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화
한편. 강준후와 강태백이 격렬하게 맞붙는 동안 나는 화안금정의 권능을 이용해, 놈의 능력을 분석하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시야에 비친 정보와 강준후가 흩날린 마력의 파편이 검은 심장에 흡수되자.
머릿속에 놈이 어떤 성질의 마력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가 떠올랐다.
“…역시. 놈은 자신이 잡아먹은 이들의 영혼을 착취하고 있었어.”
검붉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얼굴들에서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강준후는 자신이 잡아먹은 이들의 능력을 빼앗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오염된 영혼을 착취하여 마력의 근원으로 써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쩐지…. 저토록 많은 이들의 영혼을 마력원으로 써먹고 있었으니.
특제 『강화 외골격』과 마력석까지 사용한 강태백마저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겠어.
“후우우우….”
강준후가 사용하는 마력의 정체를 파악한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강태백이 적절히 놈을 상대해준 덕분에, 인간의 영혼을 마력의 근원으로 사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 더는 강준후의 페이스에 휘둘릴 이유가 없었다.
내겐 인간의 오염되고 왜곡된 영혼을 바로잡을 방법이 두 개나 있으니까.
-파츠츠츠.
호흡을 가다듬으며 라크슈마의 영웅시를 해제한 나는, 곧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이의 영웅시를 발동시켰다.
몸을 가득 채웠던 라크슈마의 권능이 빠르게 빠져나가며, 새로운 이의 힘과 권능이 내 육신에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의 효과에 따라, 영웅시 『베타라』가 잊혀진 영웅의 힘과 권능을 노래합니다.」
「사용자님이 보유한 마력에 따라, 영웅시 『베타라』의 효과는 『24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베타라….
잊고 있었던 이의 영웅시가 발동되자, 왜곡형 게이트에서 내게 토벌당한 고위 마족이자, 한때 망자들을 다스렸던 성좌의 힘과 권능이 내 육신에 깃들었다.
동시에 망자를 굽어살피며, 그들의 영혼을 인도하던 이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온몸을 뒤덮은 베타라의 군청색 마력이 내 몸을 조금씩 변이시키기 시작했다.
-까드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산양의 그것과도 같은 굵직한 뿔이 양 관자놀이에서 자라났다.
군청색으로 물든 외골격이 마치 로브와도 같은 형태로 변이되어, 내 전신을 뒤덮었다.
숫염소의 두개골을 닮은 새하얀 가면이 쑥쑥 자라나, 내 얼굴을 비스듬하게 가렸다.
망자들의 넋과 한을 달래며, 그들을 저승으로 이끌던 베타라의 힘과 권능이 완벽하게 내 육신을 휘감았다.
“호오? 마력의 형태가 완전히 변했군. 이게 그들이 경고하던 ‘그릇’의 능력인가?”
이변을 눈치챈 것일까?
마력이 고갈되어 거칠게 호흡을 몰아쉬는 강태백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던 강준후가 천천히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겉모습도 몸에 흐르는 마력도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내 모습을 바라본 놈의 눈에 경계의 빛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강태백 같은 ‘잔챙이’ 따위와 놀아줄 때가 아니겠어. 어차피 마력이 고갈된 놈은 발톱과 이빨을 잃어버린 늙은 맹수나 다름이 없는 상태이니.”
강태백에게서 완전히 몸을 돌린 강준후의 몸에선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뇌까리는 말로 미뤄보건대, 놈은 마족들에게 내가 지닌 능력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전해 들었던 것 같았지만.
눈앞에서 마력의 형태 자체가 완전히 변해버린 것을 직접 보니, 미지의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이 강준후의 이성을 지배해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네놈이 아무리 이형의 능력을 지녔다고 한들! 수백명을 잡아먹어 힘을 비축한 내겐 그저 간식거리에 불과하지! 보아라! 나의 무한에 가까운 권능들을!”
-꽈드드득!
《끼야아아악!》
강태백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상대하기로 한 것일까?
음울한 포효와 함께, 강준후의 몸과 외골격이 기묘한 변화를 일으켰다.
놈의 송곳니가 마력을 품고 길쭉하게 자라났다. 부리부리하게 떠진 눈이 어둠을 머금었다.
나무뿌리보다 억세고 쇠심줄보다 질긴 시커먼 힘줄들이 거미줄처럼 강준후의 몸을 뒤덮었다.
놈의 외골격 나뭇가지에 달린 이들이 구슬픈 귀곡성을 토해내며, 놈에게 어마어마한 마력을 새롭게 불어 넣어주었다.
“크하핫! 보았느냐? 이 강대한 힘을! 네놈들이 어떤 재주를 부리든. 수많은 권능을 보유한 내겐 덧없는 잔재주에 불과하나니!”
-쿠콰아앙!
강준후의 입에서 폭력을 머금을 광포한 포효가 터져 나온 순간.
거대하게 부푼 몸뚱이에서 불길하게 꿈틀거리던 검붉은 마력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 왔다.
어떠한 변형조차 이뤄지지 않은 순수한 마력이, 단순 명쾌한 살의를 머금고 나를 짓누르려 들었다.
“크으윽! 이 마력의 양은…! 어서 피하게! 아무리 자네라도 저것에 맞섰다간…!”
-끼야아아악!
귀곡성을 머금고 주변의 모든 것을 으스러뜨리는 강준후의 압도적인 마력에, 강태백의 입에서 경고가 터져 나왔지만.
그의 경고와는 달리, 나는 그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채로 가만히 오른손을 위쪽으로 들 뿐이었다.
-꾸르르륵!
가볍게 든 나의 오른손에서 군청색 마력이 울컥 솟구쳤다.
상냥하게 만물을 굽어살피는 저녁 하늘과도 같은 색을 띤 군청색 마력은 삽시간에 주변을 온통 어둡고 푸르게 물들였다.
《끼야아악? 꺄악?》
주변을 군청색으로 물들인 베타라의 권능이 사방을 짓누르는 강준후의 마력과 접촉하자.
검붉은 마력 속에서 서글프게 울부짖던 영혼들이, 기묘한 귀곡성을 터뜨리며 바르르 떨었다.
그것과 동시에 사방의 모든 것을 으스러뜨리던 강준후의 마력이 갑자기 움직임을 뚝 멎었다.
-파스스스스.
망자들의 넋과 한을 달래며, 그들을 저승으로 이끌던 성좌답게 베타라의 군청색 마력엔 내가 지닌 특성 『원혼 제령술』과 굉장히 흡사한 능력이 깃들어 있었다.
군청색 마력이 강준후의 검붉은 마력을 포근하게 감싸자, 놈의 외골격에 매달려 있던 얼굴들이 하나둘씩 ‘마땅히 향해야 할’ 안식의 땅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영혼들이 사라져가자,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자랑하던 강준후의 마력이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다.
“…?! 네놈! 도대체 무슨 짓을!”
주변을 짓누르던 검붉은 마력이 사라지자, 강준후의 얼굴에 경악을 품은 표정이 떠올랐다.
놈의 입에서 의문을 품은 고함이 튀어나왔지만, 애석하게도 내겐 놈의 의문을 해결해 줘야 할 이유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쿠콰아앙!
천둥과 벼락이 동시에 대지를 쪼개는 듯한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베타라의 마력을 머금은 발이 땅을 박차자, 바닥이 움푹 꺼지며 크레이터가 형성되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강준후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덕분에 경악과 혼란에 찬 놈의 표정이 더욱더 생생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피슛! 피슛! 피슛!
강준후에게 가까이 접근한 나는 놈의 급소를 노리며 어둠달을 재빠르게 휘둘렀다.
베타라의 마력을 두른 어둠달의 창날이 웅웅 울부짖으며, 쉴새 없이 소용돌이치는 아홉 마리 군청색 용의 형상을 빚어냈다.
-꽈직! 꽈지지직!
평소보다 수십 배는 커다란 아홉 마리의 군청색 용이 강준후의 육신을 탐욕스레 베어 물었다.
베타라의 마력과 나의 내력, 두 가지 기운을 머금은 용들의 송곳니가 놈의 육신으로 파고들었다.
강준후의 몸에서 군청색 전하가 전하가 요란하게 번쩍였다. 시뻘건 피가 허공을 수놓았다.
“크하하학! 내, 내 마력이! 무,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강준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나는 곧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베타라의 힘이 깃든 외골격에서 풀려나온 군청색 마력과 정신없이 맥동하는 검은 심장에서 풀려나온 시커먼 내력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
두 개의 기운을 머금고 승천한 와류는 하늘을 어둡게 물들이며, 주변의 먹구름을 잔뜩 끌어모았다.
“대답해라! 도대체 내게 무슨 짓을….”
“굳이 내가 그 질문에 답해줄 의리는 없겠지?”
다시 한번 강준후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를 웅웅 울렸지만.
나는 굳이 답변해주지 않은 채, 놈을 노려보며 비릿한 비웃음만을 머금었다.
얼굴을 비스듬히 가린 새하얀 두개골 가면 아래에서, 군청색 안광이 살기를 품고 폭발하듯 타올랐다.
“조, 좋다! 이까짓 상처쯤은 단숨에 재생을…. 크어억!”
-콰르르릉!
강준후가 다급하게 마력을 끌어올려, 상처를 치유하려던 찰나!
대기를 찢어내는 천둥소리와 함께, 사방이 번쩍 새하얗게 물들었다.
하늘을 뒤덮은 시커먼 먹구름에서 군청색 용 한 마리가 지상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파천 복룡창의 다섯 번째 초식, 광룡광림이 베타라의 권능을 머금고 지상에 현현한 것!
-파차차차창!
저승의 냉기를 품은 군청색 용이 강준후의 변이된 육신에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먹구름 속에서 수십 배는 증폭된 내력과 마력이 으르렁거리는 전하의 형태가 되어 강준후의 몸뚱이를 산산이 찢어발겼다.
놈의 검붉은 외골격이 군청색으로 물들며, 놈에게 붙들려 있던 나머지 희생자들의 영혼들을 모조리 해방했다.
“크아아악! 어, 어째서! 어째서 상처가! 재생이! 크아아아악!”
삽시간에 마력과 권능을 모조리 잃어버린 강준후의 입에서 고통 어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패닉에 빠진 놈은 쥐꼬리만큼 남은 본신의 마력을 움직이며, 어떻게든 부서져 나가는 육신을 재생시키려 들었지만.
재생을 담당하던 장은택의 영혼까지 베타라의 권능 아래 안식을 찾은 지 오래였기에.
부서진 몸을 끌어안으며 울부짖는 강준후의 발악은 무의미한 발버둥에 불과했다.
“영혼들을 모조리 해방한 지금! 네놈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 네 목숨으로 태백을 배신한 죗값을 치러라! 강준후!”
천둥처럼 포효한 나는 강준후를 단숨에 끝장내기 위해, 마력과 내력을 어둠달에 응축시켰다.
군청색과 검은색의 와류가 요동치는 창날이 놈의 육신을 흩어버리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포효하듯 타오른 군청색 안광이 내 눈에서 강렬하게 폭사 되며, 시야를 온통 푸르게 물들였다
.
그렇게 막 강준후에게 마무리 일격을 날리려던 그 순간!
“도, 도망치게! 용호!”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고갈된 마력을 채우던 강태백이 괴이한 소리를 내뱉더니, 나와 강준후 사이에 끼어들었다.
“내,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볼테니! 어서 달아나게나! 자네 같은 인재가 이런 곳에서 헛되이 죽으면 안 돼!”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뇌까린 강태백은 결연한 표정으로 강준후를 감싸더니, 대뜸 내 앞을 막아섰다.
…뭐야 이건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