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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73화 (273/309)

제273화

-파아앗!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광채가 잦아들자, 밝게 물들었던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얼어 붙어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람.”

광채가 사라진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어째선지 낯설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김종대와의 결전을 치렀던 장소라기엔 지나치게 이질적인 풍경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파츠츠츠.

혹시나 아트로포스가 자랑하는 왜곡의 권능이 또다시 펼쳐진 건가 싶었지만.

신력을 퍼뜨려, 주변을 살펴봐도 이곳에선 별다른 권능이 감지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어떠한 왜곡도 없이,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끄으으으.

-으어어어. 아, 안돼 CPR만은 제바알….

규칙적으로 배열된 커튼이 쳐진 침대들과 거치대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링거팩들.

코끝을 간질이는 강렬한 소독약 냄새와 희미하게 느껴지는 피와 고름의 냄새.

억눌린 고통이 느껴지는 환자들의 신음과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

이별을 통보한 크리슈나의 마지막 배려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째선지 나는 낯설기 짝이 없는 병실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상태였다.

환자들이 누워있는 침대들은 전부 녹색 커튼이 쳐져 있었고 간호사들은 마침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갑작스레 나타난 내게 의문을 표하는 이는 다행히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 촌스러운 무늬로 봐서는 태백 길드 산하의 병원이 분명한데…. 어째서 크리슈나가 나를 하필 이곳으로 보내줬는지 모르겠군.”

조심스레 병실을 빠져나오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곳곳에 아로새겨진 호랑이 로고였다.

특유의 촌스러운 생김새로 미뤄보건대, 의심할 여지 따윈 없이 이곳은 태백 길드 산하의 시설임이 분명했다.

나를 이곳으로 보낸 크리슈나의 마지막 행동에 무슨 의미가 담긴 건가 싶어 잠시 머리를 굴려봤지만, 딱히 이렇다 할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콰아아앙!

그렇게 잠시 상념에 잠겨있으려던 찰나.

굉음과 함께 복도의 비상구가 벌컥 열리더니, 피에 절은 가죽 갑옷을 입은 헌터들이 의식을 잃은 동료를 둘러업고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그들의 뒤를 이어, 당황한 표정의 간호사와 의사들이 우르르 따라 들어왔다.

“이, 이러지 마십쇼! 중환자실은 이미 만실입니…크억!”

“닥쳐! 성철이가 누굴 위해 싸우다가 이 지경이 됐는데! 어서 치유사나 불러왓!”

의사와 간호사들은 갑자기 쳐들어온 헌터들을 막아서려 들었지만.

전투의 여파로 흥분할 대로 흥분한 데다, 동료의 위기에 더욱 흥분한 헌터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그들을 거칠게 밀쳤다.

당황한 간호사 중 한 명이 막 보안팀에게 연락하려던 그 순간….

-쿵! 쿠궁! 쿠쿠쿵!

“여기다! 여기에서 중환자의 냄새가 난다!”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굉음과 함께, 익숙한 거인이 위층 계단에서부터 뚝 떨어져 내렸다.

혀를 길게 빼문 채 눈에서 광기를 번들거리며 뛰어오는 모습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내 제자. 김혜옥이었다.

…혜옥이 때문에 크리슈나가 나를 여기로 보내준 건가?

“뭐, 뭐야! 이, 이 괴물은…. 으헉!”

“걸리적거린다!”

온몸에서 녹색과 회색 광채를 번들거리며 달려온 김혜옥의 모습에 헌터들은 본능적으로 의식을 잃은 동료를 보호하려 들었으나.

먹잇감…. 아, 아니 환자를 발견한 김혜옥은 자신을 막아선 헌터들을 그대로 집어 던졌다.

김혜옥의 팔뚝에 힘줄이 불끈 돋은 것과 동시에 육중한 갑옷을 입은 헌터들이 너무도 허무하게 허공을 훨훨 날았다.

-찌직! 찍! 찌직!

“호호호홋호! 상처…. 상처를 보자!”

자신을 가로막은 헌터들을 모조리 날려버린 김혜옥은 바닥에 드러누운 환자에게 다가가더니.

무지막지한 악력으로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을 너무도 쉽게,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그렇게 환자의 몸을 덮고 있던 갑옷이 제거되자, 지독한 상처들이 피에 절은 상반신을 뒤덮고 있는 끔찍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상처는 소독이다!”

-푸화하하학!

상처를 보고 인상을 살짝 찡그린 김혜옥은 품속에서 소독약을 꺼내더니.

약병에 녹색 마력을 주입하곤, 그것을 그대로 환자의 몸 위에 부어버렸다.

독한 알코올 성분이 상처 위에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 충격이 치유 에너지로 작용한 건지.

비명과 함께, 의식을 잃었던 환자의 두 눈이 번쩍 뜨여졌다.

“끼야아아아악! 뭐, 뭐야!”

갑작스러운 날벼락에 깜짝놀란 환자는 황급히 튕기듯 몸을 일으키려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우두둑!

“셧업! 앤드 캄 다운 페이션트!”

“흐힉!”

환자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김혜옥은 굵은 손가락으로 그의 몸을 그대로 꾸욱 짓눌렀다.

어찌나 초월적인 괴력인지, 발작하듯 몸을 일으킨 환자의 척추가 기묘한 방향으로 우지직 꺾였다.

-번쩍!

상상을 초월한 충격에 미처 비명을 마저 내지를 새도 없이, 그의 비틀린 몸 전체가 녹색 치유의 에너지로 뒤덮였다.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환자의 표정이 편하게 풀리면서 기절함과 동시에, 그의 몸에 가득했던 상처들이 치유되었다.

“이, 이게 무슨 지ㄹ…. 흐아아악!”

“셧업!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감히 신성한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치료도 끝났겠다! 이제 징벌의 시간이다!”

…아니. 누가 봐도 혜옥이 네가 수십 배는 더 큰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 같은데.

환자를 치유한 김혜옥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헌터들을 향했다.

인간을 초월한 살기가 자신들을 향하자, 신음을 삼키던 헌터들은 표정을 굳힌 채 몸을 일으키려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김혜옥의 거대한 근육질 몸뚱이가 헌터들의 앞에 유령처럼 스르륵 나타났다.

“시끄럽게 소란을 피운 진상 손놈…. 찢고…. 부순다.”

“히, 히이익! 힉!”

살벌한 안광을 눈에서 레이저처럼 뿜어내는 모습에서 필멸을 초월한 박력이 느껴졌기에.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헌터들은 궁지에 몰린 쥐처럼 새하얗게 질린 채, 안쓰럽게 몸을 바르르 떨었다.

“…어머?”

-쫘자자작!

“히! 히이익! 사, 살려주십쇼! 다시는 병원에서 소란을….”

그렇게 길게 빼문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겁에 질린 헌터들을 바라보던 김혜옥의 눈에 갑자기 묘한 이채가 떠올랐다.

한순간 표정이 진지해진 그녀는 또다시 무시무시한 악력을 동원해, 헌터들의 갑옷을 찢어발겼다.

“몸이 이 지경이 되면서까지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전우애라니…. 감동적이네요. 아저씨들! 갑자기 나타나서 행패를 부리길래 일단 혼부터 내주려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어요!”

상처 입은 동료를 데려왔던 헌터들 역시, 몸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자신들의 상처보단 동료의 목숨을 우선시한 그들의 전우애에 모종의 감동을 받은 탓인지.

당장이라도 찢고 부술 듯 살벌한 눈으로 헌터들을 바라보던 김혜옥의 눈에서 살기가 옅어졌다.

“아저씨들도 제가! 말끔하게! 치료해드릴게요!”

대신, 김혜옥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결의의 빛이 레이저처럼 폭사되기 시작했다.

큼지막한 주먹으로 어느새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쓱 닦아낸 김혜옥은 바르르 몸을 떠는 헌터들 중 한 명의 멱살을 콰악 붙잡았다.

조금 전에 자신을 가로막은 의사를 거칠게 밀친 헌터이자, 볼에 난 십자 모양 흉터가 유난히 인상적인 남자였다.

“치, 치료라니. 저, 저희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이, 이정도 상처는 포션만 마셔도. 크헙!”

“포션이라니! 내 주먹은 포션 따위에게 절대로 지지 않는다-앗!”

자신의 다리를 단단히 틀어쥔 채, 눈을 녹색으로 섬뜩하게 빛내는 김혜옥의 모습에 붙잡힌 십자 흉터의 헌터는 다급히 그녀를 만류하려 들었다.

하지만 그 간절한 시선을 마주한 김혜옥은 눈에서 선명한 녹색 안광을 뿜어내더니, 주먹을 휘둘러 헌터의 복부를 가격했다.

-빠캉!

무자비하게 내질러진 주먹에 의해, 불쌍한 헌터의 몸이 기묘한 모양으로 굴절되었다.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그의 입에선 비명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눈이 새하얗게 까뒤집히는 것과 동시에 헌터의 몸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스파아아앗!

곧이어 강렬하게 빛나는 광채가 헌터의 몸을 휘감았다.

흥분한 김혜옥이 어찌나 많은 양의 치유 에너지를 퍼부었는지, 순간적으로 병원 전체가 녹색으로 물들 정도였다.

“대희의 얼굴에 난 흉터가…. 사라졌다고? 블랙 맨티스의 맹독에 당한 흉터라서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복도를 밝게 물들였던 광채가 사라지자, 치유된 헌터의 얼굴이 모두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찌나 강렬한 치유의 에너지를 퍼부었는지, 그는 그의 동료 헌터가 무심결에 중얼거린 대로 볼에 난 십자 모양 흉터까지 말끔하게 지워진 상태였다.

“…것보다. 저놈 피부가 저렇게 좋았던가?”

아니, 아예 육체가 재구성되기라도 한 모양인지.

헌터의 피부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뽀얗게 변해 있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괴이한 현상에, 헌터들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김혜옥이란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가 그들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한기를 선사해줬는지.

헌터들의 낯빛이 빠른 속도로 허옇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보셨죠? 제 치유는 한낱 포션 따위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구욧! 홋-호!”

만족스럽게 웃은 김혜옥은 연신 목을 뚜둑거리며, 공포에 질린 헌터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헌터들의 얼굴빛은 더더욱 창백해졌다.

******

“어라…? 싸부님?”

그렇게 폭풍과도 같았던 광기와 폭력에 얼룩진 ‘치료’가 끝나자.

녹색 안광이 번들거리던 김혜옥의 눈이 평온을 되찾았다.

헌터들을 모조리 치유한 뒤, 떠밀 듯 원무과로 보낸 그녀는 그제서야 날 발견한 모양인지.

바로 주인을 발견한 강아지처럼 반가움이 철철 흐르는 표정을 짓더니, 날 듯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강마병 공장인가 뭔가를 박살 내러 가신다더니…. 생각보다 빨리 끝나신 모양이네요?”

“뭐, 언제나처럼 금방 끝냈지. 것보다…. 여긴 도대체 어디야?”

김혜옥은 별 이상한 것을 묻는다는 식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엔 혹시 머리를 다치기라도 했냐는 무언의 질문이 깃들어 있었다.

“에엥? 어딘지도 모르고 들어오신 거예요? 그럴 리가 없는데…. 며칠 전에 바로 요 앞에서 저희랑 헤어지셨잖아요?”

“요 앞이라고?”

“네, 먼젓번에 이 건물, 어…. 그러니까 이 건곤 길드 건물 앞에서 헤어지셨잖아요?”

…어딘가 했더니, 건곤 길드의 건물이었냐.

크리슈나의 마지막 배려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섬세했다.

생각을 읽기라도 한 모양인지, 아니면 그동안 내 행적을 지켜봐 왔기 때문인지.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가 가장 먼저 방문하려 했던 곳으로 나를 보내주었다.

크리슈나의 마지막 배려에 괜히 피식 웃은 나는 왜인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혜옥에게 마음 속에 담아왔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보다 할 말이 있는데. 혹시 길드장님도 여기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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