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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07화 (207/309)

제207화

엉망으로 짓물러진 채, 아물거리는 눈앞에 급작스럽게 나타난 수수께끼의 메시지.

기이하게도 시야 전체를 분홍빛으로 물들인 그것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남과 동시에, 어째선지 악취 속에서 희미한 연꽃의 향기가 느껴졌다.

“…궈, 권능을 사용하라고?”

갑자기 나타난 기이한 메시지에 의문을 품은 그 찰나의 순간.

썩어 문드러져 붕괴하기 시작한 육신이 무의식적으로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를 사용했다.

무의식의 저편에서부터 누군가의 기억이 분수처럼 솟구쳐, 내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깊이 침잠한 망각의 공간에서부터 내게 한 맺힌 응어리를 맡겼던 이의 힘과 권능이 내 몸을 휘감았다.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의 효과에 따라, 영웅시 『라크슈마』가 잊혀진 영웅의 힘과 권능을 노래합니다.」

라크슈마….

내게 메시지를 보내온 이의 정체는 바로, 내 손에 의해 안식을 찾았던 라크슈마였다.

라크슈마가 한때 막대한 힘과 권능을 지녔던 신이라서 그런지. 그녀가 내게 남긴 한의 응어리는 미약하게나마 라크슈마의 의지가 깃들어 있는 듯했다.

-꽈직! 꽈지직!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의 효과로 라크슈마의 힘과 권능이 내 몸뚱이를 휘감기 시작하자.

아물거렸던 시야가 또렷해졌다. 썩어 문드러졌던 육신이 무서운 속도로 재생되었다.

허무하게 텅 비어버렸던 내력이 새로운 신의 힘을 머금고 빠른 속도로 다시 차올랐다.

-차르르륵!

부패와 타락의 권능에 노출되었던 육신이 완벽하게 재생되기 무섭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희미해졌던 금빛 외골격이 붉게 물들며 마치 연꽃을 온몸에 두른 것과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동시에 변화한 외골격에서 각기 다른 권능을 품은 네 개의 팔이 돋아났다.

따스한 기운과 연꽃향이 풍기는 복숭앗빛 팔은 자애로운 생명의 권능을 품었다.

싸늘한 냉기와 서늘한 위엄을 휘감은 푸른빛 팔은 준엄한 복수의 권능을 품었다.

저 하늘에 떠오른 태양처럼 광휘를 흩뿌리는 상앗빛 팔은 찬란한 빛의 권능을 품었다.

강철같은 굳건함을 자랑하는 은빛 팔은 의 공명정대한 심판의 권능을 품었다.

세상을 자애롭게 보듬던 빛과 번영의 신 라크슈마의 힘과 권능이 내 육신에 깃들었다.

그녀가 생전에 겪었던 서글픈 비극이 구슬픈 노래가 되어, 내 머릿속에 섧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라크슈마가 지닌 막강한 힘과 권능을 사용하는 방법이 머릿속과 육신에 완벽하게 각인되었다.

-샤아아아.

라크슈마가 지닌 빛과 생명의 권능이 어두컴컴한 지하실 전체를 따스하게 물들이자.

제멋대로 날뛰며 사방을 역병처럼 물들이던 타락과 부패의 권능이 눈 녹듯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죽…여?》

주변에 가득했던 자신의 권능이 완전히 사라지자.

하늘을 바라보며, 광포하게 울부짖던 파리 군주의 입에서 의문이 섞인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광기가 번들거리는 커다란 겹눈이 혐오스럽게 뒤룩거리며, 내 쪽을 향했다.

《끼이이이익!》

라크슈마의 권능을 두른 내 모습을 확인한 파리 군주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괴성을 내질렀다.

그의 몸뚱이 곳곳에 박힌 망자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시커먼 파리 떼를 계속해서 토해냈다.

울부짖는 망자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파리 떼에서 부패와 타락의 기운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왜애애앵!

다시 한번 연기처럼 뿌옇게 날아오른 엄청난 수의 파리 떼가 지하실 전체를 가득 메웠다.

귀가 먹먹해질 만큼 요란한 날갯짓 소리와 함께, 부패와 타락의 기운이 음울하게 넘실거리며 주변을 장악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방을 장악한 부패와 타락의 기운이 내 육신에 엄습해오려던 그 순간!

-화아아아악!

외골격에 돋아난 복숭앗빛 팔이 앞으로 휘둘러지며, 따사로운 생명의 권능을 흩뿌렸다.

타오르는 태양처럼 찬란히 빛나는 상앗빛 팔이 찬란한 빛의 권능을 흩뿌렸다.

두 개의 권능이 사방을 밝게 물들이며, 주변을 장악한 음울한 권능들을 삽시간에 소멸시켰다.

-파스스스스.

그렇게 파리 군주의 권능이 소멸되는 것과 동시에, 시끄럽게 날갯짓하며 지하실을 노닐던 파리 떼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파리 특유의 날갯짓 소리가 가득했던 지하실에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

“…상극이라니. 어째서 당신이 자신의 권능을 사용하라 속삭였는지 이제야 알겠어.”

부패의 음습한 기운을 포근히 감싸는 따사로운 생명의 권능!

어두컴컴한 타락의 기운을 정화하는 찬란한 빛의 권능!

먼젓번에 사용하고 있었던 니르리티의 권능도 강력한 권능이긴 했으나, 얄궂게도 라크슈마의 권능은 파리 군주의 권능과 완벽히 상극이었다.

생명과 빛의 권능이 주변을 장악함과 동시에 만연했던 타락과 부패의 권능을 순식간에 씻은 듯 자취를 감춰버렸다.

《끼이이익! 좋은 냄새! 따스한 기운! 전부 죽인다!》

파리 군주는 광기에 찬 괴성을 내지르며, 날개를 힘차게 퍼덕였다.

엄청난 풍압과 함께, 그의 거대한 거체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날카롭게 번들거리는 여섯 개의 다리가 위협하듯 쫘악 펼쳐졌다.

-쐐애애액!

힘차게 날갯짓하며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 파리 군주는 엄청난 속도로 내게 쇄도해왔다.

흉측한 가시가 촘촘히 돋아난 앞다리가 진득한 살기와 괴력을 품고 흉험하게 꿈틀거렸다.

-꽈드드득!

하지만 힘차게 쇄도해온 파리 군주의 위협적인 공격은 내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외골격에서 돋아난 네 개의 팔이 강인한 힘을 발휘하며, 내게 휘둘러진 파리 군주의 앞다리를 굳건하게 꽈악 붙들었다.

단단한 갑각이 허무하게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파리 군주의 앞다리가 단숨에 부러졌다.

《끼야아아악!》

박살난 파편들과 함께,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녹색 체액이 사방으로 후드득 뿌려졌다.

한순간에 앞다리를 잃어버린 파리 군주가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그의 갑각 곳곳에 박힌 망자들의 얼굴이 공명하듯 귀곡성을 토해내며, 서럽게 통곡했다.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던 당신이 이토록 가엾은 미물로 전락해버렸다니…. 그 쪽에게 그리 좋은 감정은 없지만. 그래도 불쌍하긴 불쌍하네.”

한 마리 짐승처럼 요란하게 울부짖는 파리 군주의 모습에 나는 쓰게 웃었다.

회귀 전이나 회귀 후나. 체체파리 클랜과 그들을 지휘하는 파리 군주와 그리 유쾌한 관계를 맺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낙오자들의 기억에 의하면, 그 역시 ‘인과율’이라는 존재의 악취미에 희생된 불쌍한 운명이었다.

…간악하고 사특한 짓만 저지르고 있는 마족들 역시, ‘인과율’이라는 놈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신세에 불과했으니 말이지.

《끼이익! 끼이이익! 아파! 아팟!》

부러진 앞다리를 부여잡은 파리 군주는 상처 입은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부짖었다.

거대한 육신이 정신없이 들썩이며, 끔찍한 비명이 지하실 전체에 천둥처럼 울렸다.

강력하고 오만했던 존재가, 초라하게 영락해버린 모습에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연민의 감정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당신도 이 웃기지도 않은 전쟁놀이의 희생양일 뿐이야. 내가 이 광대 놀음을 끝내 주겠어!”

이전에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를 통해 니르리티의 권능을 빌려와서인지. 애석하게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더는 시간을 끌지 않고 파리 군주를 한 번에 편하게 보내줄 각오로, 나는 내게 깃든 라크슈마의 권능을 모조리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경고! 사용자님이 제어할 수 있는 마력 수치를 넘어섰습니다.」

「경고! 영웅시의 힘을 지나치게 끌어 쓸 경우, 영웅시의 효과가 강제로 종료될 수 있습니다.」

내게 깃든 라크슈마의 권능과 힘을 모조리 끌어모으기 시작하자.

먼젓번에 떠올랐던 경고 메시지가 다시 한번 주르륵 출력되었다.

머릿속을 허옇게 물들이는 고통이 또다시 찾아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크으으윽!”

외골격에 돋아난 네 개의 팔에서 각각의 권능을 상징하는 기운들이 화려하게 솟구쳤다.

빛과 번영을 관장하는 라크슈마의 막강한 권능과 힘이 폭발하듯 내 가슴께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라크슈마가 관장하는 네 가지 권능이 한 곳으로 집중되며, 막강한 파괴력을 빚어냈다.

천둥이 울부짖는 듯, 우레가 통곡하는 듯! 광포한 으르렁거림이 내 가슴께에서 쉴새없이 들려왔다.

당장이라도 눈이 멀어버릴 듯한 광채가 내 가슴팍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번쩍!

《…!》

그렇게 집중된 기운이 파리 군주를 향해 터져나간 순간!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파리 군주의 거대한 몸뚱이가 그대로 빛과 함께 소멸하기 시작했다.

단단한 갑각을 자랑하는 파리 형태의 육신이 빛 속에서 산산이 스러지며 부서져 나갔다.

파리 군주의 몸뚱이 곳곳에 박힌 망자들의 얼굴이 뜨거운 눈물을 흘려대며, 빛속에서 소멸했다.

「경고. 영웅시 『라크슈마』의 효과가 강제로 종료됩니다.」

파리 군주가 소멸함과 동시에, 아득한 어둠이 나를 찾아왔다.

동시에 경고음이 눈 앞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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