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화
사교도들은 단단히 긴장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단단한 재질의 외골격이 바닥에 질질 끌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것으로 봐선,
내게 접근해오는 사교도들은 제법 제대로된 훈련을 받은 놈들인 모양이었다.
흐음….
어쩌면 저 매의 눈을 한 놈이 ‘신물’을 지닌 사도인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흩뿌리는 매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내 몸에서 두 개의 기운이 휘몰아쳤다.
시커먼 내력이 모든 것을 파괴할 듯 광폭하게 휘몰아쳤다.
암녹색 마력이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거칠게 들끓었다.
소용돌이 치는 두 개의 기운을 후광처럼 두른 나는 사교도 집단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가기 시작했다.
“조, 조심해라 놈은 무서운 독을 사용 하….”
그렇게 사교도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려던 찰나.
선두에 서서 신중하게 나를 바라보던 사교도 중 한 명이 갑자기 움직임을 뚝 멈췄다.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치던 놈의 입에서 말소리가 뚝 끊겼다.
-푸화하학!
움직임을 멈춘 채, 부들부들 경련하던 사교도의 목에서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솟구친 핏줄기 속에서 허무한 표정을 지은 머리통이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공포와 긴장 속에 얼어붙었던 사교도들의 몸이 약속하기라도 한 듯 뻣뻣하게 굳었다.
“또, 또 다른 침입자가 있다! 어서 대비를…. 커헉!”
-썩둑!
가까스로 공포를 수습한 사교도 한 명이 다른동료들에게 경고하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무모한 행동은 스스로의 명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시퍼런 칼날이 사교도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섬뜩한 절삭음과 함께, 또다시 둥그스름한 무언가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갑자기 말도 없이 어디로 가버리셨나 했더니…. 혼자만 재미보고 계셨구나?”
머리를 잃어버린 사교도의 뒤편에서 샛노란 안광 두 개가 유령처럼 둥실 떠 올랐다.
이글거리는 안광과 함께, 단검 두 자루를 휘리릭 돌리며 나타난 이세영은 나를 바라보곤 특유의 해맑은 미소로 생긋 웃었다.
“…재미라뇨. 어서 신물을 확보해야 할 상황에.”
-부와아악!
쓸데 없이 해맑은 이세영에게 쓰게 웃은 나는 사교도들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나선형으로 꿈틀거리는 두 가지 기운이 팔을 타고 흐르자, 어마어마한 괴력이 발휘되었다.
모든 것을 파괴할 듯한 손길이 멍하니 서 있는 사교도들의 몸뚱이를 단숨에 찢어 발기려던 그 순간!
-콰아아앙!!
섬찟한 기운과 함께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내 손길을 가로 막았다.
-태애애앵!
외골격을 일으켜, 그 날카로운 ‘무언가’를 쳐내자.
제법 둔탁한 손맛이 내 손 끝에 느껴졌다.
“…사도인가?”
놀랍게도 나의 공격을 가로막은 사교도의 외형은 굉장히 독특한 형태로 변해 있었다.
스스로 입고있던 갑옷을 벗고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 사교도는 마치 만화 속의 ‘닌자’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군. 그쪽이 바로 ‘닌자’ 한중식인가 보지?”
‘닌자’ 한중식.
회귀 전의 기억에 의하면 뒤틀린 운명 클랜을 상징하는 어둠 속의 검이자.
신물을 지닌 세 명의 사도 중 하나였다.
…왜 별명이 ‘닌자’인지 알겠군.
말 그대로 생김새가 닌자 그 자체잖아?
“그쪽은…. 그래, 그쪽이 태백 길드의 ‘그릇’인가 보군. 이거 상황이 좋지 않아.”
‘닌자’ 라는 별명과 외형에 걸맞게 한중식는 암습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남은 신물을 이놈이 전부 들고 있다고 했지? 이거 운이 아주 좋은 걸?
“버림 받은 교주년이 네놈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 모양이로군….”
내게서 자신의 이름을 전해 들은 한중식의 눈빛이 무언의 긍정을 품고 깊게 가라앉았다.
나를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선 얼음같이 차가운 살기가 서릿발처럼 새어 나오고 있었다.
“…뭐. 어차피 나약한 교주의 한심한 지휘로 망했던 교단이다! 허나! 그분들의 은혜로 우리는 다시 영광을 찾을 지니!”
사실, 한중식는 뒤틀린 운명 클랜 내부에서도 손꼽히는 강자 중 하나였지만,
어둠 속의 검이란 그의 직책상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때문에 보고서에서도 놈을 상대하기 힘들다고 적혀있었지만.
“압도적인 힘으로 깨부숴주면 그만이지.”
변해버린 내 파괴적인 기세에 움찔한 것일까?
서늘한 표정으로 손에 쥔 수리검을 어루만지던 한중식의 손길이 뚝 멎었다.
복면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놈의 눈동자엔 혼란스러운 속마음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그나저나 어때? 어린아이를 배신하고 쥔 권력이라니 어이구 한심하셔라.”
계속해서 도발하듯 한중식에게 깐죽거리자, 내 머리를 노리고 수리검 하나가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한중식이 감정에 휩쓸려 던진 수리검 따위는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가볍게 고개를 옆으로 숙여 수리검을 피해낸 나는, 놈에게 히죽 비웃음을 보냈다.
“위험해라. 방금 공격으로 내가 콱 죽었으면 어쩔 뻔 했어? 나를 그 마족 놈들의 그릇인가 뭔가로 쓰겠다고 하지 않았었나?”
“…팔다리 한두 개쯤은 없어도 되겠지.”
한중식의 눈에 으스스한 살기가 어렸다. 복면 너머로 언뜻 비친 피부는 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손에 틀어쥔 수리검의 칼날이 그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쩌적 금이 갔다.
그렇게 놈이 나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는 사이, 때마침 소모되었던 외골격이 완벽하게 재생되었다.
“흐읍!”
-쐐애액!
황금빛으로 물든 시야 사이로 한중식의 세 번째 수리검이 감지된다. 싶더니,
놈의 손에 쥐어진 수리검이 빛살처럼 빠르게 내게 날아들었다.
-태애앵!
한중식에게 사납게 웃어준 나는 내력을 주입한 어둠달을 휘둘러 다시 한번 날아든 수리검을 쳐냈다.
“한번 놀아보자고! 뒤틀린 운명 클랜의 사도 나으리! 신을 팔아먹고 얻은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자고!”
“…!”
내 폭언에 분노한 모양인지, 수리검을 장전한 한중식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었다.
놈이 그렇게 감정적으로 도용한 틈을 타. 나는 내력과 마력을 끌어올렸다.
-후오오오옹
필멸의 영역을 벗어난 마력이 내게 엄청난 힘을 제공해주었다.
잔뜩 흥분한 한중식이 어떤 수를 준비하고 있는지! 놈이 준비한 카드는 무엇인지!그런 것에 상관 없이 놈을 단숨에 패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벅차올랐다.
“그 시건방진 입을 꿰메어 주겠다!”
-꿈틀!
고함과 함께 한중식의 근육이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근육이 꽈드득 뒤틀렸다.
놈의 심장 어림에서 시작된 마력의 흐름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질 팔에 집중되었다.
한중식의 공격을 감지한 순간, 나는 놈을 향해 곧장 달려들기 시작했다.
“…해 보시던가!”
“이새끼가!”
내 도발에 성난 고함을 우렁우렁 터뜨린 한중식는 수리검을 힘껏 내던졌다.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총알처럼 쏘아진 수리검이 내 다리를 노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암갈색 마력이 내 다리를 난도질하려는 바로 그 순간!
-까앙!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나는 날아든 수리검의 정중앙을 창날로 찔러버렸다.
한순간 집중된 충격 에너지를 이기지 못한 수리검이 허공에서 과자처럼 파사삭 부서져 버렸다.
“크윽! 그분의 권능으로 강화된 수리검이!”
-파바밧!
한중식의 수리검이 완전히 분해된 찰나의 순간!나는 재빨리 어둠달을 휘둘러 허공에 흩날리는 수리검의 파편들을 후려갈겼다.
-촤촤촤촷!
암갈색으로 물들었던 파편들이 내 내력에 노출되어 검게 물든다. 싶더니.
아연한 표정의 한중식를 향해 빛살처럼 쇄도해갔다.
“크아아악!”
쏘아진 수리검의 파편들은 한중식의 오른손에 틀어박혔다.
바늘보다 가느다란 파편들이 놈의 근육을 찢었다. 신경을 파고들었다.
“…!”
그렇게 한중식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사이.
나는 놈의 뻐끔 벌려진 품속으로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당황한 한중식이 품속에서 또 다른 수리검을 꺼내 들자….
-우둑!
나는 한중식의 품속에서 수리검이 채 꺼내지기도 전에 놈의 손가락 째로 수리검을 우두둑 부러뜨려버렸다.
그리곤 우둑 부러뜨린 수리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한중식의 다리를 향해 내려찍었다.
놈의 피부 위에 뒤늦게 돋아난 외골격과 부러진 수리검을 타고 날뛰는 내력이 거세게 충돌했다.
-카가가가가각!
마치 칼로 쇳덩이를 긁는 듯한 소음과 함께, 한중식의 외골격 위에서 암갈색 불꽃이 요란하게 튀었다.
놈의 몸을 보호하는 암갈색 외골격과 시커먼 내력이 계속해서 충돌하자, 사방이 어둑하게 물들였다.
-파츠츠츠츠츳!
암갈색 외골격에서 튀어오른 암갈색 불꽃이, 사방을 암갈색으로 물들이는 한편,
요란하게 날뛰는 시커먼 내력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암갈색 불꽃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내력과 외골격의 싸움을 힘겹게 지켜보던 한중식의 얼굴이 점점 시뻘겋게 물들어갔다.
“이, 이 자식이!”
“왜? 그쪽이 감당하기엔 너무 매력적이야?”
이를 아드득 깨문 한중식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바라본 순간.
나는 놈에게 히죽 웃어주며, 한중식의 뺨을 아주 맛깔나게 후려갈겼다.
-짜아아악!
찰진 소리와 함께, 한중식의 목이 휙 돌아가며. 놈의 외골격이 박살 났다.
동시에 시커먼 내력이 이글거리는 창날이 놈의 복부에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