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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31화 (231/309)

제231화

“으으윽. 정말이지 성질 하난 끝내주는 양반이라니까.”

온몸이 바스러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내 의식은 심상세계에서 빠져 나와 현실로 복귀했다.

치밀어 오른 민망함에 얼굴이 벌게진 위철용이 행사한 불합리한 폭력에 노출되었던 탓인지.

소파의 쿠션과 반쯤 혼연일체 되었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우두둑.

고통이 엄습해오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자. 온몸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생각했던 것보다 심상 세계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뭐, 심상 세계에서 빠져나오자 마자 피곤해서 잠을 자버린 것도 있겠고.

“…잠깐 눈을 붙인 줄 알았더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버렸다고?”

어쩐지 창가에 부서지는 햇살이 강렬하다 싶었더니, 어느새 시간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화면에 떠오른 시간을 본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근질거리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육체적인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곤 하지만.

그동안 누적된 정신적인 피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장난이 아니었나 보네.

대충 허리를 휘휘 움직여, 찌뿌둥한 기운을 날려버린 뒤.

나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밀린 뉴스를 보며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스마트폰에 시선을 집중한 채로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려는 순간.

“아니. 혼자 사는 남정네 집에 술이 하나도 없다고? 이 양반 이거 보기보다 쑥맥이네.”

“싸부님께서 이렇게나 부실한 음식을 드시고 계셨다니. 미처 몰랐어요. …안되겠다. 당장 요리를 시작해야 겠네요!”

…어째선지. 이 자리에 있을 리가 없는 인물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려왔다.

깜짝 놀라,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어 부엌에 침입한 불청객들을 바라보니.

낯익은 이들의 의외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호들갑을 떨며, 부산스레 거대한 바구니에서 무언가를 계속해서 꺼내드는 김혜옥에

그리고 그 옆에서 아쉽다는 수납장이란 수납장은 다 뒤져보고 있는 신지현까지.

분명, 누구에게도 현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건만.

어째선지 이 두 명의 사고뭉치들은 나만의 공간에 침입해. 주방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상태였다.

…뭐지? 아직 꿈에서 덜깬 건가?

“어라? 싸부님! 깨어나셨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맛난 음식을 차려드릴게요!”

순간적으로 현재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나와 시선이 마주친 김혜옥이 해맑게 웃으며, 핏물이 뚝뚝 흐르는 고깃덩어리를 꺼내들었다.

“헤헤헤. 분명 맛있을 거에요.”

큼직한 고깃덩어리와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은 포스를 내뿜고 있었지만.

환하게 웃는 그녀의 미소만큼은 그 나이대의 소녀다운 순수함이 깃들어 있었다.

“헌터님? 혹시 꼬불쳐 둔 위스키는 없으신가요?”

김혜옥이 부산스레 자신이 자랑하는 야생 스타일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신지현은 불만족스럽게 눈썹을 찡그린 채, 주방의 수납장을 뒤져대고 있었다.

“…진짜 없네. 아니 어떻게 한 병도 없을 수가 있지?”

찬장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어내지 못한 모양인지 신지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그녀는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지나쳐, 이번엔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맥주가 전부에요? 할 수 없네요. 지금은 이 ‘음료수’로 만족하는 수 밖에.”

평소 위스키를 물처럼 마셔대는 습관 탓인지. 독한 수입 맥주마저 그녀에겐 단순한 음료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숨을 푸욱 내쉰 신지현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들곤 그대로 들이키기 시작했다.

“매, 매니저님? 혜옥아?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크하아아. 조옿다아. …네? 어디로 들어왔냐뇨? 세영 씨가 도어락 비밀번호 알려주시던데요? 마침 혜옥 양이랑 근처에 들른 김에 겸사겸사 놀러와볼까 했죠.”

“…보통은 도어락 비밀번호 알아냈다고 이렇게 다짜고짜 쳐들어오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이상하다? 언제는 곤란한 일 있을 때마다. 언제든 찾아와도 된다면서요?”

히죽 웃으며 맥주캔을 입가에 가져가는 신지현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흘러 나왔다.

어쩐지 머리까지 어지러워지는 느낌에 나는 체념한 표정으로 그녀의 반대편에 털썩 걸터앉은 뒤. 맥주캔을 하나 집어 들었다.

“하아. 딱히 곤란한 일이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모처럼 혜옥 양이 술 한 잔 해도 된다고 허락해줬는데. 주변에 연 술집이 없잖아요? 이게 곤란한 일이 아니면 뭐겠어요? 캬하! 그래도 이건 좀 마실만 하네요!”

…그게 곤란한 일이야?

혹시 전생에 술에 한 맺힌 드워프였니?

“홋호! 단백질! 싸부님을 위한! 맛좋고! 질 좋은! 양질의 단백질!”

-콰직! 콰지직!

태연히 술을 들이 키는 신지현에게 한숨을 내쉰 새도 없이. 괴이쩍은 소리가 들려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굉음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니.

거대한 도끼를 붕붕 휘두르는 김혜옥이 특유의 괴상한 기합을 질러대며, 거무죽죽한 고기를 도마째로 썰어대고 있었다.

“불량품인가? 싸부님! 도마 새로 구입하셔야 할 것 같아요! 저희 공방에서 하나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 도마를 설계할 때. 보통은 근육질 거한이 전력을 담아 내려치는 것을 상정하진 않지.

도마를 고기 째로 쪼개버린 김혜옥은 콧노래를 부르며, 시커먼 고기를 냄비에 쓸어 담았다.

어지간한 어린 아이 정도는 너끈히 들어갈 것 같은 거대한 냄비에 고기가 가득 담기자.

그녀는 바구니에서 굉장한 사이즈의 버너를 꺼내더니, 그곳에 그대로 냄비를 얹었다.

“…설마. 이걸 한 번에 다 먹자는 건 아니겠지?”

“무슨 소리세요! 싸부님! 최근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다면서요! 식사는 제대로! 든든하게 챙겨드셔야죠!”

거의 성인 남성의 상반신만 한 버너가 화끈한 불길을 토해내자, 삽시간에 쿰쿰한 냄새의 고기 누린내가 집안 전체에 가득 차버렸다.

야생 그 자체의 향기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김혜옥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음? 이 기운은? 혜옥이로구나! 혜옥이가 왔어!]

…두통거리가 하나 더 늘었군.

오랜만에 김혜옥의 기운이 느껴져서일까?

반가운 고함과 함께 위철용이 내 가슴 언저리에서 고개를 쑤욱 내밀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훌륭하게 성장했구나! 역시 본존의 눈은 틀리지 않았느니라!]

잔뜩 흥분한 위철용이 내 가슴 께에서 뛰쳐 나와, 김혜옥 쪽으로 쪼르르 달려나갔다.

신지현의 불뚝이는 근육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거의 마약 중독자를 연상케 할 정도로 몽롱하게 풀려있었다.

“그래도 저거 꽤 먹을 만 하다구요. 뭐, 맨 정신으론 먹기 좀 무리가 있지만요.”

김혜옥이 바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부엌을 가득 채운 노릿한 냄새가 더욱 더 강렬해졌다.

어느새 맥주를 열 캔이나 연달아 비운 신지현은 어쩐지 살짝 꼬부라진 목소리로 격려하듯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싸부님! 이것이 바로! 스페셜 머슬 디쉬 버전 3!”

…그때 그 흉물의 바리에이션이 버전 3까지 늘어났다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김혜옥은 냄비에서 고기를 꺼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고기가 노릿한 냄새와 새하얀 김을 무럭무럭 내뿜었다.

성인 남성 한명은 누워도 될 법한 접시에 그 와일드한 요리를 덜어낸 김혜옥은 해맑게 웃으며, 내게 포크와 나이프를 건네었다.

“혜, 혜옥아. 열심히 요리해 준 건 고맙다만. 지금은 속이 좀….”

“어허! 무슨 말씀이세욧! 속이 안 좋을 때야말로! 소화 잘되는 고기를 드셔야죠!”

…이게 소화가 잘 된다고?

이런 흉물이 뱃속으로 들어가는 시점에서 이미 내장 건강과는 영원히 작별을 해야하지 않을까?

강렬한 냄새와 야성적인 비쥬얼에 질린 나는 김혜옥이 건넨 나이프를 거절하려 들었지만.

그녀는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더니, 반쯤 강제적으로 내게 그것을 쥐어 주었다.

어지간한 단검만 한 크기를 자랑하는 나이프의 우람한 자태에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여윽시! 먹을만해요오. 헌터님! 식기전에 드세요.”

냉장고에 비치되었던 맥주를 서른 캔을 혼자서 다 비워버린 신지현은 반쯤 꼬부라진 목소리로 밥상에 비치된 냅킨을 우적우적 깨물었다.

완전히 눈이 풀린 상태로 두 개의 눈동자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으로 봐선, 그녀 역시 정상은 아닌 듯 했다.

“어머나 매니저님! 냅킨 말고 고기를 드셔야죠!”

“고기요오? 이 하얀 고기가 아주 쫄깃하니 맛이가 좋은데에.”

“그러지 말고! 한점 드셔 보세요!”

“저어는 이 하얀 고기이…. 어컥!”

신지현이 계속해서 냅킨만 우물거리자.

김혜옥은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크게 썰어, 신지현의 입에 강제로 물려주었다.

“에퉤퉤퉤! 이, 이거 사람이 먹을 수 있는건 맞아요?”

“그럼요. 제가 이것 덕분에 얼마나 튼튼해졌는데요. 보세요! 이빨로 접시도 부술 수 있답니다! 홋-호!”

-쨍그랑!

김혜옥은 허옇게 변해버린 얼굴로 손을 휘젓는 신지현을 바라보며 히죽 웃더니.

자신의 앞에 놓인 고기를 접시 째로 우적우적 깨물어 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인간의 그것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듯한 모습에 나는 이마를 감싸 쥘 수 밖에 없었다.

“자아! 싸부님도 드셔보세요! 이번엔 특별히 양념을 매콤하게….”

“꺄아아악! 모, 목구멍이 타들어 같은 것 같아아아!”

과연 비범하게 매운 모양인지, 비명을 토해 낸 신지현은 냉장고 문을 벌컥 열더니 그대로 자신의 머리를 냉동실에 집었다.

그 상태로 축 늘어진 신지현의 반응으로 봐선, 아무래도 이 머슬디쉬 어쩌고 버전 3은 도저히 사람이 먹을만한 성질의 유기물은 아닌 듯 해 보였다.

아무리 내가 인간을 초월한 육신이 되었다지만, 굳이 독극물을 챙겨먹고 싶진 않았기에.

김혜옥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결정했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줘서 고맙다만, 혜옥아…. 마침 찾아온 김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줄 게 있는데 말이지.”

“…계획이요?”

‘계획’이라는 말에, 우걱우걱 흉물스러운 무언가를 씹어 삼키던 김혜옥이 눈빛이 묘하게 반짝거렸다.

“드디어 싸부님께 제가 도움이 될 날이 온건가요?!”

나를 바라보는 김혜옥의 눈빛이 기대를 품고 과하게 반짝거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씁쓸하게 웃은 나는, 그녀에게 미리 생각해둔 계획을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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