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시건방진 소리를 지껄인 것 치곤, 꼴사나운 모습이로군요. 비루먹은 판다입니까?》
김준영이 니르리티가 내 손에 토벌된 후에 마족 측으로 합류해서일까?
추악한 얼굴에 비웃음을 띈 김준영은 그녀의 막강한 권능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 때문인지 죽음과 파괴의 권능이 깃든 내 육신을 바라본 놈의 감상평은 신랄하기만 했다.
비루먹은 판다처럼 꼴사나운 모습이라….
역병 걸린 거미처럼 생긴 놈이 멋대로 지껄이고 자빠졌어.
《이번엔 지난번처럼 자비를 기대하지 마시길. 새로운 힘을 손에 넣은 그분들께선 이젠 당신의 ‘몸뚱이’에만 관심이 있거든요.》
그렇게 비웃음을 흘린 김준영 지휘하듯 손을 움직여 등 뒤에 후광처럼 떠오른 거대한 손들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검붉은 핏물을 눈물처럼 뚝뚝 흘려내는 손이 불온한 마력을 머금고, 마치 대서양의 청어 떼처럼 무리를 지어 일사불란하게 허공을 유영했다.
《그 추하고 비루한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드리죠!》
-끼야아악!
김준영의 일갈과 함께, 허공을 유영하던 검붉은 손들이 굶주린 상어 떼처럼 내게 쇄도해왔다.
검붉은 손에 돋아난 망자들의 얼굴이 귀곡성을 내질렀다. 망자들의 눈에서 원한에 찬 피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콰드드득!
사방을 잠식해오며 내게 쇄도해오는 검붉은 손들은 섬뜩한 귀기를 발산하며, 자신들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거침없이 찢어발겼다.
놈들에게 스친 콘크리트 벽이 과자처럼 뜯어졌다. 철근이 수수깡처럼 뚝뚝 부러졌다.
김혜옥에게 당한 웨어배트들의 시신이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렇게 원념에 찬 잔혹한 손길이 나를 덮치려는 순간!
“…그래? 할 수 있다면 해보시든지!”
나는 원념과 귀기를 뿜어내는 검붉은 손을 바라보며,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동시에 새하얀 빛과 요동치는 전하에 휘감긴 왼팔을 사선으로 휘둘러,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파멸적인 권능을 전방으로 흩뿌렸다.
-꽈르르릉!
어둠이 내려앉았던 지하실이 파괴의 기운을 품은 벼락에 의해 순간적으로 새하얗게 물들었다.
검붉은 손들이 내지르던 귀곡성이 광폭하게 으르렁거리는 천둥소리에 삼켜졌다.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우는 파괴의 권능에 노출된 검붉은 손들은 모조리 잿빛 잿가루가 되어 허무하게 파스스 흩어져버렸다.
《…!》
김준영이 자랑하던 육십 개의 손들이 허무하게 재가되어 스러지자.
오만한 비웃음이 가득했던 놈의 암녹색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연둣빛이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도 된 것처럼 우아하게 움직이던 손이 움직임을 뚝 멈췄다.
-쿠콰콰쾅!
김준영의 경악에 찬 반응을 즐거이 감상할 시간 따윈 없었다.
검붉은 손을 그렇게 무력화시킨 나는 즉시 땅을 힘껏 박차며 놈을 향해 도약했다.
필멸의 영역을 벗어난 힘이 깃든 다리가 무자비하게 대지를 강타할 때마다, 폭발음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크윽! 어디서 제법 강력한 잔재주를 익힌 모양입니다만! 어림도 없죠!》
-푸화하하학!
김준영은 낯빛을 딱딱하게 굳히며, 자신의 다리를 향해 암녹색 마력을 연기처럼 뿜어냈다.
놈이 전신에 두른 암녹색 외골격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들며 하반신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두 개의 기운이 집중된 거미 형태의 하반신이 다리를 바쁘게 놀리며, 무언가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흐어어어어!》
내뱉은 암녹색 마력은 거미줄 무늬가 새겨진 형태의 갑옷과 무기가 되었다.
녹아든 암녹색 외골격은 김준영을 빼닮은 분신이 되어 그것들을 장착한 채,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탄생한 놈의 분신들은 귀기 어린 귀곡성을 내지르며, 나를 향해 거침없이 무기를 휘두르며 쇄도해왔다.
-키리리릭!
거미줄 무늬가 인상적인 각양각색의 무기가 시퍼런 살기를 토해냈다.
분신들 한 마리 한 마리가 각자의 의지를 지니기라도 한 모양인지, 광포하게 무기를 휘두르는 놈들의 움직임은 숙련된 베테랑 헌터의 수준을 가뿐히 능가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분신들의 몸뚱이에선 어지간한 몬스터 따위완 비교조차 불가할 만큼 강대한 살기와 마력까지 느껴졌다.
-꽈드드득!
동시에 김준영은 다시 한번 거미줄을 뱉어내, 이번엔 거대한 활과 화살을 만들었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훨씬 거대한 화살과 그보다 더 거대한 활을 단단히 움켜쥔 놈은 무서운 괴력을 발휘하며, 단숨에 활시위를 당겼다.
《어디 감당할 수 있으면 감당해보시죠!》
김준영의 호기로운 외침대로 이어진 놈의 공격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시위를 떠난 화살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허공을 유영하며, 김준영의 분신들과 합을 맞추었다.
《끄어어억!》
-쐐애애애액
노련한 공격대원들처럼 유기적으로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김준영의 분신!그들의 뒤에 숨어 내 목숨을 노리고 날아드는 거대한 거미줄 화살!
김준영이 ‘그분’들에게 모종의 힘과 권능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회귀 전 전성기 시절의 나조차도, 아니 회귀 전의 이름난 강자들조차 감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인 공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걸리적거린다!”
『잊혀진 자들의 영웅시』로 인해, 낙오자들의 권능을 얻은 지금의 내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볍게 휘둘러진 어둠달으로부터 시커먼 죽음의 기운이 주변을 온통 새까맣게 물들었다.
시커멓게 물든 채, 앙상한 뼈만 남아있던 오른팔에서 시커먼 어둠이 꿈틀거리며 죽음의 권능을 주변에 흩뿌렸다.
-푸스스스스!
지독하게 서늘한 죽음의 기운이 사방을 어둡게 물들이자.
어둠에 노출된 김준영의 분신들이 시커멓게 물들며, 허무하게 비쩍 말라 부스러졌다.
교활하게 빈틈을 파고들어 날아들던 화살이 새까맣게 변색 되어 힘없이 뚝 떨어졌다.
《어, 어떻게 당신 따위가. 필멸자 따위가! 이런 힘과 권능을!》
-푸화하학!
야심찬 공격이 단 한번의 반격으로 무위로 돌아가자, 혼란에 빠진 김준영은 현실을 부정하며, 발악하듯 다시 한번 입에서 암녹색 거미줄을 뿜어냈다.
김준영의 하반신이 바삐 다리를 놀리자, 거미줄로 만들어진 방패가 생성되어 나와 놈 사이를 가로막았다.
암녹색 마력이 번들거리는 거미줄 방패는 얼핏 보기엔 상당한 내구력을 지닌 것처럼 보였지만….
-서걱!
죽음과 파괴의 기운을 후광처럼 두른 어둠달은 너무도 간단히 김준영의 방패를 쪼개 버렸다.
아니, 그저 단순히 암록색 거미줄만 잘라낸 수준이 아니었다. 거미 형태의 하반신에 시커먼 사선이 그어졌다. 놈의 신형이 기우뚱 비스듬히 기울었다.
-쿠구구궁!
금속으로 이뤄진 거미와도 같은 하반신이 반으로 비스듬히 잘려나가자.
균형을 잃어버린 김준영의 거대한 육신이 허물어지듯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흐억. 흐아아악! 이,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고! 어, 어떻게 필멸자 따위가!》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김준영은 공포에 질린 채로 발악적하듯 양팔을 휘두르며, 추악한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에 희생당해 날개를 잃어버린 잠자리와도 같은 비참한 모양새였다.
-콰곽!
버둥거리는 김준영에게 다가간 나는 놈의 버둥거리는 몸뚱이를 지그시 밟았다.
제법 단단해 보이는 금속 소재의 외피를 지닌 거미 형태의 몸뚱이였지만, 단순히 살짝 밟은 것만으로도 김준영의 금속 외피는 허무하게 과자처럼 부서져 나갔다.
내게 벌레처럼 짓밟힌 김준영의 눈에 숨길 수 없는 공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힉! 히이익!》
“그거 알아? 내 앞에서 필멸자 어쩌고 지껄인 놈들. 하나 같이 험한 꼴 봤다는 거?”
공포에 질린 채로 이젠 혓바닥조차 제대로 놀리지 못하는 김준영의 모습에 나는 히죽 웃으며, 최후의 공격을 준비했다.
빛과 어둠을 두른 어둠달이 놈의 목숨을 노리며, 파괴와 죽음의 기운을 음울하게 내뿜었다.
《흐헉! 자, 잠시만! 아직 저는 패배해자 않았습니다! 부디 기회를…!》
-까드득!
어둠달의 창날이 막 김준영의 목을 베어내려던 순간!
벌벌 떨며 나를 바라보던 김준영의 입에서 별안간 묘한 애원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더니 놈의 입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끈끈하면서도 음습한 비췻빛 마력이 김준영의 육신을 휘감으며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치잇!”
-쿠콰쾅!
사방으로 퍼져나간 마력은 간악하게도 구석지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김혜옥을 노렸다.
침음성을 흘려낸 나는 즉시 어둠달을 회수하며, 궁지에 빠진 햄스터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김혜옥 쪽으로 몸을 날렸다.
-빠지직!
김혜옥의 바로 앞에 뚝 떨어져 내린 나는 즉시 파괴의 기운을 휘둘러, 엄습해오는 마력을 태우려 들었다.
하지만 무슨 조화에선지 연기처럼 넘실대는 비췻빛 마력은 파멸의 새하얀 빛을 거뜬히 막아내며, 불길한 존재감을 더욱 키워나갔다.
“…빌어먹을. 어서 여기서 도망쳐!”
“예? 싸부님. 하, 하지만….”
“실랑이할 시간 따윈 없어! 잔말 말고 어서!”
연기처럼, 역병처럼 퍼진 비췻빛 마력 속에서 김준영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자.
화안금정의 영향으로 금빛으로 물든 시야가 연신 경고를 보내왔다. 은은하면서도 끈끈하게 퍼져오는 살기에 심장이 뚝 멎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나는 김혜옥을 계단 위쪽으로 내쫓듯 떠밀었다.
《아, 안돼! 제발!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아아악!》
비췻빛 마력의 연기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김준영은 비참하기 짝이 없는 몰골이었다.
거미 형태의 하반신을 잃어버린 몸뚱이는 인간형의 그것과 같은 형태로 되돌아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놈의 육신은 미라처럼 완전히 깡말라 있었고, 군데군데 갈라진 외피에선 피와 진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참한 몰골과 애걸하는 듯한 말투에도 불구, 비췻빛 안광을 흉흉하게 뿜어내는 두 눈에선 이전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력이 역병처럼 들끓고 있었다.
-쩌저적!
연신 애걸하며 헛구역질해대던 김준영의 깡마른 몸이 귀곡성과 함께, 갑자기 부서져 나갔다.
놈의 몸에서부터 코를 얼얼하게 만드는 악취가 깃든 연기가 뿌옇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연기 속에서부터 어째서인지 희미하게 파리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왜애애애앵!
파리의 날갯짓 소리와 함께, 시야를 가득 메웠던 비췻빛 연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기가 사라지자, 김준영이 서 있던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끔찍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끼이이야아아악》
변이, 아니 탈피를 끝낸 김준영의 모습은 거대한 파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비췻빛으로 번들거리는 등쪽의 갑각엔 김준영의 절규하는 얼굴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고.
녹색 진물을 뚝뚝 흘려내는 날개의 피막엔 울부짖는 망자들의 얼굴이 알알이 박여 있었다.
조금 이질적이긴 하나.
김준영이 변이한 형태는 분명, 내 기억속에 있는 존재와 상당히 유사한 형태였다.
“…쇠락한 고성의 파리 군주.”