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화
성공적으로 강수희를 포획한 나는 그녀의 언니. 강다희와 접촉하기 위해.
신지현이 먼젓번에 알려주었던, 설악 공격대가 은신해 있다는 장소로 향했다.
“어디 보자. 설악 공격대가 머무르고 있다는 곳이 …여기가 맞나?”
하지만 스마트폰의 지도 어플에 표시해둔 장소에 도착한 순간.
눈에 들어온 너무도 의외의 풍경에, 나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봉제 인형 테마파크 – 곰돌이의 숲』
-엄마! 저기 저 치마 입은 곰돌이 너무 귀여워!
-어머머. 얘. 그 아이도 귀엽지만. 그 옆의 앞치마 두른 아이가 더 귀엽지 않니?
동화 풍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정원 여기저기에 장식된 곰돌이 인형.
귀여운 곰돌이 인형을 바라보며, 꺄르륵 웃어대는 어린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그런 어린아이들의 앞에서 귀엽게 재롱을 피워대는 거대한 곰 인형들.
아무리 봐도 건장한 사내놈들이 숨어있다는 장소치곤 지나치게 소녀다운 핑크빛 감성이 느껴지는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장소에 그 땀내 나는 아저씨들이 숨어있다고?
확실히.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의외의 장소이긴 하다만.
그 양반들이 이런 곳에 얌전히 숨어있을 리가….
“아저찌. 샤탕 하나 머글래요?”
눈 앞에 펼쳐진 동심 속의 세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려니.
꽃무늬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곰 인형이 내게 다가와 사탕이 가득 든 바구니를 흔들었다.
귀여운 인형 탈 속에선 성인 남성이 귀여운 척, 가성을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성이 섞인 목소리 그 자체도 소름이 돋을 만큼 끔찍했지만.
목소리 주인의 정체를 눈치챈 순간. 그것 이상의 충격이 내 정신을 무자비하게 강타했다.
“…박정욱 선배님?”
“오모나 세상에. 순진한 꽃분이는 그런 샤람 몰라여.”
애교를 떨어대는 인형 탈 속의 내용물은 놀랍게도 박정욱이었다.
목소리마저도 각이 져 있다 생각될 정도로 깐깐한 목소리가 지금은 내 앞에서 귀여운 몸짓과 함께 콧소리 섞인 가성을 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어처구니를 상실한 내 입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에, 어깨를 으쓱한 그는 귀엽게 양손을 모은 채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기법의 지옥도라냐.
살면서 이런 꼴을 볼 만큼, 나쁜 짓을 저지르고 살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지.
“그보다. 아저찌. 저랑 기차놀이해요. 칙칙폭폭!”
그동안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뜨거운 참회의 눈물을 흘리려는 사이.
귀엽게 허리를 쫑긋쫑긋 흔든 곰 인형은 나를 와락 붙들더니, 기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너무도 해괴한 광경에 온몸의 힘이 쭉 빠져버린 나는, 힘없이 그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
테마파크 구석에 있는 대기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귀여운 곰돌이 인형 탈과 나의 ‘기차놀이’가 끝이 났다.
“으하하핫. 어떤가! 내 연기가! 아저씨 치곤 완벽하지 않았나!”
…아. 네.
누군가에게 정신적 타격을 입히기엔 너무도 적절하게 완벽한 연기였습죠.
내게 적지 않은 정식적 데미지를 입힌 박정욱은 인형 탈을 벗어 던진 채.
무엇이 그리 좋은지 호탕하게 껄껄 웃어댔다.
사내답게 껄껄 웃는 그의 얼굴과 여전히 꽃무늬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곰돌이의 몸뚱이가 있을 수 없는. 아니 있어서는 안 될 흉측한 부조화와 시각적 테러를 이뤄내고 있었다.
“…매니저님 지시입니까? 이렇게 끔찍…. 아, 아니. ‘완벽한’ 곰돌이 연기를 하고 계시라는 게?”
“물론! 신 팀장은 우리더러 얌전히 숨어있으라고 했네! 하지만! 사내 된 자로서 어찌 뻔뻔하게 밥만 축내고 있겠는가!”
이중환과 융합되어 성격이 좀 바뀌었다곤 하나.
아무래도 원본의 그 고지식한 성격이 어디에 가버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내게 시각적, 청각적인 테러를 저지른 것은, 아무래도 신세를 지기 싫어하는 박정욱의 성격이 낳아버린 뒤틀린 비극인 모양이었다.
…잠깐만 ‘우리’ 라고?
“우, ‘우리’라뇨? 설마 다른 설악 공격대원들도…?”
“당연하지! 우월한 체력을 지닌 헌터야 말로 인형 탈을 하루종일 연기하는데 최적화된 인력이 아니겠나! 우리 덕에 다른 직원들이 편히 쉴 수 있게 되었지!”
…망할. 알고 싶지 않은 지식이 늘었다.
박정욱의 즉각적인 확답에, 테마파크 곳곳에서 깜찍한 애교를 떨고 있던 곰돌이 인형들의 내부가 저절로 상상되어버렸다.
털이 부숭부숭한 마초들이 애교를 떨어대는 광경이 상상되자. 내 스스로의 머리를 파괴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찾아왔다.
“그보다. 자네가 갑자기. 이곳엔 무슨 일인가? …설마. 엊그제 있었던 습격에서 뭔가 알아내기라도 한 겐가?”
껄껄 웃으며 생수를 들이켜던 박정욱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진중하게 변했다.
씹어 뱉듯 ‘습격’이란 단어를 읖조리자. 그의 몸에서 서늘한 냉기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꽈드득 구겨진 생수병이 피어오른 냉기에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네. 그것과 관련해서 강다희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요.”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자.
나 역시, 진중한 목소리로 박정욱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강다희라. 이번 습격도 사교도 놈들이랑 무슨 관련이 있나 보군. 있어 보게. 지금 즉시 그녀를 데려올 테니.”
*****
인형 탈을 착용하고 대기실 밖으로 나갔던 박정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난히 덩치가 작은 곰 인형을 데리고 다시 돌아왔다.
갑자기 우악스럽게 붙들려 끌려온 탓인지, 유난히 덩치가 작은 곰 인형에게선 인형 탈 밖으로도 대단히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자네가 원했던 대로. 그녀를 데려오긴 했네만. 아무래도 방해가 있어선 안 되겠지. 나는 잠시 나가 있겠네.”
우악스럽게 끌고 오다시피 강다희를 데려온 박정욱은 그 말만을 남긴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던 작은 인형 탈이 흠칫하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렇게 잠시 굳어있던 그녀는 쭈뼛거리며, 조심스럽게 인형 탈을 벗기 시작했다.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곱게 정리한 강다희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교주 시절의 당당한 위엄을 애써 유지하려는 듯.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하기 짝이 없었지만.
공포와 당황에 절은 몸뚱이는 안쓰러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훌륭한 동생을 뒀더군.”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서로 의절하다시피 한 상태라도 매애는 여전하다는 것일까?
어째선지 강다희는 부들부들 몸을 떨어대면서도 동생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김혜옥의 ‘교육’으로 고분고분하기만 하던 평소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태도였다.
“강수희.”
“…!”
내 입에서 동생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강다희의 몸이 순간적으로 흠칫 굳었다.
그녀가 동요한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애석하게도 내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알고 있겠지만. 며칠 전 길드장님의 은신처에 뒤틀린 운명 클랜의 사교도들이 쳐들어왔었지. 강수희. 그 가증스러운 것의 지시였다고 하더군.”
“모, 몰라요. 저, 저는 고, 고아원을 박차고 나갈 때부터 저는 그 아이와 인연을 끊었는 걸요.”
강다희의 반응을 살펴본 나는 일부러 거짓과 살기를 골고루 섞었다.
그녀를 노려보는 내 시선에서 서늘한 황금빛 안광이 번뜩이자. 그녀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 태도는 뭐지? 믿을 만한 정보통에 의하면. 동생과 의절했다고 들었는데. 어째 그녀를 감싸주려는 듯한 태도로군.”
“아, 아녜요. 저는 이미 그 아이와 인연을 끊은 몸….”
강다희가 계속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나는 서늘한 목소리로 그녀의 주의를 환기했다.
그리곤 위협하듯 외골격을 발동시키며, 으스스한 살기를 일으켰다.
어찌보면 억울하게(?) 그녀를 추궁하는 셈이었지만.
강수희에게 들은 말이 있었기에, 지금은 그녀를 강하게 추궁할 수 밖에 없었다.
시커먼 내력과 암녹색 마력이 외골격에 소용돌이치며, 무시무시한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말해! 네 동생에겐 무슨 비밀이 있지! 어째서 너희 자매가 사교도 성좌들에게 선택 받은 건지 말햇!”
“…오오! 전능하신 그분의 날갯짓에 축복이 있으라.”
뭐냐. 이건 또.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강다희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한줄기 주르륵 흘러내렸다.
불안하게 허공을 더듬던 눈이 별안간 생기를 되찾으며, 알 수 없는 열정과 갈망을 품었다.
괴이한 소리를 내뱉은 그녀는 이내, 대뜸 넙죽 엎드려 내게 절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지?”
“사라졌던 그분의 영광과 권능이 다시 나를 찾아오셨도다! 아아. 아아아.”
갑자기 자신이 섬기던 신의 목소리가 들려서 일까?
길고양이처럼 표독스러웠던 강다희의 목소리는 잘 길들여진 집고양이처럼 얌전해져 있었다.
신음을 삼킨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순순히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실은 며칠전에 수상쩍은 이들이 제게 접근해 왔습니다. 놈들은 저희가 예전에 쓰던 유기견 보호소를 거점으로 삼겠다며….”
강다희의 입에선 정보가 술술 흘러나왔다.
“그 말을 그대로 곧이 곧대로 들으실 건가요?”
…이세영?
불청객의 정체는 놀랍게도 이세영이었다.
히죽거리며 내게 다가온 그녀는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곤 내게 묘한 것을 요구했다.
“저도 동행할게요. 마침 신경쓰이는 곳이 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