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화
“…길드장님?”
갑자기 나와 강준후의 사이에 난입한 강태백에게 나는 당황 섞인 물음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강준후가 자랑하던 권능을 훌륭하게 파훼하기도 했겠다. 놈에게 막대한 피해도 입혔겠다.
이제 마무리만 지으면 끝날 상황이었기에. 나는 강태백의 갑작스러운 난입과 결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헛소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 아저씨는 갑자기 왜 끼어들고 난리야?
“일단 물러서서, 상처부터 돌보게! 빌어먹을! 자네의 힘으로도 놈을 감당할 수 없을 줄이야.”
…네? 댁이 난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쪽에서 신나게, 일방적으로 패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난입해온 강태백의 입에선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아주 괴이쩍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왜인지 쓸데없이 따스한 헛소리를 내뱉은 그는 나를 살기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이를 부드득 갈며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강태백이 착용한 『강화 외골격』의 곳곳에 박힌 마력석들이 주인의 의지에 감응하며, 다시금 희미한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길드장님?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
“됐네. 더 말하지 않아도 괜찮네. 무릇 사내란 패배로부터 성장하는 법이야. 잔말 말고 상처부터 돌보게! 내가 놈을 막아서는 동안, 어떻게든 도망갈 틈을 찾아보게!”
알 수 없는 소리를 계속해서 주워섬기는 강태백에게 뭐라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자신만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버린 모양인지, 괴이쩍은 소리를 폭풍처럼 내뱉은 그는 희미하게 이글거리는 불꽃을 온몸에 두른 채, 내 쪽으로 돌진해왔다.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래? 마력을 지나치게 끌어 쓴 부작용으로 심각한 뇌손상이라도 입은건가?
“이 악독한 놈! 네놈의 상대는 바로 나다! 뼛속까지 타올라라!”
-화르르르륵!
나를 향해 돌진해오는 강태백의 전신에서 새파랗게 타오르는 불꽃이 흐릿하게 흘러 나왔다.
그와 함께 분노와 살기가 끈적하게 뒤섞인 포효가 강태백의 입에서 거칠게 터져 나왔다.
마치 필생의 원수를 상대하는 듯한 처절한 감정이 그의 전신에서 진득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뭐, 뭐지? 갑자기 저 아저씨 상태가 왜 저렇….
-콰아앙!
아무리 나라고 한들 다짜고짜 돌진해온 강태백을 그대로 받아낼 순 없었다.
강태백의 반응이 기이하긴 했지만, 온몸에 불을 두른 불덩어리가 내게 접근하게 둘 순 없었기에.
재빨리 어둠달에서 마력과 내력을 흩어낸 나는 창의 자루 부분으로 강태백의 뒤통수를 가볍게 후려갈겼다.
“커, 커헉! 이, 이 사악한 놈…! 내, 내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 설용호에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한…다아.”
어쩐지 감동적인 헛소리를 중얼거린 강태백은 그대로 입가에서 새하얀 거품을 부그륵 뿜어내더니, 눈을 까뒤집었다.
가볍게 창을 휘둘러 그를 제압한 나는 강준후를 다시 끝장내기 위해, 어둠달에 마력과 내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돼, 됐다! 크흐흐. 정말이지. 우리 길드장 나으리께서 쓸데없이 정이 많은 인간이라 다행이지 뭐야!”
만신창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강준후의 눈이 갑자기 음험하게 빛났다.
다 꺼져가던 놈의 마력이 순간적으로 검붉게 타오르더니, 놈의 외골격에서 검붉은 나뭇가지들이 뻗어 나와, 게거품을 물고 기절한 강태백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커으윽?!”
그렇게 미처 반응할 사이도 없이, 나뭇가지가 강태백을 삽시간에 누에고치처럼 휘감자.
허연 게거품과 비장한 헛소리가 흘러나오던 강태백의 입에서 신음이 갑갑하게 흘러나왔다.
갑갑한 신음과 함께, 그의 외골격 전체를 뒤덮었던 희미한 화염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흐, 흐흐. 혹시나 하여 걸어둔 환각이었는데…. 이렇게 월척을 낚을 줄은 미처 몰랐군. 항상 그 샌님의 특성 트리를 무시했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야.”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강준후의 눈이 어두운 웃음을 지으며,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놈의 육신에서 상처들이 멀끔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리던 강태백의 몸이 축 늘어졌다.
“…길드장님?”
아무래도 강준후는 잡아먹은 공격대원 중 한 명의 능력을 이용해, 강태백에게 모종의 환각을 걸어둔 모양이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며, 강태백이 눈앞에서 허무하게 흡수당하자.
나는 까드득 이를 깨물며, 어둠달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화르르륵!
“좋아. 좋은 불꽃이야. 역시 한때 최강이라 칭송받았던 남자의 불꽃답군!”
몸을 완전히 일으킨 강준후의 육신에서 강태백이 자랑하던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사파이어처럼 새파랗게 빛나던 푸른 불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검붉게 변색 되어버렸다.
곧이어 영혼들이 빠져나가, 앙상하게 변해버린 놈의 외골격에 강태백의 얼굴이 유령처럼 둥실 떠올랐다.
…강태백이 흡수당한 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어!
그의 육신이 아직 죽지는 않았으니까, 베타라의 권능을 이용하기만 하면!
장은택과는 달리, 강태백의 육신은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베타라의 권능을 이용해, 그의 영혼을 해방하기만 하면 강태백은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며, 베타라의 권능을 어둠달에 주입하려던 그 순간!
“크흐흐흐. 어째서 그들이 강태백의 영혼을 흡수하라 했는지 이제 알겠군. ‘파편’이라는 것이 이 정도의 힘을 머금고 있었다니….”
강준후의 흘러나온 충격적인 말이 내 정신을 순간적으로 꽝꽝 얼려버렸다.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허옇게 물들어 사고의 흐름이 일순간 끊어져 버릴 정도였다.
…뭐라고? 강태백이 김혜옥처럼 ‘파편’의 일부였다고?
그, 그의 몸에선 전혀, 파편 특유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꾸드드드득!
강준후의 입에서 튀어나온 충격적인 발언에 당황한 틈을 타.
끔찍한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새로운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실핏줄이 툭툭 터져 나온 강준후의 상반신이 말라 비틀어지더니, 검붉은 불꽃을 머금었다.
마치 말라버린 고목처럼 앙상하게 변해버린 상반신에 강태백의 영혼이 인질처럼 매달렸다.
강준후의 하반신 끔찍하게 뒤틀리더니, 마치 개구리의 그것과 같은 형상으로 변이되었다.
『아주. 아주 만족스럽군. 이것이 내 특성 트리에 숨겨진 진정한 힘…! 성좌라는 존재의 권능인가?』
변이를 끝마친 강준후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태백이 ‘파편’의 일부였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스모데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놀랍게도 강태백의 혼을 흡수한 놈의 육신에선 성좌 특유의 신력이 은은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제법 재밌는 술수로 이 몸을 궁지에 빠뜨렸지만…. 이제 상황이 좀 다를 게야.』
온몸에 흘러내리는 성좌 특유의 신력이 마음에 들었는지, 강준후는 기세등등하게 웃었다.
조금 전에 내게 완전히 압도당했다는 사실이 그리도 수치스러웠는지, 괴이하게 변이된 놈의 눈엔 압도적인 살의와 적의가 활화산 속의 용암처럼 찰랑거리고 있었다.
『오오…. 그래 그런 것이었군. 그래서 네놈이 내가 잡아먹은 이들의 영혼을 해방할 수 있는 것이었어. 하지만 진실을 안 이상. 이젠 어림도 없지!』
스스로의 내면을 관조하여, 자신이 지닌 특성 트리의 진정한 힘과 권능을 깨달은 모양인지.
음습하게 웃은 강준후는 지휘하듯 양손을 우아하게 휘두르며, 신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꽈드드득!
《끄으아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강준후의 상반신에 매달린 강태백의 영혼이 비명을 내질렀다.
곧이어 검붉은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우두둑 돋아나더니, 강태백의 영혼을 칭칭 휘감았다.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지르는 강태백의 영혼이 점점 검붉게 물들어가며, 침묵하기 시작했다.
『망자의 왕 베타라는 망자들의 혼을 인도하는 힘을 지녔지만. 이런 식으로 영혼을 장악해버린다면, 그따위 권능은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지!』
-화르르륵!
음험하게 뇌까린 강준후가 본격적으로 강태백에서 흡수한 불꽃의 권능을 사용하자.
그에게 흡수당한 강태백의 영혼이 고통스럽게 절규하며, 검붉은 불꽃을 피워 올렸다.
흉측하게 변이된 강준후의 육신이 검붉은 불꽃에 휘감겨, 흉흉한 신력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완벽해! 아주 완벽해! 강태백이 생전에 지녔던 능력을 이렇게나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다니! 으하하하! 으하하핫! 이래서 그들이 강태백을 흡수하라 한 것이었군! 설용호! 강태백이 외롭지 않도록 네놈의 영혼도 집어 삼켜주마!』
흉측하게 변이된 몸을 오만하게 뒤트는 강준후의 웃음 소리에,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차가운, 북극해처럼 서늘한 분노가 내 이성을 차갑게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글쎄. 그쪽이 무슨 재주로?”
성좌의 힘을 손에 넣어, 그 힘에 심취해 상당히 기뻤던 모양이지만.
강준후에겐 애석하게도 나 역시 비슷한 힘을 이미 지니고 있었다.
그 힘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강준후를 바라보며, 서늘하게 웃은 나는 서사시 『가네샤』를 발동시켰다.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의 효과에 따라, 서사시 『가네샤』가 잊혀진 신의 힘과 권능을 노래합니다.」
「사용자님이 보유한 마력에 따라, 서사시 『가네샤』의 효과는 『5분간』 지속됩니다.」
영웅시를 뛰어넘은 힘, 가네샤의 서사시가 발동되자.
망각의 사슬에 얽매여, 베일에 싸여있던 위대한 신의 기억이 무의식 속에서 솟구쳤다.
마력, 내력, 차크라 등으로 정의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신력’이 내 몸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우두둑!
강력한 기운이 내 몸을 휘감기 시작하자, 단단한 강화 외골격이 종잇장처럼 힘없이 찢어졌다.
찢어진 가죽 갑옷 아래로, 탄탄한 근육이 회색빛 창백한 모습을 드러냈다.
베타라의 힘을 머금었던 외골격이 전혀 차원이 다른 힘을 품고, 새로운 형태로 쭉쭉 자라났다.
『마, 말도 안 돼! 어, 어째서 네놈에게서 성좌의 기운이?!』
《끄아아아악!》
-카가가각!
성좌의 힘과 권능을 두른 내 모습에 강준후는 현실을 부정하듯 악을 쓰며, 흉측하게 변이된 손톱을 휘둘렀다.
강태백의 비명과 함께, 검붉은 화염이 일렁이는 손톱이 빠른 속도로 내게 쇄도해왔다.
사방을 어둑하게 물들이며 날아든 손톱에서 진득한 살기와 검붉은 불꽃이 흉험하게 꿈틀거렸다.
-꽈르르릉!
하지만 발작하듯 발악적으로 휘두른 강준후의 공격은 내게 닿지 못했다.
회색빛 전하에 휘감긴 왼팔을 슬쩍 들어 올린 것만으로 압도적인 파괴의 권능이 폭사 되었다.
모든 것을 회색빛 재로 만드는 막강한 파괴력에 노출된 강준후의 손톱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푸스스 흩어졌다.
“놈들에게 이것저것 전해 들은 모양이지만, 이것만큼은 아직 전해 듣지 못했던 모양이야?”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 그들은 내게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거대한 근육의 형태로 자라난 회색빛 외골격이 신력을 머금고 찬란하게 빛났다.
세상 전체를 뒤틀고 부서버릴 듯한 압도적인 괴력이 내 몸에서 불길하게 꿈틀거렸다.
강준후 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강력한 신력이 근육을 따라 흐르며, 어설프게 신력을 손에 넣은 강준후 따윈 단숨에 박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해졌다.
“뭐, 그런건 중요하지 않고…. 이제부터 게임을 한번 해보자고. 앞으로 4분. 딱 4분만 버텨봐.”
4분이란 짧디 짧은 시간을 들은 강준후의 흉측한 얼굴이 수치스럽게 일그러졌다.
그런 놈의 얼굴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는 내 얼굴을 타고 가네샤의 회색빛 신력이 용암처럼 들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