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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45화 (245/309)

제245화

머뭇거리던 양석필이 마지못해 알려준 정보대로, 과천의 경마 공원 폐허에 도착하자.

달빛이 드리운 드넓은 공원의 폐허 위로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천막의 물결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정도 숫자라니. 정말로 남부 연합 전체가 양석필을 배신해버린 걸까요?”

[모름지기 난세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친형제조차 거리낌 없이 배신하는 족속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니라. 그들도 달콤한 이권 앞에 눈이 멀어버린 것이겠지.]

폐허 위에 끝없이 늘어서 있는 천막의 숫자로 미뤄보건대.

강태백이 말한 것처럼, 아무래도 남부 연합 전체가 양석필에게 등을 돌린 모양이었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남부 연합 특유의 새하얀 천막 사이사이엔 각양각색의 문양이 그려진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낯익은 깃발을 발견한 위철용은 끌끌 혀를 차며, 차디찬 냉소를 지었다.

[알량한 이익을 위해, 의를 저버린 놈들에겐 합당한 죽음을 안겨줘야 하거늘…. 네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말을 지껄인 게야?]

서늘한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던 위철용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의와 협의 세계에서 살았던 그에겐, 이익을 위해 의형제를 배신한 놈들을 ‘설득’한다는 사실이 상당히 고깝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양석필이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간곡하게 부탁하기도 했고. 뭣보다…. 수상하잖아요?”

[수상하다고?]

“아무리 수도권 진출이 중요하다지만, 양석필을 그토록 따랐던 이들이 아무런 반발 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그에게서 등을 돌릴 리가 없잖아요?”

[그거야 모를 일이지. 그가 모르는 사이에 배신자 놈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논의가 오갔을 수도 있지 않으냐.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게냐.]

위철용은 여전히 불신 어린 표정으로, 비웃듯 입꼬리를 고약하게 비틀었지만.

나는 신중한 표정으로 천막 사이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남부 연합원들을 살펴보았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뭔가 수상한 것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거든요.”

미래를 엿보는 아트로포스의 신물을 흡수한 탓일까?

위철용의 냉소 어린 반응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묘한 확신이 들었다.

“…빙고.”

그렇게 한참 동안 남부 연합의 주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으려니.

나부끼는 새하얀 깃발 아래에, 부자연스럽게 덮인 흙더미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묘하게 낯익은 마력을 느낀 나는 하얗게 웃으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희미한 달빛과 어둠을 벗 삼아, 은밀하게 목표로 삼았던 장소까지 다가간 뒤.

나는 번개처럼 손을 휘둘러, 근처에 돌아다니던 경비의 혈도를 짚었다.

“…!”

삽시간에 혈도를 제압당한 경비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리자.

어둠 속에서 몸을 드러낸 나는 새하얀 깃발 아래, 부자연스럽게 덮인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것 봐라. 어쩐지 낯익은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누군가 급히 메운 듯, 부자연스럽게 쌓인 흙무더기를 파헤치자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도 선명하게 번쩍이는 금빛 동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주 잡은 두 손이 새겨진 금빛 동전에서는 사교도 특유의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미치광이 평화주의자 놈들이 개입한 것이었군.]

“뭐. 사람의 정신을 가지고 노는 데 도가 튼 놈들이니까요.”

동전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정체는 바로, 시커먼 빛 클랜 사교도들의 것이었다.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더니. 이런 곳에 숨어있었군 그래.

“그 누구보다 사람의 정신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놈들이니까요.”

다른 사교도 클랜과는 달리, 시커먼 빛 클랜의 주특기는 사람의 정신을 조작하는 것이었다.

먼젓번 고슴도치 섬 게이트에 『평화역장』을 사용한 것처럼. 그들은 성좌의 축복을 받은 금화를 바닥에 묻어, 그 일대에 강력한 정신 억압을 가하는 방식을 선호하곤 했었다.

아무래도 매개체를 통해 성좌의 힘을 그대로 투영하는 방식이었기에,

남부 연합의 굳건하면서도 끈끈한 신뢰 또한, 놈들의 농간 속에 꺠어 져버린 모양이었다.

“명색이 성좌의 힘을 투영한 것이니, 그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겠죠. 헌데, 이런 동전까지 발동시켜놨을 정도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해놨단 소린데 말이죠….”

평화역장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삼 주 이상 꾸준하게 의식을 계속해서 행해야만 했다.

들어가는 제물의 양도 만만치 않았고 매개체인 금속동전 또한 막대한 양의 포인트를 지불해야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기억이 발목을 잡은 꼴이었군.

[양석필의 ]

위철용은 흥미롭다는 듯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끌끌 웃었다.

“회귀 전의 역사에선 양석필이 기습적으로 당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평화역장이 펼쳐질 정도로 시커먼 빛 놈들이 오랫동안 침투해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 역사가 변하긴 변하나 보네요.”

[호오? 생각보다 태연한 기색이로구나, 이것도 평화역장의 영향력 때문인가?]

역사가 변한 것을 눈치채고도, 나는 이번엔 별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역사가 변했노라 중얼거리는 모습에 위철용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왔다.

“역사가 변한 것 정도는 전에도 겪었지 않습니까.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뭣보다 대응법만 알면 평화쟁이 놈들만큼 상대하기 쉬운 사교도 집단도 없잖아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체체파리 클랜을 대신해 이곳을 차지한 사교도가 다른 곳도 아닌, 시커먼 빛 클랜이라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내가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 평화역장만 해결한다면, 시커먼 빛 클랜 놈들을 해치우는 일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니까.

근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더라?

“…….”

낭패다.

평화역장이 영향력으로 인해, 여전히 ’폭력적인‘ 사고가 강제되고 있어, 평화역장의 매개체를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회귀 전의 내 지식들은 죄다 평화역장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에만 치중되어있었다.

때문에, 사고가 강제되는 지금 나는 그것을 처리할 방법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던 내 낯빛이 파리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끄응. 이거 어떻게 부? 박? 아니, 해결해야 할까요?”

하는 수 없이 위철용에게 그 방법을 물으려는데,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뭐야. 아직 정신억압이 풀리지 않아, 동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게야? 한심하긴.]

위철용은 그렇게 끙끙대는 내게 놀리듯 눈을 흘겼다.

한심함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는 그의 눈은 장난스럽게 휘어있었다.

“갸갸에 관련해선 이제 잊어드릴 테니 좀 알려주시죠?”

[크아아악! 불의의 습격이었느니라. 아, 아니 오침 도중의 잠꼬대였다니까!]

머릿속에 밀려 들어오는 수치스러운 흑역사에 위철용은 펄쩍 뛰어오르며 변명하듯 발끈했다.

…역시 위철용이 정신억압 운운하며 한심하다 쏘아붙일 땐. 역지사지를 느끼게끔 그에게도 흑역사를 되새기게끔 도와주는 것이 특효약인가 보군.

앞으로도 종종 비슷한 방식을 써먹어야겠어.

[크흐흠! 그럼. 방도를 알려줄 테니 그, 그 기억에 대해선 깨끗하게 잊어 줄 테냐?.]

얼굴을 벌게진 위철용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미심쩍은 눈빛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던 위철용은 내게 평화역장을 해결할 방법을 귀띔해주기 시작했다.

[‘폭력적인’ 방법 말고도 그걸 파훼할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느니라. 그냥 꿀떡 삼키면 그만이야.]

“…이걸 삼키라고요? 정신억압의 매개체를?”

[따지고 보면, 그놈도 일종의 영단, 아니 정수? 영약? 끄응. 어쨌든 먹어서 나쁠 건 없는 놈이니라, 막대한 신력이 깃들어 있거든.]

“먹으면 탈 날 것 같은데….”

[괜한 걱정 따윈 하덜덜 말거라. 네놈에겐 본존의 심법이 있지 않더냐? 용마저 복종시키는 심법이거늘, 뱀의 힘 따윈 거뜬히 흡수할 수 있느니라.]

위철용의 자신만만한 말에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먼젓번 화안금정을 섭취했을 때 느꼈던, 불안한 기분이 다시금 몽골몽골 샘솟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별달리 좋은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그의 말대로 매개체를 입으로 가져가 눈을 질끈 감고 꿀떡 삼켰다.

-꿀꺽.

“…!”

금화가 목구멍으로 넘어간 순간, 그것은 마치 물에 들어간 설탕처럼 사르륵 녹아버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하면서도 시원한 청량감이 몸 전체를 가득 채웠다.

몸속의 내력이 부글부글 뜨겁게 들끓으며 청량한 기운과 반응했다.

-콰아앙! 콰아앙!

뜨겁고 서늘한 기운이 몸속에서 뒤엉키며 계속해서 폭발하며 계속해서 세를 늘렸다.

오직 나에게만 들리는 폭발음이 머릿속을 웅웅 울렸다.

전신이 알 수 없는 활력으로 가득 찼다.

마치 종일 푹 숙면을 취한 것처럼 활기찬 기분이 샘솟았다.

“이거…. 여기 몇 개나 더 있어요?”

게이트 관리소 전체를 둘러싸기 위해선 매개체 하나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 증거로 매개체 하나를 흡수한 뒤로도 머릿속을 억압하던 정체 모를 기운은 살짝 옅어졌을 뿐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억눌렸던 폭력성과 투지가 불끈 치솟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위철용을 바라보며 가볍게 입술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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