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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35화 (235/309)

제235화

“고생하셨습니다. 산군님.”

“뭘요. 잔챙이들 상대로 고생이랄 것까지야.”

이런 일에 익숙한 인사팀 직원들답게, 뒷수습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들의 능숙한 손길 속에서 은신처를 검붉게 물들인 전투의 흔적들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그들에게 격려의 미소를 보내준 뒤, 나는 반쯤 박살 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설마하니 뒤틀린 운명 클랜까지 마족 놈들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줄이야.

아스모데우스의 기억을 확인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런 낌새는 없었는데 말이지.

김창희의 영혼에서 흡수한 기억은 체체파리 클랜원들의 그것과 놀라울 만큼 닮아있었다.

김창희를 포함한 사도 전원의 배신으로 인해, 뒤틀린 운명 클랜이 섬겼던 어둠의 성좌. ‘부서진 물레의 노파’는 바알제불이 그랬던 것처럼 마족들에게 포획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반란이 벌써 일어나버렸을 줄이야. 역사가 또 뒤틀려 버린 건가?”

다행히(?) 내가 동정심을 품었던 ‘성녀’는 놈들과 무관한 인물이었다.

마족들의 농간으로 인해, 원 역사의 ‘반란’이 뒤틀린 형태로 이르게 진행되어 신도들은 모조리 강마병으로 개조당했으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빼앗긴 교주는 그녀에게 애증의 감정을 품었던 김창희의 손에 의해, 모종의 장소에 유폐되어버린 상황이었다.

놈들이 섬기는 성좌가 마족들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인지.

다행히 그녀는 원 역사처럼 ‘스피커’로 개조되진 않고 유폐 정도로 끝난 모양이었다.

“…것보다. 자매가 쌍으로 사교도 클랜의 교주가 되다니. 이건 또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집안이야?”

회귀 전엔 처참하게 뒤틀려, 교주의 원래 외모를 짐작할 수 없었기에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지만.

놀랍게도 뒤틀린 운명 클랜을 이끌었던 교주, ‘성녀’의 정체는 강다희의 여동생. 강수희였다.

김창희의 기억에서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자.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산군님? 지시하셨던 대로 길드장님께 습격과 관련된 보고를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강수희와 뒤틀린 운명 클랜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며, 골머리를 썩히고 있으려니.

강태백에게 습격과 관련된 보고를 하러 갔었던 직원이 대단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이죠? 혹시 뭔가 문제라도 생겼답니까?”

“회담 자리에 갑자기 남부연합의 양석필 어르신께서 난입하셨기에. 지금은 도저히 통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 아저씨는 도대체 왜 또 거기서 나오는 건데?

깐깐한 성격답게, 약속을 중시하는 그가 무슨 일로 갑자기 자리를 비웠나 했더니.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양석필의 갑작스러운 난입으로 발이 묶여버린 모양이었다.

“일단 문자로는 보고드렸습니다만.”

순간적으로 내 표정이 와락 일그러지자.

보고하던 직원의 얼굴이 급속도로 하얗게 질려갔다.

후리후리한 덩치가 바르르 떨리는 안쓰러운 모습에, 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닙니다. 어쩔 수 없죠. 길드장님께서 갑자기 사정이 생기신 거니까요.”

*****

은신처의 뒤처리를 직원들에게 맡긴 뒤.

나는 김창희의 기억에서 엿보았던 장소, 강수희가 유폐된 곳으로 향했다.

-철그럭.

한때 폐차장이었던 폐허를 지나, 반쯤 부서진 콘테이너 박스로 다가가자.

인기척과 함꼐, 단단히 잠긴 문 너머로 희미하게 쇠사슬 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목표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단단히 잠긴 문을 힘으로 뜯어 버렸다.

“강수희?”

“주교님 제 믿음과 의지는 굳건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을…. 어머나! 다, 당신은 누구죠?!”

핏줄은 못 속이는 것일까?

강수희의 반응은 강다희가 보여준 것과 놀랄만큼 똑같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동자는 기쁨과 경악, 환희를 담은 채 크게 떠져 있었고.

멍하니 헤 벌려진 입엔 침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제 언니와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강수희에게 한숨을 내쉰 나는 그녀의 앞에 걸터 앉았다.

“이야기를 좀 하지. 너희 클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야.”

전대 교주에 의해, 교주 겸 성녀로 임명받았다곤 하나.

자신의 언니 강다희와 달리, 강수희는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결정적으로 회귀 전에 워낙 기구한 최후를 맞은 인물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동정심을 갖고 있었기도 하고 말이지.

어떻게 보면 피해자에 가까운 입장이었기에, 그녀를 대하는 내 목소리는 강다희를 대할 때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다.

“…저기?”

“아, 아아…. 그랬군요. 당신이 바로…. 기꺼이 알려드리죠. 귀인이시여.”

…무슨 반응이야 이건 또.

아무래도 강수희는 내 외모에 반한 것이 아닌 듯 했다.

무언가 내게서 다른 것을 발견했는지,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경외가 가득한 상태였다.

반짝이는 두 눈은 종교인 특유의 경건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꼬옥 마주 잡은 두 손엔 종교적인 광기와 열망이 넘실거렸다.

이 아가씨는 또 왜 이런 반응이야?

…대체 또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귀인이시여. 아아…. 그분께서 속삭이셨던 고귀한 분이시여. 네. 네에. 마땅히 당신의 말씀을 따르겠나이다.”

강수희가 보여준 예상 밖의 반응에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내게 공손하게 절을 올린 그녀는 뒤틀린 운명 클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읊기 시작했다.

*****

“…그렇게 된 겁니다. 배교자들은 힘에 취해 믿음을 배신했습니다. 귀인이시여..”

강수희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강다희가 일러준 것과 동일했다.

김창희와 그를 따르는 일파들은 마족들에게 자신들이 보유한 신물을 넘겨주었고.

마족 놈들은 건네받은 신물을 이용해, 성좌 ‘부서진 물레의 노파’의 힘과 권능을 갈취해 버린 상태였다.

“그렇군…. 그나저나 그쪽도 참….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어.”

언니 강다희와는 달리, 강수희는 평범한 삶을 살다가 사교도들에게 납치되어 성녀 겸 교주가 된 인물이었다.

워낙 순진한 인물이라, 전대 교주의 말에 속아 넘어가 사교도로 전향한 것 뿐이기도 했고.

보고서에 의하면 회귀 전엔 김창희의 손에 의해, ‘스피커’가 되어버렸던 인물이었기에

나는 그녀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소서,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택한 길이었을 뿐이옵니다. 제 앞에 비극적인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들, 그 역시 그분의 뜻일 터.”

…얘 진짜 사교도 맞나?

아무리봐도 강수희는 사교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화안금정이 알려주는 그녀의 선한 마음씨는 모조리 『진실』이었고.

그녀는 정말로 단순히, 이 뒤틀린 세상을 어떻게든 구원하기 위해 사교도의 교주가 된 것 뿐이었다.

“도대체 너희들을 왜 ‘사교도’라 칭하는지 모르겠군.”

“의도가 선하다고 하나, 저희가 섬기는 분은 명백히 외도에 속한 존재이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을 구원해줄 수 있다면 ‘사교도’라는 낙인 정도는 기꺼이 달게 받아들일 수 있었나이다.”

강수희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이 섬기는 성좌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읊기 시작했다.

다른 사교도들과는 달리, 신실한 종교인에 가까운 그녀는 믿음도 다른 이들보다 더 순수한 듯 했다.

[…?!]

그렇게 강수희가 자신이 섬기는 성좌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자.

갑자기 옆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던 위철용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이 아가씨가 의외로 선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에요?’

[아, 아니…. 아, 아무것도 아니다. 보, 본존은 그저…. 크흠! 자, 잠시 생각좀 하고 있으마.]

위철용 답지 않은 반응에 그를 쿡쿡 찌르며 농담을 건넸지만.

그는 어째선지 대단히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대더니, 내 심상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교도들이 섬기는 성좌들이라면 극도의 혐오감만을 표하던 양반이 대체 무슨일이지?

“크, 크흠. 어쨌든. 그 ’배교자‘라는 것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알고 있나?”

위철용보다는 현재,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른 놈들을 쳐부수는게 먼저였다.

헛기침을 하여 주의를 환기한 나는 강수희에게 놈들의 위치에 대해 물었다.

“…죄송합니다. 귀인이시여.”

애석하게도 강수희는 배교자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화안금정이 속삭이는 그녀의 진심도 그렇고, 그녀의 반짝이는 눈엔 한점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귀인이시여. 저희 언니. 강다희는 그들이 어디 숨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옵니다.”

“뭐라고?”

놀랍게도 강수희는 내게 확보된 강다희가 놈들의 위치를 알고 있을 것이라 일러주었다.

…하지만 강다희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다는 거지?

내게 확보된 뒤로 그녀는 바깥 세력들과 접촉하지도 않았는데?

“끝까지 자신만의 카드를 쥐고 있는 그녀의 성격상. 아무리 추궁해도 쉬이 알려주지는 않을겁니다. 귀인이시여…. 하지만. 그녀에게도 일말의 ’가족애‘는 남아있는 법…. 저를 이용해 그녀에게 진실을 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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