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5화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의 효과에 따라, 영웅시 『베타라』가 잊혀진 영웅의 힘과 권능을 노래합니다.」
「사용자님이 보유한 마력에 따라, 영웅시 『베타라』의 효과는 『24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강마병들을 바라보며 히죽 웃은 나는 베타라가 남긴 한과 업으로부터 영웅시를 끌어냈다.
베타라의 영웅시가 발동되자, 망자들을 살피던 성좌의 권능이 내 육신에 깃들기 시작했다.
-꽈드득!
군청색 마력이 내 육신을 휘감자,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변이가 시작되었다.
굵직한 뿔이 양 관자놀이에서 자라났다. 외골격이 푸르게 물들더니 로브의 형태가 되었다.
베타라의 생전 모습을 연상케 하는 새하얀 가면이 쑥쑥 자라나, 내 얼굴을 비스듬하게 가렸다.
[흐응…. 이것이 바로 ‘그릇’의 권능인가 보군요. 낙오자들이 남긴 한과 업에서 그들이 생전에 지녔던 권능을 이런 식으로 끌어낼 줄이야.]
[크흠. 이 몸의 권능으로도 강마병의 육신 따윈 손쉽게 박살 낼 수 있었을 것을. 왜 굳이 그 산양 대가리의 권능을 사용하는지 모르겠군.]
그렇게 변이가 끝나, 베타라 특유의 마력이 내 몸을 완전히 뒤덮자.
말없이 나와 강마병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아트로포스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자신의 마력을 거둔 것이 영 못마땅한 모양인지, 그녀 옆에서 이쪽을 지켜보던 바알제불의 목소리엔, 약간의 불만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망자들의 잊혀진 왕. 베타라의 권능이라면. 당신의 권능보단 훨씬 깔끔하게 강마병들을 해치울 수 있겠죠.]
[놈들의 연약한 육신을 타락시켜 뒤트는 것이 더 즐겁기야 하겠소만…. 뭐, 방관자로 영락한 지금은 그저, 그의 판단을 지켜보는 수밖에.]
-파츠츠츠.
아트로포스의 말대로, 내가 굳이 베타라의 영웅시를 사용한 이유는 그가 지닌 권능 때문이었다.
끔찍한 제조 공정으로 인해, 다른 존재와 융합된 영혼을 지닌 강마병들에겐 베타라의 권능이 상극이나 다름이 없었다.
먼젓번 강준후와의 일전으로 그것을 확인한 나였기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까득 움켜쥔 어둠달에 베타라의 군청색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끄르아아아악!》
-꽈과과과광!
귀청이 터질 듯한 포효와 함께, 강마병들이 또다시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자신들을 앞에 두고 잠시 다른 곳에 한눈을 판 것에 그리도 화가 난 모양인지, 광기에 휩싸인 강마병들의 주먹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빨라진 상태였다.
-빠아아앙!
무식하게 휘둘러진 주먹이 삽시간에 음속마저 초월한 모양인지.
강마병들의 주먹에서 충격파와 함께, 공기를 잡아 찢는 격렬한 파열음이 들렸다.
놈들이 휘두른 주먹의 충격파에 휩쓸린 복도의 벽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졌다.
“누군가가 변신할 땐, 공격을 멈춰주는 것이 국룰 아냐?”
강마병들의 공격은 굉장히 빠르고 위협적이었지만.
넘쳐나는 마력과 내력으로 운룡보를 운용한 나는 놈들의 주먹을 너무나 가볍게 피해냈다.
저녁하늘처럼 군청색으로 물든 세상의 시간이 뚝 멎는다. 싶더니, 내 몸뚱이는 어느새 강마병들의 사정거리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강마병들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해낸 난 실없는 농담을 주억섬기며, 베타라의 마력을 어둠달에 조금 더 밀어 넣었다.
《크르르릉!》
-파지지직!
생글거리는 내 표정에 불만을 느꼈는지. 강마병들의 얼굴이 짜증을 머금고 와락 일그러졌다.
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놈들의 몸에서 전하를 머금은 마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먹잇감을 발견한 뱀처럼 흉포하게 꿈틀거리는 전하가 놈들의 몸을 뒤덮었다.
나를 노려보는 강마병들의 눈동자가 뇌기와 광기를 머금고 시퍼렇게 달아올랐다.
《크르르르…. 크아아앙!》
-꽈르르르릉!
변이를 끝낸 강마병들의 입에서 성난 포효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놈들의 몸에서 번개를 머금은 우렛소리가 터져나왔다.
[허참, 고놈들 감정에 휩쓸린 채로 날뛰는 꼬라지가 꼭 누구를 연상케 하지 않느냐?]
“심상 세계 속에서 화풀이랍시고, 한 마리 성난 다람쥐처럼 날뛰는 그 ‘누군가’요?”
[…허허. 아무래도 본존의 ‘교육’이 부족했던 모양이로고. 네놈의 입에서 그렇게 시건방진 소리가 흘러나올 줄이야.]
뇌기를 머금고 무섭게 포효하는 강마병들의 기세는 보통이 아니었지만.
위철용과 나는 그런 강마병들을 눈앞에 두고도 시덥지 않은 농담을 나눌 뿐이었다.
《크르르아아아아!》
-부와아아악!
자신들의 변이를 보고도, 연신 히죽거리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성난 포효를 토해낸 강마병들의 시커먼 손톱이 전하를 흩뿌리며, 단숨에 허공을 갈랐다.
대기가 비명을 내지르더니, 시커먼 손톱의 궤적을 따라 번개의 화살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놈들의 공격은 마치, 먹구름에서 대지로 내리치는 번개처럼 파괴적이었지만….
-까드득!
베타라의 권능 앞에선 ‘강마병’이란 존재의 한계에 갇힌 놈들의 공격 따윈,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전하를 머금은 채, 공간을 찢어오던 번개의 화살은 허공에 돋아난 군청색 장막에 간단히 막혀버렸다.
《끄르륵?!》
서늘한 저녁하늘과도 같은 기운을 띈 군청색 장막은 그저, 공격을 막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공격이 허무하게 막힌 것을 본 강마병들은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고 했으나,
군청색 장막에 단단히 틀어박힌 놈들의 손톱은 아무리 용을 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강마병들의 일그러진 얼굴에 당혹 섞인 의문이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강준후와의 전투에서처럼. 이놈들도 왜곡된 영혼을 바로잡으니. 꿈쩍을 못하네요.”
[이형의 영혼과 융합되어 강대한 힘을 손에 넣은 놈들이니, 당연히 그 염소 대가리 놈의 권능이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겠지.]
기본적으로 강마병은 몬스터의 영혼을 인간의 육신에 접목시켜 만들어낸, 이형의 존재였다.
성좌의 마력을 사용하여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끝에, 마족 놈들은 내가 지닌 특성 『육체와 영혼』에 어느 정도 내성을 지닌 놈들을 만들어낸 모양이지만.
강준후가 그랬듯, 애석하게도 『육체와 영혼』 특성의 완벽한 상위호환 격인 베타라의 권능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 『육체와 영혼』 특성마저도 『원혼 제령술』을 얻은 뒤론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지.
“그래도 이 정도의 효과를 발휘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거, 나름대로 큰 수확을 건졌는데요?”
베타라의 권능이 강마병 계통의 적에게 이렇게나 놀라운 효능을 발휘하는 것은 내게 있어서도 큰 수확이었다.
여러 가지 응용법을 떠올린 끝에,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던 사고가 파천 복룡창에 미치자.
이것저것 바쁘게 굴러가며 정보를 취합하던 머릿속에 파천 복룡창의 구절들이 번뜩 떠올랐다.
파천 복룡창에 대해 떠오른 생각은 이내 사고의 톱니바퀴가 되어 비어있던 자리에 딱 맞게 맞물려 들어갔다.
“…그래, 이런 식으로 사용하면 단숨에 놈들을 무력화하는 것도 가능하겠어.”
사고의 톱니바퀴가 맞물리자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베타라의 권능을 파천 복룡창의 암룡출동에 조합하면, 어떤 효능을 발휘할지!
또 그것을 광룡광림에 응용하면, 또 어떤 효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아예 암룡출동과 광룡광림을 뒤섞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베타라의 권능을 파천 복룡창에 접목할 방법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타닷!
어느정도 생각을 정리한 나는 땅을 박차며 뒤로 크게 물러섰다.
내력과 마력을 긁어모아, 다리에 주입하자 삽시간에 주변이 흐릿하게 변했다.
순식간에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하늘을 향해 어둠달을 높이 치켜들었다.
-쿠르르릉! 쿠르르릉!
어둠달에서 베타라 특유의 군청색 마력이 풀려나와, 사방을 푸르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력을 풀어낸 나는, 오랫동안 인벤토리에 처박아 두었던 아이템을 하나 꺼내 들었다.
『장식용 외골격』
등급 : 희귀
설명 : 일시적으로 외골격을 재연할 수 있는 장난감입니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바로, 오래전에 구입해 두고 잊고 있었던 『장식용 외골격』이었다.
실험삼아 외골격을 통째로 날려버리긴 아까웠기에, 나는 오랜만에 외골격의 대용품을 꺼낸 것이었다.
[세상에 그걸 진짜 구매하는 똥 멍청이가…. 어머나 실례. 크흠. 아무튼 ‘유별난’ 취향을 지닌 존재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요.
[…그러게 말이오. 신도들에게도 저걸 절대로 구입하지 말라 단단히 일러뒀거늘. 진짜로 장식용 외골격을 구입한 병…. 크흠! 대장부가 있을 줄이야.]
-차르르륵!
…역시 이 양반들도 다른 이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군.
도대체 진짜 이 장식용 외골격을 만들어 낸 성좌는 뭔 생각으로 이런걸 만들어 낸 거야?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두 전직 성좌들에게 쓰게 웃어준 나는 장식용 외골격을 몸에 장착했다.
화려한 장식이 거추장스럽게 매달린 연미복이 형태의 외골격이 내 몸 위로 차르륵 펼쳐졌다.
베타라의 형상으로 변이된 외골격에 연미복이 입혀진 듯, 우스꽝스러운 형상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속으로 암룡출동과 광룡광림의 구결을 외우며, 베타라의 마력을 장식용 외골격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쩔그럭! 쩔그럭!
《크르르르릉!》
-쿠콰앙!
장식용 외골격에 달린 쓸데없이 치렁치렁한 장식 때문에, 강마병들이 나의 위치를 바로 파악해 버렸다.
놈들이 내 위치를 파악한 것과 동시에, 콘크리트 바닥이 쩌적 갈라지는 폭음이 터졌다.
눈에서 광폭한 살기를 흩뿌리는 강마병들의 손톱에서 파지직 거리는 번개의 화살이 내쪽을 향해 쇄도해왔다.
-파지지직!
시퍼런 전하가 번들거리는 번개의 화살이 상하좌우 사방에서 나를 덮쳤다.
그에 이어, 붉은 안광을 토해내는 강마병들이 손톱을 마구 휘두르며 내게 도약해왔다.
“한방에 쓸어 버려주지….”
하지만 난 그렇게 내 주변을 둘러 싼 공격의 향연에서도 전혀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해볼테면 해보라는 듯 오히려 무방비하게 가슴을 활짝 열었다.
《캬아악! 캬아아악!》
승기를 포착한 강마병들의 입에서 환희에 찬 괴성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내 몸 위로 펼쳐져 있던 장식용 외골격이 군청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베타라의 마력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맥동하며, 장식용 외골격을 시퍼렇게 달궜다.
《크아아악! 크아아악!》
번개의 화살과 강마병들의 손톱이 내 몸을 유린하려는 그 찰나의 순간!
-쩌적 쩌저적!
정지된 시간 속에서 푸르게 물든 장식용 외골격이 산산이 부서졌다.
산산이 부서진 장식용 외골격의 파편들이 폭풍이 되어 내 주변을 휩쓸었다.
-퍼벅! 퍼버버벅!
군청색 외골격 폭풍우에 휩쓸린 강마병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핏물이 되었다.
그렇게 나를 덮쳐오는 모든 공격들을 무로 되돌린 외골격의 폭풍은 압도적인 파괴력을 선보이며, 그대로 하늘을 향해 솟구치기 시작했다.
“암룡출동…. 그리고 광룡광림! 두 개의 파괴적인 초식이 하나가 될지니! 이름하야! 암룡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