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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82화 (282/309)

제282화

성좌들에게 모종의 지시를 내린 뒤로 일주일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지난 일주일간 나는 바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최후의 결전을 대비하였다.

갑자기 다가온 결전의 순간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의외로 다들 순순히 내 지시에 따라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좌들과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차원의 문을 열어, 그들과 약속했던 장소인 튜토리얼 타워 꼭대기로 향했다.

“…이제 시작인가?”

내가 서 있는 튜토리얼 타워의 꼭대기 전체가 환하게 물든다 싶더니.

곧이어 엄청난 광경이 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번쩍!

튜토리얼 타워의 꼭대기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빛무리가 찬란하게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유성의 무리가 어둑한 새벽하늘을 밝게 물들이며, 지상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콰앙! 콰아아앙!

화려한 호선을 그리며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이 지표면 위로 내려앉을 때마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폭음과 함께, 대지 전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슴푸레한 새벽의 어둠에 포근하게 안겨있던 대기가 때아닌 재난에 서글프게 울었다.

-후와아앙!

새벽하늘을 밝게 물들이며, 쏟아졌던 유성들이 모조리 지표면에 틀어박히자.

유성이 틀어박힌 크레이터마다, 형형색색의 신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움푹 패인 크레이터를 중심축으로 삼아, 성좌들의 정체를 암시하는 별자리들이 대지에 화려하게 아로새겨졌다.

-쿠르르르르.

별자리가 새겨진 크레이터에서 별들의 군집으로 이뤄진 거대한 형상들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흩뿌리며 그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각양각색의 별빛이 거대한 형상을 빚어낸 별과 빛의 군집 사이에서, 유난히 커다란 별 두 개가 안광처럼 강렬하게 번뜩였다.

튜토리얼 타워에 보관되어있던 성좌들의 분신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심연의 형제자매들이여…. 거짓된 신성을 손에 넣은 낙오자들에게 합당한 신벌을 내리자.」

「모두가 잊었던 전쟁. 모두가 외면했던 전쟁의 시기가 마침내 도래했나니.」

형형하게 빛나는 안광들이 어둠이 내려앉은 대지를 밝게 물들이자.

대지 위에 당당하게 선 거대한 형상들의 입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마어마한 존재력을 소모하여 빚어낸 성좌들의 분신답게, 그들의 목소리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신성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여러분! 동요하지 말고! 어서 몸부터 피하세요!

-으아아아! 조, 종말이다! 종말이 시작되었다아아아!-거기! 저 양반들 우리 편이니까. 진정하고 흥분부터 가라앉혀요!

초월적인 존재들의 갑작스러운 강림에 곳곳에서 소란이 일어났지만.

사흘 전부터 피난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서울 시내엔 민간인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미처 피난하지 못한 민간인들이 분신들의 강림에 깜짝 놀라, 비명을 내질렀지만.

피난민들을 인솔하는 각종 거대 길드 소속의 비전투요원들이 그들을 침착하게 달래주었기에.

다행히 예상했던 것만큼의 거대한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둘러 피하라! 무지한 어린양들이여! 이곳은 곧 전쟁의 전화에 휩싸일지니!」

「어리고 연약한 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 아니오! 전투에 앞서 무고한 이들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도록 보살피겠소!」

게다가 성좌들의 분신 중 일부는 박애적인 면모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피난을 도와줬기에.

분신들의 강림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전까지 서울의 모든 민간인을 별 이상 없이 대피시킬 수 있었다.

“…급하게 지시한 것 치고는 빨리 대피한 것 같네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피난민들의 마지막 행렬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자.

무전을 마친 나는 텅 비어버린 채, 거대한 빛과 별의 거인들만이 웅성이는 서울 시내를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거대 길드들의 힘을 모두 동원했다지만, 일주일 만에 서울을 통째로 비우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이 텅 빈 도시는 나를 믿어준 거대 길드 관계자들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었다.

-별말씀을요! 지긋지긋한 게이트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면 저흰 무슨 짓이든 다 할겁니다! 무운을 빌어요. 산군님!

-혹시나 해서 탐색 계통의 스킬을 익힌 사람들을 사흘 동안 쉴새 없이 굴렸답니다! 서울은 이제 완전히 텅텅 비어있으니 마음껏 날뛰세요!

이세영이 전해준 무전기에선 피난을 책임졌던 태백 길드 인사팀 직원들의 응원이 들려왔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들의 메시지에 히죽 웃은 나는 무전기를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곤 어둠달을 등에 휘적휘적 돌리며, 밤하늘을 바라보자….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숫자의 유성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튜토리얼 타워에 보관되어 있던 성좌의 분신들 외에도,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기로 한 성좌들이 자신의 분신들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크르르르릉! 크허헝!」

「쉬이잇! 쉬이이잇!」

네발로 기어 다니는 거대한 호랑이에서, 기괴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쓸고 다니는 뱀까지.

이번에 강림한 분신들은 튜토리얼 타워에 보관되어 있던 분신들과는 외형이 살짝 달랐다.

아무래도 직접 빚어 만들었기 때문인지, 그들과는 다르게 성좌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 밤하늘을 바라보며 새롭게 강림하는 분신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던 순간.

「크흐흐.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하계의 공기인지 모르겠군! 내가 이 도끼로 길을 열겠다! 낙오자들에게 합당한 죽음을! 피와 영광을 위하여!」

갑자기 유난히 튀는 외형의 형상이 내 옆에서 포효를 내질렀다.

그는 다른 형상들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덩치였지만, 별빛으로 벼려낸 도끼를 들고 있는 모습에선 범상치 않은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말투에서 어쩐지 나는 묘한 익숙함을 느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

「용케 나를 알아보는군! 자네가 설마 계승자가 되었을 줄은 미처 몰랐다네! 그 늙다리들이 순순히 자네를 지원하겠다고 결정한 것이 얼마나 기쁘던지! 마침내! 마침내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맞대게 되어 반갑군! 잘 부탁하네! 계승자여! 이 도끼에 맹세코! 누구보다 용맹하게 우리의 적을 동강내 주겠네!」

…어쩐지 친근하게 들러 붙더니만. 댁이었군. ‘고통을 모르는 병사’ 양반.

도끼에 집착하는 특유의 호전적인 말투와 내게 과할 정도로 우호적인 모습으로 미뤄보건대.

말투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는 한때 나를 적극적으로 후원해줬던 성좌. ‘고통을 모르는 병사’인 듯했다.

「으하하하핫! 저도 왔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상황에서 제가 빠질 수야 없죠!」

-화르르륵!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갑자기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간질였다.

땅에 납작 엎드린 사족 보행 도마뱀 형상이 내게 다가와, 마치 불길로 이뤄진 혀를 내밀어 반갑게 내 얼굴을 부드럽게 핥아주었다.

“오랜만이네요.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

「뭐, 뭐요? 으하하하핫! 거 보십쇼들! 아직까지 저를 기억해주시지 않습니까! 역시 내가 승리자다앗!」

남이섬 게이트에서 내게 조언해주었던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도마뱀 형상의 거대한 육신은 극도로 흥분해버린 모양인지, 방정맞게, 혹은 부산스럽게 몸을 흔들어 댔다.

집채만 한 다리가 대지를 강타할 때마다, 땅이 쩍쩍 갈라지며. 시뻘건 용암이 솟구쳤다.

솟구친 용암이 자그마한 도마뱀의 형태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마, 말도 안 돼! 우리 이쁜이가 당신같이 추잡한 작자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저, 저는요? 저는 기억하시겠죠? 그렇죠?」

내게 인사를 받은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이 기뻐 날뛰며, 소란을 피워대자.

이번엔 긴 허리를 구불구불 흔들어대는 사족 보행형 짐승의 형상이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육식동물처럼 노릿하게 찢어진 안광을 부담스레 번쩍이는 형상의 얼굴은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이질적인 형태였다.

“물론이죠. ‘가면을 쓴 족제비’. 불운한 사고로 당신들과 연락이 끊기긴 했습니다만. 처음부터 저를 후원해주셨던 분들을 제가 어떻게 잊겠어요?”

「아아아. 아아아! 그래요! 저희를 잊지 않을 줄 알았어요!」

「우끼기긱! 끼이익! 끽끽!」

「저, 저리 비켜! 저희는요? 저희는….」

「설용호님이 우리를 알아보신다! 우리의 후원과 관심은 헛된 것이 아니었어!」

가면을 쓴 족제비의 울음 섞인 반응을 시작으로 거대한 형상들이 우르르 내게 몰려들었다.

다른 성좌들의 분신들보다 유독 개성이 철철 넘치는 외형을 자랑하는 그들은 모두, 한때 나를 후원해줬던 성좌들이었다.

「그러고보니! 족제비 양반! 제가 솜씨 좋은 무두장이를 소개해 드렸는데. 아직까지 가죽이 멀쩡합니다? …뭐, 어쨌든 이거 상당히 흥미롭군요. 설용호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신다니. 보통 그만한 자리에 오른 양반들은 젠체하느라 자신을 도와줬던 이들을 외면하는 것이 보통인데 말입니다.」

「게다가 일 년, 하계 기준으로 일 년 만일세. 평범한 헌터에 불과했던 그가 새로운 질서를 잉태한 존재로 각성한 시간이 고작. 일 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한 그가 우리를 잊지 않았다니….」

그들에게 약간의 호의를 보인 것뿐이지만, 그 ‘호의’의 여파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대단했다.

그동안 맹목적으로 나를 추앙해줬던 성좌들은 여전히 솟구치는 활화산처럼 격렬하면서도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감격에 찬 별빛 눈물을 주르륵 흘려대는 이는 평범한 편이었고,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처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격렬하게 날뛰는 이도 적지 않았다.

「우끽! 끼기긱! 꺄악! 꺅!」

…잔뜩 흥분한 나머지 괴이한 소리를 내지르며, 알 수 없는 덩어리를 다른 성좌에게 집어 던지는 케이스도 있지만 말이지.

[그저 여흥거리로만 네놈을 추앙하는 놈들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더 정신이 나간 놈들이었나 보군.]

위철용의 미묘한 시선처럼,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성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지만.

나를 후원해줬던 성좌들은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리도 기쁜 모양인지, 다른 성좌들의 시선 따위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그저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그동안 단순하게 내 잘생긴 외모에 홀려, 나를 지원해주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이들에 대한 평가를 좀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며 나를 따스하게 바라보는 성좌들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오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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