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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79화 (279/309)

제279화

금빛 신력이 깃든 손으로 튜토리얼 타워의 굳게 닫힌 문을 슬쩍 건드리자.

칙칙한 빛을 발하는 거대한 청동제 문 위로 내게 한과 업을 맡긴 이들의 별자리가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그렇게 문 위에 떠 오른 별자리들이 다양한 색의 빛을 발하며, 새벽 특유의 어슴푸레한 어둠을 몰아내자.

귀에 거슬리는 약간의 소음과 함께, 굳게 닫혀있었던 튜토리얼 타워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경고. 정상적인 접근 방식이 아닙니다!』

『경고. 적법한 방문절차가 아닙니다. 방문이 허가된 시기에 다시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성좌의 힘을 사용해, 강제로 튜토리얼 타워의 문을 열어젖혔기 때문인지.

굳게 닫혔던 문이 빠끔 열린 순간, 웬 경고 메시지가 머릿속에 연달아 웅웅 울렸다.

방문이 허가된 시기가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튜토리얼 타워의 내부엔 공허한 어둠만이 불길하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경고문 내용이 쓸데없이 딱딱한 것으로 보아하니. 지금 탑의 관리를 맡은 성좌 놈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거나, 성격이 몹시 까탈스러운 놈이겠구나. 어느 쪽이든 네놈의 목적대로 ‘대화’를 나누기엔 그리 적절한 상대가 아니다만….]

경고 메시지의 내용을 물끄러미 바라본 위철용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꼬리를 흐렸다.

그는 현재 타워의 관리를 담당하는 성좌의 성격이 못내 미덥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의 우리에겐 상대를 가릴 시간따윈 전혀 없었다.

“제가 멋대로 그들이 하계를 관음하던 유일한 창구를 폐쇄해버린 상태이니, 어차피 상대가 누가 되었든 그쪽에서 호의적으로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중요한 건 그들에게 직접 경고를 전할 수 있다는 것 뿐이죠.”

나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위철용에게 씁쓸한 미소로 답해준 뒤.

새벽을 삼킨 어둠보다 시커먼 어둠이 넘실거리는 튜토리얼 내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

『경고. 허가받지 않은 접근입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시커먼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자.

튜토리얼 타워를 관리하는 성좌가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왔다.

『경고. 계속 접근할 경우. 태초의 협약에 따라. 탑의 관리 차원에서 침입자를 제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돌아가 주십시오.』

『마지막 경고입니다. 부디 돌아가 주십시오.』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릿속에 울리는 경고 메시지의 내용이 점점 강렬해졌다.

접근을 막기 위해선지, 튜토리얼 타워 내부를 휘감은 어둠이 유형화되어 내 몸뚱이를 끈끈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탑의 관리 규약에 따라. 침입자를 배제합니다.』

-쿠드드득!

심상치 않은 메시지가 머릿속을 헤집은 순간, 주위를 휘감은 어둠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뼈와 살점이 왜곡되고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코가 얼얼해질 듯한 악취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맹수 특유의 광기와 살기가 교대로 번들거리는 눈이 어둠 속에서 둥실 떠올랐다.

“…저게 ‘수호자’라고요? 아무리 봐도 대충 시체를 엮어만든 흉물처럼 보이는데요?”

[끄응…. 수호자의 조형 상태로 보아하니. 내 추측대로 현재 이곳의 관리 성좌는 영글지 못한 풋사과 놈이 맡은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호자’의 소체가 되는 시신들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써먹다니.]

“튜토리얼 타워 내부에서 사망한 자들의 시신이 어디로 가나 했더니. 그런 식으로 알뜰살뜰하게 써먹고 있었나 보네요.”

헌터를 꿈꿨으나, 역량 부족으로 인해 사망한 지망생들.

그리고 타워 내부에 갇혀, 지망생들에게 살해당한 몬스터들.

끔찍한 악취를 풍기며,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흉물, 아니 수호자는 그들의 시신을 적절하게 기워 맞춘 것과도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별로 성스럽게 생겨 먹진 않았지만, 성좌의 권능으로 창조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모양인지, 부패한 살점과 뼛조각으로 뒤덮인 육신에선 기괴하게도 성스러운 신력이 느껴졌다.

“그동안 모두의 의문이었던 미스터리를 해결해줘서 고맙긴 한데…. 정말 저런 조잡한 누더기로 침입자들을 격퇴할 수는 있나요?”

[탑의 수호자는 필요에 따라, 관리 성좌가 즉석으로 만들어내는 존재이니라. 그렇기에 제작자의 격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로 갈리지. 말하지 않았더냐. 애초에 조형 상태부터다 풋내기 티가 팍팍 난다고 말이다.]

위철용의 말대로,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수호자의 상태는 생김새부터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시체를 짜 맞춰 만들어낸 몸에서 느껴지는 신력 또한, 기껏해야 중급 마족과 간신히 맞먹을 정도에 불과했다.

…뭐, 내겐 일개 풋내기 성좌가 만든 창조물 따윈 뭘 가져다 놔도 다 똑같겠지만.

게다가, 지금은 수호자의 위력같이 사소한 것 따위에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지.

-따악!

오랜만에 위철용과 괜히 실없는 만담을 나누었다는 생각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곤 내 앞에서 흉흉한 기세를 피워내는 수호자들을 향해, 황금빛 신력이 넘실거리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

신력이 넘실거리는 손가락 두 개가 서로 맞부딪힌 순간.

태양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한 섬광이 터져 나와, 튜토리얼 타워 내부를 환하게 물들였다.

금빛 광채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살기를 피우던 수호자들이 그대로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겨, 경보. 침입자가 1차 방어 시스템을 파괴했습니다.』

『규약에 따라, 2차 방어 시스템을 전개합니다.』

“에이. 그저 대화 좀 하자고 온 건데. 너무 깐깐하게 구신다. 아니면 아직 경험이 별로 없으셔서 유도리가 없으신 건가?”

금빛 광채 속에서 누더기 흉물이 허무하게 증발하자, 또다시 경고 메시지가 연달아 울렸다.

그와 함께, 뭔가 나를 제거하기 위한 새로운 존재가 어둠 속에서 다급하게 모습을 드러내려 했지만.

뭔가가 나타날 새도 없이, 나는 신력이 깃든 손을 휘둘러 눈앞을 가득 채운 어둠을 그대로 붙잡아 뜯었다.

-부와아아악!

실체가 없어야 할 어둠이 내 손길에 따라, 마치 천 쪼가리처럼 부욱 찢어졌다.

그러자, 커튼 형태로 너울거리는 무대의 배경을 강제로 들춰내는 것처럼.

어둠이 가득했던 튜토리얼 타워 내부의 풍경이 일순간에 통째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 음…. 바, 방어 체계가…. 아, 아니야. 미치겠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렇게 바뀐 풍경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기괴했다.

천장도 바닥도 없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수없이 많은 별자리가 깜빡깜빡 점멸하고 있었고.

별들이 인간과 유사한 형태로 군집을 이룬 존재가 대단히 당황한 듯한 혼잣말을 내뱉으며, 거대한 석판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아무런 위엄도 없어 보이는데. 저게 진짜 성좌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성좌의 분신이지. …게다가, 뭘 그리 새삼스레 놀라는 게야? 네놈의 채널창에서 성좌 놈들이 보여주던 태도를 벌써 잊어버린 게냐? 필멸의 굴레에서 벗어나. 성좌로 승천했지만. 필멸자 시절의 감성을 버리지 못한 놈들이 성좌 중에서도 한가득하니라.]

거대한 석판 앞에서 머리를 감싸 쥔 성좌의 모습은 마치 근무 중에 처음으로 고객의 클레임과 맞닥뜨려, 당황한 신입사원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위엄도 뭣도 없어 보이는 성좌의 모습에, 내 얼굴에 실망 어린 표정이 떠오르자.

그것을 바라본 위철용은 뭘 그리 새삼스레 반응하냐는 식으로 내게 핀잔을 주었다.

“크흠. 영 미덥지 못한 모습이지만.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니….”

계속해서 정신없이 석판을 두드리는 성좌의 모습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성좌만이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접촉할 수 있는 성좌였다.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 나는 서서히 신력을 퍼뜨리며, 너른 우주 속에서 나의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어? 으어어. 선배님! 수, 수호자를 멋대로 가동한 건 갑자기 필멸자 놈이 탑에 침입해서….」

어둑한 밤하늘처럼 광활한 우주에 내 몸에서 뻗어 나간 황금빛 신력이 존재감을 피력하자.

나를 자신의 선배격인 성좌로 착각한 모양인지, 석판에 고개를 쳐박고 있었던 성좌가 화들짝 놀라 내 쪽을 바라보았다.

「으응? 피, 필멸자?! 피, 필멸의 존재에 불과한 그대가 어떻게 탑의 관리구역에 온 거죠?! 아, 아니 그보다 그대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별들의 군집으로 이뤄진 성좌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자.

몸을 구성하는 별들이 그의 감정을 나타내는 모양인지, 정신없이 혼란스럽게 반짝였다.

「마, 맙소사. 어떻게 필멸의 육신에서 이 정도의 신력이 느껴질 수 있는 거죠? 당신의 도대체 무슨….」

“그쪽에 계신 분들은 저를 두고 인과율의 그릇이라고 하더군요.”

「@#율의 그릇이요?! 마, 말도 안 돼! 그것은 그저 신화 속에서만 구전되던 신화적 존재라고요!」

…생긴 것부터가 누구보다 ‘신화’ 속의 존재에 가깝게 생긴 놈이 뭐가 어쩌고 어째?

별들의 군집으로 이뤄진 성좌 놈이 나를 그저 신화 속의 전설적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 퍽 희극적이긴 했지만.

크리슈나의 말과는 다르게 다행히 현시대의 성좌들 사이에서도 ‘신화’라는 양식으로나마, ‘인과율의 그릇’이란 개념이 구전되어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아직 이 필멸의 굴레에 얽매인 육신이 신의 권능을 오롯이 품은 것을 설명할 수 없잖습니까.”

「…그, 그러고 보니. 인#*를 아무런 제약 없이 발음하셨었죠. 맙소사. 신화 속에서 구전되어온 존재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바, 반갑습니다.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신 분이시여.」

위철용과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눈앞의 성좌는 나라는 존재를 인정한 완전히 모양인지.

내 몸에서 일렁이는 황금빛 광채를 멍하니 바라본 그의 몸에서 경외의 감정이 느껴졌다.

아니, 눈앞의 성좌는 그에 그치지 않고 천천히 별로 이뤄진 몸을 굽혀 내게 예를 표했다.

‘뭡니까. 잘나신 성좌님들께선 절대 인과율의 그릇이니 뭐니 하는 걸 인정하지 않을 거라면서요? 아니, 애초에 성좌 시절에 그런 개념 따위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단언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그것이…. 저, 저 햇병아리 성좌 놈이 특이한 것일 게다! 본존이 비록 성좌의 책무를 게을리 이행하느라, 참고 서적 따윈 읽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소문엔 밝았거늘!]

…책 따윈 읽지도 않고, 가십거리만 찾아 헤매셨단 말씀을 어렵게도 돌려 말씀하시네.

위철용의 말대로, 눈앞의 성좌가 특이한 것인지.

아니면 성좌 시절의 위철용이 특이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걱정했었던 것과는 달리 눈앞의 성좌는 내 말을 들어 줄 만한 상대인 것처럼 보였다.

몸을 굽혀, 내게 경의를 표하는 그의 태도에선 최소한 어떠한 거짓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예를 표하실 건 없고…. 그나마 다행이네요. 대화가 통하시는 분 같아서.”

「저는 ‘이야기를 속삭이는 자.’ 설화와 신화를 관리하는 것이 제 업무입니다. 게다가…. 특히 당신의 존재를 암시하는 신화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천운이었다. 정말이지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눈앞의 성좌. ‘이야기를 속삭이는 자’는 다행히도 나라는 존재를 믿는 수준을 넘어, 애초부터 설화 속의 ‘그릇’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자였다.

그렇다면, 이거 이야기가 생각보단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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