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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25화 (225/309)

제225화

「서사시 『가네샤』의 효과가 종료됩니다.」

누군가에겐 영겁과도 같았을 1분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사지가 완전히 박살 난 아스모데우스의 몸뚱이가 파스스 흩어지기 시작하자.

허무하게 흩날리는 놈의 육신을 배경으로 삼아, 가네샤의 서사시가 종료되었다.

내 몸을 충만하게 채웠던 성좌의 신력이 내 몸뚱이에서 거짓말처럼 멀끔히 사라졌지만.

이미 아스모데우스의 근원을 파괴한 상태였기에, 나는 그리 개의치 않았다.

“이런 식으로 결말을 맺어버릴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너도 그렇지?”

《끄, 끄으윽….》

사라져가는 아스모데우스의 앞에 쪼그려 앉아, 히죽거리며 머리를 붙잡아 들어 올렸지만.

애석하게도 놈의 입에선 별다른 말 없이 고통 어린 신음만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마디 해보지. 그래? 우리 사이가 어디 보통 사이였나?”

《….》

나는 계속해서 아스모데우스의 머리를 붙잡은 채, 놈의 귓가에 대고 이죽거렸다.

하지만 놈은 그저 공포에 찌든 눈으로 사라져가는 자신의 육신을 안타깝게 더듬을 뿐이었다.

가네샤의 신력이 담긴 회색빛 속에서 아스모데우스의 육체는 내 의도대로 아주 느릿하게 분해되고 있었다.

《이, 이럴 순 없어. 이건 아니야….》

아스모데우스의 육신이 절반쯤 분해되어 허공에 허망하게 흩날린 순간.

공포 섞인 침묵을 유지하던 놈의 입에서 마침내, 허탈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수없이 돌아갈 동안 단 한 번도 우리의 계획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통통하게 살찐 ‘그릇’은 우리의 차지가 되었어야 했거늘….》

몸뚱이만 남은 채로 탄식하는 아스모데우스는 그야말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팔다리는 진작 회색빛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고 몸뚱이 곳곳엔 시커먼 혈흔이 가득했다.

퇴폐적인 웃음을 요망하게 머금었던 얼굴은 불어터진 만두처럼 변해, 원래의 형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실패한 적이 없긴. 단 한 번도 인과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꼭두각시 주제에.”

아스모데우스의 허탈한 뇌까림을 들은 나는 입꼬리를 뒤틀었다.

이번에야말로 성좌의 시대가 저무네 뭐네 거창하게 떠들어댔지만, 낙오자들의 기억에 의하면 아스모데우스는 영화 속의 배우처럼 수없이 흘러간 역사 속에서 똑같은 소리를 지껄였었다.

말하자면 놈 역시, 단 한 번도 인과율이 짜놓은 판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꼭두각시에 불과한 존재였다.

《비록 내가 패배하긴 했지만. 엉뚱한 헛소리로 나를 능멸하러 들지 마라! 지난번 전쟁에선 분명히 우리는 그릇을 흡수하여. 성좌의 시대를…》

“성좌의 시대가 그때 끝났으면, 그쪽이 신성력을 잃어버린 낙오자 꼴로 영락해 있었겠어? 아니, 그것보다 너희들이 그때 승리했다면. 이 꼴같잖은 전쟁 자체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비웃음 섞인 조롱을 들은 아스모데우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최후의 기운을 짜내, 독기를 품었던 눈이 멍하게 풀렸다. 악귀처럼 일그러졌던 표정이 허무한 감정을 품었다.

《그렇군…. 내게 각인된 기억마저 모두 조작된 것이었어. 우리는 헛된 희망을 품고 놈의 손아귀에서 계속해서 놀아난 게로군.》

아스모데우스는 지독한 허무함이 깃든 목소리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니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당한 씁쓸한 표정이 놈의 얼굴에 깃들었다.

그로 인해 마지막 미련마저 놓아버린 모양인지. 회색빛에 휘감긴 몸이 더욱 빠르게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래. 아무리 금칠을 해봐야. 결국엔 너도 처음부터 끝까지 인과율의 손에 놀아난 꼭두각시에 불과한 존재였지. 이제 그만 가라.”

나는 빛속에서 머리만 남은 아스모데우스의 머리를 우직 짓밟았다.

허탈한 감정을 품은 눈물이 놈의 눈가에서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내 발에 짓밟혀 부서졌다.

다른 낙오자들처럼 아스모데우스 또한 인과율의 장난질에 당한 피해자였지만.

놈이 그동안 해온 짓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아스모데우스에게 『영혼 제령술』을 통한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축하합니다. 낙오자 『아스모데우스』의 영혼을 해방하셨습니다.」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에 새로운 영웅시 『아스모데우스』가 등록됩니다.」

“…놈의 원혼을 달래주지도 않았는데. 영웅시가 추가 되었다고? 별로 내키지 않은 존재의 영웅시가 들어와버렸군.”

아스모데우스가 지닌 힘이 그다지 탐나지도 않았거니와.

그동안 놈이 행했던 악행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기에, 『영혼 제령술』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기이하게도 아스모데우스의 머리통이 소멸함과 동시에, 놈의 업과 기억이 내게 흡수되었다.

머릿속에 치밀어오르는 달갑지 않은 기억의 향연에 나는 쓰게 웃었다.

******

아스모데우스와의 질긴 인연을 끝맺은 뒤.

나는 구석에서 신지현을 치료하고 있던 김혜옥에게 다가갔다.

뭔가가 잘못된 것인지, 신지현의 몸을 치유하던 김혜옥의 안색이 완전히 창백해져 있었다.

“싸, 싸부님. 어, 어떡해요? 치유는 했는데…. 매니저님이….”

선량함을 품은 김혜옥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녀에게 닥친 비극을 증명하듯, 신지현에게선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도, 쌕쌕거리는 숨소리도, 히스테리에 가득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김혜옥의 품에 안긴 신지현은 그저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어, 어떡해요. 우, 우리 매니저 언니. 아직 살도 다 안빼줬는데. 일하느라 뭉친 승모근도 내가 어떻게 해결해 주기로 약속했는데.”

“진정해. 괜찮으니까. 매니저님 아직 안죽었거든? 마음대로 죽은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내 팔을 덥썩 붙잡은 김혜옥은 눈물을 흘리며, 알 수 없는 횡설수설을 늘어 놓았다.

그런 김혜옥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준 나는, 신지현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녀의 머리에 손을 갖다 대었다.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의 효과에 따라, 영웅시 『마하가라』가 잊혀진 영웅의 힘과 권능을 노래합니다.」

「사용자님이 보유한 마력에 따라, 영웅시 『마하가라』의 효과는 『15분』 동안 지속됩니다.」

신지현의 머리에 손을 가져간 순간, 내 의지에 따라 마하가라의 영웅시가 발동되었다.

가네샤의 서사시에 대부분의 마력을 소모한 탓인지. 발동된 영웅시의 지속시간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이 짧았지만.

15분이란 시간은 그녀를 되살리는데, 충분하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희미한 주황빛이 내 몸을 감싸자. 어깨죽지에서 자그마한 빛의 날개가 자라났다.

등 뒤편에서 희미한 빛을 내뿜는 둥그스름한 고리가 돋아나, 천천히 회전했다.

그렇게 시간을 조율하는 신, 마하가라의 권능을 두른 나는, 신지현 향해 손을 뻗으며 시간의 권능을 끌어올렸다.

-스파아앗!

시간의 권능이 담긴 주황색 마력이 내 손을 타고 신지현을 감싸자..

희미한 주황빛 마력에 휘감긴 신지현의 몸이 정신없이 퍼덕이기 시작했다.

등 뒤에 떠오른 빛의 고리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회전했다.

상서로운 주황빛을 뿜어내는 날개가 천천히 펄럭이며, 아스모데우스에게 빼앗겼던 신지현의 시간을 다시 되돌리기 시작했다.

-번쩍!

“갸아아아악! 내 몸에 손만 대봐! 캬악!”

…아잇씨 깜짝이야.

주황빛에 휘감긴 신지현의 눈이 별안간 번쩍 뜨였다.

괴상한 비명과 함께, 그녀의 쩍 벌려진 입에서 알 수 없는 괴성이 터져나왔다.

풍 맞은 햄스터처럼 정신없이 몸을 퍼덕거린 그녀는 튕기듯 김혜옥의 품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쉿! 쉿! 물러서! 내가 이렇게 보여도, 소싯적에 은평구의 성난 햄스터 소릴 들었던 사람이야!”

“매, 매니저 언니? 무사하셨…. 꺄악!”

“물러서랬지? 물러서랬지이!”

아무래도 부활하면서 뭔가가 살짝 맛이 가버린 모양이었다.

알아 듣지 못할 소리를 뇌까린 신지현의 눈은 정말로 맛이 가버린 사람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이상한 소리를 쩌렁쩌렁하게 외친 신지현은 그대로 굶주린 햄스터처럼 몸을 날려, 김혜옥을 덮쳤다.

그리곤 광기에 절은 눈을 요사스레 빛내더니, 김혜옥의 탄탄한 근육을 콱콱 입으로 콱콱 물어대기 시작했다.

…물론. 김혜옥의 강철같은 근육을 그녀의 여리디 여린 치악력으로 어떻게 해볼 수는 없었지만 말이지.

“캬아아악! 역시 단단하구나! 이 악독한….”

김혜옥의 튼튼하기 짝이없는 승모근을 우득 깨문 신지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비명을 터뜨린 그녀는 마치 성이 난 치와와처럼 울부짖더니, 손톱을 뾰족하게 세워 마구잡이로 김혜옥의 몸을 박박 긁어대기 시작했다.

…하아. 어째 이 양반은 깨울 때마다. 이렇게 원초적인 짐승이 모습을 보이시는지.

“싸, 싸부님? 매니저님이 이상해요. 머, 머리를 좀 치유해야할까요?”

“…아서라. 그걸로 내려치면 진짜로 죽어. 아무래도. 정신적인 충격을 좀 크게 받은 것 같으니까. 미안하지만 혜옥이 니가 좀 꽉 안아주고 있어주렴.”

증오에 가득 찬 한 마리 치와와처럼 구는 신지현의 행동에, 대단히 당황한 김혜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큼지막한 주먹을 치켜들었다.

김혜옥의 주먹에 심상치 않은 회색빛 기운이 이글거리는 것을 발견한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만류했다.

그대신, 나는 당황한 김혜옥에게 신지현의 울분이 풀릴 때까지 그녀를 붙잡아 달라 부탁했다.

“마쪽들! 쭉일거야아앗! 이이익!”

…신지현이 증오에 가득 찬 한 마리 치와와처럼 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테지.

아무리 그녀가 담대한 성격이라고 해도, 마족들에게 붙잡혀. 육신을 빼앗긴 경험은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닐테니까.

이미 모든 것이 다 종료된 상태이니, 그녀가 조금 히스테리 섞인 앙탈을 부리는 것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신 팀장?”

애석하게도 신지현의 운세는 그리 좋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김혜옥의 품속에서 한 마리 성난 치와와처럼 울부짖던 그녀의 앞에, 어리둥절한 표정의 강태백이 나타났다.

“쭉일거야! 마조오옥! 어, 어머나? 기, 길드장님?”

괴성을 질러대던 신지현의 얼굴이 급속도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김혜옥의 품 속에서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던 그녀의 몸짓이 조금씩 조금씩 얌전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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