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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28화 (228/309)

제228화

강태백과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상의한 나는 오랜만에 ‘집’으로 향했다.

인간을 초월한 체력을 지닌 데다. 환골탈태까지 한 내겐 그다지 수면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사냥에 앞서 충분한 휴식을 취해, 힘을 비축해 두는 것도 포식자의 덕목 중 하나였기에,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찰나의 여유를 충분히 누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래,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기도 하거니와.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까진 조금이라도 힘을 비축해 둬야….

-삐삑. 삑. 삐빅!

“네에~ 갑니다!”

애석하게도 찰나의 휴식을 취하겠다는 내 당찬 포부는 집 내부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의해.

와장창 부서지고야 말았다.

도어락의 삑삑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쾌활한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몸이 흠칫 굳었다.

모처럼의 휴식을 갈망하며 느슨하게 풀어지려던 머릿속이 다시금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이 목소리는 분명.

“어머나! 오셨어요? 용호 씨?”

고급스럽게 꾸며진 문이 열리자. 예상했던 인물이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내 얼굴이 그려진 해괴한 티셔츠에,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눈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집착.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의 정체는, 내가 짐작했던 대로 이세영이였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얼마나 집을 오래 비우셨는지. 먼지가 아주 그냥!”

…뭐지? 꿈인가?

이세영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끊임없이 조잘대며 간간이 꺄르륵 웃어댔지만.

그녀의 집착 섞인 해맑은 미소와 마주한 내 머릿속엔 혼란만이 가득했다.

이세영의 계속된 스토커 질에 지쳐, 이름난 보안업체에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창문과 대문에 보안장치를 시공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였다.

값비싼 설비를 시공해 준 보안업체 측에선 건곤 길드의 ‘익살꾼’ 이진욱조차. 함부로 침입할 수 없을 정도의 안전성이라 자신있게 떠들어댔으나….

어째선지 이세영은 자신의 아버지마저 침입할 수 없다는 보안장치를 가볍게 돌파해, 내 집에서 자신의 음험한 스토커 라이프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중인 듯 했다.

‘익살꾼’은커녕 스토커 한 명도 제대로 못막는 방범장치라니.

허위 광고로 선량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장사꾼 놈들에겐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 맛을 좀 보여줘야….

…아,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지금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도대체.”

“어머나…? 연락 드렸었는데. 못 받으셨어요?”

살짝 기분이 나빠진 내 목소리엔 시릴듯한 한기가 깃들어 있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이세영의 표정엔 여전히 생글거리는 미소가 가득했다.

오히려 그녀는 미리 연락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잠깐만, 미리 연락을 했다고?

…그러고 보니. 왜곡형 게이트에서 나온 이래로 스마트폰을 켠 적이 없긴 했군.

-우웅! 우우우웅!

미심쩍은 마음에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원을 켠 순간.

그동안 이세영이 보내왔던 메시지가 폭풍 속의 빗줄기처럼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실시간으로 주르륵 끊임없이 이어지는 메시지의 향연과 쉴 새 없이 알람을 토해내며 부르르 진동해대는 스마트폰의 범상치 않은 모습에 순간적으로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용호 씨? 용호씨? 지난번에 부탁하셨던 것 말인데요.

-아이. 먼젓번에 부탁하셨던 일 끝났으니. 대답해주세요.

-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

-찾아갈거야!찾아갈거야!찾아갈거야!찾아가서찔러죽이고나도죽을테야!

-대답이 없으신 걸로 봐서. 허락하신 걸로 판단할게요. 그럼 나중에 뵈어요.

…워매. 이게 다 뭐야.

5인치짜리 화면에선 스토커 특유의 광기를 띈 메세지들이 으스스하게 출력되고 있었다.

등에 오소소 돋았던 소름이 더욱 진해졌다. 한줄기 식은땀이 허리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옛말에 침묵은 무언의 긍정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허락하신 걸로 판단하고….”

-스르릉!

헤실거리며 웃어대던 이세영의 눈에서 괴이쩍은 광기가 섬뜩하게 빛났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등 뒤에서 서늘한 소리와 함께, 단검 두 자루가 뽑혀 나왔다.

“같이 죽어요! 먼저 찌르고! 쑤시고! 그 다음엔 용호 씨 외롭지 않게 나도 따라갈 테야앗!”

“세, 세영 씨? 갑자기 이게 무슨!”

갑자기 시작된 공격에 질겁한 나는 이세영과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돌아온 것은 살기를 품고 휘둘러진 한 쌍의 단검 뿐이었다.

“다 필요 없어! 내가. 내가 가질 거야! 잘생긴 얼굴? 조각 같은 몸? 다! 다 내꺼야!”

이세영은 광기에 절은 목소리로 알 수 없는 소리를 뇌까리며, 계속해서 단검을 휘둘러 왔다.

서늘한 칼날이 음울한 광기를 품고 거침없이 내게 날아들었다.

-써걱!! 써거걱!

광기에 잠식된 이세영의 공격은 먼젓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녀의 두 손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단검 두 자루는 섬뜩한 기운을 흩뿌리며 허공을 갈랐고.

모종의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인지, 단검의 끝엔 불그스름한 기운이 희미하게 맺혀 있었다.

“…하아. 진짜. 이제 좀 쉬려고 했는데. 별 정신 나간 것이!”

그렇지 않아도 계속된 사건과 사건의 연속에 지쳐버린 상태에서 이세영의 광기를 맞이하니.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뚝 끊어졌다.

광기에 절은 채로 날뛰는 그녀를 바라보는 내 두 눈이 섬뜩하게 귀화를 품었다.

시커먼 내력과 암녹색 내력이 소용돌이치며, 무서운 힘을 전신에 불어넣었다.

-꽈드득!

번개처럼 휘둘러진 단검을 맨손으로 붙잡아 살짝 악력을 가하자.

희미한 마력이 맺힌 채, 번들거리는 살기를 품은 단검이 단숨에 반으로 뚝 부러졌다.

광기에 절어 있던 이세영의 눈에 이채가 스치기도 전에. 나는 쫙 편 손바닥으로 그녀의 등짝을 힘껏 후려쳤다.

“정신차려! 이 사람아!”

“히끅.”

…아니, 정확하겐 후려치려고 들었다.

“으아아앙! 나쁜 놈아아아아!”

단검이 똑 부러진 순간. 이세영의 입에서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울음이 폭발하듯 터졌다.

별안간 주저앉은 이세영은 부모에게 꾸중을 들은 아이처럼 서러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통곡했다.

…뭐여 이건 또.

“흐어엉. 흐어어엉. 누구 때문에 길드에서도 잘렸는데. 죽을 위기도 몇 번이나 넘겼는데에!”

주저앉은 채로 울음을 터뜨린 이세영은 계속해서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흐느꼈다.

웅엉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알아듣기 힘든 수준이었지만. 그 속엔 그냥 넘겨들을 수 없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잘렸다니요? 죽을 위기를 넘거요?”

“그래! 흐어어엉. 이 나쁜놈아! 네가 시킨 대로 하다가 길드에서도 짤리고오. 암살자는 계속 찾아오는데에. 내 문자 무시하기나 하고오.”

아무래도 이번엔 광적인 집착에서 비롯된 스토커 행위가 아니라. 뭔가 사연이 있는 듯 했다.

흐느끼는 이세영의 눈빛에선 진심으로 억울한 기운이 풀풀 풍겨왔다.

“…미안합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그만.”

무너져 내린 채로 흐느끼는 이세영의 모습에, 나는 마력과 내력을 다시 거둬들였다.

그리곤 흐느끼는 이세영을 살짝 끌어 안고, 서럽게 우는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

이세영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것은 그녀의 칭얼거림을 꽤 오랫동안 받아낸 뒤였다.

그동안 그녀는 내가 실종 당한 동안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는지, 그동안 내 흔적을 탐색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해왔는지 등등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고생이 많으셨군요.”

“그러게요오. 용호 씨 요청대로 태백 길드의 ‘높으신 분’들의 뒤를 캐고 있었는데에. 갑자기 저희 길드 상부에서 저보고 손을 떼라고 하지 뭐에요오? 히이잉.”

이세영은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다 큰 아가씨가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것이 그리 듣기 좋지는 않았지만.

일단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야 했기에, 나는 뭔가 꾸역꾸역 올라오는 감정을 억지로 삼켰다.

“그래서. 용호 씨를 사모하는 마음과 정보 길드의 길드원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마음이 가는 쪽을 선택한 거죠. 뭐.”

“그렇군요. 저를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 줄이야…. 마침 저희 태백에서도 쓸만한 인력이 필요하던 차였으니. 이 기회에 저희랑 계약을….”

“…어머나?!”

어째선지 이세영의 볼이 제철을 맞은 딸기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제 볼을 감싼 그녀의 얼굴에 묘하게 황홀한 표정이 깃들었다.

“세상에. 계약이라니! 이제 저만 바라보시겠다는 고백이신가요?”

…도대체 머리에서 어떤 사고과정을 거쳐야 그런 해괴한 답이 튀어나오는데?

“…계약금은 넉넉히 드릴 테니까. 저랑 같이 일하자는 말입니다.”

“계약금을 넉넉히 주신다구요?”

뭔가 내가 말을 잘못 꺼낸 것일까?

새하얀 손가락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이세영의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계약금’이란 단어에 반응한 그녀의 숨소리가 어째선지 기괴하게 거칠어졌다.

기분 나쁘게 자꾸만 몸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에선 모종의 광기마저 느껴졌다.

“좋아요! 할게요! 하게 해주세요. ‘계약금’으로 무엇을 요구할진 제가 요구하면 되는 거죠?”

…도대체 뭘 요구하려고 벌써부터 저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건데.

기분 나쁜 형태로 휘어진 이세영의 눈이 내 몸을 더듬자, 또다시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그녀의 태도로 미뤄보건대, 그녀가 제시할 ‘계약금’은 정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기에 나는 재빨리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다.

“이, 일단은 신지현 매니저님이랑 계약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시는 것이….”

“어머, 부끄러워하시긴. 귀엽기도 하셔라. 네에 지현 씨랑 ‘계약금’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를 해볼게요오! 나중에 뵈어요!”

하지만 알 수 없는 괴소를 흘린 이세영은 제멋대로 떠들더니, 말릴 새도 없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신지현이 제대로 대처하길 바래야겠군.”

왜인지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꾹꾹 억누른 나는 이세영이 남긴 흔적들이 가득한 소파에 무너지듯 몸을 뉘었다.

불청객으로 인해, 정신적인 피로가 더해졌던 모양인지.

푹신한 쿠션에 몸이 안착되는 순간 시야가 온통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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