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0화
-쿠콰아아아앙!
외골격에 자라난 근육질의 회색빛 팔이 강준후의 머리를 힘껏 후려갈겼다.
흉측하게 변이된 놈의 머리가 순간적으로 몸 속으로 함몰되더니, 강준후의 눈과 코, 입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왈칵 뿜어져 나왔다.
『끄, 끄어어억! 마, 말도 안돼! 어찌 필멸의 굴레조차 벗지 못한 필멸자 따위가….』
“앞으로 3분.”
함몰된 머리를 재생시키며, 경악과 불신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강준후에게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남은 시간을 통보했다.
3분이란 짧은 시간에 굴욕을 느낀 놈이 발악하듯 몸을 비틀었지만, 애석하게도 통나무처럼 억세게 변한 나의 회색빛 근육질 팔은 강준후의 덧없는 발악 따윈 깔끔히 무시한 채로 놈의 머리를 덥썩 움켜잡았다.
-뿌직! 뿌지지직!
무언가가 바스라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강준후의 나무껍질형 외골격이 쿠키처럼 부서졌다.
불길하게 일렁거리는 검붉은 신력이 외골격이 갈라진 틈에서 연기처럼 흘러나왔지만.
놈의 머리를 꽈악 붙잡은 내 손에 흐르는 회색빛 신력은 강준후의 불완전한 신력 따위가 범접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오옷! 오오옷! 무, 무슨! 마, 말도 안돼! 나, 나는 신의 힘을 손에 넣었단 말이다!』
-파사삭!
강준후는 무서운 포효를 토해냈지만, 그와 동시에 놈의 머리가 폭죽처럼 터져버렸다.
무시무시한 악력으로 강준후의 머리를 박살 낸 나는 머리를 잃은 채, 덜렁거리는 놈의 몸을 멀찍한 곳에 휙 집어던졌다.
-꽈드드득!
휙 던져진 강준후의 몸이 바닥에 닿은 것과 동시에, 어설프게 형성된 검붉은 신력이 강준후의 부서진 머리를 순식간에 복구시켰다.
하지만 머리가 재생된 놈의 눈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화인처럼 박혀 있었다.
강준후가 완전히 몸을 재생한 것을 본 나는 서늘한 목소리로 남은 시간을 알렸다.
“…2분 30초.”
『크아아악! 이, 이 시건방진 필멸자 노-옴!』
서늘하게 남은 시간을 통보하는 내 목소리에 강준후의 재생된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아직 발악할 여력과 용기가 남은 모양인지, 거칠게 포효하는 놈의 외골격에서 흘러나온 신력이 사방을 온통 검붉게 만들었다.
『크르르르아아아아! 모든 것을 멸하는 진정한 신의 힘을 보여주마아앗!』
《끄아아아앗! 끄아아아악!》
스멀스멀 침범해오는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선지, 강준후의 눈이 광기에 물들었다.
광기에 찬 목소리로 포효하는 놈의 몸뚱이에서 검붉은 불꽃이 화르륵 거세게 타올랐다.
놈의 상반신에 매달려있는 강태백의 영혼이 고통스러운 절규를 토해냈다.
-화르르르륵!
불길하게 피어오른 검붉은 불꽃이 강준후의 외골격을 완전히 휘감았다.
불꽃을 두른 강준후는 광기에 찬 눈을 번뜩이며, 그대로 내게 돌진해왔다.
『신도 악마도 모조리 살라먹는 저주받은 불꽃에 타들어가라!』
개구리 형태의 하반신을 이용해, 단숨에 도약한 강준후는 그대로 내 몸을 들이받았다.
검붉게 타오르는 불꽃 그 자체가 되어버린 놈의 육신이 내 몸을 불태우려 들었다.
하지만….
-치지지직!
안타깝게도 모든 것을 살라먹을 듯 불길하게 타오르던 검붉은 불길은 내 회색빛 외골격에 그을린 자국조차 내지 못했다.
가네샤의 신력이 깃든 외골격을 뚫기엔 강준후가 지닌 신력은 너무나도 미약한 수준이었다.
팔을 뻗은 것만으로도 너무도 간단히 놈의 돌진을 저지한 나는 솥뚜껑보다 더 크게 변한 두 손으로 강준후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각각 움켜쥐었다.
“고작 그런게 신도 악마도 살라먹는 힘이라고? 그딴 어설픈 힘 따위는 단번에 찢-어 버리겠-다!”
-뿌좌자자작!
가네샤의 서사시가 내 정신까지 침투한 탓일까?
마치 김혜옥과도 같은 무식한 포효를 우렁차게 토해낸 나는 양손에 힘을 주어, 강준후의 몸뚱이를 그대로 반으로 찢어버렸다.
끔찍한 파육음과 함께, 내 양손에 붙잡혔던 강준후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찢어졌다.
아슬아슬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강준후의 검붉은 외골격이 완전히 박살났다.
놈의 몸뚱이에서 새어나오는 신력이 눈에 띄게 희미해졌다.
그것 때문인지, 반으로 토막난 강준후는 제대로 몸을 재생시키지도 못했다.
『크하학! 카학! 아, 안 돼 히, 힘이….』
“…이제 2분 남았군.”
압도적인 폭력 속에서 강준후는 몸이 완전히 반으로 찢어진 채, 괴롭게 숨을 할딱였다.
나는 그렇게 처참하게 조각난 놈의 몸뚱이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얼음장 같이 서늘한 목소리로 남은 시간을 알렸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가네샤의 신력은 내 몸에서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폭발하듯 타오른 회백색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너울거리며, 세상을 회색으로 물들였다.
『아, 아직이다! 나, 나는 절대로 필멸자 따위에게 패배하지 않….』
“1분 30초.”
강준후의 입에서 발악섞인 절규가 튀어나오자.
나는 사방을 밝게 물들인 회백색 신력을 떡갈나무처럼 우람해진 양 팔에 집중시켰다.
-투둑! 투두둑!
신력이 주입되자, 그렇지 않아도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양팔에 힘줄이 우두둑 돋아났다.
소매에 간신히 매달려있던 가죽 갑옷이 근육을 이기지 못하고 완전히 찢어졌다.
당장이라도 이 행성 전체를 반으로 쪼개버릴 듯한 괴력이 내 두 손에 깃들었다.
“아직이라고 하기엔…. 이젠 더는 남은 여력이 없어보이는데? 거의 다 왔는데 안타깝게 되었어.”
『뭐, 뭐어엇!』
-쿠르릉! 쿠르르릉!
내 양 팔에 깃든 회색빛 신력이 천둥과 번개가 되어 끊임없이 뇌성을 토해냈다.
회백색 번개를 두르고 강준후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자, 공포에 잠식된 놈의 얼굴이 가네샤의 신력만큼이나 새하얗게 질려갔다.
『오, 오지마! 오지마앗!』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성큼성큼 강준후에게 다가갈 때마다, 놈은 추하게 상반신만 남은 몸을 질질 끌며 어떻게든 내게서 멀어지기 위해 발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력도 힘도 모조리 다 잃어버린 강준후의 반항은 포식자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어리석은 먹잇감만큼이나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놈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는 말없이 주먹을 들어올렸다.
-꽈르르릉!
벼락처럼 내려꽂힌 주먹이 강준후의 육신을 단숨에 꿰뚫었다.
놈의 머리가 U자 모양으로 함몰되는 것과 동시에, 놈의 몸뚱이로 침투한 신력이 근육을 갈기갈기 찢었다. 뼈를 으스러뜨렸다. 내장을 엉망으로 진탕시켰다.
충격 속에 쩍 벌려진 강준후의 입에선 어떠한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30초 남았지만. 이젠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걸?”
『….』
훌륭하게 곤죽이 되어버린 강준후에게 느릿하게 다가간 나는 놈의 귀에 도발하듯 이죽거렸다.
하지만 이미 절명해버린 모양인지, 입을 쩍 벌린채로 굳어버린 강준후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푸스스스.
추하게 뒤틀린 육신이 모래성처럼 덧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절망의 감정을 머금은 채로 기이하게 함몰된 얼굴이 그대로 허무하게 흩어졌다.
모래알처럼 무너져 내린 몸뚱이에서 두 개의 영혼이 둥실 떠올랐다.
강준후와 강태백의 영혼을 확인한 나는 가네샤의 서사시를 해제하며, 베타라의 영웅시를 다시 발동시켰다.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의 효과에 따라, 영웅시 『베타라』가 잊혀진 영웅의 힘과 권능을 노래합니다.」
「사용자님이 보유한 마력에 따라, 영웅시 『베타라』의 효과는 『5분』 동안 지속됩니다.」
가네샤의 서사시에 엄청난 양의 마력을 소모한 탓인지, 베타라의 영웅시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하지만 5분 남짓한 시간만으로도 일을 끝맺기는 충분했기에, 나는 베타라의 힘이 깃든 손으로 두 명의 영혼을 조심스레 감싸쥐었다.
-번-쩍!
그렇게 막 두 명의 영혼을 수습하려던 순간.
바람에 허무하게 흩어지던 강준후의 육신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그것과 동시에,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던 시간이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
『…결국엔 이렇게 되었군.』
한 폭의 사진처럼 모든 것이 멈춰버린 황금빛 세상 속에서 생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늙수그레하지만 묘한 위엄이 서린, 묵직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목소리였다.
-푸스스스.
이제는 익숙해진 정지된 시간 속에서 고개를 돌려, 강준후의 육신이 있던 곳을 바라보자.
가루로 변해 소멸해가는 몸뚱이에서 희끄무레한 영혼이 스르륵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묘하게 후련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강준후의 표정으로 미러 보건대. 아무래도 나태상처럼, 그 또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당신도 나태상처럼 놈들에게 조종당했었나 보군.”
『한순간의 방심이 큰 화를 부른 게지. 비록 내 의지가 아니었네만, 그래도 수많은 이들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지었어. …미안하네.』
나와 시선을 마주친 강준후는 면목이 없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떨궜다.
비록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그동안 저지른 악행에 크나큰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인지.
그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조용히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생전의 모습과는 달리, 노인이 되어버린 얼굴에서 한줄기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태상도 그렇고 당신도 똑같은 말을 하는군. 설마, 다른 산군들도 당신들처럼 조종당하고 있는 건가?”
『아닐세…. 나와 나태상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놈들에게 협력한 상태라네. 여기서 자네에게 당한 장은택 역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놈들에게 협력한 변절자였어.』
강준후는 씁쓸하게 웃으며, 내게 다른 산군들이 멀쩡한 자신의 의지로 마족에게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애석하게도 그와 나태상을 제외한 다른 산군들은 순수하게 자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 배신자의 길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나태상도 그렇고 당신도…. 참으로 마음 고생이 심했겠군.”
『그래도 자네에게 최후를 맞을 수 있어 다행이었어. 자네의 신묘한 재주로 인해, 죽음으로나마 내 순수한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으니 말이야.』
강준후는 꾸벅 고개를 숙여, 내게 감사를 표했다.
황금빛에 휩싸인 그의 늙수그레한 얼굴은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강준후의 눈빛은 순수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네에게 짐을 맡기는 것이 못내 미안하네만…. 놈들에게 듣기로는 ‘그릇’인 자네에겐 죽은 이들의 한과 업으로부터 생전의 기억을 엿보는 힘이 있다지? 면목이 없네만. 내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놈들에게 조종당하던 시절의 기억 뿐이거든. …받아 주겠나?』
강준후의 영혼이 황금빛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기 시작하자.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내게 자신의 한과 업이 담긴 응어리를 조심스레 건넸다.
마족들로부터 내가 지닌 능력을 어느정도 전해들은 탓인지, 강준후의 얼굴은 미안한 감정을 가득 품고 있었다.
“놈들에게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내 일이거든. 부담 갖지말고 좋은 곳으로 홀가분하게 떠나셔. 당신 덕분에 놈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고마울 뿐이니까.”
나는 히죽 웃으며 강준후가 건네준 한과 업의 응어리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전투 속에 장은택의 영혼을 허무하게 성불시켜버린 지금, 마족들과 가까이 있었던 강준후의 기억은 엄청난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기에.
내가 강준후에게 감사를 표한 것은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가식 따위가 아니었다.
『…그래. 마지막에서나마 자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군. 길드장님을…. 잘 부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