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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74화 (274/309)

제274화

김혜옥의 안내에 따라 강태백이 임시로 머무르는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정체이자, ‘파편’이란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강태백과 김혜옥의 반응은 완전히 갈렸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진 않지만…. 아무튼! 제가 뭔가 대단한 존재라는 거죠?”

잔뜩 흥분한 김혜옥은 거대한 얼굴을 내게 들이밀며, 성난 멧돼지처럼 콧김을 뿜어댔다.

평상시보다 훨씬 흥분한 모양인지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선 강렬한 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반면, 강태백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뻣뻣하게 굳은 목을 연신 주물럭거렸다.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인지, 그의 얼굴엔 전례 없이 심각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래…. 너와 길드장님의 영혼에는 한때 성좌였던 이들의 ‘파편’이 깃들어 있으니까.”

크리슈나를 포함한 선대 성좌들의 안배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면,

강태백과 김혜옥은 전생의 결단대로 ‘그릇’인 나를 각성시키기 위해, 선대 성좌들이 남긴 파편으로서 내게 완전히 흡수될 운명이었다.

물론, 지금은 내가 다른 방식으로 완전히 각성했기에.

그들은 원래 정해졌던 비극적인 운명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지만 말이지.

“서, 성좌님이 남기신 파편이라니. 제가요?! 이럴 수가! 어쩐지 요즘 들어 근육이 더욱 아름답게 성장하더라니!”

-꽈지지직!

흥분 수치가 도를 넘은 모양인지. 김혜옥은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근육을 크게 부풀렸다.

이젠 거의 어지간한 소형차 크기에 근접한 그녀의 강인한 육신이 힘을 발휘하자.

김혜옥의 팔뚝을 간신히 감싸고 있던 가죽 갑옷이 강철같은 근육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그들의 기억에 따르면, 전생의 가네샤는 저렇게 단순무식한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근육에 미쳐버린 것은 혜옥이랑 다를 바가 없으니까, 전생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성격이라고 봐야 되나?

“그래. 네겐 미안한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네 몸이 그렇게 갑자기 변해버린 것도 그것 때문이야.”

내 머릿속에 깃든 기억에 의하면, 김혜옥의 전생이자, 그녀의 영혼에 깃든 성좌의 파편 ‘가네샤’는 코끼리의 머리를 한 근육 덩어리의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뒤덮은 근육에 비정상적인 집착과 애정을 보인 가네샤였기 때문에,

파편이란 형태로 인간의 몸으로 전생한 뒤로도 그는 무의식적으로 환생체인 김혜옥에게 영향을 주어, 그녀를 평범한 소녀에서 미국 만화에나 나올 법한 마초로 바꿔버린 것이었다.

“미안하다뇨? 저는 제 모습이 자랑스러운걸요! 보세요! 찬란하게 번쩍이는 근육을!”

하지만 김혜옥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미 다 극복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외모가 뒤틀린(?) 원인을 알려줬음에도 불구, 그녀는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번쩍!

오히려 김혜옥은 자신의 근육질 육신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는 모양인지.

마력을 자신의 과시하듯 몸에 둘러 괴이한 녹색 광채를 온몸에서 내뿜기 시작했다.

네온사인처럼 화려하게 반짝이는 마력 덕분에, 그녀의 몸을 뒤덮은 강인한 근육들이 더욱 돋보였다.

“…놈들이 말했던 ‘파편’이 그런 존재였다니. 그렇다면 나 역시 그렇단 말인가?”

김혜옥이 온몸에서 녹색 광채를 뿜어내며 괴상한 포즈를 취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강태백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께를 더듬는 그의 얼굴엔 불안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예. 길드장님의 몸에도 성좌, 아그니의 파편이 깃들어 있습니다. 놈들이 길드장님을 노린 것도 그것 때문이죠.”

가네샤의 파편으로 인해, 김혜옥이 해괴한 치료법을 사용하는 근육질 거한이 된 것처럼.

아그니의 파편으로 인해, 강태백은 화염에 대한 엄청난 친화력을 지닐 수 있었다.

…어쩌면, 가끔 보이는 깐깐하면서도 쪼잔한 성격도 그의 영혼에 깃든 파편 탓일지도 모르지.

“그랬군. 그래서 놈들이 그렇게 거창한 함정까지 꾸며대며 나를 노렸던 것이었어.”

“그것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길드장님께 마력향을 공급해 의식을 흐리게 한 것도 길드장님의 영혼을 혼탁하게 만들어, 오염된 파편을 흡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스모데우스가 강태백의 옆에 들러붙어, 오랜 세월 동안 그를 타락시키려 들었던 것도.

김혜옥 자매가 어려서부터 계속해서 연속된 불행 속에서 살아온 것도.

모두 그들의 몸에 깃든 파편을 노린 마족들의 음모였다.

인간으로 환생한 상태에서도 강태백과 김혜옥의 영혼엔 성좌의 격이 미약하게 남아있었기에.

절망과 혼돈 속에서 그들의 영혼을 뒤틀어 타락시켜야만, 영혼으로부터 성좌의 파편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가 어렸을 적부터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도 놈들 때문이겠군요. 이 괘씸한 것들! 나는 그렇다 쳐도! 언니랑 아빠 엄마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자신의 삶에 얽힌 비사를 전해 듣자, 격노한 김혜옥의 눈에서 녹색 안광이 불타올랐다.

성난 코끼리처럼 광폭하게 포효하는 그녀의 우람한 모습에서 전생의 모습이 언뜻 내비쳤다.

“그렇군. 어쩐지 젊은 시절부터 온갖 불행이란 불행이 다 찾아온다. 싶었더니….”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강태백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깊은 회한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스쳐나간 회한은 강렬한 증오의 불길이 되어, 그의 눈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것보다…. 다른 ‘파편’들이 마족 놈들에게 넘어간 상황이라고 했던가?”

“네, 그들은 길드장님과는 달리. 마족 놈들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놈들은 그들의 영혼을 흡수해. 전성기의 힘을 회복하고 있죠.”

크리슈나와 선대 성좌들이 안배한 ‘파편’들은 대부분 마족들의 손에 넘어가버린 상태였다.

파편의 힘을 흡수한 마족들은 마흐라브가 그랬듯, 지금 이 순간에도 필멸의 굴레를 벗어던져.

성좌 시절의 힘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 그래도…. 말씀하신 대로라면 선대 성좌들이 이 세상에 남겨둔 파편의 수가 얼마 안 되지 않나요? 파편을 흡수해, 힘을 되찾은 놈들만 쳐부순다면….”

“아니, 애석하게도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야. 파편의 극히 일부만 손에 넣어도 놈들은 자신들의 힘을 되찾을 수 있거든.”

김혜옥을 잠시나마 흡수했던 아스모데우스가 그랬듯.

파편을 아주 조금 흡수한 것만으로도, 마족들은 원래 성좌 시절의 신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약간의 조각만으로도 힘을 되찾을 수 있었기에, 놈들은 손에 들어온 파편들을 여러 조각으로 찢어서 사이좋게 나눠 가진 상태였다.

“성좌의 힘을 고스란히 되찾은 존재들이 상대인 데다. 놈들의 숫자까지 미지수라니…. 그 ‘찬탈의 전쟁’인가 뭔가 하는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희망이 있긴 한 겐가?”

예상한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강태백은 진중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내게서 전해 들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여전히 전쟁을 앞둔 장수 특유의 신중함이 번뜩이고 있었다.

강태백답다면 강태백답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어떻게든 마족 놈들에게 한방 먹일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당연하죠. 우선….”

강태백의 시선에 히죽 웃음으로 답한 나는 서서히 신력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파츠츠츠.

햇빛처럼 따사롭게 너울거리는 황금빛이 강태백과 김혜옥의 몸을 휘감았다.

삽시간에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보듬은 신력은 곧이어 그들의 영혼 속에 잠들어 있는 힘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크, 크으윽! 뭐, 뭔가 이 히, 힘은!”

“이, 이상하게 힘이 넘-쳐-요옷!”

그릇으로 완전히 각성한 나는 영웅시에 깃든 성좌들의 힘을 완전하게 사용할 수 있였다.

김혜옥과 강태백의 영혼에 박힌 파편들의 권능 역시, 내 신력 속에 깃들어 있었기에.

황금빛 신력이 그들의 몸을 휘감자, 두 사람의 몸에 깃든 파편이 내 신력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파사사삭!

김혜옥과 강태백의 영혼에 각인된 특성 트리가 완전히 소멸했다.

대신, 그들의 영혼 속에 잠들어 있던 파편이 완전히 깨어났다.

성좌들의 막강한 힘과 권능이 특성 트리가 사라진 공간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으아, 으아아앗!”

김혜옥의 몸에서 별안간 강렬한 회색빛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에 깃든 가네샤의 파편이 완전히 해방되었다.

-꾸드득! 꾸드드득!

그렇지 않아도 김혜옥의 억세고 강력한 근육이 더욱 거대해졌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리던 녹색 마력이 사그라들더니, 회색빛 신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몸 위에 희미하게 떠 오른 외골격이, 가네샤의 생전 모습대로 변화되었다.

-화르르륵!

아그니의 파편이 완전히 해방되자, 강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이 강태백의 육신을 휘감았다.

늙고 노쇠한 중년의 육신이 불꽃 속에서 파스스 부서지더니, 젊은 전성기의 그것으로 재구성되었다.

-삐에에엑!

사방을 휘감은 강렬한 불꽃 속에서 그의 외골격이 거대한 불사조의 형상대로 다시 빚어졌다.

불사조 형태로 재구성된 외골격에서 넘실거리는 푸른빛 신력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허억! 허어억! 이, 이 힘! 머릿속에 밀려 들어오는 이 지식들은 대체…!”

“으아아아! 가증스러운 낙오자놈들! 찢고 뜯고 부수고 박살 낸다앗!”

파편의 힘이 완전히 깨어난 두 사람은 각각 가네샤의 아그니의 화신체로 각성했다.

파편 속에 담겨있었던 전생의 기억도 어느 정도 깨어난 모양인지, 그들은 마치 내가 영웅시를 처음 사용했을 때와 유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놈들이 성좌 시절의 힘을 되찾았다면, 이런 식으로 이쪽에서도 전력을 올리면 그만입니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강태백과 호전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혜옥을 마주하며,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놈들과의 결전을 위해서는 좀 더 많은 협력자가 필요한 법이지요.”

내 의지에 따라, 너울거리는 신력이 밤하늘 너머로 퍼져나갔다.

하늘에서 지상을 굽어보는 별들이 내 신력에 감응해, 나의 눈이 되어 주었다.

필멸의 인지능력을 한참이나 벗어난 차원의 시야가 내게 다양한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건곤 길드의 협력을 구하는 것은 계속해서 혜옥이와 길드장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라?”

나와 인연을 맺었던 세력들을 찾기 위해, 별들의 눈으로 지상을 굽어살펴보던 중,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 별들의 시야에 비쳤다.

수많은 헌터들이 광포한 마족들에게 포위된 절체절명의 상황.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덧없이 무기를 휘두르는 헌터들의 선두엔 황태용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이 양반들은 왜 벌써 알아서 위기에 처 해있고 난리람.

“…협력자들을 좀 ‘구하러’ 가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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