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264화 (264/309)

제264화

-콰지직!

다리에 마력과 내력을 집중시킨 순간, 시커먼 아스팔트 바닥이 갯벌처럼 움푹 들어갔다.

머릿속에 운룡보의 오묘한 구절이 떠오른다. 싶더니, 이내 운룡보가 가장 파괴적인 방법으로 발현되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마력과 내력의 소용돌이에 휘감긴 내 몸이 건물의 외벽을 산산조각냈다.

신지현이 분석한 정보대로, 건물의 외벽은 다양한 마력으로 강화되어 있었지만.

지금의 내게 있어선, 평범한 콘크리트 더미와 그다지 유의미한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파스스.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콘크리트 파편들을 대충 치워낸 나는 화안금정을 발동시켰다.

마력과 내력을 머금은 황금빛 눈동자가 어둠을 꿰뚫자, 안쪽에서 무언가를 포식하는 강마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꽈르르릉!

마력과 내력, 두 가지 기운을 머금은 창날이 정신없이 회전하며 벼락을 토해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펼쳐진 독룡아가 막 살기를 드러내려던 강마병들의 육신을 순식간에 꿰뚫어버렸다.

《끄, 끄르르륵….》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목젖을 관통당한 강마병들의 입에서 거품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둠 속에서 시뻘겋게 번들거리던 놈들의 눈에서 생기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인간과 짐승을 대충 뒤섞은 듯한 육신이 바들바들 떨리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후우…. 미리 예상은 했지만. 이미 여기도 글러먹은 상태네요.”

[밖에서부터 놈들의 추악한 냄새가 진동을 했으니, 내부의 상태야 어련하겠느냐.]

강마병들의 시신을 내려보던 위철용은 무엇이 그리도 불쾌한지. 인상을 찌푸린 채, 특유의 납작한 코를 불만스레 연신 씰룩거렸다.

[…추악한 냄새라고요? 어르신! 이들의 몸에 흐르는 마력이 누구에게서 비롯된 마력인지 잊으셨나 보죠?]

그런 위철용의 반응에 초코맛 위철용…. 아니, 아트로포스가 샐쭉한 표정으로 눈썹을 올렸다.

자그마한 몸뚱이에서 강렬한 기운이 스멀스멀 치밀어오르는 걸로 봐선, 어지간히 화가 난 듯 싶었지만….

몇 번을 봐도, 위철용을 그대로 빼다박은 외모에서 아트로포스 특유의 여성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커흠! 그, 그거야 꼬맹이. 네놈의 마력을 엉망으로 뒤틀어 만든 존재들이니. 본존으로선 역겹게 느껴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흥.]

…그리고 녹차맛 위철용, 아니 오리지널 위철용이 자신을 똑 닮은 존재에게 쩔쩔매는 광경 또한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아트로포스의 시선에 뜨끔한 모양인지, 위철용은 황급히 변명하려 들었지만.

이미 구겨질대로 구겨진 그녀의 얼굴은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위철용이 세 명으로 분열한 것도 정신이 사나울 지경인데.

그 분열체들이 꽁냥거리는, 정신건강상 그리 좋지 않은 광경까지 봐야한다니….

내가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은 건지 모르겠군.

[호오. 이 몸의 마력을 이런 식으로 ‘섞어’ 사용하다니. 자존심은 좀 상했네만. 이것 나름대로 흥미가 가는군.]

그렇게 위철용과 아트로포스가 기묘한 치정극을 찍고 있는 사이.

중후한 목소리와 함께, 베알제불이 내 가슴팍에서 머리를 쑤욱 내밀었다.

그는 암녹색으로 번들거리는 두 눈을 반짝이더니, 자그마한 손을 내밀어 마력과 내력이 휘감긴 어둠달을 호기심 가득한 손길로 어루만졌다.

[크흠! 거, 언제까지 들러붙을 셈이냐! 그, 그보다! 애송이! 다시 한번 설명해주지 않겠느냐? 도대체 어찌하여 이렇게 외진 곳까지 행차한 것인지 말이다.]

아트로포스에게 시달리던 위철용은 화제를 전환할 요량인지.

대뜸 내게 그동안 수십번은 물어봤던 질문을 굳이, 또다시 던져왔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질문이었지만, 잠시 한숨을 내쉰 나는 이번에도 그에게 성실히 답변해주었다.

“…이곳에 아트로포스…님의 유체를 차지한 마족과 놈에게 꼬리치는 산군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게 폐교된 대학처럼 보이지만.

강준후가 남겨준 기억에 따르면, 이곳은 아트로포스의 유체를 차지한 군주급 마족 ‘마흐라브’와 유독 놈을 따르는 산군 김종대가 비밀리에 강마병을 제조하고 있는 마굴이었다.

굵직한 우두머리 두 놈을 제거할 기회였기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즉시 놈들을 제거하기 위해 혼자서 이곳에 침투한 상태였다.

[하계에 남겨진 제 마지막 흔적이 고운 꼴을 당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건….]

[껍데기만 남은 우리의 육신은 놈들에게 좋은 유흥거리라오. 뭐, 결국엔 순리대로 흘러가겠지만 말이지. 우리에겐 우리의 힘을 이어받은 ‘후계자’가 있잖소.]

자신의 마력이 깃든 강마병들을 바라보는 아트로포스의 시선이 물기를 머금자.

바알제불은 아트로포스를 위로해 줄 생각인지,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물론, 바알제불의 행동도 그의 입에서 나온 발언도 위철용의 심기를 건드리기엔 차고 넘쳤다.

[이, 이 시건방진! 파리 새끼가 감히 어디에 손을 올리는 것이냐! 게다가, 뭐? 후계자?! 덤으로 건져진 짐짝 따위가 본존의 제자에게 무슨 헛소리를!]

[이몸을 망각의 나락에서 건져내 준 것은 고맙소만. …말이 좀 심하지 않소? 어차피 피차 방관자의 입장이니. 괜히 까탈스레 굴지 맙시다.]

[이, 이 빌어먹을 파리 새끼가!]

마치 격노한 햄스터처럼 얼굴을 붉힌 위철용은 느물거리는 바알제불에게 곧바로 달려들었다.

어깨 뒤편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뒤엉켜 싸우는 듯한 소리가 계속 울려퍼졌지만.

길게 한숨을 쉰 나는 두 명의 ‘옛 초월자’들이 보여주는 추태를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크르르륵!》

-콰지직!

…그래. 마침 시선을 돌릴만한 놈들도 나타났고 말이지.

거품이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무너진 복도 사이로 거대한 거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강력한 축복을 받은 놈인지,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강마병들의 육신에선 심상치 않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크아아앙!》

-피슛! 피슈슛!

어둠을 꿰뚫고 나를 발견한 강마병들이 포효를 터뜨린 그 순간!

번개처럼 휘둘러진 어둠달의 창날이 폭음을 터뜨리며, 놈들의 육신을 연달아 꿰뚫었다.

-콰직! 콰지지직!

마력과 내력이 휘몰아치는 시커먼 창날이 강마병들의 가죽을 허무하게 꿰뚫었다.

삽시간에 근육이 찢어졌다. 뼈가 박살났다. 단단한 뼛속에 숨겨진 내장을 갈기갈기 찢어졌다.

일반적인 강마병이라면 바로 죽어 나빠질 만큼 치명적인 공격이건만….

《크허허헝!》

내장을 엉망으로 헤집어 놨음에도 불구하고, 강마병들은 그리 타격을 입은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놈들의 성질만 돋궈버린 모양인지, 늑대의 주둥이처럼 길쭉한 입에서 성난 포효가 터져나왔다.

-꾸드드득!

“…강마병치곤 상당히 터프한 놈들인데?”

어지간한 강마병이라면 일반적으로 내장이 아작 난 그 순간부터 숨이 끊어져야 할테지만.

지금 내 눈앞의 강마병들에겐 별로 해당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뼈와 살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어둠달의 창날이 꿰뚫고 간 상처들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나를 바라보는 강마병들의 눈빛이 강렬한 살기를 머금었다.

-피슛! 피슈슛!

강마병들의 터프함에 나직히 휘파람을 분 나는 연이어 파천 복룡창의 제 이식 독룡아 펼쳤다.

어둠달의 창날이 기묘하게 휘었다. 휘어진 창날이 강마병들의 사각을 거침없이 파고 들어갔다.

단단한 창대가 마치 부드러운 채찍처럼 움직였다. 채찍처럼 휘어진 창대가 순간적으로 물리법칙에서 벗어난 듯 기이한 궤적을 그렸다.

-쩍!

교묘하게 강마병들의 사이를 파고 들어간 독룡아가 선두에 선 놈의 뒤통수를 찍었다.

어둠달의 창날에 실린 마력과 내력이 거칠게 소용돌이치며, 단단한 두개골을 단숨에 갈랐다.

두개골이 보호하는 큼직한 뇌가 삽시간에 곤죽으로 변했다.

《크아아아아!》

그래도 고작 강마병인데 머리만 부수면, 끝날 줄 알았지만.

애석하게도 놈의 머리를 부수는 것은 정답이 아닌 듯 했다.

-후와아앙!

머리를 꿰뚫린 거대한 근육질 몸뚱이가 믿어지지 않을 속도로 재빠른 몸놀림을 보였다.

그 몸뚱이가 잽싸게 비틀어짐과 동시에. 시퍼렇게 빛나는 손톱이 내 몸을 스쳤다.

“그래도 나름 최신작이라 이건가?”

《크르륵!》

우렁찬 포효 소리와 함께 내게 가까이 파고든 강마병의 눈에서 싯누런 기운이 번뜩였다.

순식간에 샛노란 전하가 파지직거리며 놈의 손에 모여들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시야가 반격을 예고했다. 찌릿찌릿한 기운이 내게 엄습해왔다.

“치잇!”

허공을 허무하게 스치기만 하던 창날을 급히 회수하며, 나는 창 전체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곤 재빠르게 창 자루의 가운데를 부여잡곤 마치 풍차처럼 창 전체를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후웅! 훙! 훙!

시커먼 기운을 일렁이며 회전하는 창이 큼직한 방패가 되었다.

그렇게 내게 날아들 강마병들의 번개 화살을 튕겨낼 준비를 하려던 순간!

-쐐애액!

순간 화안금정에 희한한 공격 경로가 비쳤다.

예상했던 번개로 이뤄진 마법의 화살 대신, 강마병의 육중한 주먹이 벼락처럼 파고 들어왔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낸 나는 재빨리 창의 회전을 멈추곤, 창 자루를 비틀어 놈의 주먹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꾸과아앙!

그렇게 흘려보낸 강마병의 큼지막한 주먹이 바닥을 강타했다.

무지막지한 굉음과 함께 돌조각들이 요란하게 허공으로 흩날렸다.

단단한 돌바닥이 쩌저적 갈라지더니 운석이라도 맞은 양 거대한 크레이터를 형성했다.

“휘유. 힘 하난 무식한 놈일세.”

《크아앗! 크아앗!》

강마병들의 강력한 힘에 새삼스레 감탄할 틈도 없었다.

내 입에서 불만이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자세를 수습한 강마병들의 새로운 공격이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혼자서는 당해내지 못한다고 판단했는지, 이번엔 전하를 품은 강마병들의 주먹이 쉴 새 없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후웅! 꽈앙! 후웅! 꽈앙!

어지간한 성장기 소년의 허리둘레만 한 팔뚝이 거칠게 바람을 갈랐다. 성인 남성의 머리통만큼 거대한 주먹이 계속해서 폭음을 터뜨렸다.

마치 위빙이라도 하듯 내 창날을 피하면서 연속으로 파고드는 강마병들의 공격은 놈들의 주먹에 휘감긴 전하를 나타내기라도 하듯 마치 번개와도 같았다.

그야말로 커다란 덩치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을 만큼 파괴적이면서도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콰앙! 투쾅!

나는 어둠달을 재빠르게 휘두르며 번개처럼 쇄도해오는 강마병들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한 마리의 위력은 그저 그랬지만. 힘을 합치니 위력이 제법 대단했다.

창 자루로 강마병들의 연속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낼 때마다 손이 저릿했다.

욕지기가 절로 튀어나왔다. 죄 없는 복도의 바닥이 달 표면처럼 울퉁불퉁하게 변해버렸다.

“역시, 마력과 내력을 이용해봤자. 무식한 놈들을 ‘물리적’으로 상대하는 건 힘든 일이야.”

광포한 포효를 토해내는 강마병들을 바라보며, 히죽 미소를 지은 나는 어둠달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여러 가지 재주가 있어서 말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