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2화
게이트를 안정시키기 위해 접근했던 공격대원의 입에서 당황 섞인 비명이 터짐과 동시에.
허공에 둥실 떠 오른 채, 음울한 보랏빛을 뿜어내던 게이트에서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쿠르르륵!
어디선가 기이한 굉음이 들린다. 싶더니, 탐욕스럽게 입을 쩍 벌리고 있던 게이트가 저절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의 아스팔트를 온통 검붉게 물들였던 몬스터들의 시신이 괴이하게 일그러진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 도대체 갑자기 이게 무슨 일….”
갑작스레 눈 앞에 펼쳐진 괴이한 광경에, 그것을 목격한 공격대원이 의문을 표하려던 찰나.
끔찍한 소리와 함께, 게이트에서 거대한 촉수가 날아들어 그의 머리를 관통시켰다.
-콰직!
아름드리나무보다 훨씬 굵은 촉수에 관통당한 머리가 시뻘건 파편을 대지에 흩뿌렸다.
삽시간에 머리를 잃어버린 공격대원의 손이 텅 비어버린 목 위를 허망하게 더듬었다.
“모, 모두 진형을 갖춰! 상황 A! 상황 A!”
머리를 잃은 공격대원의 몸이 간헐적으로 부르르 경련하며, 바닥으로 쓰러지자.
얼굴을 굳힌 김시형은 고함을 내질러, 바짝 얼어버린 부하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준비했다는 것이, 바로 이 이형의 게이트인가? 심상치 않은 마력이 감지되는군.”
이변을 감지한 강태백은 등에 짊어졌던 등산용 배낭에서 자신의 무기 『번뇌』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마족들과 계속해서 얽히며, 영 좋지 않은 꼴을 자주 겪어서인지. 변이가 일어난 게이트를 바라보는 강태백의 표정은 긴장으로 인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글쎄요. 어쨌든 이탈한 산군 중 두 명과 연루된 일이라니. 절대 평범한 일은 아니겠죠.”
-쿠콰아아앙!
강태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던 사이.
몬스터들의 시체를 모조리 흡수한 게이트에서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꾸워어어엇!》
‘괴물’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놈의 외형은 굉장히 기괴했다.
온몸을 뒤덮은 시커먼 털은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마력의 영향으로 모조리 곤두서 있었고.
고릴라의 그것과 닮은 상반신 아래엔, 마치 문어나 오징어를 연상케 하는 촉수 형태의 다리들이 빼곡하게 돋아 있었다.
“연달아 신종 몬스터의 출현이라니…. 다들! 배에 힘 빡 주고! 포메이션 D를 준비해!”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를 노려본 김시형은 이를 부드득 갈며. 지휘를 내렸다.
아무래도 그 역시, 눈앞에 나타난 이형의 몬스터가 지닌 위험성을 어느 정도 눈치챈듯한 모양새였다.
“옛! 방패조! 앞으로!”
“돌격조! 돌격준비! 다들 이 꽉 깨물엇!”
김시형의 지시가 떨어지자, 월홍 공격대의 조장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그의 지시를 복창했다.
거대한 강화 방패를 치켜든 방패조의 공격대원들은 방패에 마력을 주입해, 공격을 대비했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몬스터를 바라보는 돌격조의 공격대원들은 저마다 무기를 꽈악 틀어쥔 채, 차후에 있을 돌격을 준비했다.
《꾸오오옷!》
-콰르르릉!
월홍 공격대원들을 부리부리한 눈으로 바라본 거대 몬스터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놈의 몸에서 괴이한 보랏빛 마력이 뿜어져 나와. 세상을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
-철퍽!
시야를 가득 메운 보랏빛의 향연에 눈을 깜빡임과 동시에.
별안간 바닥을 디뎠던 발에서 묘하게 불쾌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스팔트 바닥에선 절대 느껴질 리가 없는 질척하면서도 미끈한 감촉.
먼젓번에 체험해본 적이 있었던 감촉이었다.
…빌어먹을. 또냐?
[또다시 왜곡형 게이트라니. 회귀 전엔 그다지 흔치 않은 물건이었는데. 말이다.]
주변을 가득 채운, 익숙하면서도 그리 달갑지 않은 광경에 한숨을 내쉬고 있으려니.
어느새 내 몸에서 빠져나와, 모습을 드러낸 위철용은 찌푸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실을 완전히 뒤틀고 왜곡시키는 놈이기에, 현재 평범한 필멸자들의 정신력 수준으로는 버텨낼 수 없는 곳이거늘 이렇게나 자주 남용하다니….]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본 위철용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아무래도, 이 ‘왜곡형’ 게이트라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위험한 곳인 모양이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먼젓번과 같은 추태(?)를 감상하지 않으려면. 실종된 강태백부터 찾아야겠군.
암석처럼 단단한 인상의 김시형과 서른 명을 훌쩍 넘기는 월홍 공격대도
내 옆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의 무기 『번뇌』를 어루만지고 있던 강태백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꼬꼭! 꼬고곡!”
“…?”
갑자기 종적을 감춘 이들의 행방에 의문을 품은 채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어디선가 인간이 어설프게 닭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때아니게 괴악한 소리를 따라가 보니, 조금 전 창백한 얼굴로 게이트의 이변을 알려왔던 공격대원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기? 이봐요?”
“꼬꼬댁! 꼬곡꼭곡!”
…볼만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 였나?
위철용의 말대로 정신이 왜곡되어 버린 것인지. 공격대원의 상태는 해괴하기 짝이 없었다.
닭과 정신이 적절히 뒤섞이기라도 한 모양인지, 그는 계속해서 홰를 치듯 팔을 퍼득 거리며 연신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돌조각을 입술로 쪼아먹고 있었다.
-화르륵!
머리 주변을 불태운다는 직설적이면서도 살벌한 해결책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선 딱히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기에, 나는 즉시 염룡등천의 구결에 따라 내력을 강력한 양기로 바꾸어 공격대원의 머리를 화르륵 불태우기 시작했다.
“흐, 흐아아악!”
내 손에서 비롯된 양기가 공격대원의 풍성한 머리를 화르륵 불태운 그 순간!
폐부를 쥐어짜는 듯, 비통한 비명과 함께 공격대원의 입에서 사람다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휘둥그레 뜨여진 그의 두 눈에 초점이 또렷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효과를 발휘한 것 같네요. 어때요? 정신이 좀 드십니까?”
“당신은…? 그때 그 손님…. 설용호 산군님이십니까?”
정신을 차린 최상호에게 공격대원에게 안부를 묻자.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던 공격대원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눈에 당혹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저, 저는 분명히 형제들과 닭장에서 평온하게…. 아니지! 게, 게이트는 어떻게 된 겁니까!”
괴이쩍은 소리를 내뱉은 공격대원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너무나 달라져 버린 주변의 풍경에 당황섞인 비명을 토해냈다.
미궁.
게이트의 힘으로 왜곡된 현실은 마치 복잡한 미궁을 연상시켰다.
각종 왜곡된 환상으로 인해, 길은 복잡하게 꼬여져 있었고….
《키르르륵!》
신화 속의 미궁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필수요소인 몬스터들도 눈에 띄었다.
곤충의 가장 강력한 부위만을 기워 붙인 듯한 몬스터들은 왜곡된 미궁 속을 정처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콰득!
“…역시나 이번에도 기록에 없는 타입의 몬스터로군요. 보아하니, 다행히 놈에게 당한 희생자는 없는 듯합니다.”
시커먼 어둠이 일렁거리는 어둠달이 곤충형 몬스터의 머리를 박살 내자.
놈의 시신을 꼼꼼히 조사해본 오닉스 길드의 공격대원, 정희준의 얼굴에 안심한 표정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미궁이 되어버린 거리를 꽤 오랫동안 거닐며, 수많은 몬스터들을 해치웠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 인간을 포식한 개체는 단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곳의 왜곡된 환각은 인간뿐만 아니라, 내부의 몬스터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법이니라. 게이트에서 떠밀려 나온 몬스터 놈들 역시, 어지간히 강한 개체가 아니고서야. 왜곡된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겠지.]
‘하긴, 어쩐지 유난히 무력하게 당해준다 싶긴 했어요.’
지형지물에 몸을 은밀하게 숨긴 채, 빈틈을 노려 벼락같이 급소를 꿰뚫어 버리긴 했지만.
그동안 이곳에서 상대해왔던 곤충형 몬스터들은 괴이쩍게 느껴질 만큼 무력하기만 했다.
어쩐지 심심하다. 싶었더니. 그런 놈들 역시 조금 전의 정희준과 똑같은 상태였던 건가?
“악취가 옅어졌군요. 이쪽입니다. 이쪽에서 저희 공격대원들의 냄새가 느껴집니다. 제법…. 가깝군요.”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냄새를 맡던 정희준은 코를 킁킁거리며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헌터 세계에서도 제법 희귀한 축에 드는 ‘길잡이’ 계열의 특성을 선택한 헌터답게, 그는 냄새를 이용해 미궁의 형태로 왜곡되어 버린 거리에서 동료들에게 향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는 듯 했다.
“이번엔 확실한 겁니까?”
유난히 확신에 찬 정희준에게 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까지 그가 ‘동료들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라고 나를 안내할 때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찢어진 옷조각이나,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배설물의 흔적들 뿐이었으니까….
“…확실합니다. 이번엔 단순히 체취의 흔적이 아니라. 몸에서 풍기는 냄새입니다.”
내 표정이 불신에 찬 것을 본 정희준은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곤 마치 한 마리 사냥개처럼 네 발로 엎드리더니, 계속해서 냄새를 맡으며, 빠르게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개도 아니고. 거 참. 신기한 재주로고]
위철용은 정희준이 지닌 재주가 퍽 흥미로운지.
느긋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내 어깨 위에서 정희준의 행동을 감상하고 있었다.
어째선지 그의 태도는 지금까지의 일어났던 각종 돌발 상황을 접했을 때완 다르게, 묘하게 여유로운 감정이 뚝뚝 묻어나왔다.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묘하게 느긋하신 것 같은데요. 지금이 여유부릴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곳은 철저히 필멸자들이 정신을 뒤틀어 왜곡시키는 것에 특화된 곳이니라. 시간 또한 현실과는 달리 느리게 흐르는 만큼. 이곳처럼 느긋이 정신이 왜곡된 이들을 구경할 수 있는 장소도 드물거든.]
심술궂은 표정을 지은 위철용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기대되지 않느냐? 그 고고한 위철용이 어떤 몰골로 변해 있을지…."
순간적으로 망가진 위철용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위엄을 지키던 이가 망가진 모습이 제법 우스꽝스럽긴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동맹을 맺으러 온 상대 앞에서 망가진 모습을 보여준 것은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쳇. 재미없기는. 이눔아 그렇게 급하면, 조금 더 노오력해서, 조금 더 서둘러서 그 잘난 위철용을 찾아가보든지!"
내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주지 않고, 현재 상황을 진지하게 지적하자.
살짝 기분이 상한 모양인지, 위철용은 조금 토라진 모습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알잖습니까. 저 역시 서두르고 싶지만. 문제가….’
“이런. 또 몬스터가 나타난 것 같군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조금 더 속도를 올리고 싶었지만, 문제는 이곳을 배회하고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특성트리로 강화된 정희준의 후각은 일반적인 사냥개보다 수배는 뛰어나긴 했으나.
그만큼 몬스터들이 풍기는 역한 냄새엔 일반인보다 더 큰 방해를 받았다.
난감한 표정으로 물러난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