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
“크으윽! 거짓된 선지자들은 추앙하는 어리석은 족속들은 스스로의 업으로 멸망할지니….”
복부를 꿰뚫은 창날을 붙잡은 한중식의 손에서 석류알 같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광기 어린 목소리로 저주를 읊조린 그는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손을 타고 흐르는 피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그의 눈동자엔 이글거리는 광기만이 내비치고 있었다.
“거짓된 선지자는 개뿔. 꼭 사이비 놈들이 이상한 말을 지껄인다니까요. 그 거짓된 선지자라는 사람이 너보단 훨씬 낫더라.”
-콰드득!
“나를 이겼다고 자만하느냐? 내 입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야! 흐하하. 흐하하하하!”
나를 노려보는 한중식의 광기 어린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중식을 응시하던 이세영은 서늘한 살기를 흩뿌리더니.
놀라운 괴력을 발휘하여, 놈의 턱을 손으로 감싸 쥐곤 그대로 뿌드득 뽑아 버렸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한중식의 턱뼈가 그대로 탈골되어 흉하게 덜렁거렸다.
“턱을 뽑아버리시면 어떡합니까. 일부러 심문하기 위해 살려둔 건데.”
“걱정하지 마세요. 인간의 몸이라는 게 신비하기 짝이 없어서. 이 정도 부상쯤은 가볍게 해결할 수 있거든요. 이걸 요렇게 다시 끼워주면!”
-빠각!
내 타박 아닌 타박에, 이세영은 가볍게 히죽 웃더니.
탈골 된 채로 흉하게 덜렁거리던 한중식의 턱을 다시 끼워 맞췄다.
물론, 곱게 끼워 맞춰준 것은 아닌 모양인지.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섬찟하게 울려 퍼졌다.
“허흑! 허흐흑! 이, 이런다고 내가 네놈들에게 영양가 있는 말을 털어놓을 줄 아느냐!”
“따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확실히 이 아가씨도 정상은 아니라니까.
온몸에 피를 덕지덕지 묻힌 채, 끔찍한 고문을 자행하면서도 밝게 웃는 이세영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할 말이 사라져버렸다.
고개를 휘적휘적 흔들어 솟구친 잡념을 털어낸 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삼키는 한중식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이봐. 다 끝난 마당인데. 좋게좋게 가자고.”
“네놈이 감힛! 이몸이 이대로 끝날 줄 알았더냐! 보아라! 위대하신 분께서 내게 선사하신 진정한 힘을! 내가 바로 그분을 지키는 방패요. 적들의 몸을 꿰뚫는 창이자. 네놈의 파멸을 알리는 날갯짓 소리이니라!”
-쩌적! 쩌저저적!
피를 토하듯 오글거리는 소리를 내지른 한중식의 얼굴 피부가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새하얗게 핏기가 가신 얼굴이 마치 도자기로 빚어 만든 인형처럼 쩌저적 갈라졌다.
얼굴 파편이 갈라지며 떨어져 나간 틈에서 불길한 암갈색 마력이 연기처럼 새어 나왔다.
《크하하! 내가 실패했다고? 어리석은 놈! 내 진실된 힘을 보고 공포에 떨어라! 네놈을 산제물로 바침으로써 우리는 잿더미 속에서 다시 날아오를지니!》
-꾸득! 꾸드드득!
변이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중식의 사지가 저절로 뒤틀리며, 뼈와 근육이 엉망으로 뒤섞여 새로운 형체를 만들어냈다.
놈의 가슴 근육이 터질 듯 팽창하더니, 음울한 빛을 내뿜는 검은 보석이 튀어나왔다.
검은 보석에서 폭발하듯 시커먼 마력이 용솟음친 바로 그 순간!
-파삭!
《…!》
나는 어둠달의 창끝에 내력을 주입해 무방비로 노출된 검은 보석을 부숴버렸다.
새까만 보석이 산산이 조각나며 무너져 내리자, 한중식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어렸다.
동시에 독창적인 형태로 변형되어가던 그의 몸이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굳어버렸다.
“왜? 변신 끝날 때까지 옆에서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줄 알았어?”
괴이쩍은 모습으로 변이가 중단된 한중식의 비참한 모습에, 나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만화나 영화에서야 상대방의 변신을 얌전히 기다려주는 것이 암묵적인 관례겠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만화나 영화처럼 말랑한 곳이 아니었다.
저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약점을 노출해주셨는데, 그걸 노리지 않으면 등신이지. 뭐.
“네, 네놈이 어, 어찌….”
변이가 중단된 한중식의 추악한 몸이 벌레처럼 무력하게 파르르 떨렸다.
괴물처럼 변이되었던 그의 목소리가 다시 평범한 남성의 그것으로 돌아와버렸다.
한중식이 나를 원통한 눈으로 바라보자, 나는 슬쩍 입꼬리를 사납게 말아 올렸다.
어떻게 알긴. 너희 같은 족속들과 질리도록 싸워본 사람이 바로, 이 설용호 님이시다 이 말이야!
애초에 굳이 한중식을 도발했던 이유도 바로, 격정에 휩쓸린 한중식이 내 눈 앞에서 사도로 변신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멋지게 성공한 덕분에, 나는 놈이 변신하는 정확한 타이밍에 한중식의 약점을 노릴 수 있었다.
“크, 크아아악! 아, 안돼! 안돼에! 이럴 순 없다아!”
그렇게 히죽 비웃음을 흘린 나는 한중식의 약점에 틀어박힌 어둠달을 거칠게 비틀었다.
단단한 보석이 통째로 깎이는 듯한 소음과 함께, 한중식의 눈에 절망이 깃들었다.
일그러지고 짓물러진 놈의 눈가에서 피눈물이 원통함을 담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럴 순 없긴….”
한중식이 원통하게 흘린 피눈물을 지그시 바라본 나는 입가를 뒤틀었다.
“그따위 저주받은 육신을 취하기 위해. 수많은 어린아이의 목숨을 빼앗은 놈에게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어?”
사교도 중 『사도』라는 것들은 성좌들의 뒤틀린 축복을 받아, 인간을 벗어난 존재들이었다.
인간의 탈을 벗고 이형의 존재와 융합하기 위해, 놈들은 수많은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쳤다.
당연히, 한중식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사도로 거듭난 인물이었다.
애초에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놓고, 원통한 척 하기는.
으스스하게 중얼거린 나는 한중식의 몸에 박혀있던 어둠달을 쑤욱 뽑아냈다.
그리곤 그대로 어둠달의 창날을 휘둘러, 한중식의 추하게 변이된 팔다리를 단숨에 잘라내었다.
-썩둑! 썩둑!
사도라는 족속들의 진정한 무서움은 뒤틀린 육체로 완전히 변이되었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지만.
이렇게 어중간하게 변이가 멈춰버린 지금, 한중식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꼴사나운 꼴로 땅에 널브러져 원통하게 흐느끼는 것뿐이었다.
-꽈드드득!
“케헤헥!”
한중식의 팔다리를 완전히 잘라낸 나는, 부들거리는 한중식의 배를 지그시 밟았다.
적당히 변이되다 만 키틴질 갑각이 과자처럼 부서졌다.
꼴사나운 비명을 내지른 한중식은 짓밟힌 바퀴벌레처럼 추악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엄살피우지 마셔. 진짜 지옥은 지금부터니까.”
“자, 잠깐만! 네, 네놈! 설마…! 그, 그것만큼은 안된다! 교의 미래가 짊어져 있단 말이다! 제발, 제바아알!”
시커먼 내력이 이글거리는 손을 한중식의 머리에 가져가자,
그렇지 않아도 하얗게 질려있던 놈의 얼굴에 불안한 공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한중식의 목소리엔 비굴한 기색이 깃들었다.
“휘유. 역시 뒈졌을 때. 어딘가로 전송되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잖아?”
-파지지직!
내력이 주입된 손으로 한중식의 이마 피부를 한꺼풀 벗겨내자.
예상했던 대로, 그의 두개골엔 회귀 전에 경험했었던 이동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그때야. 이 마법진의 정체를 알지 못해서, 귀중한 보물을 눈뜨고 허무하게 놓쳐버렸지만.
이번엔 다르지. 이번에도 그때와 같은 실수를 할까보냐.
“아, 안돼! 제발! 이 목숨은 마음대로 거둬도 좋다! 부디! 부디! 그것만은!”
내력이 주입된 손가락이 한중식의 두개골에 새겨진 마법진을 손상시키기 시작하자.
한중식은 이내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파삭!!
하지만 나는 한중식이 뭐라고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진이 파훼된 두개골에 손가락을 거칠게 쑤셔 넣었다.
“허윽!”
시커멓게 번들거리는 손가락이 짓물러진 뼛조각 사이를 마구 헤집자, 한중식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허무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빠드드득!
손끝에 뭔가 단단한 것이 닿은 바로 그 순간,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그것을 뽑아내었다.
부패한 핏물과 살점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그 속에서 암갈색 구슬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 안돼! 마지막! 마지막 희망이…!”
암갈색 구슬이 머리에서 뽑혀 나오자, 한중식은 뜻 모를 소리를 하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추악하게 뒤틀린 놈의 거대한 육신이 조금씩 분해되며 흩날리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며 발악하던 한중식의 얼굴도 일그러진 표정 그대로 가루로 변해, 허무하게 분해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파스스스.
변이되었던 한중식의 거대한 몸이 조금씩 붕괴되었다.
자신이 섬기는 신의 힘을 팔아 힘을 얻었던 ‘전직’ 사도의 비참한 말로였다.
“이제 놈의 시신에서 신물만 찾아내면 끝이죠.”
“으으. 시체 뒤지는건 별로 제 체질에 안 맞는 일인데.”
이세영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붕괴된 한중식의 몸뚱이를 보고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우리가 놈이 남긴 추악한 흔적을 뒤지려던 찰나.
…어째선지 거대한 시체 속엔 초췌한 표정의 한중식이 멀쩡하게 앉아 있었다.
“세, 세상에 사, 살아있는데요?!”
“…분명 핵을 부쉈는데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물러서요 세영씨!”
한중식의 등장에 기겁한 나와 이세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기를 뽑아들었다.
하지만, 우리를 바라보고 힘없이 미소짓는 한중식의 얼굴에선 적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되, 되었다…. 드디어 놈들이 감시가 사라졌어. 아아…. 드디어 당신과 만나게 되었군요. 그분께서 예언하신 귀인이시여. 이 세상의 마지막 희망이시여.”
무너지듯 내게 다가오는 한중식의 입에선 알 수 없는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