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화
-파지직! 파지직!
…뭐지?
심상 세계에서 빠져나옴과 동시에, 어쩐지 심상치 않은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왜인지 불길한 예감에 절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굳게 감겼던 눈이 저절로 번쩍 떠졌다.
그렇게 눈을 뜨자마자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으아아아. 용호 씨! 눈을 떠요! 제발! 눈 좀 떠보라고!”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반쯤 정신을 놓고 흐느끼는 이세영의 얼굴이었다.
주변의 분위기와 몸 이곳저곳에 붕대 특유의 거친 압박감이 느껴지는 것으로 짐작해보건대.
내가 정신을 잃어버린 사이에, 이세영은 그녀 나름대로 필사적인 응급조치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갑자기 픽 쓰러져 버린 꼴이니.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은 또 얼마나 놀랐겠어.
그러니 깜짝 놀란 이세영이 저렇게 전선 같은 흉흉한 걸 들고 설칠만도….
응? 잠깐만. 뭘 들고 설친다고?
-빠지지직! 빠지지직!
…이 정신나간 아가씨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이세영의 손에 들린 물건은 어째선지 아름다운 굵기를 자랑하는 두 줄의 전선이었다.
도대체 뭔 짓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선의 거칠게 잘린 단면엔 딱 봐도 위험해보이는 전하가 심상치않은 소리를 내며 번쩍이고 있었다.
“세, 세영 씨? 지금 뭐 하시려는….”
어쩐지 느껴지는 불길한 예감에, 슬쩍 몸을 일으킨 나는 이세영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번-쩍!
반쯤 정신줄을 놓은 이세영은 대답대신, 다짜고짜 쥐고 있던 전선을 내 가슴팍에 꽂아버렸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순식간에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머릿속을 강제로 마비시키는 짜릿한 충격과 함께, 숨이 턱 막혀왔다. 입에서 허연 연기가 새어나왔다. 펄떡이던 심장이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뚝 멎었다.
-후오오옹!
이세영의 삽질과 만행으로 내 심장이 순간적으로 정지하자.
위기를 감지한 바알제불과 아트로포스의 신물이 정지된 심장 속에서 서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공명하는 두 가지 신물에서 암갈색 마력과 암녹색 마력이 교대로 뿜어져나와, 멎어버린 심장에 활력을 주입했다.
마력의 움직임에 반응한 내력이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괴사한 조직들을 재생시켰다.
-두근! 두근!
“흐허헉! 커헉! 카학!”
세가지 기운의 힘으로 멎었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기 시작하자.
허옇게 물들었던 시야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연기가 모락모락 새어 나오던 입에선, 마치 비명이라도 지르는 듯 막혔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요, 용호 씨? 으허허헝 용호 씨이이이!”
그렇게 갓 잡아올려진 물고기처럼 몸을 퍼덕이고 있으려니.
그 꼴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세영은 펑펑 눈물을 흘리며, 내 품 속으로 파고 들었다.
*****
펑펑 울며,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던 이세영이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자.
나는 아쉬워하는 그녀를 억지로 떼어낸 뒤,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전 다급한 마음에…. 저기 꽂혀있던 전선을…. 저희 가문 비전의 치료법이거든요 그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압이 얼만지도 모르는 걸. 제 가슴에 꽂았다고요?”
“…죄송해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에 꽂혀있던 전선을 사람에게 갖다 대?
그게 가문의 비전 치료법이라니, 대체 이진욱 그 아저씨는 딸에게 뭘 가르친 거야?
이세영의 범상치 않게 괴상쩍은 사고방식에 어쩐지 머리가 아파졌다.
거기에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자각한 건지, 지나칠 정도로 시무룩해지는 그녀의 모습에 두통이 더욱 강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끄응. 그것보다. 매니저님께 지원을 요청하셨다구요?”
“…네. 보고드릴 것도 있고, 안쪽에 이것저것 자료가 많더라구요.”
“자료요?”
“네에. 그동안 제가 조사하고 있었던 나머지 사교도 클랜의 정보부터 시작해서. 마족들과 손을 잡은 세력들의 정보까지…. 쓸만한 것들이 많던데요? 마치 저희를 위해 준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기가 말해놓고도 뭔가 의아함을 느낀 것인지. 이세영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를 잠시 내버려둔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직! 파지지직.
아트로포스의 권능을 폭발시킨 일격에 휩쓸린 지하실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콘크리트를 덧바른 벽은 모조리 무너진 채로 흉한 철골을 드러내고 있었고,
지하실의 바닥이란 바닥은 메마른 논바닥처럼 흉측하게 쩍쩍 갈라진 채, 전선과 철근들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부서진 전등들에선 시퍼런 전하를 머금은 스파크가 번뜩이며, 어둠을 섬뜩하게 밝히고 있었다.
“…안전하게 피해 있으라니까요.”
폐허가 되어버린 지하실에서 나를 꼬옥 붙들고 있는 이세영의 몸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다.
계단 위쪽으로 대피하라는 지시를 절반만 이행했는지, 아무래도 그녀는 마지막 순간 들려온 굉음에 더는 참지 못하고 지하실로 난입해 폭발에 휩쓸린 듯한 행색이었다.
차돌처럼 단단하고 느릅나무처럼 굳건한 이세영의 육신 이곳저곳엔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지고 찢어진 상처들이 가득했다.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그녀의 얼굴엔 피부가 통째로 익어버린 듯, 짓물러진 화상 자국들이 곳곳에 얼룩처럼 남아있었다.
“으아아앙! 어떻게 용호 씨을 내버려 두고 저 혼자 살자고 도망쳐요! 용호씨를 죽이고 나도 따라 죽으면 모를까!”
이세영의 처참한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껴, 미안한 마음에 한 소리였지만.
그 말이 그리도 서럽게 느껴졌는지. 내 얼굴 위로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더욱 굵어졌다.
“그래도 그렇지 무모한 짓을….”
이세영의 육신에 새겨진 상처들은 하나 같이 바깥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무너지는 지하실 아래에서 그녀는 그대로 내 몸을 감싼 채로 엎드려, 파괴의 후폭풍으로부터 나를 지켜준 듯했다.
게다가 아직까지 상처가 가득한 것으로 봐선, 이세영은 자신도 그리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도 내 상처 입은 몸뚱어리를 치료하는 것에 전념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전기로 몸을 지지는건 좀 그랬지만
“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스토커 기질이 조금 무섭긴 하지만, 이세영이 보여준 헌신적인 희생이 분명 감동할만한 성질의 무언가였다.
덕분에 코끝이 찡해지며, 괜시리 가슴이 먹먹해졌다.
뭔가 멋들어진 말로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벅차올라, 내 입에선 생각했던 것만큼 멋진 말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영 멋없는 말을 아무렇게나 지껄이며, 나는 멋쩍은 손놀림으로 이세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내게 처음으로 칭찬을 들은 탓인지, 이세영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걱정을 품은 채로 찌푸려졌던 미간이 온기를 머금고 살짝 풀어졌다.
고갈된 내력이 완전히 돌아올 때까지, 나는 그렇게 기대온 이세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끄응차.”
-우두두둑!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내력이 돌아오자,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이세영 덕분에 육신의 상처는 대부분 회복된 상태였지만 몸을 일으키자, 뻐근한 고통과 함께 흡사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지하실 전체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세상에! 아직 치유가 덜 된 부위가 있나 봐요! 가만있어 보세요. 이 전기 충격이면 그냥…!”
“그 흉측한 거에 언제까지 집착하실거에요? 괜찮으니까. 세영씨 몸이나 더 돌보세요.”
내 몸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자.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세영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녀의 손엔 또다시 시퍼런 전하가 꿈틀거리는 전선이 들려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이세영의 눈에서 심상치 않은 열망이 번뜩이자, 나는 부드럽게 손사래를 치며 흥분한 그녀를 만류했다.
…설마 이 아가씨. 진짜로 저걸 또 내 몸에 지져보고 싶어서.
일부러 저러는건 아니겠지?
“제 상처요? 이 정도 생채기쯤은 끄떡도…. 아얏!”
내 말에 이세영은 시선을 돌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찢어지고 갈라진 상처들과 화상으로 짓무른 상처들을 바라본 그녀는 짐짓 아무것도 아니란 표정을 지었지만.
피식 웃은 내가 상처를 슬쩍 건드리자. 대범한 척 하던 이세영의 입에서 고통 어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거봐요. 아프잖습니까. 세영 씨도 좀 쉬세요. 저는 말씀하신 ‘자료’를 좀 뒤져볼 테니까요.”
아무래도 아트로포스와 그 신도들은 엄청난 것들을 안배해둔 모양이었다.
부서진 파편 사이로 보이는 서류의 양은 언뜻 보기에도 엄청난 양인 모양이었다.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운 나는 자료가 꽂혀있는 책장을 향해 다가갔다.
“네, 맞아요. 일단 저도 전기 충격으로 치료를…. 흐갸갸갹!”
“아니 그거 좀 내려 놓으시라니까….”
정말로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인지.
이세영은 말릴 새도 없이 그 흉측한 전선을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몸에다 꽂았다.
살이 타는 냄새와 기묘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어느새 이세영은 자신의 몸을 툭툭 털고 자리에서 가볍게 일어났다.
-파지지직
“후우 개운하다! 보셨죠? 효과가 있다니까요. 괜히 아버지께서 급할 땐 전기로 지지라는 말씀을 하시는게 아니라니까.”
간헐적으로 파직거리는 전하를 털어낸 이세영은 한껏 상쾌해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는 그녀의 모습에서 왜인지 김혜옥의 실루엣이 겹쳐지는 듯 했지만.
애써 고개를 털어낸 나는 자료를 꺼내들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째. 내 주변엔 비정상적인 인간들만 꼬이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착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