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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46화 (246/309)

제246화

-카가가각!

암갈색 마력을 휘감은 창날이 황금빛 동전을 강타하자. 시퍼런 불꽃이 요란하게 튀어 올랐다.

내력을 머금고 와류처럼 소용돌이치는 아트로포스의 권능이 동전에 깃든 마력을 왜곡시키자, 시커먼 빛 클랜을 상징하는 문양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과연…. 모든 것을 뒤틀어 왜곡시키는 꼬맹이의 권능이라면. 그 비늘쟁이 놈의 비린내 나는 마력 역시, 네 뜻대로 변형시킬 수 있겠지.]

익숙한 이의 마력을 느껴서일까?

아트로포스의 권능이 깃든 암갈색 마력을 바라보는 위철용의 시선이 어쩐지 아련해 보였다.

기억 속에 흘려보낸 추억을 더듬기라도 하듯, 그의 시선은 어둠달의 창날에 고정되어 있었다.

“먼젓번처럼 매개체를 전부 흡수해버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공들여 정성껏 준비한 계획을 엉망으로 뒤틀어버리는 편이 더 재밌잖아요?”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에. 나는 위철용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악동처럼 씩 웃었다.

“그러니까. 여기에 새겨진 마력을 이런 식으로 변형시켜서 다시 묻어두면….”

-파지지직!

시커먼 빛 클랜 특유의 양식으로 새겨져 있는 마법진의 정 중앙에 꺼냈던 동전을 다시 묻자.

마법진의 중심으로부터 시퍼런 전하가 요란하게 솟구치더니, 동전 새겨 두었던 아트로포스의 마력이 마법진 전체를 암갈색으로 거뭇하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쿠르르륵!

동전에서 솟구친 암갈색 마력은 마치 살아있는 점액 덩어리처럼 격렬하게 꿈틀거리며,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을 장악해나갔다.

장악된 마법진에서 시커먼 빛 클랜의 사교도들이 새겨놓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메시지가 대지를 매개체로 삼아, 폐허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뒤틀리고 왜곡되어 완전히 달라져 버린 메시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굉음과 함께 관리실의 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렸다.

“누, 누구냐! 어, 어떤 놈이 감히 그분께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망발을 지껄여!”

요란하게 열린 문 사이로 새까만 정장을 입은 이들이 들이닥쳤다.

내가 마법진을 통해 퍼뜨린 메시지가 적잖이 인상 깊었던 모양인지, 선두에 서서 고함을 지르는 놈의 얼굴은 용광로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런식으로, 과하게 자신의 성좌에게 충성스러운 멍청이들이 걸려든다는 말이죠.”

원래 시커먼 빛 클랜의 사교도들은 마법진의 핵으로 작용하는 동전에, 그들이 섬기는 성좌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도록 만드는 세뇌의 메시지를 새겨두었지만.

나는 아트로포스의 권능을 이용해, 그것에 새겨진 세뇌의 메시지를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들로 바꿔놓았다.

“으으윽! 이 일이 끝나거든. 부디 저희의 더럽혀진 귀를 잘라주십시오! 이렇게나 불경한 소리에 노출된 귀를 달고서, 차마 그분의 뜻을 행할 순 없습니다!”

욕설이 가득한 메시지가 마법진을 타고 퍼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시커먼 빛 클랜에게 세뇌된 것에 불과한 남부 연합원들은 아직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겠지만.

독실하기 짝이 없는 사교도들은 지금 보는 바와 같이,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달려와 주었다.

그것도 단체로 이성이 완전히 마비될 만큼,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로 말이지.

“네놈이었군! 신성모독이다! 이 더러운 이교도놈! 감히 그분을 모욕하고, 그분의 의지가 담긴 신성한 마법진을 훼손해?! 사, 산채로 찢어 죽여주마!”

마침내, 어둠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한 사교도의 눈과 입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어찌나 화가 심하게 났는지, 내게 삿대질하는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식별이 가능할 만큼, 새빨갛게 변한 얼굴에선 후끈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써놨길래. 놈들이 저렇게나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게냐.]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침입자가 마법진 위에 서 있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

분노에 완전히 잠식된 사교도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저 내게 욕설과 위협만을 토해낼 뿐이었다.

그들의 격렬한 반응이 인상 깊었던 모양인지. 위철용은 아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저 뱀과 관련해서 ‘평범한’ 욕설을 좀 적어놨을 뿐이에요. …뭐. 광신도 여러분들에겐 놀라울 정도로 효과가 있었나 보지만요.”

들이닥친 사교도들이 온갖 욕설과 위협을 토해내며, 내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하자.

나는 함정에 걸려든 쥐새끼들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우, 웃어?! 저, 저 발칙한 이교도 놈을 당장 끌어내!”

“넵. 박철심 장로님!”

마침내. 사교도들을 이끄는 장로, 박철심의 입에서 지시가 떨어지자.

우렁찬 대답과 함께, 단단해 보이는 밧줄을 든 사교도들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조금 훼손되긴 했지만. 우리를 비추는 그분의 가호는 여전히 또렷하나니! 저 가증스러운 이교도 놈은 우리에게 손가락 하나조차 대지 못할 것이야!”

아마도 놈들은 자신들이 입구에 깔아둔 『평화역장』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모양이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박철심의 눈빛은 승기를 확신한 채, 번들거리고 있었지만….

-피슛!

어느새 벼락처럼 튀어나온 어둠달이 시커먼 빛을 뿌렸다.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덩치 큰 사내의 미간에 자그마한 구멍이 빠끔 입을 벌렸다.

벼락 맞은 듯 잠시 몸을 움찔거리던 사내의 육중한 몸뚱어리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쿠웅!

“마, 말도 안 돼! 그분의 은총 속에서 이교도 따위가, 공격을 할 수 있다니!”

“아아, 그분의 은총 말인가? 별거 아니던데?”

애석하게도 『평화역장』 역시, 아트로포스의 권능에 의해 완전히 파훼당한지 오래였다.

당황한 듯 말을 더듬거리는 박철심에게 혀를 내보이며, 히죽 미소를 지어줬다.

스킬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나는 놈을 바라보며 화안금정을 발동시켰다.

황금빛 안광이 노골적으로 번쩍이는 눈빛을 마주한 박철심의 낯빛이 파리하게 질렸다.

“어, 어떻게…. 그, 그래! 아무리 그래도 놈은 혼자다. 덮쳐! 한꺼번에 덮쳐!”

박철심은 발작하듯 악역 특유의 진부하기 짝이 없는 대사를 읊조렸다.

그런 대사를 읊는 악역들이 흔히 그렇듯 놈의 얼굴엔 진득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박철심은 황망한 낯짝으로 부하들에게 어서 날 공격하라 독려했지만….

“…아. 아으으.”

안타깝게도 박철심의 수하, 사교도들은 단 한 명도 섣불리 내게 덤벼들지 못했다.

겁에 질린 사교도들은 우리에서 풀려난 맹수 앞에 선 사육사와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전투에는 자신이 없는 시커먼 빛 클랜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그들에게서 발현되었다.

“역시 그 잘나신 ‘권능’ 없인 영 맹탕인 겁쟁이 놈들 답군. ”

평화역장 속에선 산군이란 이름값에 전혀 개의치 않았던 놈들이, 이제야 겁을 집어먹는 모습이란 내게 퍽 희극적으로 보였다.

피식피식 조롱 섞인 비웃음을 흘리며 나는 겁에 질린 박철심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으아아아! 이, 이교도 놈들의 정신억압이 깨졌다!

그 순간, 갑작스레 비상구 너머로 폭음이 연속해서 터졌다.

내 활약으로 남부 연합원들이 세뇌에서 풀려나, 날뛰고 있는 모양이었다.

건물 전체를 섬뜩하게 울려대는 폭음과 비명의 향연에, 그렇지 않아도 공포에 질려있던 사교도들의 표정이 더욱 꽁꽁 얼어붙었다.

-부우우욱!

-끄아아악! 안 돼! 안 돼!

“이, 이놈이라도 처, 처리해야 우리가 살 수 있어!”

마침내 공포에 잠식된 사교도 한 명이 발작하듯 고함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관리실 전체를 우렁우렁 울리는 목청 하나만큼은 봐줄 만했지만, 몸놀림은 그와는 반대로 형편없었다.

동작은 굼떴고, 번쩍 치켜든 검은 바들바들 떨렸다. 나를 노려보는 눈빛도 정신없이 좌우로 부르르 떨렸다.

당연하게도 내게 이따위 어설픈 공격 따위가 통할 확률은 제로에 수렴했다.

-콰드득!

“꺼, 꺼어억.”

그 자리에 꼿꼿이 선 채로 나는 단숨에 내게 달려든 사교도의 목숨을 취했다.

별다른 스킬도 필요 없었다. 그냥 창을 쑥 내민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가슴에 바람구멍이 뚫린 사교도의 눈이 빛을 잃었다.

“흐응, 역시 시커먼 빛 사교도 놈들은 정면에선 영 맹탕이라니까.”

극단적인 평화주의자라는 위명에 걸맞게, 시커먼 빛 클랜의 사교도들은 정신억압 및 조작 계통의 스킬에‘만’ 특화된 놈들이었다.

그렇기에 박철심 같은 시커먼 빛 클랜의 지부장급 간부조차, 순수한 무력은 일반적인 헌터와 크게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시커먼 빛 클랜에 속한 말단 사교도들의 무력은 일반인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에 불과했다.

철썩같이 믿었던 평화역장이 깨진 시커먼 빛 클랜원들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도 무력했다.

“날 잡겠다며? 거기서 뭣들 하는 거야? 아니, 내가 가줄까?”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말하며 위협적으로 발을 앞으로 훅 내디뎠다.

“히이이익!”

그러자 잔뜩 겁에 질린 사교도들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화들짝 놀라, 우르르 물러났다.

하지만 내 행동은 그게 다였다. 놈들을 위협한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씨익 웃기만 했다.

“우, 우릴 놀리는 거냐! 이 간악한 이교도 종자가!

박철심이 수치심에 물든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렸다.

공포와 굴욕감에 사로잡힌 놈의 얼굴에선 더는 가식적인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어이구? 놀리다니. 난 그냥 시간을 좀 끌고 있는 거야.”

그렇게 씩씩거리는 박철심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친절하게 내 의도를 밝혀줬다.

처음엔 그냥 모조리 다 쳐 죽일 생각이었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생각이 변했다.

사교도들을 이대로 죽여 버리는 것보다 박정욱에게 처분을 맡기는 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뭐, 그 양반한테도 빚이 있을 테니까, 이 정도 호의는 베풀어줘도 괜찮겠지.

“시, 시간을 끈다고?”

“밖에서 날뛰는 저 양반들이 이성을 좀 찾은 뒤에, 네놈들과 ‘대화’를 시켜야 하니까.”

어차피 시간을 끄는 것이 목적이니만큼 나는 능글능글한 목소리로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줬다.

그러자 나의 목적을 들은 박철심의 안색이 누렇게 변했다.

“너희들은 언제나 뒷감당 따윈 생각지도 않고 일을 저지른단말이지.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대비하시려고 그러셨어?”

“네, 네놈이 어떻게….”

내 입에서 ’평화역장‘이란 단어가 흘러나온 순간, 박철심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서렸다.

다가온 죽음 앞에서 체념한 모양인지 의연하게 저주를 퍼붓던 놈의 표정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잔뜩 흥분했던 박철심이 경악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현시점에서 평화역장의 정확한 정체를 알고 있는 이들은 오로지 시커먼 빛 교단의 지부장급 인사들뿐일 테니까.

외부인인 내가 그것의 정확한 이름과 파훼법을 운운하는데, 놀라지 않으면 그편이 더 이상할 노릇이겠지.

“흐응. 흥. 흥”

박철심의 의문과 경악에 찬 눈빛을 여유롭게 넘기며, 나는 나직하게 콧노래를 불렀다.

콧노래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둠달에 시커먼 기운이 점점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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