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화
음험한 기운이 일렁거리는 어둠이 좁다란 은신처 내부를 가득 메웠다.
끈적하면서도 음침한 기운에 노출된 사교도들의 시신이 제멋대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장막처럼 드리운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귀화가 흉측한 살기를 품고 하나둘씩 떠올랐다.
“크하하하! 어떠냐! 이것이 바로! 새로운 주인님의 권능으로 빚어낸….”
“강마병이겠지. 에휴. 뭐 좀 참신한 거 소환하나 했더니. 기껏 불러낸 게 그거야?”
…뭐야. 하도 요란을 떨어대길래 뭐 거창한 거라도 불러내려나 기대했더니.
기껏해야 강마병을 소환하는 것뿐이었네.
자신만만하게 지껄인 우두머리의 말과 놈에게서 느껴진 낯선 마력에 살짝 기대했지만.
애석하게도 우두머리가 수하들의 시체로 만들어낸 것은 흔해 빠진 강마병에 불과했다.
바퀴벌레와 인간을 적절히 섞어놓은 듯한 외형의 흉물들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본 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크. 크흐흐흐. 그 같잖은 재주를 믿는 건가? 하지만 네놈의 건방도 거기까지다!”
공포에 질리기는커녕. 심드렁하게 귀를 후비는 내 태도에 사교도 우두머리의 눈이 제법 볼만하게 일그러졌다.
얼굴을 가린 복면 위로 드러난 피부까지 뻘겋게 달아오른 놈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강마병들에게 공격을 지시했다.
《끼이이익!》
-츠리리릿!
귀화를 불태우며 나를 노려보는 강마병들의 입에서 귀에 거슬리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놈들의 몸에서 마치 뱀이 수천, 수만 개의 비늘을 동시에 곤두세우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번들거리는 암갈색 키틴질 껍질들이 내 쪽을 향해 산탄총처럼 발사되었다.
“크흐하하! 그분의 마력으로 강화된 키틴질 껍질은 어지간한 외골격 따윈 과자처럼 부수는 위력을 지녔지! 아무리 네놈이 기묘한 재주를 지녔다고 해도 이들의 공격엔 버틸 수 없을…”
-콰드드득!
“거 참. 말 많네. 못 버티긴 뭘 못 버텨?”
순식간에 은신처 전체를 가득 메워버린 암갈색 껍질들의 기세는 제법 매서웠지만.
우두머리의 기대와는 달리, 안타깝게도 내게 해를 끼칠 정도로 위력적이진 않았다.
굳이 소란스럽게 몸을 움직여, 공격을 피해낼 것까지도 없었다.
암갈색 껍질들은 일렁이는 주황빛 마력에 닿자마자 초콜릿 과자처럼 부서져 버렸으니까.
봄날의 벚꽃처럼 허무하게 흩날리는 암갈색 파편들의 향연에, 우두머리의 눈이 순간적으로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어, 어으어. 우, 우연이다! 다시 한번 공격을 퍼부어!”
순간적으로 인지 부조화가 일어난 우두머리는 다시 고함을 질러대며, 공격을 지시했지만….
-투둑. 투두두둑.
대단히 안타깝게도 나는 가만히 공격을 당해줄 만큼 성격이 느긋한 편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부서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검게 물든 외골격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거미줄 모양으로 갈라져 버린 외골격의 틈새에선 시커먼 내력과 암녹색 마력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쿠콰아아앙!
시커멓게 물든 채로 불안하게 금이 가 있던 외골격이 산산 조각났다.
눈을 멀어버릴 듯한 섬광이 번쩍였다. 은신처를 넘어 하수도 전체가 우르릉 흔들렸다.
지축까지 뒤흔드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내력과 마력의 소용돌이가 삽시간에 전방을 휩쓸어버렸다.
《끼이이익!》
그렇게 발동된 암룡출동에 정면으로 노출된 강마병들은 단단하다는 키틴질 껍질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허무하게 한 줌의 핏물로 변해버렸다.
천지를 뒤흔드는 엄청난 충격에 은신처의 가구들도, 무너진 벽의 파편들도. 모조리 가루가 되어 허무하게 푸스스 흩날렸다.
“마, 말도 안 돼. 그분의 은총을 받은 병사들이 이, 이토록 허무하게 사라지다니.”
혹시나 하수도 전체가 무너질까 싶어, 위력을 적절히 제어한 탓에.
모든 강마병들이 암룡출동 속에서 소멸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반쯤 넋을 잃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우두머리를 포함해, 일부 운 좋은 강마병들은 그 난리통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았다.
-처적!
살아남은 적들의 머릿수는 강마병 다섯에, 넋 놓은 우두머리까지 해서 총 여섯!암룡출동의 엄청난 위력을 겪어봤음에도 불구하고, 강마병들의 눈엔 공포 대신 살벌한 귀화가 흉흉하게 들끓고 있었다.
-콰앙!
살아남은 강마병들을 흘끗 바라보고 이를 드러낸 나는, 바닥을 박찼다.
그리곤 적의를 드러낸 놈들을 향해, 내력과 마력이 휘몰아치는 어둠달을 벼락처럼 흩뿌렸다.
시커먼 내력과 암녹색 마력을 휘감은 창날이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품은 채, 한줄기 번개가 되어 강마병들의 육신을 후려쳤다.
-콰직! 콰지지직!
과연 우두머리가 지껄인 대로 제법 단단한 껍질이긴 했다.
선두에 선 강마병의 암갈색 껍질은 놀랍게도 일시적으로나마, 어둠달의 창날을 막아냈다.
허나 참격은 막아냈어도, 충격까진 어쩔 수 없었는지. 굉음과 함께 껍질이 움푹 들어갔다.
《…끼이?》
황금빛이 이글거리는 내 두 눈과 시선이 마주친 강마병의 표정에 의문이 어렸다.
껍질을 세워 내 공격을 막아내었던 놈의 입이 멍하니 헤 벌어졌다.
-피슛!
빛살처럼 쏘아진 어둠달이 강마병의 멍하니 벌어진 입에 콰드득 틀어박혔다.
부러진 이, 잘려나간 살점, 박살 난 뼛조각이 뒤통수까지 뻥 뚫린 구멍을 향해 엉망으로 후두둑 흩날렸다.
“정면이다! 빈틈을 파고들어!”
넋을 놓고 입을 헤 벌리던 우두머리가 늦게나마 정신을 차렸다.
우두머리의 지시가 떨어진 순간, 강마병들은 망설임 없이 나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흉흉한 암갈색 광채가 어른거리는 낫모양 앞발이 휙휙 날아들어 내 목숨을 노렸다.
-휘이익!
나는 강마병의 입을 꿰뚫은 어둠달을 회수하며, 놈의 시신을 내 쪽으로 확 잡아끌었다.
그리곤 그대로 놈들을 향해 달려들며 주욱 딸려온 시체를 이용해, 강마병들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내었다.
-콰콰콰콰콱!
날아든 공격으로 인해, 불운한 강마병의 시신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강마병의 시신을 방패 삼아 강마병 놈들에게 가까이 접근한 나는, 시신에 내력을 주입해 앞쪽으로 휘익 집어던졌다.
-썩둑!
내력을 품고 날아간 시신이 동료 강마병들의 손에 의해 순식간에 반으로 토막 났다.
불운한 강마병의 시신이 그렇게 반으로 토막난 바로 그 순간!
-촤아아악!
“…?”
주입되었던 내력이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마치 물풍선이 터지듯, 강마병의 시신에서 시뻘건 피 분수가 촤악 퍼져나갔다.
삽시간에 비릿한 피 안개가 강마병들의 시야를 가렸다.
-피슛! 피슈슈슛!
피 분수 안에 몸을 숨긴 채, 강마병 놈들에게 접근한 나는 거침없이 손을 놀렸다.
시커먼 내력과 암록색 마력이 휘몰아치는 창날이 새빨간 피 분수 속에서 정신없이 춤을 췄다.
-쿠웅!
무언가가 거칠게 넘어지는 소리는 하나였지만, 바닥에 고꾸라진 시신은 총 네 구였다.
머리에 시커먼 구멍이 뻐끔 뚫린 강마병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쓰러졌다.
놈들이 쓰러짐과 동시에 우두머리가 있던 곳을 바라본 순간!
-쐐애액!
섬찟한 기운과 함께 무언가가 내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태애애앵!
황급히 어둠달을 들어 올려, 날아든 무언가를 쳐내자.
반으로 뚝 부러진 그 ‘무언가’가 공중으로 핑그르르 날아올랐다.
“…호오?”
놀랍게도 그것의 정체는 뾰족한 날이 달려 있는 단검이었다.
반 토막이 났음에도 보랏빛을 토하는 단검의 독특한 형태를 목격하자.
내 머릿속에 유명한 사교도 한 명의 이름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어쩐지 말이 유독 많더라니. 뒤틀린 운명의 친위대장 나으리셨군.”
뒤틀린 운명 클랜의 ‘독사’ 김창희.
직접 만나보진 않았지만, 토벌 서류에서 본 적이 있던 얼굴이었다.
회귀 전에 훑어봤던 서류에 의하면 김창희는 뒤틀린 운명 클랜의 주교이자.
무능한 교주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클랜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었다.
사교도 클랜을 이끌었다는 놈이 강마병을 부린다고?
김준영처럼 이 자식도 섬기는 성좌를 배신한 건가?
“뒤틀린 운명 클랜의 주교께서, 이렇게 친히 행차하셨을 줄은 몰랐네? 겁쟁이처럼 남들 뒤에 숨어만 있던 뒤틀린 운명 클랜이 전면으로 나선 이유가 뭘지 궁금한데?”
뒤틀린 운명 클랜은 예로부터 철저히 어둠 속에 숨어 활동하던 놈들이었다.
그랬던 놈들이 어째선지, 정면으로 나선 것을 지적한 나는 어둠달을 건들건들하게 어깨에 걸쳐 매곤 도발이라도 하듯, 놈에게 이죽거렸다.
“…네, 네놈이 어, 어떻게 그걸! 우리는 어둠 속에서 몸을 드러낸 적이 단 한번도 없었거늘!”
서늘한 표정으로 손에 쥔 단검을 어루만지던 김창희의 손길이 뚝 멎었다.
대단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놈의 눈동자엔 어째선지 침울한 기운이 엿보였다.
“어떻게 알기는. 사교도 특유의 썩은 냄새가 네 몸에서 진동하는데…. 무능한 ‘성녀’ 나으리께선 이런 미래까진 예언하지 못하셨나봐?”
계속해서 이죽거리며, 뒤틀린 운명의 교주 ‘성녀’의 이름을 들먹거리자.
당황만이 가득했던 김창희의 눈빛에 분노가 서렸다.
“그 더러운 입으로 성녀님을 모욕하지 마랏!”
-쭈와아앙!
암갈색 마력에 뒤덮인 단검이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김창희가 감정에 휩쓸려 던진 단검 따위는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가볍게 고개를 옆으로 숙여 단검을 피해낸 나는, 놈에게 히죽 비웃음을 보냈다.
“능력도 없어, 근본도 없어, 단지 전대 교주가 막무가내로 임명한 것 뿐인 낙하산을 진심으로 따르는 건가?”
“…네, 네놈이 어떻게 그걸?!”
어떻게 알긴, 그때 네놈들에 대한 보고서를 주의깊게 읽어뒀으니 잘 알 수 밖에.
김창희의 질문에 비릿하게 웃어주자, 놈의 표정이 순식간에 뒤틀렸다.
“네 이놈!”
-꿈틀!
고함과 함께 김창희의 근육이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근육이 꽈드득 뒤틀렸다.
놈의 심장 어림에서 시작된 마력의 흐름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질 팔에 집중되었다.
김창희의 공격을 감지한 순간, 나는 놈을 향해 곧장 달려들기 시작했다.
“죽엇!”
광기 어린 증오를 터뜨린 김창희는 단검을 내던졌다.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총알처럼 쏘아진 단검이 내 다리를 노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암갈색 마력이 내 다리를 유린하려는 바로 그 순간!
-까앙!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나는 날아든 단검의 정중앙을 창날로 찔러버렸다.
한순간 집중된 충격 에너지를 이기지 못한 단검이 허공에서 과자처럼 파사삭 부서져 버렸다.
“뭐, 뭣이?!”
-파바밧!
김창희의 단검이 완전히 분해된 찰나의 순간!나는 재빨리 어둠달을 휘둘러 허공에 흩날리는 단검의 파편들을 후려갈겼다.
-촤촤촤촷!
보랏빛으로 물들었던 파편들이 내 내력에 노출되어 검게 물든다. 싶더니.
아연한 표정의 김창희를 향해 빛살처럼 쇄도해갔다.
“크아아악!”
쏘아진 단검의 파편들은 김창희의 오른손에 틀어박혔다.
바늘보다 가느다란 파편들이 놈의 근육을 찢었다. 신경을 파고들었다.
“…!”
그렇게 김창희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사이.
나는 놈의 뻐끔 벌려진 품속으로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당황한 김창희가 품속에서 또 다른 단검을 꺼내 들자….
-우둑!
나는 김창희의 품속에서 단검이 채 꺼내지기도 전에 놈의 손가락 째로 단검을 우두둑 부러뜨려버렸다.
그리곤 우둑 부러뜨린 단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김창희의 다리를 향해 내려찍었다.
놈의 피부 위에 뒤늦게 돋아난 외골격과 부러진 단검을 타고 날뛰는 내력이 거세게 충돌했다.
-카가가가가각!
마치 칼로 쇳덩이를 긁는 듯한 소음과 함께, 김창희의 외골격 위에서 보랏빛 불꽃이 요란하게 튀었다.
놈의 몸을 보호하는 보랏빛 외골격과 시커먼 내력이 계속해서 충돌하자, 사방이 어둑하게 물들였다.
-파츠츠츠츠츳!
암갈색 외골격에서 튀어오른 암흑의 불꽃이, 사방을 어둡게 물들이는 한편,
요란하게 날뛰는 시커먼 내력과 암록색 마력이 암흑의 불꽃을 살라 먹었다.
내력과 마력의 포악한 맹위를 힘겹게 지켜보던 김창희의 얼굴이 점점 시뻘겋게 물들어갔다.
“이, 이 자식이!”
“왜? 그쪽이 감당하기엔 너무 매력적이야?”
이를 아드득 깨문 김창희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바라본 순간.
나는 놈에게 히죽 웃어주며, 김창희의 뺨을 아주 맛깔나게 후려갈겼다.
-짜아아악!
찰진 소리와 함께, 김창희의 목이 휙 돌아가며. 놈의 외골격이 박살 났다.
동시에 시커먼 내력과 마력이 소용돌이치는 창날이 놈의 복부에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