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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17화 (217/309)

제217화

-콰드드드득!

라가하마를 향해 히죽 비웃음을 흘려낸 나는, 시간의 소용돌이를 향해 어둠달을 휘둘렀다.

암녹색 마력과 시커먼 내력의 나선이 어둠달의 창신을 타고 흉험한 와류를 만들어냈다.

타락의 권능이 창날에서 음울한 빛을 흩뿌리며, 라가하마가 숨어있는 시간의 소용돌이를 그대로 찢어 발겨버렸다.

《커헉!》

뒤틀린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라가하마들이 동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놈의 비명을 배경음으로 삼아, 정신없이 휘몰아치던 시간의 소용돌이가 사라져갔다.

사라진 시간의 소용돌이에서 라가하마의 육신이 뚝 떨어져 내렸다.

“봐봐. 제아무리 여러 시간대에 숨은들 너라는 존재는 하나뿐이라니까.”

라가하마는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 몸을 숨겨, 다양한 시간대의 자신을 분신처럼 내세웠지만.

시간의 소용돌이를 두르기 전에, 놈의 육신엔 이미 타락의 권능이 암세포처럼 퍼져 있었다.

그렇기에,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 숨은 것 자체가이라가하마에겐 치명적인 악수로 작용한 것이었다.

시간의 소용돌이를 타고, 타락의 권능이 모든 시간대의 놈에게 퍼져 나가버렸으니 말이지.

《어, 어느새 내게 이만한 타락의 권능을…. 흐윽!》

간신히 몸을 일으킨 라가하마는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대단히 애석하게도 내겐 놈의 개인적인 의문을 해결해줄 이유 따윈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친절한 설명이 아니라, 서늘한 빛을 흩뿌리는 창날뿐이었다.

-콰득! 콰드득! 콰득!

파천 복룡창의 제 일식 연포가 암녹색 마력과 검은 내력을 휘감고 라가하마의 몸을 유린했다.

위철용의 말대로 신물의 힘으로 옛 육신을 벗어던진 후로 파천 복룡창 또한 새롭게 거듭났다.

창날에서 솟아난 일곱 개의 나선형 소용돌이가 깃털 덮인 놈의 육신을 연속으로 꿰뚫었다.

-푸화하학!

라가하마의 육신을 꿰뚫은 나선형 소용돌이는 타락과 부패의 권능을 듬뿍 머금고 있었다.

코가 얼얼해질 듯한 악취와 함께, 꿰뚫린 상처가 삽시간에 썩어들어갔다.

부패한 상처에서 터져 나온 주황색 핏줄기가 산성을 띤 형태로 뒤틀려, 놈의 육신을 녹였다.

《크흑. 크으으윽! 아직이다. 타락과 부패의 권능은 필멸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종 따위가 감히 감당하기 어려운 법! 시간은 언제나 내 편이다!》

어둠달을 회수한 뒤,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던 찰나.

온몸에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린 라가하마가 별안간 광포한 포효를 내질렀다.

부리에서 포효가 토해짐과 동시에, 놈은 발악하듯 또다시 시간의 권능을 발휘했다.

“…시간이 언제나 네 편이라고? 과연 그럴까?”

사방을 장악해오는 주황빛 마력에 히죽 비웃음을 흘려낸 나는, 외골격을 끌어올렸다.

황금빛 외골격이 찬란한 광채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피부 위에 차르륵 돋아났다.

돋아난 외골격 위에 마력과 내력을 머금은 나선형 무늬가 문신처럼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아까처럼 단박에 무력화시키지는 못하는군! 감히 이 몸을 눈앞에 두고 시건방지게 여유를 떤 것이 네놈의 패인이다!》

기세등등하게 웃으며, 힘껏 손가락을 놀리는 라가하마의 모습에 나는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조금 전처럼 시간의 권능을 단번에 무력화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고 오만하게 지껄인 놈에게 처절한 절망을 맛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꾸드드득!

삽시간에 사방을 잠식해온 시간의 권능이 외골격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는 주황색 마력의 힘으로 내 육신의 시간이 빠르게 가속되었다.

새로 돋아난 피부에 노화가 찾아왔다. 근육이 힘을 잃고 노쇠해졌다.

굳건하게 몸을 지탱하던 뼈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갈대처럼 휘청였다.

《으흐하하하하! 네놈이 아무리 강한 권능을 손에 넣었다고 한들. 필멸의 육신으론 노화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지! 그대로 시간의 흐름 속에 짓눌려 스러져라!》

내 몸이 빠르게 노화하기 시작하자, 라가하마의 얼굴에 예의 그 가학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승리를 확신한 놈의 눈이 또다시 오만하게 초승달모양으로 휘어졌다.

끝을 보려는 듯. 내 몸을 옥죄어 온 주황빛 마력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빠지지직!

가속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굵은 고목이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내 몸에서 울려 퍼졌다.

휘청대다 균형을 잃어버린 두 다리가 그대로 힘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미이라처럼 바짝 깡마른 양팔이 힘없이 바닥을 향해 떨궈졌다.

탄력을 잃어버린 양팔의 피부가 허물처럼 부스스 떨어져 나갔다.

《꼴 좋군. 엄혹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필멸의 육신은 하찮은 것에 불과한 법이지.》

승리를 확신한 라가하마는 비웃듯 이죽거리며,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내게 걸어왔다.

그리곤 마치 전리품을 취하려는 듯, 양팔에 칼날을 생성해 내 목을 취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파스스스.

《…뭐?》

내 목을 향해 휘둘렀던 라가하마의 칼날이 새하얀 빛 속에서 허무하게 부스러졌다.

놈의 얼굴에 당황의 감정이 서릴 새도 없이, 새하얗게 웃은 나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의 효과에 따라, 영웅시 『니르리티』가 잊혀진 영웅의 힘과 권능을 노래합니다.」

「사용자님이 보유한 마력에 따라, 영웅시 『니리르티』의 효과는 『24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라가하마가 자신만만하게 지껄인 것과는 달리, 내 육신은 이미 평범한 이의 한계를 한참 뛰어넘은 상태였다.

몸이 노화된 것처럼 보인 것은, 단순히 니르리티의 영웅시를 발동시킨 영향으로 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가속되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고맙게도 재사용 대기시간이 모두 충족된 탓에, 나는 다시 그녀의 힘을 두를 수 있었다.

“시간이 네놈의 편이라고?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른걸?”

신물의 힘으로 몸속에 보유한 마력과 내력의 총 양이 늘어난 탓일까?

내 몸을 휘감은 니르리티의 권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수준이었다.

파괴와 죽음의 권능이 고작 양팔에 깃들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내 육신 전체에 그녀의 권능이 후광처럼 깃들어 있었다.

영웅시의 지속시간 역시,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증폭된 상태였다.

…압도적인 파괴와 죽음의 권능으로 인해, 마치 벼락 맞은 해골이나 다를 바가 없는 몰골이 되어버린 게 문제긴 하지만 말이지.

《마, 말도 안 돼. 이, 이것은! 이 힘은…! 아무리 그릇이라고 한들 어찌 인간종 따위가 두 개의 권능을!》

낙오자로 영락한 바알제불의 권능 역시, 강력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지만.

파괴력에 한해선 파괴와 죽음을 관장했던 니르리티의 막강한 권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새로운 권능을 두른 내 모습에, 라가하마의 얼굴이 완전히 새하얗게 변했다.

더듬거리는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공포의 감정이 서렸다.

“글쎄? 그걸 굳이 내가 알려 줄 필요가 있을까?”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힌 라가하마를 바라보며 나는 해맑게 웃었다.

파괴와 죽음을 두른 채, 뼈만 남은 육신에서 강력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머릿속으로 니르리티의 권능에 관련된 새로운 지식들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오, 오지마! 오지마! 나, 나는 새로운 세계에서 시간을 다스릴 몸이란 말이다!》

불안한 예감을 느낀 라가하마는 필사적으로 주황색 마력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하지만 주변의 시간을 왜곡시키며 날아든 놈의 공격 따윈, 내 몸 위에 너울거리는 새하얀 파괴의 빛에 가로막혀 허무하게 사라질 뿐이었다.

“정말이지. 처음부터 그녀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너 따윈 한주먹거리였을 텐데 말이지. 아니다. 덕분에 ‘성장’ 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나는 실없는 소리를 흘려대며, 라가하마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내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갈 때마다, 공포에 질린 놈은 두 걸음씩 뒤로 황급하게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고 하얗게 웃는 나의 외골격에서 두 가지 기운이 나선형으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득!

파괴의 기운을 품은 새하얀 빛과 죽음의 기운을 품은 새까만 어둠이 나선형으로 뒤틀렸다.

빛과 어둠이 뒤엉킨 잿빛 소용돌이가 내 외골격 위에서 광포하게 휘몰아쳤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라가하마가 황급히 뭐라 소리를 지르려던 그 순간!

-번-쩍!

외골격 위에서 광포하게 휘몰아치던 잿빛 소용돌이가 새하얀 빛을 토해냈다.

암룡등천이 니르리티의 권능을 품고 가장 파멸적인 형태로 구현되었다.

눈이 멀어버릴 만큼 강렬한 빛의 세례 속에서 모든 것이 완전히 하얗게 물들었다.

새하얗게 물들어버린 세상 속에서 순간적으로 소리가 사라졌다. 그림자가 자취를 감추었다.

《….》

새하얀 빛의 향연 속에서 그것보다 더 새하얗게 질렸던 라가하마는 비명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저 부리를 멍청하게 뻐끔 벌린 모습 그대로 놈은 빛 속에서 완전히 산화되어버렸다.

-파아아앗!

희미하게 흩날리는 잿가루 속에서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라가하마의 최후를 발동한 순간, 즉시 발동시킨 『원혼 제령술』이 뿜어낸 빛이었다.

《아. 아아아. 그랬구나. 그랬구나. 역시 너는….》

『영혼 제령술』의 따스한 빛 속에서 어쩐지 온화해진 라가하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후를 맞은 뒤에야, 자신을 얽매던 구속에서 벗어난 모양인지. 그는 뒤늦게 나에 대한 지식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부끄럽게도 내 미력한 권능이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겠군. 면목이 없지만. 부디…. 이 저주받은 순환을 끝내주게》

「축하합니다. 낙오자 『마하가라』의 영혼을 해방하셨습니다.」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에 새로운 영웅시 『마하가라』가 등록됩니다.」

마지막으로 씁쓸하게 중얼거린 라가하마, 아니 마하가라는 다른 이들이 그랬듯.

자신의 업과 기억을 내게 남긴 채, 뒤늦게 허용된 안식을 향해 떠났다.

“…도움이 안 될 것 같다고? 아냐. 굉장히 쓸만한 권능인걸?”

머릿속에 밀려 들어오는 마하가라의 기억과, 시간을 다루는 권능을 떠올린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하다는 말과는 달리, ‘시간’ 그 자체를 다루는 그의 능력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유용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길드장실에 숨어있는 그놈과 대면하는 것뿐인가?”

마하가라의 기억에 따르면, 이제 이 건물에 남은 적은 길드장실에 도사린 ‘그놈’이 유일했다.

눈을 가늘게 뜬 나는 길드장실이 위치한 꼭대기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 우선 그 전에 태아가 되어버린 이들부터 원래대로 되돌리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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