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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77화 (277/309)

제277화

“…정녕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저희의 유일한 기쁨이오. 억겁의 세월 동안 역사의 어둠 속에 스며들었던 선조들의 비원입니다.”

목소리를 가다듬어 낮게 깐 뒤, 근엄한 목소리로 되묻자.

매부리코가 인상적인 노인이 뜨거운 눈물을 흘러내리며, 연신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찧었다.

어찌나 강하게 머리를 찧었는지, 새빨간 피가 주름진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얼굴엔 희열과 환희의 감정만이 가득 차 있었다.

“…바, 바치겠습니다. 저, 저희 가문이 이룩한 모든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던 ‘어르신’들의 태도에 압도된 것일까?

노인들의 등쌀에 떠밀려, 내 앞에 무릎을 꿇었던 황태용의 머리가 공손하게 숙어졌다.

더듬거리며 내게 충성을 맹세하는 그의 목소리엔 경외의 감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쉬워지겠군. 마침 그대들이 해줘야 할 일이 있거든.”

오만하게 팔짱을 낀 채, 황태용과 노인들의 충성을 받아들인 뒤.

그들을 부릴 마땅한 권리를 취득한 나는 그들에게 마족들과의 전쟁에 합류할 것을 지시했다.

원래대로라면 습격으로부터 그들을 구해준 뒤, 협상을 가장한 협박을 하려고 했지만.

그들이 내게 진심으로 충성을 맹세한 지금, 이야기는 몇배나 더욱 수월해진 상태였다.

“그리하겠나이다. 누구보다 더 존귀하신분, 어둠 속에 숨어든 모든 이들의 존중을 받으실 분이시여.”

“지금 이 순간부터 저희들은 목숨을 바쳐, 감히 진정한 주인에게 대적한 자들과의 전쟁에 앞장서겠나이다.”

모든 전력을 앞세워 마족들과의 일전에 앞장서라는 요구에도 불구.

노인들은 어떠한 불만조차 없이, 마치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처럼 내 지시를 받아들였다.

“미련하고 아둔한 저 때문에 전력을 조금 잃었긴 하나, 오닉스 길드의 힘은 아직 건재합니다. 사리사욕을 좇다, 진정한 사명을 망각했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전력으로 명을 따르겠습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엄숙하게 충성을 읊조리는 황태용의 목소리엔 특유의 비열한 어조가 사라져 있었다.

무언가를 잊고 있던 사명을 뒤늦게 깨닫기라도 한 모양인지, 그의 엄숙한 목소리에선 비장미마저 느껴졌다.

“그대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은 조금 전의 적들보다 월등히 강하다. 그래도 전투에 앞장서겠는가?”

기존의 마족들보단 강했지만 오닉스 길드를 전멸 위기에 몰아넣었던 놈들은 성좌들이 남긴 ‘파편’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낙오자의 껍데기를 미처 벗지 못 한 잔챙이들에 불과했다.

앞으로 상대해야할 적들이자, 성좌들이 남긴 파편들을 온전히 흡수한 마족들은 마흐라브가 그랬던 것처럼 낙오자의 껍데기에서 벗어나 가히 성좌에 비견될만큼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천둥과 번개를 품고 하늘을 가리는 먹구름처럼, 저희는 오랜 세월동안 힘을 길러오며, 진정한 주인이 오시기만을 기다렸나이다. 주인의 명대로라면 저희들의 하찮은 목숨따윈 웃으면서 버릴 수 있나이다.”

…도대체 크리슈나 이 양반이 ‘보험’이랍시고 무슨 짓을 저질러 놓은 건지 모르겠네.

뭘 어떻게하면 이토록 맹신적인 광신도 집단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

마족들의 강대한 힘을 직접 체험해봤음에도 불구.

노인들과 황태용의 목소리엔 여전히 흔들림 없이 굳건한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내 지시대로라면 기꺼이 웃으면서 죽겠다는 노인의 목소리엔 어떠한 가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그대들의 의지가 그토록 굳건하니, 참으로 믿음직스럽구나. 허나. 그대들의 힘으로 놈들을 상대하는 것은 약간의 부족함이 있을 터….”

노인들의 광신적인 복종이 조금 꺼림칙하긴 하나, 지금은 사소한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앞으로의 전투를 위해서라면, 써먹을 수 있는 패는 다 써먹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의 굳건한 충성과 의지를 확인한 나는 크리슈나의 힘과 권능을 양 손에 집중시켰다.

강태백과 김혜옥에 비하면 미약한 파편이긴 하나, 이들의 영혼에도 엄연히 성좌의 파편이 깃들어 있으니.

그것의 모체가 되는 크리슈나의 권능이라면, 먼젓번처럼 이들을 충분히 성좌의 화신과 유사한 존재로 각성시킬 수 있겠지.

“내 신실한 종인 그대들에게 놈들을 상대할 힘을 내려주겠다. 부디 내 기대가 헛되이 하지 말라.”

-후와아아앙.

내 양손에 모인 황금빛 빛무리가 노인들을 뒤덮자.

강태백과 김혜옥을 각성시켰을 때처럼, 그들의 육신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두둑!

뼈와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노쇠해진 육신이 세월을 거슬러 젊음을 되찾았다.

젊음을 되찾은 육신 위에 암청색 신력이 연꽃처럼 피어나, 갑옷 형태의 외골격을 이루었다.

그들의 영혼에 깃들었던 성좌의 파편이 산산히 부서져, 별자리의 형태를 이루었다.

“아아아. 주인이시여. 이 힘은! 이 넘쳐나는 권능은!”

“우리의 육신을 옭죄었던 세월의 저주받은 굴레가 사라졌도다! 신실한 마음으로 주인을 따르는 자들은 마땅한 복을 받게 될지니!”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나이다! 주인이시여!”

내가 베푼 은혜로 인해, 크리슈나의 화신체로 각성한 노인들, 아니 세월의 굴레를 벗어난 먹구름의 일원들의 몸에선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자신들에게 일어난 변화가 그리도 감격스러운 모양인지. 그들은 즉시 땅에 쿵쿵 머리를 찧으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대 또한 앞으로의 전투에서 힘이 필요할 터, 그대에겐….”

그렇게 먹구름들을 화신으로 각성시켜 준 뒤.

나는 젊음을 되찾은 이들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황태용에게 다가갔다.

“크, 크으읏!”

황태용의 머리를 붙잡고, 약간의 신력을 흘러낸 것만으로도 그의 몸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부르르 떤 황태용의 육신이 전성기 시절의 젊음을 되찾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물론, 내가 의도한 것은 고작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황태용의 몸을 찌릿하게 훑은 신력은 그의 육신을 지나, 나뭇가지처럼 갈라지더니 대지를 타고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헉! 흐어어억!”

이들을 눈속임이 아닌, 본격전인 전력으로 써먹으려고 작정한 이상. 고작 황태용과 먹구름들을 강화한 정도만으론 부족했다.

대지를 타고 퍼져나간 신력은 무너진 현장을 수습하던 오닉스 길드원 전원의 육신에 파고들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나의 신력에 노출된 이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연신 들려왔다.

“뭐, 뭐야! 가, 갑자기 특성 트리가 왜 이래!”

앞으로 남부 연합을 포함해, 내게 합류한 이들에게 제공할 예정이었던 ‘은혜’가 황태용과 오닉스 길드원들의 육신에 먼저 베풀어졌다.

황태용과 오닉스 길드원들의 성장 한계치가 완전히 해금되며, 레벨이 최대치로 조정되었다.

그들의 영혼에 각인된 특성 트리가 쌓아둔 특성 포인트에 상관없이 모조리 해금되었다.

성좌들의 변덕에 따라, 들쑥날쑥 제멋대로였던 존재력 포인트가 일괄적으로 한계치까지 제공되었다.

“서, 성좌들이시여! 이, 이게 무슨!”

“저, 저희들도 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화를 내셔봐야….”

아무래도 성좌들이 지정한 율법을 모조리 무시한 채로, 시스템을 주무른 탓인지.

급격한 변화에 기뻐할 새도 없이 오닉스 길드원들의 입에서 당황섞인 음성이 터져나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들의 ‘채널’을 관음하던 성좌들이 분노를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뭐. 지금 내가 저지른 짓은 그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는 짓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성좌들의 반응 따위에 신경 쓸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인과율의 농간에 당해, 하계에 그다지 큰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상태였고.

세상의 질서를 바꾸려는 마족들은 인과율의 묵인 하에, 엄청난 힘을 손에 넣어버린 상태였다.

「경고. 인과율의 이방인이 ‘채널’을 폐쇄합니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오닉스 길드원들의 모습에 피식 웃은 뒤.

시스템을 조작해, 그들을 포함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헌터들의 ‘채널’을 닫아 버렸다.

“채, 채널창이 사라졌어?!”

“어, 어떡하지? 성좌님들께서 진노하셨나봐! 이제 존재력 후원을 어떻게….”

“잠깐. 어째선지 존재력 포인트가 최대치까지 쌓여있는데? 이러면 더는 존재력 포인트를 후원 받을 필요가 없는 것 아냐?”

“그, 그러네? 하지만 성좌님들의 뜻을 거스르면 포인트 숍은…. 어라? 포인트 숍에서 물건도 정상적으로 구입 되네?”

성좌들과 소통하는 ‘채널’을 폐쇄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메시지에 오닉스 길드원들은 대단히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연신 허공을 더듬었다.

게다가 채널이 폐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 작동하는 포인트 숍을 확인하자, 그들의 표정은 점점 더 혼란스럽게 변해갔다.

「필멸자들의 ‘채널’을 독단적으로 폐쇄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 행위입니다.」

「경고. ‘위원회’가 당신에게 경고합니다.」

물론, 오닉스 길드원들보다 더 큰 혼란을 느낀 이들은 따로 있었다.

하계의 필멸자들을 관음할 유일한 수단을 잃어버린 것에 엉덩이가 무거운 성좌들도 대단히 당황한 모양인지.

채널을 폐쇄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뒤늦게 시스템 메시지에 경고문이 연속으로 주르륵 올라왔다.

「경고. ‘승천의 의회’가 당신에게 경고합니다.」

「경고. ‘투쟁의 궁전’이 당신에게 경고합니다.」

「경고. ‘심연의 구렁’이 당신에게 경고합니다.」

어찌나 격노한 모양인지, 시야 한쪽 구석을 차지한 메시지 창에선 계속해서 성좌들이 속한 다양한 단체에서 보낸 경고 메시지가 어지럽게 올라왔다.

“이 정도로 도발했으면 말이야. 당신들도 그 무거운 엉덩이를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하겠지? 부디 멍청하게 앉아서 당하지는 말라고.”

졸지에 유일하다시피 한 유희거리를 잃어버린 상황이 되었기에, 마음이 조급해진 성좌들로서는 하계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막대한 존재력을 지불하여 본체를 직접 강림시키려고 들든. 미리 심어둔 화신을 사용해 하계의 상황을 엿보려고 들든간에 어떻게든 하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피려고 들겠지.

그렇게 어떻게든 하계의 상황을 성좌들이 직접 살펴보기만 한다면, 아무리 둔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라도 마족들이 뭔 짓을 꾸며놨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론 건곤 길드에 성좌의 ‘화신’이 꽤 많았었지? 아마? 마침 마족 놈들의 다음 목표도 그쪽이니, 댁들이 하계에 신경쓰지 않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 한번 느껴보시지. 그래.”

나는 계속해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며, 비릿하게 입꼬리를 뒤틀었다.

“댁들이 그렇게 시간을 좀 벌어줘야. 우리도 준비를 좀 제대로 할 수 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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