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화
“그들이 말한 것보단 대단치 않은 사냥감이로군. 기대했던 것보단 싱겁게 끝나겠어.”
어둠 속에서 귀화처럼 형형하게 타오르던 장은택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교활하게 빛나는 놈의 시선과 마주하자, 속에서 욕지기와 함께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빌어먹을. 야비한 새X가 멋대로 아X리를 놀리고 자빠졌어.
장은택을 제대로 상대하기엔 상황이 너무도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염룡등천을 활용해, 월홍 공격대원들의 세뇌를 풀어봤자. 그것도 한순간뿐이었다.
놈이 소환한 야수들의 육신에 이글거리는 어둠에 닿을 때마다, 월홍 공격대원들의 정신이 다시 망가져 버렸다.
“으아아악! 저, 저리 가!”
“헤헤헤. 헤헤. 좋다. 반짝이는 거…. 이쁘다.”
정신이 망가진 월홍 공격대원들은 완전히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엉엉 울거나, 기이한 소리를 중얼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한심한 상태가 되어버린 공격대원들을 보호해가며 싸우느라, 나는 온전히 장은택과의 전투에 집중할 수 없었다.
“푸흐흐흐. 언제까지 그들을 보호하며 싸울 수 있을지 보자고.”
-크르르륵!
어둠을 두른 야수들의 전투력은 그리 대단치 않았지만, 잡아도 잡아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장은택의 몸에서 어둠을 두른 야수들이 또다시 튀어나왔다.
음험한 울음을 토해낸 놈들은 등장과 동시에 월홍 공격대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번-쩍!
그런 야수들에게 부패의 권능이 깃든 약식 암룡출동을 터뜨리자.
암록색의 마력이 깃든 외골격의 파편이 음울한 빛을 흩뿌리며, 전방을 휩쓸었다.
내력과 마력의 폭풍우 속에서 어둠의 야수들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제법 위력적인 공격이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나…. 끄르륵!”
약식 암룡출동을 터뜨려, 야수들을 소멸시킨 것과 동시에 운룡보를 운용한 나는 즉시 장은택에게 달려들어 어둠달을 휘둘렀다.
-콰드득!
마력과 내력이 충만하게 깃든 창날이 장은택의 머리를 두 개로 쪼갰다.
음습하게 웃고 있던 재수 없는 얼굴이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져,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어둠달에 깃든 부패의 권능에 노출된 장은택의 육신을 삽시간에 부패하여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살점과 함께, 사방으로 흩뿌려진 시커먼 피가 대지를 끈적하게 물들였다.
“…보자고. 인내심은 사냥꾼의 기본 소양이거든.”
하지만 녹아내린 장은택의 육신은 어둠 속에서 금방 재생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방을 잠식한, 끈적한 어둠 속에서 다시 ‘생성’ 되었다.
어디선가 능글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암흑 속에서 놈의 새로운 육신이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내세울건 재생 능력 밖에 없는 재생괴인 주제에 인내심은 지X.”
“좋을 대로 지껄여 보도록. 어차피 마지막은 내가 자네를 포식하는 결과를 끝날 터이니.”
…그런데. 정말로 ‘재생’ 능력인가?
초월적인 재생 능력은 그동안 상대해온 군주급 마족들의 기본 소양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에.
내게는 재생 능력이 그 어떠한 능력보다도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지만.
지금 장은택이 보여주는 ‘재생’ 능력에선, 뭔가 다른 놈들과는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푸스스스.
그와 더불어, 허무하게 썩어 문드러진 장은택의 ‘이전’ 육신이 증명하듯.
모든 것을 썩히고 타락시키는 바알제불의 권능은 일반적으로 ‘재생’ 능력과 상극이나 다름이 없는 놈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재생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육신을 부패시키고 뒤틀어버리는 타락의 권능을 저렇게나 간단히 극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매서운 공격이지만. 내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네.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
-꾸르르륵!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둠달의 창날에 반으로 갈라진 장은택은 너무도 손쉽게 자신의 몸을 재생했다.
거품이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멀쩡한 모습의 장은택이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빌어먹을!
놈의 몸뚱이에서 느껴지는 마력으로 봐선, 라크슈마처럼 분신체도 아닌 데다.
시간의 흐름이 멀쩡한 것으로 봐선, 마하가라처럼 시간과 관련된 능력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놈은 무슨 수로 육신을 수복해 내는 거지?
“뭘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건가! 이들이 모두 내 야수들의 저녁거리가 되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끄워어어어억!
음험하게 웃는 장은택을 바라보며, 놈이 지닌 권능을 유추하려는 사이.
사방을 끈적하게 휘감은 어둠으로부터, 또다시 어둠의 야수들이 소환되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를 드러낸 놈들은 월홍 공격대원들을 바라보며, 섬뜩하게 으르렁거렸다.
…어쩌지. 이러다간 끝이 없겠어.
뒷맛이 좀 안 좋겠지만, 이들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나?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에 등록된 다른 이들의 영웅시들은 굉장한 파괴력을 지니긴 했으나.
지금 내가 사용 중인 바알제불의 영웅시에 비교하여, ‘정밀함’만큼은 뒤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월홍 공격대원들의 안전을 포기한다면야, 다른 영웅시를 사용하여.
장은택을 포함한 사방을 휘감은 어둠을 한 방에 지워버릴 수 있겠지만….
놈의 술수에 휘말린 것에 불과한 이들의 목숨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영 내키지 않았다.
광범위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라크슈마의 권능 같은 걸 사용했다간.
무고한 월홍 공격대원들 역시 덩달아 압도적인 파괴력에 휩쓸려, 이 세상에서 소멸해버릴 테니까.
-피슛!
한순간 씁쓸해진 입맛을 다시며, 나는 월홍 공격대원들에게 달려든 어둠의 야수들을 향해 어둠달을 휘둘렀다.
내력과 마력이 와류처럼 소용돌이치는 창날이 전방을 휩쓸자, 어둠달을 타고 흐르는 부패의 권능이 야수들을 삽시간에 한 줌의 핏물로 녹아버렸다.
-크르르륵!
눈앞을 가득 채웠던 야수들이 모조리 녹아 사라지는 것도 잠시뿐.
어둠 속에서 또다시 새로운 야수들이 광포한 소리와 함께 소환되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창을 휘두를 수 있을지 보자고. 나야. 자네를 포식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네만. 자네는 상황이 다르지 아마…?”
교활하게 눈을 빛낸 장은택은 여전히 능글맞게 웃으며, 나를 자극해왔다.
놈이 나를 동요시키기 위해 꺼낸 말처럼, 내겐 시간이 그리 많은 상태가 아니었다.
놈들이 준비해둔 공간엔 나와 장은택 말고도, 다른 배신자 산군과 강태백이 같이 말려든 상태였다.
…젠장. 역시 노회한 늑대답군.
엉뚱한 이들을 말려들게 만들어 신경을 분산시키면서.
계속해서 강태백 이야기를 꺼내, 나를 도발한단 말이지.
-피슛!
장은택은 나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다.
놈이 미처 이해할 틈도 없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이 또 한 번 날아갔다.
“이런 공격 따윈 이몸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건가?”
또다시 어둠 속에서 걸어나오는 장은택의 얼굴에 능글맞은 표정이 떠올랐다.
월홍 공격대에게서 시선을 돌려, 나를 노려보는 놈의 눈빛에 비웃음이 깃들었다.
장은택의 얼굴에 비웃음이 진해질수록 정신줄을 놓아버린 월홍 공격대원들의 헛소리가 귓가에 아프게 박혀왔다.
젠장….
“…힘은 곧 빛을 만든다. 그리고 나는…. 힘찬 기분이 든다앗!”
그렇게 지루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는 이의 힘찬 목소리는 처음엔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아스라이 들려오더니, 이내 천둥이 되어 공간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꾸꽈과과과광!
공간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허공이 회오리 모양으로 거칠게 찢어졌다.
나선형으로 비틀려 찢어진 공간에선 눈부신 에메랄드 빛이 화려하게 솟구쳤다.
뜬금없이 에메랄드 빛이라고? …설마.
“쓰읍! 하아~. 싸부님의 익숙한 냄새! 드디어 찾아냈도다!”
공간을 찢어발기고 나타난 녹색 빛 근육질 괴인의 정체는 역시나 김혜옥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쫓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난입해 주었다.
“…고릴라?”
김혜옥의 인상적인 등장에, 시종일관 재수없게 히죽히죽 웃던 장은택의 얼굴에 처음으로 경계심 어린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놈의 지시를 따르는 야수들이 김혜옥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원초적인 광기에 순간적으로 움찔 몸을 떨었다.
“…혜옥이니? 도대체 여긴 어떻게.”
“싸부님이 사라지신 것을 뒤늦게 눈치챈 매니저님이 저더러 싸부님을 찾아오라 하셨어요! 싸부님의 냄새가 나는 균열을 힘껏 후려쳐보니! 역시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더라구요!”
…내 냄새가 그렇게까지 강렬한가?
한 마리 들짐승처럼 냄새로 나를 찾아냈다는 김혜옥의 증언에 나는 살짝 손을 들어, 겨드랑이의 체취를 맡아보았다.
물론, 초인의 육체인데다 관리를 철저하게 했기에 강렬한 냄새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상황을 보아하니. 뭔가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 같네요? 좀 아파보이는 분들도 보이구요.”
그렇게 내가 스스로의 체취를 맡고 있는 사이, 김혜옥은 특유의 녹색 귀화가 일렁거리는 눈빛으로 월홍 공격대원들과 장은택을 바라보았다.
금속마저 손쉽게 뚫어버릴 듯 강렬한 시선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월홍 공격대원들마저 본능적으로 두려움 느꼈는지, 그들의 입에서 광기어린 헛소리가 순간적으로 뚝 멎었다.
“어디서 애완 고릴라를 데려왔는지 모르겠다만. 그래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지….”
“뭐어? 고릴라?! 그쪽이야 말로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 잘 모르겠지만! 글러먹은 쌍판때기의 아저씨에게 그딴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아!”
다시 평정심을 찾은 장은택은 교활한 미소를 띤 채, 김혜옥에게 이죽거리려 들었다.
하지만 놈의 말은 극도로 흥분한 김혜옥의 뾰족하면서도 걸걸한 목소리에 중간부터 뚝 잘려 나갔다.
광기와 폭력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그녀의 천둥같은 목소리는 장은택의 음험한 목소리를 순식간에 묻어버리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글러먹은 뭐?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 제 주제도 모르고 지껄이는군! 물어 뜯어라. 야수들아! 저 무식하게 생긴 덩어리의 살점을 사방에 흩뿌려라!”
《끄르아아아악!》
의문의 모욕을 들은 장은택은 짓씹듯 뇌까리며, 야수들에게 살기어린 명령을 내렸다.
놈의 명령에 월홍 공격대원들 주위를 노리던 야수들이 삽시간에 김혜옥에게 성난 이를 드러냈다.
-파바바밧!
어둠에 휘감긴 야수들의 다리가 순식간에 땅을 박차더니, 김혜옥을 향해 광폭하게 도약했다.
쩌억 벌어진 놈들의 입에선 시커먼 어둠이 톱날 같은 이빨을 타고 흉험하게 흘러내렸다.
그렇게 도약한 야수들이 광폭하게 김혜옥의 근육질 몸을 물어뜯은 그 순간!
“이 귀여운 강아지들이 야수라고? 가소롭다! 홋-호!”
김혜옥이 근육에 살짝 힘을 준 것만으로 야수들의 이빨이 과자처럼 우수수 부서져나갔다.
곧이어 거대한 근육 형태의 녹색 외골격이 그녀의 피부 위에서 든든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외골격을 두른 김혜옥은 야수들보다 더 광기어린 귀화를 흩뿌리더니, 자신의 몸을 물어뜯은 야수들을 양 손으로 붙잡았다.
“우리 싸부님에게 덤벼드는 것들은 찢-고 부순다-앗!”
-뿌좌자자작!
섬뜩한 소리와 함께, 김혜옥에게 붙잡힌 그림자 야수들의 몸뚱이가 그녀의 압도적인 완력을 이기지 못하고 반으로 부욱 찢어졌다.
단숨에 야수들을 찢어버린 김혜옥의 입에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번들거리는 두 눈이 강렬한 안광을 토해냈다.
“방심하지마! 놈들은 계속해서 재생하니까!”
“뭐라구요? 재생형 괴인이라니! 그게 무슨…! 으극!”
기세좋게 야수들을 찢어낸 것도 잠시, 순식간에 찢어진 몸을 재생해낸 야수들은 김혜옥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은 틈을 파고 들어왔다.
이빨로는 단단한 근육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학습했는지, 놈들은 머리 부위를 거대한 둔기 형태로 변형한 채로 김혜옥의 몸을 사방에서 들이받았다.
압도적인 충격량으로 인해, 김혜옥의 느릅나무 밑둥처럼 단단한 무릎이 잠시나마 휘청 꺾였다.
-피슛! 피슛! 피슈슛!
김혜옥의 신형이 살짝 휘청거리는 것과 동시에, 그녀 쪽으로 달려간 나는 어둠달을 휘둘러 야수들의 육신을 흩어버렸다.
시커멓게 꿈틀거리는 놈들의 비틀린 육신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나는 김혜옥의 강인한 팔뚝을 붙잡아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어떻게 되어먹은 놈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다시피 육신을 찢고 부숴봤자. 놈들은 어둠 속에서 금방 재생해버리거든.”
“그렇네요. 정말이지 생긴것처럼 더럽고 치사한 놈들이 아닐 수 없어요! 어쩜 저렇게 생긴 것처럼 노는지 모르겠네!”
어둠 속에서 다시 스르륵 재생된 몸을 나타내는 야수들을 바라본 김혜옥은 짐승처럼 광폭하게 으르렁거리며, 뿌드득 이를 갈았다.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을 본 장은택의 얼굴에 음험한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 고릴라가 아무리 광폭하게 날뛰어봤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네. 자네들은 내 야수들에게 사냥당할 운명이거든.”
“이 비겁한 재생괴인 놈이 감힛! 싸부님을 그딴 눈으로 쳐다 봐!”
장은택의 도발적인 시선과 마주한 김혜옥의 눈에서 폭발할 듯한 녹색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몸을 뒤덮은 근육 형태의 외골격에서 강렬한 빛을 내며, 압도적인 마력을 흩뿌렸다.
말릴 새도 없이, 잔뜩 흥분한 채로 땅을 박찬 김혜옥의 거대한 몸뚱이가 장은택을 향해 발사된 대포알처럼 쏘아졌다.
“이 무식한 고릴라는 학습 능력도 없는 모양이로군. 네년의 같잖은 공격따윈 금방 재생하면 그만인 것을 아직도 모르겠나! 주제를 깨닫게 해줘라. 야수들아!”
《크아아아악!》
비명과도 같은 울음과 함께, 장은택의 그림자에서 시커먼 야수들이 생성되었다.
생성된 야수들은 먼젓번과 같이 거대한 둔기 형태로 머리를 변형시킨 채, 광폭하게 돌진해오는 김혜옥의 몸을 들이받았다.
-쿠콰콰쾅!!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폭음과 함께, 김혜옥의 다리 한쪽이 외골격째로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하지만 다리가 완전히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김혜옥의 눈에 이글거리는 광기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꽈앙!
김혜옥은 광기에 가득 찬 얼굴로 이를 드러내더니, 부러져서 덜렁거리는 다리로 그림자 야수들을 힘껏 걷어찼다.
그러자 야수들의 질긴 몸뚱이가 반으로 꺾이는 것과 동시에, 녹색빛이 번쩍이며 그녀의 부러진 다리가 원래대로 치유되었다.
“니놈들이 계속 재생한다고? 미안하지만 내 특기도 치유거든?! 어라…?”
투지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야수들을 바라보던 김혜옥의 눈에 순간적으로 의문이 떠올랐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엔 녹색으로 물든 채, 기괴하게 변이된 야수들이 힘겨운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끼…끼잉! 낑.》
어찌된 일인지 김혜옥에게 걷어차인 야수들은 재생조차 하지 못한 채로, 무력한 신음만을 토해내고 있을 뿐이었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설마?!
“혜옥아! 놈들을 ‘치유’해봐!”
“…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싸부님이 그러시다니. 한번 해볼게요!”
-쿠콰아앙!
치유의 기운을 듬뿍 머금은 에메랄드 빛 마력이 일렁거리는 주먹이 야수들을 강타하자.
내가 예상한 대로 과하게 주입된 치유의 기운이 놈들의 육신을 기괴한 모양으로 변형시켰다.
먼저 나가떨어진 야수들과 비슷한 꼴이 된 야수들은 제대로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 나, 나의 야수들이? 이, 이게 무슨!”
“역시…. 그렇지 않아도 지나칠만큼 재생력이 뛰어난 놈들에게 강제적으로 치유의 힘을 불어넣으니, 재생력이 폭주해버리는군! 방법을 찾았어!”
치유의 마력에 노출되어, 제멋대로 폭주하기 시작한 재생의 힘이 야수들의 육신을 기형적으로 비틀어 놓아버린 것이었다.
무한대로 재생하는 능력을 지닌 야수들에게 김혜옥이 강제적으로 주입한 치유의 마력은 맹독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의 효과에 따라, 영웅시 『라크슈마』가 잊혀진 영웅의 힘과 권능을 노래합니다.」
「사용자님이 보유한 마력에 따라, 영웅시 『라크슈마』의 효과는 『24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마침내 해결책을 찾은 나는 기존의 영웅시를 해제한 채, 라크슈마의 영웅시를 발동시켰다.
그리고는 싱그러운 생명 그 자체의 권능을 어둠달에 주입해, 야수들의 몸을 꿰뚫었다.
《크르르륵!》
생명의 기운이 주입된 어둠달이 야수들의 몸을 꿰뚫자.
김혜옥이 치유의 마력으로 놈들을 후려쳤을 때처럼, 야수들의 몸이 제멋대로 뒤틀렸다.
-뿌드득!
-까드드득!
해결책을 찾은 이상, 더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 웃은 나와 김혜옥은 녹색으로 물든 어둠달과 주먹을 휘두르며, 시커먼 야수들을 거침없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끼이잉! 낑!》
《깨…깨애액.》
장은택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재생 능력이 봉인된 놈들은 더는 우리의 상대가 아니었다.
눈에서 녹색 안광을 뿜어내는 김혜옥의 손길이 놈들의 육신을 엉망으로 뒤틀었다.
녹색 와류가 휘몰아치는 어둠달의 창날이 야수들의 몸뚱이를 엉망으로 휘저었다.
기괴하게 부풀어 오른 채, 흉측한 종양 덩어리처럼 변해버린 야수들의 모습에 장은택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끝없는 사냥이 뭐 어쨌다고?”
“홋-호! 역시 싸부님이세요. 치사하고 추잡한 수를 쓴 놈에게 합당한 벌을 내릴 시간이 마침내 도래했나니!”
야수들을 모조리 해치운 우리는 위협적으로 목을 우두둑 꺾으며, 장은택에게 다가갔다.
놈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애써 태연한척 당당하게 나를 바라보는 장은택의 시선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뻐억!
“카아아악!”
김혜옥의 거대한 주먹이 장은택의 비실한 몸을 무자비하게 후려치자.
듬뿍 주입된 치유의 기운이 놈의 육신이 영롱한 에메랄드 빛으로 물들었다.
장은택의 몸 곳곳에서 흉측한 돌기들이 엉망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뿌드드득!
“이, 이럴 순 없어! 내, 내겐 그들에게 흡수한 신력이 있단 말…. 커헉!”
사색이 된 채로 현실을 부정하는 장은택의 몸뚱이를 어둠달의 창날이 꿰뚫자.
그렇지 않아도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흉측한 종양이 우두둑 자라났다.
자라난 종양이 놈의 입을 콰악 틀어막자, 장은택의 입에선 꺽꺽거리는 비명만이 허망하게 흘러나왔다.
“숙련된 사냥꾼은 인내력이 뛰어나다고 그랬었지? 얼마나 뛰어난 인내력을 지니셨는지. 한번 시험해봐야겠어.”
나와 김혜옥은 비슷하게 흉험한 미소를 지으며, 장은택에게 성큼 다가갔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놈의 몸뚱이가 공포에 집어삼켜져, 정신없이 부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