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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50화 (250/309)

제250화

“어째. 계속해서 네게 한심한 모습만 보이는 것 같네.”

그다지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은 난장판이 적당히 수습되고 난 뒤.

내게 감사를 표한 양소혜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잠깐이나마 모두의 앞에서 맨몸을 보였다는 수치심보다, 내게 또다시 신세를 졌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부끄럽게 만든 모양이었다.

“…아니야. 네가 유독 대진운이 나빴을 뿐이지.”

양소혜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자.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굉장히 상심한 모양인지, 고개를 떨군 양소혜는 대답 대신 긴 한숨만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어째선지 이 친구는 내가 회귀한 뒤로, 계속해서 영 좋지 못한 상대들과 엮이는 것 같네.

튜토리얼 타워에서 하필 내게 시비를 건 것부터 시작해서.

하급, 중급, 군주급 등 다양한 등급을 자랑하는 마족들과 골고루 엮이기까지.

내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회귀 전의 양소혜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파죽지세로 남부 연합의 수장까지 올라갔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지만.

내가 회귀한 것에 대한 여파인지, 이번 생애에서의 그녀는 그동안 계속해서 분에 맞지 않는 강적들과 맞닥뜨려, 마땅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원 역사에서 그녀가 활약할 기회를 네놈이 전부 다 빼앗아 버린 격이 되었으니 말이지.]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네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위철용이 지적한 대로, 원 역사에서 양소혜가 활약했을 법한 사건들을 모조리 내가 해결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원 역사에서의 그녀는 남부 연합의 구원자 소리를 들으며, 양석필과 버금갈 만큼의 존재감과 젊은 헌터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한 상황이었겠지만.

일개 연합원 상태인 지금의 그녀는 아직도 맹주, 양석필의 자식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내색은 전혀 안 했지만, 양소혜 역시 초조함을 느꼈었겠지.

그래서 무리하게 연합 내부의 불온한 움직임을 조사하려다가, 이렇게나 험한 꼴을 당한 것이겠고.

헌터들이 모인 곳 중에 어떤 곳이 그리하지 않겠냐 만은.

남부 연합은 그중에서도 철저히 실력과 실적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곳이었다.

남부 연합의 유일한 신으로 군림하던 맹주의 자식이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활약을 못 한 양소혜에겐 이번 사건이 자신의 입지를 다질 유일한 기회쯤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유일한 기회는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가 버렸고.

친구이긴 하나, 외부인인 내게 또 다른 짐을 지워준 꼴이 되어버렸지.

[뭘 그리 쓰잘데기 없는 것에 마음을 쓰는 게냐?]

양소혜의 의기소침한 모습이 어쩐지 마음에 걸려,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내게 이죽거리던 위철용이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내게 핀잔을 가해왔다.

[마족 놈들과 엮여, 활약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네놈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진즉 죽어 없어졌을 목숨이다. 적지 않은 짐을 짊어진 놈이 이상한 것에 마음을 쓰기는. 쯧!]

‘…그렇긴 하죠.’

머릿속을 웅웅 울리는 위철용의 일갈에 피식 웃은 나는, 양소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곤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친 뒤,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지금 궁상떨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상황이 난장판이긴 해도. 뒷수습은 해야지.”

“…그래. 현실을 직시해야겠지. 달아난 반대파에게 물어뜯길 여지가 온전히 남아버린 상황이니까.”

애석하게도 지난번과 똑같은 일이 벌어져 버렸다.

지금의 남부 연합의 주둔지엔 마족과 관련된 증거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죽어버린 하누만과 사교도들의 시신은 어째선지 이번에도 깨끗이 증발해버린 상황이었고.

광장 전역엔 놈들에게 살해당한 연합원들의 시신이 곳곳에 널부러진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마치 우리 태백 길드가 처한 상황처럼.

얼핏 보기엔 연합원들의 결정에 불만을 품은 충성파 일당이 끔찍한 테러를 저질러 버린 상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달아난 배신자 놈들은 마족 놈들의 힘을 빌어, 선동을 시작하겠지.”

“…아뇨. 이미 놈들은 지지자들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인가 보니다. 다들 저희를 비겁하다 비난하더라구요.”

대화에 끼어든 양소룡은 음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래도 그는 이곳저곳에 연락을 취한 듯했지만, 이미 반대파들이 손을 써둔 상태라 그리 곱지 못한 대답만 듣고 온 상태인 듯 했다.

“태백 길드도 대충 망했겠다. 남부 연합도 분열되었겠다. 상황이 아주 유쾌하게 돌아가고 있어. 빌어먹을.”

그렇지 않아도 마족들의 농간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질서를 유지하던 5대 길드 간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거기에 지방의 한 축을 담당하던 남부 연합이 무너진 상황이기에, 말 그대로 난세가 열려버리상태였다.

태백과 남부 연합이 차지하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각종 세력들이 그것을 노리고 아귀다툼을 할 것이 분명할 테니까.

때문에 수세에 몰린 강태백과 양석필이 도움을 청할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이는 상황이었다.

“다른 이들의 도움을 구할 순 없어. 연합에 신세를 진 다른 소규모 길드 분들도 있지만….”

“…안됩니다 누님! 그분들이 참여하면 상황은 더욱 더 복잡하게 돌아간다구요!”

양소혜의 혼잣말에, 양소룡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남부 연합에 속하지 않은 소규모 길드들이라면 위기에 빠진 양석필을 도와주기야 하겠지만.

그들이 참여하는 것은 현재로선 득보다 실이 많은 상황이었다.

아무리 신뢰 관계가 굳건하다고 한들, 이빨이 빠져버린 남부 연합과 태백 길드는 그들에게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으로 보일 테니까.

“그래도 오닉스 길드라면 저희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그치들과는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양소룡은 오닉스 길드 이야기를 꺼냈지만.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에게 고개를 가로저어 줄 수 밖에 없었다.

애석하게도 오닉스 길드의 길드장 황태용은 우리에게 그리 유쾌한 관계가 아니었으니까.

내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기도 했고, 강태백의 협박으로 달갑지 않은 계약을 맺기도 했으니.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아, 양석필과 강태백을 말살하려고 들 가능성이 농후했다.

“…‘좋지 않은 일’이라니요? 형님. 오닉스 길드와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약간의 협박과 약간의 공갈이 섞인 계약이라. 그쪽 길드장 입장에선 아니꼬울 만한 것이 있었지.”

“세상에…. 역시 형님께서는…”

양소룡은 ‘계약’이라는 말에 반응해, 의아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도 잠시, 내게서 대강의 설명을 들은 그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찌푸려진 미간을 신경질적으로 꾹꾹 누르는 양소룡의 입에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뭘 그리 궁상맞게 도움이나 요청할 생각을 하고 자빠졌어.”

“그게 궁상맞다뇨. 지금 저희들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걸 아시잖습니까.”

“…무슨 묘안이라도 있는 거야?”

나를 바라보는 양소혜과 양소룡의 얼굴엔 우습게도 똑같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기분 나쁜 말을 들은 것에 대한 반발과 내가 뭔가 묘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그들의 얼굴에 깃들어 있었다.

묘안은 무슨. 헌터들의 세계에서 이런 식의 위기를 탈출할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강태백과 신지현이 똑같은 주제로 고민할 때, 내가 제시해줬던 해결법.

…힘.

“복잡하게 생각할 것 있어? 두 사람 모두, 헌터들의 세계에서 뭐가 가장 중요한지 잊어먹었나봐?”

두 사람의 얼굴에 깃든 표정이 의아함을 품기 시작하자.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사납게 이를 드러내어 호전적인 미소를 지었다.

콰악 움켜쥔 어둠달에 시커먼 내력과 암녹색 마력이 휘몰아치며, 흉흉한 살기를 흩뿌렸다.

화안금정의 효과로 황금빛으로 번들거리는 두 눈에서 광폭한 안광이 새어나왔다.

“힘.”

아무리 그럴싸한 미사여구를 덧붙여 봐야.

전투와 전투 속에서 살아가는 헌터들을 지배하는 가장 근본적인 법칙은 바로, 힘의 논리였다.

양석필이 모두에게 버림받은 이유 역시, 근본적으로는 너무도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그가 자랑하던 남부 ‘연합’ 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잃어버렸다는 것.

“까놓고 말해서. 지금 맹주님이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버린 이유가 뭐겠어. 놈들이 맹주님을 만만하게 봐서 그런 거 아냐.”

“혀, 형님. 가, 갑자기 그게 무슨 무례한….”

“…정확해. 놈들이 시건방지게 아버지를 배신한 것도 아버지가 놈들에게 얕보였기 때문이겠지.”

내 입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직설적인 발언에 양소룡은 크게 당황하여 허둥거렸지만.

그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엔 상관없이 양소혜는 쓰게 웃으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에겐 힘이 부족했어.”

“그래. 너희들에겐 힘이 부족했지. 우리도 힘이 부족했고 말이야.”

“그럼 어떡합니까. 형님.”

“어떡하긴 뭘 어떡해!”

-콰아앙!

양소룡에게 일갈한 나는 마력과 내력이 손으로 옆에 서 있던 고목을 후려쳤다.

엄청난 힘에 의해, 억센 참나무가 비명을 지르며 우직 꺾이더니, 뿌리를 드러내며 쓰러졌다.

주먹을 후려친 것만으로 나무를 뽑아낸 나는 양소룡에게 으르렁 거렸다.

“상처입은 사자를 노리고 달려드는 하이에나에겐….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 밖에 없어. 늙은 사자라면 하이에나들에게 무력하게 사냥당하겠지만, 남부 연합이 무력한 늙은 사자는 아니잖아?”

세력이 다소 줄어들었긴 하지만.

아직까지 남부 연합엔 양석필을 위시한 강자들이 건재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리 태백 길드엔 나와 강태백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어리석을 하이에나 놈들의 목줄기에 이빨을 박아넣을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 아버지도 나도. 이번 일로 상처 입긴 했지만. 그래도 하이에나 따위에게 물어 뜯길만큼 나약해지진 않았어.”

히죽 이를 드러낸 양소혜의 눈에 뜨거운 열기가 이글거렸다.

한때 남부 연합을 이끌었던 젊은 사자의 패기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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