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끼끄에에엑!》
《끼야아아악!》
김준영의 몸을 부수고 나온 거대한 파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구슬프게 포효하자.
놈의 몸뚱이 곳곳에 박힌 망자들의 얼굴이 동시에 소름 끼치는 귀곡성을 울부짖었다.
놈의 등 쪽 갑각에 박힌 김준영의 거대한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며, 검붉은 피눈물을 주르륵 흘러내렸다.
…참으로 섬뜩하면서도 서글픈 강림이 아닐 수 없었다.
“한때 성좌였던 당신마저, 이런 식으로 영락해버린 건가….”
한때 수없이 많은 사교도를 추종자로 거느렸던 성좌, ‘쇠락한 고성의 파리 군주’의 비참한 몰골에 나는 씁쓸하게 탄식 어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게다가 특성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 속에 각인된 낙오자들의 기억들이, 파리 군주가 어떠한 운명을 맞이하였는지를 내게 속삭여줬기에. 나는 씁쓸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끼이이익?》
김준영의 육신을 빌어 강림한 파리 군주는 마치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순진무구한 호기심이 서린 시선으로 어둠이 깃든 지하실을 두리번거렸다.
파리의 그것과도 같은 겹눈을 반짝거리는 그의 시선에선 필멸의 영역을 벗어던진 초월자 특유의 근엄한 위엄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지혜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의 내 눈앞에 있는 것은, 그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초월자의 비참한 흔적에 불과했다.
“신도들에게 하사했던 예속의 징표가, 이제는 역으로 당신의 목을 옥죈 올가미가 되어버렸어.”
파리 군주의 거대한 육신엔 한때 김준영과 장현태가 지니고 있었던 신물이 틀어박혀 있었다.
낙오자들의 기억이 속삭여 준 바에 의하면, 마족들은 성좌와 연결된 예속의 징표. ‘신물’을 매개체로 삼아 파리 군주가 지닌 힘과 권능을 모조리 흡수해버린 듯했다.
때문에 지금 내 눈앞의 파리 군주는 본래 지녔던 신격과 지성을 모조리 빼앗겨 버린 껍데기나 다름이 없는 존재였다.
-꾸드드드득!
-파지지지직!
파리 군주의 비참한 영락에 쓴웃음을 지은 나는 니르리티의 힘과 권능을 한껏 끌어올렸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오른팔을 타고 시커먼 죽음의 기운이 음울한 어둠을 흩뿌렸다.
새까맣게 타들어 간 왼손을 타고 새하얀 파괴의 기운이 파멸의 빛을 퍼뜨렸다.
영락해버린 파리 군주에게 안식을 선사해줄 각오로, 나는 가장 파괴적인 일격을 준비했다.
-파츠츠츠츠!
씨실과 날실이 비단을 자아내는 것처럼, 빛과 어둠이 얼기설기 얽히며 사슬을 얽어냈다.
빛과 어둠 그리고 파괴와 죽음이 깃든 사슬이 어둠달을 휘감으며, 흉험한 기운을 흩뿌렸다.
-피슛!
필멸의 영역을 벗어난 파괴력을 품은 어둠달의 창날에서 파천 복룡창의 두 번째 초식, 독룡아가 가장 파괴적인 형태로 시전 되었다.
빛과 어둠을 머금은 용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파리 군주의 사각을 노리고 빛살처럼 날아갔다.
《끼이이이?》
필멸의 영역을 초월한 파괴력이 파리 군주의 껍데기만 남은 육신을 소멸시키려던 그 순간!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파리 군주의 움직임이 갑작스레 뚝 멎었다.
거대한 머리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번들거리는 겹눈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폭사 되었다.
맹목적인 적의, 아니 누군가의 개입으로 강제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적의가 그의 몸에서 불길하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끼야아아악!》
어마어마한 귀곡성이 파리 군주의 거대한 육신에서 폭발하듯 울려 퍼졌다.
날개와 갑각에 박힌 망자들의 얼굴이 동시에 비명을 내지르자,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진득한 마력이 담긴 충격파에 노출된 어둠달의 창날에 휘감은 파괴와 죽음의 권능이 허무하게 흩어져버렸다.
“치잇!”
힘을 잃어버린 어둠달을 재빨리 회수한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재빨리 파리 군주의 정면에서 벗어났다.
-푸스스스!
아슬아슬하게 파리 군주의 정면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내가 서 있었던 자리가 시커멓게 물들었다.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이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썩어 문드러졌다.
…나를 상대할 정도의 힘은 남겨 둔 건가?
하긴, 아무리 파리 군주가 껍데기만 남은 상태라곤 해도 놈들이 그를 그리 허무하게 낭비할 리가 없지.
아무리 마족들에게 대부분의 권능과 힘을 빼앗긴 상태라곤 하나.
필멸의 영역을 벗어던진 초월자, 성좌의 자리에 올랐던 파리 군주는 껍데기만 남은 상태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조금 전, 막 강림했을 때 보여줬던 순진한 모습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흉악한 위압감이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끼끄르르르!》
《끼야아아악!》
나를 바라보며, 선명한 녹색 안광을 뿜어낸 파리 군주는 거대한 날개를 쫘악 펼쳤다.
반투명한 날개에 새겨진 망자들의 얼굴이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일그러진 입을 크게 벌렸다.
-왜애애앵!
망자들의 입이 쩌억 벌어지자, 엄청난 수의 파리가 그들의 입에서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파리 특유의 날갯짓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오며, 파리의 무리가 지하실 전체를 집어삼켰다.
허공을 뿌옇게 수놓은 파리의 무리는, 파리 군주가 자랑하는 부패와 타락의 권능을 안개처럼 사방으로 흩뿌렸다.
-푸스스스.
파리의 무리가 내뿜은 부패의 권능에 노출된 웨어배트들의 시신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 문드러졌다.
타락의 권능에 노출된 시신들은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흉측하게 일그러진 육신을 일으켜 세웠다.
“크허헝!”
부패와 타락의 기운을 흩뿌리는 파리 떼의 향연에. 나는 거센 포효를 내질렀다.
지하실 전체를 우렁우렁 울리는 포효를 타고, 파괴와 죽음의 권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퍼벅! 퍼버벅!
니르리티가 자랑하는 파괴와 죽음의 권능에 노출된 파리들은 마치 폭죽처럼 요란하게 터져나갔다.
포효를 내지른 것만으로도, 삽시간에 지하실을 수놓은 파리들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지만.
애석하게도 파리 군주의 날개에선 계속해서 새로운 파리 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끄르르륵!》
거기에 타락의 권능에 오염된 시신들은 비틀거리며,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속도는 느렸지만,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흉하게 부풀어 오른 놈들의 육신에선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강대한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싶었지!”
어둠달을 콰악 틀어쥔 나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다시 한번 양손에 깃든 니리르티의 권능을 어둠달 속으로 밀어 넣었다.
파괴의 기운이 새하얀 전하가 되어, 어둠달의 늘씬한 창대를 타고 광포하게 들끓었다.
죽음의 기운이 시커먼 어둠이 되어, 어둠달의 뾰족한 창날을 타고 음울하게 솟구쳤다.
-피슛! 피슈슛! 피슈슈슛!
흉포하게 꿈틀거리는 두 가지 기운이 어둠달에 집중되자.
나는 막강한 파괴력이 깃든 어둠달을 번개처럼 휘둘러, 파천 복룡창의 첫 번째 초식 연포 칠룡격을 펼쳐냈다.
어둠달의 창날이 일곱 개로 분열되며, 일곱 마리의 용이 파리 떼에 잠식된 허공을 광폭하게 물어뜯었다.
-파지지직!
창날이 파리 떼와 충돌할 때마다. 파리 군주와 니르리티의 권능이 거칠게 맞부딪혔다.
파괴의 권능과 부패의 권능이 서로 격렬하게 반응하여, 새하얀 전하와 녹색 독기를 내뿜었다.
죽음의 권능과 타락의 권능이 서로를 난폭하게 물어뜯으며, 시커먼 어둠과 보랏빛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끄오오오!》
-콰콰콰쾅! 콰콰쾅!
네 가지 권능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지하실 전체를 장악해 나가자.
느릿하게 걸어오던 변이된 시신들이 격렬한 충돌에 휩쓸려, 연속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폭발한 시신들로 인해, 시큼한 악취와 질척한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끼끄르르륵!》
파리 군주는 기다란 주둥이를 촉수처럼 휘둘러, 폭발해나간 시신의 피와 살점들을 게걸스레 탐닉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주둥이가 시신들을 흡수하자, 파리 군주의 날개에 돋아난 얼굴들의 숫자가 더욱 늘어나기 시작했다.
《끄으으으. 린간? 필멸좌? 눠는 누구? 괴로워. 괴로워어엇!》
날개에 망자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파리 군주의 자아가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다.
괴성만을 질러대던 파리 군주의 입에서 어눌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번들거리는 겹눈에 조금씩 조금씩 총기가 돌아왔다.
갑자기 성장한 자아에 혼란을 느낀 모양인지, 놈은 거칠게 포효하며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 누군가가 머릿속에 속삭여. 아파! 괴로워!》
고통스럽게 포효하며 몸을 일으킨 파리 군주의 몸에서 부패와 타락의 권능이 더욱 지독하게 흘러나왔다.
아무리 껍데기만 남은 몸이긴 하나 자아가 성장하자, 그의 육신에선 어지간한 마족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위압감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죽여! 눈앞의 모든 것을 죽여!》
-카가가각!
광포하게 울부짖은 파리 군주는 갑자기 거대한 앞다리를 벼락처럼 휘둘러 왔다.
더욱 강력해진 그의 권능에 간신히 대응하고 있던 나는 외골격에 니르리티의 권능을 주입해, 어둠달을 휘둘러 놈의 기습을 간신히 막아냈지만….
-우두둑!
“크으윽!”
파리 군주의 앞다리에 담긴 초월적인 괴력에 오른팔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부러져버렸다.
어둠달을 틀어쥔 오른손이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한순간 손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파스스스!
오른손에서 힘이 쭉 빠져나간 순간.
간신히 팽팽함을 유지하던 힘과 힘의 충돌에 공백이 생겼다.
일순간 텅 비어버린 공간을 타고, 부패의 권능이 지독한 독기를 풍기며 내게 엄습해왔다.
부패의 권능에 잠식된 몸이 시커멓게 썩어들어갔다. 속에서 시커먼 핏물이 왈칵 솟구쳤다.
「경고! 영웅시 『니르리티』의 제한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설상가상이었다.
온몸이 산채로 썩어들어가는 고통과 함께, 제한시간이 임박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전신에 팽배하게 퍼져나갔던 초월자의 권능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는 건가?
순식간에 당해버린 탓에 지독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시야가 어둑어둑해지며, 정신이 아물아물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버리던 순간…!
《제, 권능을 사용하세요.》
눈 앞에 의외의 메시지가 출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