게도 먼젓번에 위철용이 말했던 것처럼, 그들의 ‘격’이 지금의 나보단 현저하게 떨어지는 모양인지.

그들의 축복은 살짝 몸을 훈훈하게 만들어줬을 뿐, 황금빛 신력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내 육신에게 어떠한 영향조차 주지 못했다.

내 몸을 휘감았던 빛무리는 황금빛 신력을 파고들지 못하고, 그대로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다.

[…쓸데없는 짓을 하긴. 보았느냐? 본존 말대로 하급 성좌들의 축복 따위는 지금의 네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이니라. 애석하게도 저들의 수준으론 그 사실을 끝까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뭐, 그래도. 그들의 축복에선 진심으로 저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던데요. 누군가가 저를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잖습니까.”

위철용은 여전히 그들이 내게 보내는 애정이 달갑지 않은 듯 했지만.

누군가가 내게 진심어린 호의를 보내는 것은 꽤나 가슴이 뜨끈해지는 기분이었다.

위철용의 심술궂은 표정에 히죽 미소로 답한 나는 점점 멀어져가는 성좌들의 뒷모습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모쪼록 당신들의 앞날에도 축복이 있기를.”

내가 성좌들에게 축복의 말을 전하기 무섭게, 내 몸을 휘감았던 황금빛 신력이 부드러운 잔물결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성좌들의 호의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따스하게 퍼져나간 황금빛 신력은 허둥지둥 몸을 움직이는 그들의 육신을 포근하게 휘감았다.

[…지금 성자들의 분신에게 네놈이 축복을 내려준 것이더냐?]

“뭐, 제게 한때 큰 도움을 줬던 이들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변치않게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이니까요. 그런 그들에게 이 정도는 베풀어 줘도 괜찮지 않겠어요?”

아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위철용을 뒤로 한 뒤.

나는 조용히 푸근하게 웃으며, 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성좌들이 나서줬으니. 이제 우리도 적극적으로 나서야하지 않겠어?

*****

-뿌드득!

《끄아아아악!》

“크하하하! 이것이! 바로 이것이! 인간의 저력이다! 인간의 힘이다!”

차가운 한기에 휘감긴 전쟁 망치가 단단한 정강이뼈를 단숨에 으깨놓자

광포하게 날뛰던 마족의 입에서 이젠 고통에 찬 비명이 튀어나왔다.

눈에서 한기를 뿜어내며, 마족의 하반신을 결딴 낸 박정욱의 입에서 서릿발과도 같은 포효가 터져나왔다.

“고맙군! 설용호! 드디어 놈들을 상대로 원없이 날뛸 수 있겠어!”

사납게 이를 드러낸 박정욱의 몸 위엔 특이한 형태의 갑옷이 시린 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외골격에 덮인 그의 몸에서 차가운 한기가 폭풍처럼 흘러나올 때마다. 갑옷에 알알이 박혀있는 보석이 푸른 빛을 사방에 흩뿌렸다.

두 개의 특성 트리가 융합된 탓인지, 잠재력이 완전히 해방된 그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빙하와도 같은 강인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이것들아! 모처럼 원없이 날뛸 기회를 헛되이 하지 마라! 설악 공격대의 저력을 보여줄 시간이다!”

-썩둑!

박정욱의 포효에 씨익 웃은 설악 공격대원들은 자신들의 대장과 무서울 만큼 닮아있는 웃음을 흩뿌리며 무기를 휘둘렀다.

그들이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몸을 뒤덮은 갑옷에 박힌 보석에서 시릴듯한 푸른 빛이 흘러나오며 착용자들의 마력과 신체 능력을 증폭시켰다.

레벨과 특성 트리가 한계까지 해방된 육신은 개량된 『강화 외골격』과 무서운 시너지를 발휘하며, 단단한 마족들의 육신을 마치 토마토 으깨듯 간단히 으깨버릴 수 있었다.

《어, 어떻게 필멸자들 따위가 이런 위력을…! 크윽! 물러서지 마라! 다들 한번에 달려들어!》

마족들 사이를 서리폭풍처럼 누비며 맹위를 떨치는 박정욱과 설악 공격대원들의 모습에.

마족들은 발악하듯 자신들의 강대한 육신을 내세우며, 그들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쿠과과광!

거의 소형차 이상의 덩치를 자랑하는 마족이 있는 힘껏 설악 공격대원을 들이받았지만.

그 묵직한 충격에 피폭당한 설악 공격대원은 제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섬뜩해졌다. 입에선 시린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썩둑!

그렇게 강마병에게 들이받힌 설악 공격대원은 놈의 머리를 향해 낫 형태의 무기를 휘둘렀다.

설악 공격대원의 몸이 역동적으로 움직인 순간, 『강화 외골격』 외부에 촘촘히 박혀있는 보석형태의 마력핵이 푸른빛을 내뿜으며 그의 마력과 신체 능력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증폭된 힘으로 설악 공격대원은 강마병의 거대한 육신을 단숨에 반으로 갈라버렸다.

“설악 공격대원들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 활약해주고 있네요.”

“그렇지. 그들은 언제나 설욕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일세.

설악 공격대원들이 보여준 기대 이상의 무력에 혀를 내두르며, 강태백을 바라보자.

강태백은 온몸에서 시퍼런 불길을 피어올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게다가…. 자네가 그들과 나를 위해. 이것저것을 배려해주지 않았는가. 언제까지 자네에게 짐만 될 수는 없지. 여기는 우리에게 맡겨두게.”

“본격적인 적들은 아직 튀어나오지 않았지만…. 예, 부탁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래도 강태백과 설악 공격대원들 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듯 했다.

재활의 기회와 그동안의 설움을 설욕할 기회를 부르짖으며 달려나간 박정욱과 설악 공격대원들이 예상 이상으로 무섭게 날뛰며, 마족들을 도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말했던. ‘신성을 되찾은’ 마족놈들은 내가 상대해볼 테니. 걱정하지 말게. 지금은 그들의 활약을 지켜볼 때이니.”

강태백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 전투가 일어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엔, 박정욱과 설악 공격대원들이 마지막 남은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위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 태어났다. 다시 너희 족속들을 사냥하게 될 수 있어. 고맙군.”

설악 공격대원들의 활약을 지켜본 박정욱은 으스스한 미소를 지으며, 전쟁 망치를 움켜쥐었다.

하반신이 으스러진 마족을 바라보는 그의 몸 위에 서리가 내려앉으며 새하얀 외골격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파츠츠츠.

이중환이 자랑하던 새하얀 도포 형태의 외골격과 박정욱의 상징이었던 굳건한 성벽 형태의 외골격을 적절히 섞은 듯한 갑옷 형태의 외골격이 그의 몸 위에 내려앉았다.

《마, 말도 안 돼! 너희 필멸자 놈들의 실력은 이미 파악한 지 오래거늘!》

위기를 감지한 마족이 경악한 표정으로 발악하듯 시커먼 마력을 집중시켰으나….

-퍼석!

마족이 미처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번개처럼 휘둘러진 망치가 놈의 두개골을 으깨놓았다.

단단한 두개골이 허무하게 두 쪽으로 바스라지며, 시커먼 기운이 연기처럼 새어 나왔다.

“…낡은 정보 따윌 맹신한 게 네놈들의 패인이다. 인간이란. 특히 사내란 족속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법이거든.”

숨을 거둔 마족의 시신을 바라본 박정욱은 서리폭풍에 휘감긴 채 새하얗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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