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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09화 (209/309)

제209화

“혜옥…이?”

“네네! 싸부님! 저예요!”

잔뜩 메마르고 갈라진 목소리로 하나뿐인 제자의 이름을 부르자.

나를 꽈악 끌어안은 김혜옥은 대답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온몸을 으스러뜨릴 듯 강렬히 가해지는 압박감이 강해질수록 의식이 조금씩 또렷해졌다.

덕분에 흐릿했던 시야가 맑아지며, 주변의 광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직!

라크슈마의 권능을 폭발시킨 일격에 휩쓸린 지하실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콘크리트를 덧바른 벽은 모조리 무너진 채로 흉한 철골을 드러내고 있었고,

지하실의 바닥이란 바닥은 메마른 논바닥처럼 흉측하게 쩍쩍 갈라진 채, 전선과 철근들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부서진 전등들에선 시퍼런 전하를 머금은 스파크가 번뜩이며, 어둠을 섬뜩하게 밝히고 있었다.

“…안전하게 피해 있으라니까.”

폐허가 되어버린 지하실에서 나를 꼬옥 붙들고 있는 김혜옥의 몸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다.

계단 위쪽으로 대피하라는 지시를 절반만 이행했는지, 아무래도 그녀는 마지막 순간 들려온 굉음에 더는 참지 못하고 지하실로 난입해 폭발에 휩쓸린 듯한 행색이었다.

차돌처럼 단단하고 느릅나무처럼 굳건한 김혜옥의 육신 이곳저곳엔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지고 찢어진 상처들이 가득했다.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그녀의 얼굴엔 피부가 통째로 익어버린 듯, 짓물러진 화상 자국들이 곳곳에 얼룩처럼 남아있었다.

“으아아앙! 어떻게 싸부님을 내버려 두고 저 혼자 살자고 도망쳐요!”

김혜옥의 처참한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껴, 미안한 마음에 한 소리였지만.

그 말이 그리도 서럽게 느껴졌는지. 내 얼굴 위로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더욱 굵어졌다.

“그래도 그렇지 무모한 짓을….”

라크슈마의 네 가지 권능을 응축시킨 일격은, 비록 껍데기뿐이긴 했어도 현실에 강림한 성좌의 육신을 완전히 멸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칫하면 그것에 휩쓸린 김혜옥의 육신이 완전히 소멸해버릴 만큼 무모한 짓이었기에, 스승된 입장으로서 엄히 꾸짖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내 입에선 엄한 소리의 ㅇ자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니, 김혜옥의 전신에 가득한 상처의 형태에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나를 감싸기까지 했구나.”

김혜옥의 육신에 새겨진 상처들은 하나 같이 바깥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폭발을 뚫고 들어온 그녀는 그대로 내 몸을 감싼 채로 엎드려, 이어진 후폭풍을 고스란히 자신의 몸으로 받아낸 듯했다.

게다가 아직까지 상처가 가득한 것으로 봐선, 김혜옥은 자신도 그리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도 내 상처 입은 몸뚱어리를 치료하는 것에 전념했던 모양이었다.

그만큼 혜옥이에겐 자신의 삶을 구원해준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각별하게 느껴진 건가?

…뭐. 나도 회귀 전엔 김혜연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끼긴 했었으니까.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그간 타인의 조건 없는 선의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탓인지. 김혜옥이 보여준 헌신적인 행동에 코끝이 찡해지며, 괜시리 가슴이 먹먹해졌다.

뭔가 멋들어진 말로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벅차올라, 내 입에선 생각했던 것만큼 멋진 말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영 멋없는 말을 아무렇게나 지껄이며, 나는 멋쩍은 손놀림으로 김혜옥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내게 처음으로 칭찬을 들은 탓인지, 김혜옥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걱정을 품은 채로 찌푸려졌던 미간이 온기를 머금고 살짝 풀어졌다.

고갈된 내력이 완전히 돌아올 때까지, 나는 그렇게 김혜옥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끄응차.”

-우두두둑!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내력이 돌아오자,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김혜옥 덕분에 육신의 상처는 대부분 회복된 상태였지만 몸을 일으키자, 뻐근한 고통과 함께 흡사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지하실 전체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세상에! 아직 치유가 덜 된 부위가 있나 봐요! 가만있어 보세요. 이 주먹 한 방이면 그냥…!”

“그 정도까진 아냐. 몸이 좀 뻐근한 것뿐이니까. 여유 되면 나보단 네 상처를 먼저 돌보렴.”

내 몸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자.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김혜옥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녀의 상처 입은 근육들이 위협적으로 꿈틀거리며, 다시 한번 ‘치유’를 준비했다.

나를 바라보는 김혜옥의 눈에서 심상치 않은 안광이 번뜩이자, 나는 부드럽게 손사래를 치며 흥분한 그녀를 만류했다.

“제 상처요? 이 정도 생채기쯤은 끄떡도…. 아얏!”

내 말에 김혜옥은 시선을 돌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찢어지고 갈라진 상처들과 화상으로 짓무른 상처들을 바라본 그녀는 짐짓 아무것도 아니란 표정을 지었지만.

피식 웃은 내가 상처를 슬쩍 건드리자. 대범한 척 하던 김혜옥의 입에서 고통 어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거봐. 아프잖아. 난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지을 테니까. 혜옥이 넌 여기서 잠시 네 상처를 좀 돌보고 있어.”

불청객들로 인해 시간이 조금 소모되긴 했지만, 애초에 나와 김혜옥이 이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찾아온 이유는, 마력로를 부수기 위해서였다.

조금 전의 폭발이 엄청났기에, 마력로가 부숴졌을 법도 하지만. 일을 확실히 해야했기에.

어느 정도 기력이 돌아온 나는 화안금정을 발동시키며, 모든 것이 부서진 폐허에서 마력로의 위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일을 겪고도 또 떨어지라구욧?! 어림도 없지! 자가 치유! 흐아아아압!”

한쪽 무릎을 꿇고 상체를 꼿꼿이 세운 김혜옥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괴상한 기합을내질렀다.

지하실 전체가 우렁우렁 울리는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그녀의 육신에서 눈이 멀어버릴 듯한 에메랄드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뿌드득! 뿌드득!

김혜옥의 몸뚱이가 에메랄드빛으로 물든 것과 동시에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근육과 살점이 재생되며 뼈가 보일 듯 갈라지고 찢어진 상처가 즉시 봉합되었다.

곧이어 마치 곤충이 허물을 벗기라도 하듯 상처가 가득한 그녀의 피부가 쩌저적 갈라지며, 그 아래에서 새로운 피부가 돋아났다.

-찌지지직!

“후우 개운하다! 다 됐어요. 싸부님! 상처 다 치유했으니. 같이 가요!”

허물처럼 흩날리는 피부 파편들을 쥐어뜯는 것으로 자가 치료를 마무리한 김혜옥은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뭔가 인간의 그것으로부터 멀어져가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지만. 굳이 이제와서 그런 것을 지적하긴 늦어도 한참 늦었기에….

나는 태연하게 그녀의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켜 세워줬다.

“어디 보자…. 마력로가 분명히 여기에…. 젠장.”

지하실이 좀 넓긴 했지만, 마력로가 설치될만한 장소는 워낙 뻔하기도 했거니와.

꼼꼼한 성격을 자랑하는 강태백이 그것의 위치를 워낙 상세히 알려줬기에, 마력로를 금방 찾아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은 나의 오산에 불과했다.

“망할. ‘여기’는 개뿔. 어디가 어딘지 구분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모든 것이 파괴되어 폐허가 되어버린 지하실은 이미 어디가 어딘지 구분조차 불가능하게 변해버린 상황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탓에 우리가 내려온 계단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니만큼, 마력로를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황량한 폐허를 바라보는 내 입에서 허망한 한숨과 욕설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확 그냥. 잔해째로 전부 날려버려야 하나?

“싸부님! 여기 뭔가 번쩍거리는 게 있어요!”

이맛살을 찌푸린 채로 어둠이 내려앉은 황량한 잔해를 살펴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한 마리 땅강아지처럼 잔해를 헤집던 김혜옥의 입에서 묘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녀의 호들갑스러운 소리에, 즉시 몸을 날려 그쪽으로 다가가 보니….

-삐빅! 삐비빅!

과연 굉장히 수상쩍은 물건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주변이 벽째로 무너진 탓에 정확한 형태가 뭔지 짐작을 할 순 없었지만.

그것의 외피는 강태백이 알려준 마력로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벽째로 무너진 탓에, 이렇게 잔해에 파묻혀 버린건가?

이러니 내 눈에 들어올 턱이 없지.

-꽈지직!

한숨을 내쉰 나는 단숨에 어둠달을 휘둘러 마력로를 파괴했다.

무언가가 부서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느껴지던 마력의 흐름이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좋아…. 이것으로 마력은 차단했고. 남은 건 길드장님 쪽인가? 부디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놈들이 안배한 탓인지, 내가 찾아온 마력로엔 김준영이란 강적이 떡 버티고 있었다.

간교한 마족들의 성격을 짐작해보건대. 강태백이 찾아간 전력 쪽도 만만치 않게 강력한 적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

걱정이 치밀어 오르자. 나는 어둠이 내려앉은 지하실의 천장을 슬쩍 올려 보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처럼, 어둠이 내려앉은 지하실의 천장은 컴컴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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