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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44화 (244/309)

제244화

“용호 씨를 생각하는 마음은 갸륵했던 것 같긴 한데….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아요.”

“…뭐. 그들 나름대로 필사적이었을테니. 남길 수 있는건 다 남겼겠지만. 으음….”

사교도들이 이곳에 남겨둔 자료는 실로 방대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양을 자랑했다.

게다가 현대적인 방식보단 아무래도 고전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그들답게, 굳이 모든 자료를 문서화하여 보관해놓은 상태였기에….

나와 이세영은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서류의 산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지현 씨에게 연락을 넣던지 해볼게요. 아무리 저라고 해도, 혼자서 이걸 다 살펴보려면 못해도 일주일은 걸릴 테니까요.”

정보 단체 소속답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남다른 재능을 과시하던 이새영이었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서류의 산을 분석하는 것만큼은, 그녀에게 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반쯤 죽은 눈으로 서류의 산을 살펴보던 이세영은 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 지현 씨? 네네. 짐작하신 것처럼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신지현과 통화를 나누는 이세영은 계속해서 서류 더미를 곁눈질하며, 한숨을 쉬어댔다.

신지현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그녀의 눈빛은 마치 잔업과 야근을 눈앞에 둔 샐러리맨처럼 시커멓게 죽어 있었지만.

통화에 열중하는 이세영의 목소리에선 그녀답지 않게, 묘하게 친밀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세영이 다른 이에게 저토록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낼 줄이야.

그동안 이런저런 일에 같이 엮이면서, 신지현과 친해지기라도 한 건가?

내 앞에선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표출해 내는 이세영이었지만.

정보를 다루는 ‘길잡이’답게, 그녀는 그동안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을 대할 땐.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숨긴 채, 가명까지 사용해가며 철저히 ‘영업용’ 미소만을 보여주곤 했었다.

그랬던 그녀가 신지현과의 통화에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자.

어쩐지 이세영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것 같아, 묘하게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네네. 그렇게 해주시면 될 것 같고…. 네? 용호 씨에게 할 말씀이 있으시다구요?”

그렇게 이세영의 새로운 모습에 새삼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으려니.

신지현과 한창 통화에 집중하고 있던 그녀의 눈에 순간적으로 이채가 스쳤다.

“아아. 굳이 바꿔드릴 필요는 없고…. 진짜요? 네네. 그럼 그렇게 전해드릴게요.”

의외의 말을 들었는지, 신지현의 말을 경청하던 이세영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린 채, 핸드폰을 귓가에서 내린 그녀는 내게 묘한 정보를 전해왔다.

“저기. 용호 씨? 지현 씨가 지금 당장 사무실로 와주실 수 있냐는데요? 남부연합과의 동맹에 관해 이야기할 게 있으시다고….”

*****

이세영에게 뒤틀린 운명 클랜이 남긴 서류들의 뒤처리를 맡긴 뒤.

나는 신지현의 요청에 따라, 황급히 그녀의 사무실로 향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남부연합의 ‘영웅’ 아니신가!”

폐허 속에 숨겨진 사무실의 문을 열어 젖힌 순간.

좁은 사무실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호쾌한 고함이 귓가에 들려왔다.

곧이어 거대하고 육중한 근육 덩어리가 내게 달려들어왔다.

“먼젓번 튜토리얼 타워에서 조카놈이 신세를 졌다더군! 자네에게 두 번이나 도움을 받다니! 이거 너무 고마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한달음에 내 쪽으로 달려온 남부연합의 수장, 양석필은 다짜고짜 포옹을 시도해왔다.

거대한 근육질 팔이 내 몸을 으스러뜨릴 듯 거칠게 휘감았다. 돌처럼 단단한 대흉근이 내 몸을 거세게 압박해왔다.

“…오랜만입니다. 별일 없으셨지요?”

어색한 미소를 지은 나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며, 양석필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반가움의 정도가 지나쳤던 모양인지, 그는 다시 나를 와락 껴안았다.

덕분에 중년 아저씨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스멀스멀 내 콧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고슴도치의 가시를 연상케하는 거칠거칠한 수염이 정신없이 얼굴을 자극해왔다.

“그쯤하시지요. 어르신.”

실신할 것 같은 압박감에 스멀스멀 불쾌한 감정이 피어오르려던 순간.

시야를 가득 메운 근육의 향연 뒤편에서 강태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미안하네, 너무 반갑다보니….”

강태백의 말에 화들짝 놀란 모양인지.

멋쩍게 웃은 양석필은 끌어안았던 나를 순순히 놔 주웠다.

덕분에 시야가 순간적으로 확 트이며, 사무실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미처 씻을 틈도 없었군. 본의 아니게 실례를 했어.”

악수를 끝마친 양석필은 코를 씰룩거리며 제 몸의 냄새를 맡더니, 이내 민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나저나. 동맹이라니…. 남부연합 쪽도 사정이 여유로운 편은 아닐 텐데, 괜찮겠습니까?”

“그래, 우리라고 해서,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 자네 짐작대로 아주 바빴고 말고.”

내가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자. 양석필의 안색이 빠른 속도로 어둡게 변했다.

…어쩐지 그의 몸에서 풍기던 피 냄새와 땀 냄새가 심상치 않더라니,

지방에 멀리 떨어진, 남부 연합이라고 한들.

서울을 휘감은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로울 리가 없었다.

먼젓번의 사건으로 인해, 세력이 많이 약화되기도 했고.

세력이 약해진 길드는 다른 이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내 시선이 닿은 양석필의 몸 역시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단단한 근육 곳곳엔 갈라진 상처들이 가득했고, 그의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분들은….”

“신경쓰지말게, 그들은 벗을 위해 싸우다 명예로운 최후를 맞았으니 말이야.”

신지현이 급한 마음에 서둘러 장례절차를 진행한 모양인지.

사무실 한 구석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관들이 놓여 있었다.

신지현과 다른 이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으로 미뤄보건대. 이들은 남부 연합을 대표하는 풍월 공격대의 일원들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풍월 공격대원들이 이렇게 많이 목숨을 잃었다고?

“남부 연합에서 이런 희생을 감수하시다니….”

“그만, 그런 동정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지 말게. 우정과 신의를 위해 용맹하게 싸운 이들이야.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이들의 죽음을 추모해주게나.”

목숨을 잃은 풍월 공격대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려 했으나,

양석필은 어느새 장례절차를 위해 다가온 인사팀 직원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하, 하지만…. 이분들이 굳이 희생할 것 까진!”

“어허! ‘굳이’ 라니! 이들은 그들이 평소에 원하던 대로 전장에서 명예로운 최후를 맞은 것 뿐이야! 더는 그들의 명예를 무시하지 말게!”

유감과 감사를 표하는 인사팀 직원들을 모조리 쫓아낸 양석필은 살짝 속이 타는 모양인지.

구석에 놓인 생수병을 집어들곤 통째로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명예로운 최후라.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겁니까?”

“별거 아니야. 자네들이 위기에 쳐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오던 도중. 배신자 놈들과 맞붙었을 뿐이네. 마침. 놈들이 무고한 이들을 습격하고 있지 뭔가. 고작 돈을 위해서 말이야!”

말끝을 흐린 양석필이 착잡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빼어 물었다.

척봐도 독해보이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그에게선, 흩날리는 담배 연기처럼 애처로울정도로 허무한 감정이 엿보였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놈들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말이지. 그 배신자놈들은 지독하게도 강해졌더군.”

양석필이 피운 담배 연기는 담배의 생김새처럼 굉장히 독했다.

그리고 울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선, 담배 연기만큼 독한 슬픔이 느껴졌다.

하기야. 먼젓번의 사건 때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도 못했을 테니….

수많은 인원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말로는 대범한 척 하고 있으나, 계속해서 식구들이 목숨을 잃는 것이 양석필을 못내 착잡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악마 같은 놈들이었네. 고작 돈. 그깟 종이 뭉치를 위해. 빈민가 전체를 쓸어버리려 하다니….”

애초에 역전의 용사인 양석필이 남부 연합을 이끌고 지방으로 향했던 것도,

헌터들 간의 이권 분쟁에 휘말려,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는 것이 달갑지 않아서였다.

풍월 공격대원들이 목숨을 잃은 것도 문제지만.

변절한 태백의 산군들이 고작 돈을 위해, 민간인들을 학살하려 했다는 사실이 그에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놈들을 이끄는 산군들 역시, 한때 양석필의 ‘전우’였던 인물들이니까.

“그래도 의리와 낭만을 알던 놈들이 어쩌다 그렇게 변했을꼬….”

길게 한탄한 양석필은 생수병을 완전히 비웠다.

“원래는 자네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정도로 끝나려고 했네만….”

“…형님.”

“무도한 놈들이 고작 돈 몇푼을 위해, 짐승처럼 구는 모습을 도저히 두고 볼 순 없지!”

-콰앙!

분개한 양석필은 온 힘을 다해, 책상을 내려쳤다.

놀라운 괴력으로 인해 단단한 원목 책상이 움푹 들어갔다.

“우리는 그 무도한 놈들을 척결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우겠네! 죽은 형제들도 그것을 바랄 게야!”

분통을 터뜨린 양석필은 씩씩거리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지만.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던 강태백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뭐…. 형님이 우리와 똑같은 신세가 되지만 않았다면 대단히 믿을만한 발언이지만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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