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7화
-써걱!
어둠 속에서 두 자루의 단검이 유령처럼 스르륵 움직이자.
섬뜩한 절삭음과 함께, 경비실에 앉아 보초를 서고 있던 경비의 신형이 허물어졌다.
농구공 크기의 무언가가 뜨끈한 액체를 뿌리며 바닥을 굴러떨어졌다.
“흐응. 손맛이 각별한 것으로 봐선 확실히 인간은 아닌 것 같네요. 여기가 확실하긴 한가 보죠?”
단검을 휘둘러, 순식간에 강마병의 목숨을 앗아 낸 이세영은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그녀는 얼굴엔 마치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순박하면서도 해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지만.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핏물과 환한 미소 속에서 드러난 새하얀 치아는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살벌한 대비를 이뤄내고 있었다.
“네. 확신은 못 했지만. 강마병이 있는 걸로 봐선 여기가 맞나 봅니다. 다행히 놈들도 지부까지 통째로 옮길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나 보군요.”
…진짜고 뭐고. 애초에 화안금정으로 확인한 정본데. 의심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달빛에 비친 이세영의 섬뜩한 모습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란과 귀찮음을 피하려고 그녀에게 얼버무렸던 말이 더욱 큰 귀찮음이 되어버렸다.
정보의 신뢰성을 트집 잡아 강다희와의 대화 중간에 난입했던 그녀는, 이젠 떼어버릴 수 없는 혹이 되어 들러붙은 상태였다.
“그러네요. 그것이 거짓말은 하지 않았나 봐요. 사악한 사교도라도 보는 눈은 있나 보죠?”
단검을 휘리릭 휘둘러 끈적한 핏물을 털어낸 이세영은 헤실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내 어꺠에 머리를 파묻은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흡입하기라도 하듯 요란스럽게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건데요. 이건 또.”
“있어봐요. 보안 장치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느껴져서, 잠시 힐링 좀 하는 거니까요. 흐응. 이만하면 됐으니. 그 귀찮은 것들을 처리하고 올게요.”
한참을 부비적 거리며 꼼꼼히 내 체취를 맡아댄 이세영은 보안장치를 처리하고 오겠노라 선언하더니. 단검을 휘리릭 돌리며, 어둠속으로 몸을 감췄다.
…내 체취를 맡는 걸로 힐링을 하겠다니, 내가 무슨 인간 방향제라도 되는 거냐.
이세영의 기행에 한숨을 토해낸 나는 강마병의 시신에 다가가. 흔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바닥에 쓰러진 시신의 목덜미엔 뒤틀린 운명 클랜 특유의 표식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강마병의 옷가지엔….
『한우리 유기견 보호소』
강다희가 일러주었던 시설의 이름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리 수상한 구석이 없이, 그저 평범한 유기견 보호소으로 위장되어 있었지만.
강다희의 말에 따르면, 이곳 또한 다른 사교도 시설들이 다 그렇듯 뒤틀린 운명 클랜에서 관리하는 비밀 지부 중 하나였다.
“시설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어디에 있다고 그랬더라. 3층이었나?”
어둠이 내린 유기견 보호소 건물을 슬쩍 눈대중으로 훑어본 뒤.
3층으로 짐작되는 창문을 향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푸욱!
마력과 내력이 소용돌이치는 손가락이 콘크리트 벽에 파고 들었다.
창문을 깨고 돌입하는 대신, 벽을 둥그렇게 파낸 나는 살짝 손가락에 힘을 더 주었다.
-콰르르릉!
기반을 잃어버린 벽이 우르릉 무너지며, 사람 하나는 너끈히 들어갈만한 구멍이 뻥 뚫렸다.
그렇게 건물에 난입하고 나서야. 뒤늦게 이세영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누가 누구 걱정을 하냐 싶어, 피식 웃곤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뭐. 나보다 잠입에 익숙한 인물이니. 이세영은 알아서 합류하겠지.
“누, 누구십니까! 여기는 외부인 출입금지…. 크헉!”
나와 시선이 마주친 직원 한 명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막아섰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놈에게 곧바로 어둠달을 찔러 넣었다.
-카가가각!
하지만, 어둠이 넘실거리는 어둠달의 창날은 직원의 몸에서 돋아난 외골격에 막혀 버렸다.
놈이 갖춰 입은 직원 복장 위로 반투명한 암갈색 외골격이 음울하게 내려앉았다.
“빌어먹을. 벌써 위치가 노출된 건가? 어디서 온 놈이지?”
본색을 드러낸 사교도는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내 정체를 물어왔지만….
“…빵야.”
애석하게도 사교도 놈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친절한 답변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두 개의 기운이 암울하게 요동치는 물든 손가락을 놈에게 장난스럽게 겨누곤 씩 웃었다.
-번쩍!
시커멓게 물든 외골격이 마력과 내력을 품고 한 층 전체를 휩쓸었다.
휘몰아치는 내력의 폭풍과 소용돌이치는 마력의 와류 속에서 조각난 외골격 파편들이 믹서기 속의 칼날처럼 사교도에게 날아들었다.
평화로웠던 복도 전체가 순간적으로 피와 살점으로 붉게 물들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민 사교도들이 모조리 목숨을 잃었다.
“끄, 끄으으윽! 이노오오오옴!”
그래도 제법 강한 놈이 있었던 모양인지, 놀랍게도 그 참사의 현장엔 생존자가 있었다.
암갈색 외골격엔 거미줄 같은 잔금들이 쩍쩍 갈라져 있었고, 외골격 아래에 드러난 피부는 완전히 벗겨진 채 핏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 사교도는 멀쩡히 살아서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있었다.
“어, 어디서 온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혈검’의 이름을 걸고 네놈을 기필코 막아 내…!”
쓸데 없이 비장한 표정으로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교도에게 다가간 나는 느긋하게 손을 뻗어 놈의 머리를 그대로 붙잡았다.
사교도는 마력을 끌어모아, 내 손길에 저항하려 했지만.
내력과 마력이 소용돌이치는 내 손은 놈의 초라한 외골격을 단숨에 부숴버렸다.
“이, 이 배교자 놈잇! 저, 저주가 있을 것이…”
-퍼서석!
두려움에 질린 사교도의 입에서 저주의 말이 미처 다 흘러 나올 새도 없이.
나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놈의 머리를 그대로 터뜨려 버렸다.
“배교자는 무슨, 스스로 섬기던 신을 저버린 새끼들이 혓바닥만 길어요.”
*****
아무래도 사교도들이 숨어있는 장소는 거의 비슷비슷한 모양이었다.
수상해보이는 벽을 부수고 들어가자, 구불구불 이어진 비밀통로가 보였고.
그 구불구불 이어진 비밀통로를 느긋하게 따라서 걸어 내려오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수조 안에 갇혀 있는 강마병들과 놈들에게 뭔가를 주입하는 사교도들.
이번에도 전형적인 강마병 제조 시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몇 번을 봐도 소름 돋게 똑같은 광경이네. 어쩜 너희들은 이렇게까지 개성이 없냐.”
“뭐, 뭣! 누, 누구냐!”
너무도 똑같은 풍경에 비웃듯 이죽거리며, 건들건들 사교도들에게 다가가자.
뒤늦게 나의 침입을 감지한 사교도들의 얼굴에 당황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치, 침입자다! 형제들을 풀어서 이 배교자 놈을…. 크헉!”
“배교자는 무슨 얼어죽을. 애초에 네놈들이 믿는 신 따윈 믿어본 적도 없거든?”
당황한 표정으로 무전기에 손을 가져간 사교도를 보고 비릿하게 웃은 나는 자비심 없이 부패와 타락의 권능을 그대로 방출시켰다.
-꾸드드득!
섬뜩한 소음과 연락을 취하려던 사교도의 몸이 순식간에 썩어 문드러졌다.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모양인지, 시커멓게 썩은 놈의 얼굴엔 의문만이 서려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
썩어 문드러진 시신이 푸스스 흩어지자. 공포가 역병처럼 퍼져나갔다,
비명을 질러댄 사교도들은 서둘러 강마병들이 들어있는 수조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수조과 열림과 동시에 시큼한 악취를 풍기는 배양엑이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각종 몬스터와 사람이 엉망으로 뒤섞인 듯한 외형을 자랑하는 강마병들이 악취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츠리리리리릿!
하지만 강마병들이 몸을 일으킨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뱀이 비늘을 세우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막을 섬뜩하게 자극하는 소리와 함께, 타락의 권능이 강마병들의 몸을 휘감았다.
《캬아아아아악!》
《쿠워어어어억!》
“뭐, 뭐야 그분의 은총을 받은 강마병들이 어째서 우리를…!”
“아, 안돼 저, 저리가!”
타락의 기운에 완전히 잠식된 강마병들이 그대로 흉성을 토해내며 사교도들을 덮쳤다.
번들거리는 시커먼 발톱이 사교도들의 연약한 살점을 찢었다, 흉측하게 날름거리는 새빨간 혀가 사교도들의 피를 탐했다.
강마병들을 믿었던 사교도들은 놈들의 흉포한 손길아래 처참하게 찢어 발겨졌다.
-뿌드드드득!
《크와아악!》
《커억! 커어어억!》
사교도들을 산채로 찢어발긴 것만으로는 성에차지 않았던 모양인지, 놈들은 강인한 발톱과 이빨을 휘두르며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섬뜩한 살육의 현장 속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한 마리 조차 자신의 발톱으로 스스로의 몸을 찢어발기며, 자신의 마지막 의무를 다했다.
-콰아아앙!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빌어먹을…! 혀, 형제들이 치, 침입자에게 살해 당했습니다!”
그렇게 학살의 현장 속에 휘말린 사교도들이 모두 죽어 나자빠지자.
이번엔 제법 그럴 듯 해 보이는 갑옷을 차려입은 사교도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신중하게 현장을 탐색하며, 눈을 빛내는 모습이 보통 날카로워 보이지 않았다.
“저쪽이다!”
매처럼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를 지닌 사교도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졌다.
생긴 것처럼 제법 괜찮은 눈썰미를 지녔는지, 놈은 자욱한 부패의 안개 속에 가려진 내 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한 듯 했다.
“전원! 외골격을 끌어올렸! 아무래도 놈은 독과 관련된 능력을 사용하는 것 같다!”
“옛!”
-촤르르륵!
매처럼 날카로운 눈을 지닌 사교도의 입에서 호령이 튀어나오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사교도들 전원의 몸에 암갈색 외골격이 튀어나왔다.
“마력을 전부 끌어올렷! 독이 침투하게 둬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