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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67화 (267/309)

제267화

“…‘왜곡’의 권능이 이 정도로 대단한 권능이었을 줄은 미처 몰랐는데요? 공간을 이렇게나 왜곡시킬 수 있다니….”

그렇게 김종대를 찾아, 깊숙한 곳으로 향하던 도중.

너무도 다르게 변해버린 주변의 풍경을 둘러본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알 수 없는 기계설비와 퀴퀴한 지하실 냄새가 가득했던 통로는 어느새 풀냄새를 싱그럽게 풍기는 평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떨어져 내린 하늘엔 아름다운 별들과 창백한 달이 희미한 빛을 뿌리고 있었고,

숨을 내쉴 때마다 지하실 특유의 퀴퀴한 공기는커녕, 싱그러운 풀내음과 상큼한 밤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면서 어느정도 그 능력의 편린을 체감하긴 했지만.

완전히 뒤틀려버린 공간을 직접 마주하자, 나는 그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세상의 섭리를 뒤틀고 왜곡시키는 것이 우리 꼬맹이의 권능이 아니더냐? 그 아이의 육신을 차지한 놈이니. 이런 장난질 쯤은 식은 죽 먹기겠지.]

…전투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보여서, 지금까지 아트로포스의 권능을 써먹지 않았는데.

일이 끝나는 대로 그녀의 권능을 좀 더 심도 있게 연구해봐야겠어.

압도적인 파괴력을 지닌 베알제불의 힘과 권능을 고스란히 손에 넣었거니와.

솔직히 그동안 흡수한 권능의 숫자가 숫자였기에, 나는 아트로포스에게서 신물과 힘을 건네받아 놓고도 그녀의 권능을 적극적으로 연구할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새삼스럽게 아트로포스의 권능이 대단히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일이 끝나는 대로 그녀의 권능을 연구할 것을 속으로 결심했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제 육신에서 갈취한 마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다니, 정말이지 역겨운 짓만 골라서 하는 족속들이로군요.]

[이렇게 영락해버린 몸으로 말하긴 조금 우습긴 하오만, 낙오자 놈들이 하는 짓이 원래 저열한 법 아니겠소?]

[냄새나는 파리 놈의 의견에 찬동하는 것이 상당히 불쾌하긴 하다만, 이번만큼은 본존도 놈의 말에 동의하고 싶군. 그래, 낙오자 놈들이 하는 짓이란 원래 저열하기 짝이 없는 법이지.]

선명하게 느껴지는 주변을 가득 채운 암갈색 마력에 격노한 모양인지.

아트로포스의 암갈색 얼굴이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그녀의 감정이 비슷한 처지의 다른 두 배후령들에게도 전이된 모양인지, 위철용과 바알제불의 얼굴 역시 그녀와 비슷한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뭐. 애초에 그들 모두 위철용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비슷한’ 모양이라는 말이 조금 어폐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야.

[…뭔 생각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의 눈빛이 불측하기 짝이 없군.]

[그러니까. 하필이면 어르신의 모습으로 저희를 빚어내신 건데요….]

[하다못해 동물의 형상으로라도 빚어주지 그랬소. 도대체 무슨 제조공정을 거쳤기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어르신께서 ‘귀찮아서’ 여러분을 그런 모습으로 만드셨겠습니까? 여기엔 분명히 다른 이유가….”

그렇게 배후령들과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누며, 왜곡된 공간 속을 헤매고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트로포스 특유의 암갈색 마력이 유난히 수상하게 밀집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건…. 지하 무덤인가?]

[시체 냄새 속에서 제 마력이…. 우욱! 강렬하게 느껴지는 데요?]

거대한 무덤처럼 꾸며진 장소의 내부에서 암갈색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무덤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끔찍한 시체 냄새가 사정없이 후각을 자극해왔다.

좁다란 통로엔 불길하기 짝이없는 어둠이 불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

-뚜벅. 뚜벅.

무덤 깊은 곳으로 이어진 통로는 조명 따윈 하나도 없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무덤 속에 웅크린 뱀처럼 구불구불한 통로 속에선 코가 썩어 문드러질 듯한 악취가 계속해서 느껴졌다.

내력과 마력을 이용해, 후각을 차단한 나는 얼굴을 굳힌 채.

소름끼치는 어둠 속을 묵묵히 깊숙하게 파고 들어갔다.

-화아악!

어둠 속을 지나 한참을 내려가자, 별안간 갑작스레 주변이 화악 밝아졌다.

게임이나 영화 속에 흔히 나오는 고대 폭군들의 왕릉 내부처럼, 빛이 새어 나오는 넓은 광장의 천장엔 밝은 빛을 뿜어내는 노릿한 구슬이 곳곳에 박혀있었다.

[무, 무덤이란 것에서 짐작했지만. 이, 이럴 수가. 어떻게, 어떻게 그들이 이 장소를….]

밝은 조명 속에서 널찍한 광장의 자세한 풍경이 모습을 드러내자.

어째선지 떨리는 눈으로 사방을 정신없이 둘러보는 아트로포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녀의 암갈색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해져 있었고, 꽉 다문 잇새는 분노를 머금고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트로포스님? 아시는 장소입니까?”

[…알다 마다요. 여긴 분명히 저를 섬기던 신….]

-달각. 달각.

아트로포스가 내게 막 설명을 하려던 그 순간!

과거에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두개골이 바람에 흔들리는 음산한 소리, 뼈만 남은 턱이 달각이는 소리.

불길하게 들려오는 낯익은 소리 속에서 타오르는 시커먼 악의가 느껴졌다.

“저건…?”

-달그락! 달각! 달각!

기묘한 소리와 시커먼 악의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니.

기괴하게 꾸며진 마법진 중앙에 웬 두개골이 놓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움푹 파인 눈구멍에서 노르스름한 귀화가 섬뜩하게 일렁거렸다.

뼈만 남은 턱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오호! 새로운 방문자가 왔군요! 좋은 소식이에요. 여러분. 새로운 실험체가 나타났답니다!》

섬뜩한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낯익은 음성이 안광을 뿜어내는 해골에서 흘러나왔다.

역시, 예전에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었던 목소리였다.

놈의 정체는 바로….

[…가, 갈나르?!]

[갈나르라고? 갈나르라면 분명히….]

“남이섬 게이트에서 상대했던 놈이였죠. 하지만 분명히 그때 제가 놈을 완전히 끝장냈는데….”

눈앞의 해골은 놀랍게도 남이섬에서 내게 최후를 맞았던 갈나르였다.

놈의 정체를 눈치챈 순간 아트로포스의 입에서 경악이 섞인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예 경악으로 얼룩진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나와 위철용의 얼굴에도 의문이 둥실 떠올랐다.

갈나르라고? 분명 내게 최후를 맞았던 갈나르가 도대체 어째서 이곳에….

…그건 그렇고 도대체 어떻게 아트로포스가 갈나르를 아는 거지?

[환영! 환영일지도 모른다! 애송아!]

“…당연히 화안금정으로 이미 확인해봤죠. 믿을 수 없지만 놈은 ‘진짜’ 입니다.”

먼젓번에 상대했던 네임드 개체가 또다시 다른 곳에 등장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

그 때문인지 위철용은 황급한 목소리로 내게 화안금정을 써볼 것을 요구했지만.

황금빛 시야 속에서 달각거리는 두개골 위에 떠오른 글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진실’이었다.

《오호우! 여러분! 소름끼치고 재미가 있는 생체 실험을 시작할 시간이에요!》

해골 특유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갈나르의 두개골이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먼젓번처럼 놈의 두개골이 놓여있던 연단에 새겨진 마법진에서 불길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후오오오옹!

먼젓번에 본 적이 있었던 똑같은 장면이 이번에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마법진에서 풀려나온 사악한 기운이 갈나르의 두개골을 감싼 채, 놈의 육신을 재구성했다.

근육과 근육, 뼈와 뼈가 뒤틀리며 육신이 재구성되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마어마한 근육질 몸뚱이가 시커먼 악의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갈나르! 저를 알아보시겠나요? 대답해요! 갈나르!]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소용없다. 꼬맹아. ‘배후령’의 목소리는 영혼이 연결된 이에게만 들린다는 것을 벌써 잊은 게냐?]

갈나르의 모습을 확인한 아트로포스는 애절한 표정으로 애타게 놈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배후령에 불과한 그녀의 목소리는 위철용의 말처럼 갈나르에게 닿지 않았다.

《실험체 확보! 쥐새끼를 사로잡을 땐 으깨지 않도록 조심하는게 좋답니다!》

-콰르르릉!

먼젓번처럼 광기어린 헛소리를 토해낸 갈나르의 몸이 암갈색 마력에 휘감겼다.

김혜옥보다 1.5배는 더 거대한 근육질 몸이 압도적인 괴력을 뿜어내며, 광장의 바닥을 우지직 부쉈다.

공간을 압축하듯 날아든 거대한 주먹이 순식간에 내 얼굴을 노리고 번개처럼 쇄도해왔다.

“…뭐.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번 쓰러뜨렸던 놈이 이제와서 다시 등장해봐야….”

-꽈드드득!

갈나르의 주먹엔 먼젓번처럼 그 거대한 근육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괴력이 담겨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때와는 다르게, 내 주먹엔 놈의 괴력을 가뿐히 능가하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살짝 손을 들어 놈의 공격을 막아낸 나는 그대로 힘을 주어 뼈와 근육이 어설프게 뒤섞인 주먹을 삶은 토마토처럼 으깨버렸다.

“…헛수고지. 근데 감촉이 왜 이래?”

그렇게 압도적인 힘으로 갈나르의 주먹을 손쉽게 으깨버린 것은 좋았지만.

어째선지 놈의 주먹을 부순 내 손아귀에선 기이한 감촉만이 느껴졌다.

뼈와 근육으로 이뤄진 단단한 물건을 억지로 으깬 듯한 기분이 아니었다.

마치 꿈틀거리는 말미잘을 힘껏 움켜쥐었을 때처럼 물컹하고 불쾌한 촉감이었다.

[…감촉? 제, 제 마력을 써보세요! 어서요!]

미끈거리면서 끈적거리는 감촉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으려니.

애타게 갈나르를 부르지던 아트로포스가 다급하게 내 뺨을 타닥타닥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요구에 의아함이 느껴졌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워낙 간절해 보였기에.

나는 즉시 아트로포스의 영웅시를 발동시켰다.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의 효과에 따라, 영웅시 『아트로포스』가 잊혀진 영웅의 힘과 권능을 노래합니다.」

「강화된 결속에 따라, 영웅시 『아트로포스』의 효과는 무한대로 지속됩니다.」

아트로포스의 요구에 따라, 그녀의 기억을 떠올리자. 아주 자연스럽게 영웅시가 발동되었다.

베알제불의 영웅시처럼 다른 영웅시들과는 달리, 내 몸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진 않았지만.

신물의 힘으로 인해, 그녀와의 결속이 강화된 덕분에 나는 아트로포스의 권능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다.

“…그랬군.”

머릿속을 통해 아트로포스의 기억이 해일처럼 밀려들어오자.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어째서 자신의 마력을 사용하라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양손에 성난 독사처럼 꿈틀거리는 암갈색 마력을 두른 나는 갈나르를 향해, 아트로포스의 마력을 휘둘렀다.

-짜아아악!

《끼, 끼르르르륵!》

아트로포스의 암갈색 마력이 으깨진 주먹을 감싸 쥔 채, 헉헉대던 갈나르의 육체에 파고들자.

보기 흉하게 쫘악 벌려진 놈의 입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단단한 근육질 헬스 리치였던 갈나르의 몸이 미끈한 점액의 형태가 되어 바닥에 허물어졌다.

[역시…. 환영이었군요.]

[환영이라고? 애송아! 화안금정이 진실이라 속삭였다 하지 않았더냐!]

누가봐도 환영인 것이 분명한 모습에 위철용의 입에서 불신 어린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를 바라보며 쓰게 웃은 나는 그에게 진실을 알려줬다.

“네, 환영이에요. 왜곡의 힘으로 화안금정마저 뒤틀어버린 끔찍한 환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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